00037 Game No. 37 =========================================================================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김재현이 GG를 선언했다. 화면에 비친 김재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분명 해 볼만한 싸움이었다. 조금만, 한 타이밍만 진출하는 걸 틀어막았다면 이길 수 있었다.
-이야. 정말 대단합니다.
-이 정도면 끝났죠.
-초반에 잔 실수가 분명있었지만 그 것을 제외하면 완벽한 운영이었습니다. 멀티를 먹는 타이밍이나 상대방의 허술한 부분을 노리는 심리전 역시 매우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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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전에 도재열을 잡았을 때보다, 프로리그에서 올킬을 달성했을 때보다 난 지금 이 순간이 더 기뻤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내 실력으로 승리를 따냈기 때문이었다.
초반에 실수가 있었다.
‘정찰을 안 보냈을 줄이야.’
정찰을 보낸 줄 알았는데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상대 본진이 있는 쪽에 클릭을 했는데 중간에 다른 명령을 넣었는지 용족의 일꾼 용안이 정찰을 나가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식겁했다.
혹 상대가 올인류를 준비했다면 큰일이 나는 것 아니겠는가?
부랴부랴 용안을 상대 본진에 보내 정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다행히 상대는 배를 불리는 빌드. 천만다행이었다.
이게 실수의 전부였으면 좋겠지만 그 후에도 실수는 또 나왔다.
첫번째 비비를 너무나도 허무하게 잃고 만 것이다.
컨디션으로 인한 버프를 받고 있는 상황임에도 내 공중 유닛 컨트롤 스탯은 아직 30을 넘지 못한다. 평균 이상의 스탯을 보유한 공격력과 지상 유닛 컨트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치였다.
‘일단 체력 확보한 이후로 공중 유닛 컨트롤에도 스탯을 좀 투자해야겠다.’
당장이야 지상 유닛으로 대체하거나 만회할 수 있다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순 없다.
공중 유닛을 아예 안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종족전을 떠나 공중 유닛을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당장 마수전에선 비비 활용이 경기의 승패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환국전 역시 최종병기인 천왕랑과 유용한 마법 2가지를 들고 있는 나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동족전인 용족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으로 지룡을 운룡에 태워 이동하기 때문에 섬세한 컨트롤이 없다면 상대방의 일점사에 의해 지룡을 태운 운룡이 공중 폭사 당할 수 있다.
오늘이야 운이 좋아 이겼다지만 항상 이런 운이 따르진 않았다.
‘스킬 안 쓰길 잘했다.’
만약 스킬을 사용했더라면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기도 전 경기를 쉽게 이겨버렸을 것이다. 아니면 사소한 문제로 생각하고 그냥 넘겼을지도 모르고.
결과적으로 잘되었다.
문제점을 파악함과 동시에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1승을 챙긴 셈이니까.
사실 [투신]에 대한 강박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 [투신]을 사용하지 않으면 뛰어난 전투를 펼치지 못할 것이라는.
하지만 오늘 경기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투신]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난 멋진 전투를 펼쳤다. 그 사실이 너무 뿌듯했다.
‘다음 상대는 누구지?’
2경기는 MBS 게임의 장만호와 웅인 스타즈의 정웅현이었다.
용족과 환국의 대결.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쨌든 최종전에 가지 않는 이상 마수를 만날 가능성은 아예 사라졌다.
승자전 경기의 상대는 누가 되든 상관없었다.
환국전이야 원래 늘 자신 있던 종족전이었고 용족전 역시 [날빌러]를 자주 사용해서 그런지 상대가 어떤 빌드를 사용할 것 같다는 감이 조금씩 왔기 때문이었다.
난 장비를 챙겨 대기실로 돌아갔다.
“잘했다.”
도 수코님이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첫 번째 비비 흘렸을 때 진짜 식겁했다.”
“죄송해요.”
“죄송하긴.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지 뭐. 그 후의 상황판단은 아주 좋았어. 뭐 딱히 내가 할 말이 없다. 워낙 잘해서.”
보통 사람들은 프로게임단에 감독과 코치란 존재가 정말 필요한 걸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어느 정도 이해가는 의문이다. 방송에서 비춰진 감독과 코치가 하는 일은 그저 엔트리를 작성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이 전부다. 하지만 이는 코끼리 코를 만지고 코끼리는 뱀처럼 생겼구나라고 판단하는 것과 비슷하다.
코치진들이 하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선수들에 관한 모든 일을 관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오늘 사용한 전략부터 멘탈 관리까지. 모든 것은 코치진의 손에서 이뤄진다.
도 수코님이 나를 따라온 이유도 위와 같은 일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패배를 하게 되면 멘탈을 바로 잡아주고 현재 상대의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빌드를 추천해주는 일.
물론 내가 너무나 깔끔하게 이겨버려 도 수코님이 할 일이 없긴 했다.
“그래도 가장 힘든 산 넘었잖아. 어차피 다음 경기 환국 아니면 용족이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알겠습니다.”
“자. 음료수.”
“감사합니다.”
난 도 수코님이 건네주는 음료수 병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정면 위 쪽에 설치 된 화면엔 2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난 음료수를 마시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보면 알겠지만 저 둘도 오랜 시간 동안 방송 경기에 제대로 출전을 못해서 감이 많이 떨어져 있다. 차분히 넌 그냥 네가 할 것만 생각하면 돼. 뭐. 네 경기 보면 내가 굳이 이렇게 말안해도 잘하겠지만.”
진심어린 조언.
열심히 상대를 분석해주는 도 수코님이 정말 고마웠다.
2경기는 정웅현이 승리했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로선 아주 다행인 상황이었다. 세 종족 중 가장 상대하기 편한 종족이 환국이었으니까. 그리고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상대할 수 있는 종족 역시 환국이었다.
“자. 경기 끝났다. 이제 슬슬 가봐라. 솔직히 난 걱정이 없다. 걱정이. 하던 데로만 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난 웃는 얼굴로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
-자. 오늘 경기 결과 정리하겠습니다.
-상당히 치열한 경기가 연달아 펼쳐졌었습니다. 그 결과 아스트로의 이승우 선수가 2승으로 가장 빠르게 MSL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정웅현 선수가 최종진출전을 통해 본선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부분이긴 합니다. 하락세를 겪고 있는 나머지 3명의 선수와 달리 얼마 전 프로리그에서 올킬을 달성하는 등 실력에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상황이니까요.
-확실히 결과물도 좋습니다. 오늘 경기를 통해 양대리거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OSL에서 진 로열로더 자격을 획득한 것 처럼 MSL에서도 마찬가지로 진 로열로더의 자격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랍네요. 저번시즌까지만 해도 이름 한 번 비추지 못했던 선수가 이런 뛰어난 활약이라니.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는 겁니다. 사람 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 교훈을 이승우 선수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선수가 어디까지 비상할지 궁금합니다.
-그럼 이것으로 오늘 중계를 끝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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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주 깔끔하게 2승으로 진출을 확정지었다. 최종전을 뚫고 올라온 상대는 승자전에서 만났던 정웅현이었다.
나로서도, 팀으로서도 최상의 결과였다.
“그나저나 되게 너도 되게 바쁘네. 내일 조지명식에 토요일에 위너스리그 까지. 우리 팀에 너처럼 바쁜 선수가 또 생길 줄이야.”
도 수코님의 이야기처럼 요즘 몸이 2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당장 내일 OSL 조지명식이 있다.
꿈의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과연 나는 어떤 조에 들어가게 될 지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이어지는 위너스리그.
어느 자리에 내가 나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출전할 것이다.
생각보다 힘든 스케줄.
물론 불만은 없다. 오히려 너무 기분이 좋다. 항상 방송 경기로 바쁘길 희망했었으니까.
“그러게요. 그래도 좋은 일이죠. 항상 오는 기회는 아니니까요.”
대답을 한 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항상 보았던 풍경임에도 오늘따라 더 아름답게 보였다.
오늘 난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양대리거.
언젠가 그 타이틀이 내 이름 앞에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로 그 소원을 이루었다.
‘정말이겠지?’
가끔 지금 이순간이 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OSL에 진출한 것도, 위너스리그에서 올킬을 달성한 것도, 오늘 MSL에 진출해 양대리거가 된 것도 모두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
너무나 현실성 없었으니까.
내가 망상 속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불쑥 들 때도 있었다. 내가 얻게 된 [신들의 전쟁 매니저] 자체가 생뚱맞기에 그런지도 몰랐다.
하나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이 설사 내 망상이 만들어낸 환상이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물 들어올 때 노저으라고 지금 타이밍에 뭐라도 하나 해놔야지. 혹시 아냐? 이번에 네가 양대리그 진 로열로더 달성할지.”
“설마요?”
“야.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다?”
로열로더 보다 희귀하긴 하지만 진 로열로더는 있었다. 하지만 양대리그 진 로열로더를 동시에 차지한 선수는 신들의 전쟁 역사 상 단 1명도 없었다.
그게 내가 된다라.
생각만으로 웃음이 절로 나오는군.
“정말 그렇게 되면 여한이 없겠네요.”
“얼마나 좋아? 우리 팀에서도 우승자 나오고. 지금 기세 딱 좋아. 원래 우승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흐름이 굉장히 중요하거든. 너무 자만하지도 말고 겁먹지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해라. 좋은 결과 있을 테니까.”
난 도 수코님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새겨들었다.
“오늘은 숙소 돌아가서 푹 셔. 내일 경기 펼치는 건 아니지만 조지명식도 굉장히 피곤할거야. 특히 너처럼 처음 가는 선수에겐 경기보다 훨씬 더 지칠 테니까.”
그렇게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사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문을 여는 순간 폭죽 터지는 소리가 팡 하고 들렸다.
그리고.
“이승우 선수의 양대리그 진출을 축하합니다!”
문 앞엔 감독님과 코치님을 비롯한 모든 팀원들이 케이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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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한다.”
“형. 진짜 최고야.”
“야. 우리 팀에서도 양대리거가 또 나오네? 현우 형 이후로 없을 줄 알았는데.”
“형 대단해요.”
“오늘 경기 진짜 멋있었어요! 스피릿!”
팀원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언가 중간에 함정 같은 느낌이 드는 말이 있었지만 기분 탓이겠지?
분명 좋은 일이고 팀 전체에서 축하해줘야 할 일이 맞긴 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에 처하니 얼굴에 붉게 달아올랐다.
“양대리그 진출 축하한다. 애들이 너 오는 거 기다리느라고 목 빠지는 줄 알았다.”
나를 기다려?
축해하주기 위해서?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지려고 하네.
그러나 옆에서 치고 들어온 연호의 말에 나의 감동 모드는 돌 맞은 유리창처럼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너 온다는 이야기 듣고 치킨 시켰는데 왜 이렇게 늦었어?? 지금 치느님이 식고 있다. 감히 치느님이 이리 방치하게 할거야?”
아.
따뜻해지려던 가슴이 다시 차가워진다.
그리고 2개의 선택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치킨을 먹고 연호를 때릴까?
아니면 연호를 때리고 치킨을 먹을까?
“자. 안으로 들어와라.”
멍하니 있는 나의 손을 감독님이 끌어 당겼다.
안에는 치킨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자들도 잔뜩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무릉도원이구나!
“오랜만에 양대리거가 우리 팀에서 탄생을 했다. 위너스리그에서도 승리를 따내는 등 요새 우리 팀 분위기가 굉장히 밝다. 앞으로도 이 기세 몰아서 승승장구하자! 사랑한다. 애들아!”
“저도 사랑합니다!”
“감독님 밖에 없어요!”
“감독님에 취한다!”
팀원들의 표정을 보며 느꼈다.
모두들 감독님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있다고.
지금 하는 말이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야. 또 뭐 그렇게 까지 말하냐?”
약간 쑥스러워하는 감독님을 바라보았다.
왜 팀원들이 감독님을 이토록 믿고 따르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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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추천과 댓글 쾅쾅 박아주세요.
그리고 조만간 차기작 연재를 시작할 겁니다. 세계관은 현재 바닥 찍고 레벨업에 나오는 신들의 전쟁 게임의 세계관입니다.
환국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지요.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공을 들인 글입니다.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그 글은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 프리미엄에 올라와있는 반로환동뎐도 사랑해주시면 감사하구요.
일단 무료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셨다면 프리미엄 부분에서 결코 실망하지 않으실겁니다.
연참 했으니 칭찬도 잊지마시구요.
마지막으로 후원쿠폰 보내주신 만인의소시님 김딩동님 스티치련님 감사합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