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5 Game No. 35 =========================================================================
“자. 뭐 먹을래? 오늘의 주인공인 네가 골라봐라.”
“족발을 말해. 족발.”
“치킨먹자. 치느님은 항상 옳다!”
“야. 치킨은 우리끼리 사먹을 수 있잖아. 비싼 거. 무조건 비싼 거.”
팀원들이 두 눈에 불을 켜고 다양한 메뉴를 나에게 전달해왔다. 누가 보면 식사 굶기는 줄 알겠네.
나름 작게 속삭이며 말한다고 하고 있지만 워낙 흥분한 상태여서 그런지 보통 목소리나 크게 차이가 없었다.
족발? 치킨? 무조건 비싼거?
너무나 다양한 주문에 난 순간 선택장애에 걸렸다.
그런 날 구원해준건.
“야. 뭘 그렇게 고민하냐?”
의외로 감독님이셨다.
“다 시켜!”
정말이지 화끈한 발언.
단 3글자로 모든 팀원의 눈빛에 존경이란 두 글자가 새겨졌다.
“감독님 최고!”
“역시 우리 감독님 밖에 없다!”
“이야!!”
근데 어째 팀의 승리를 가져다 준 나는 뒷전으로 밀린 것 같은데. 나보다 야식을 더 반가워하는 같은 느낌을 받는데 착각이겠지? 기분 탓이겠지?
에라. 모르겠다.
“감독님 최고입니다!”
나도 팀원들과 하나가 되었다.
****
30분 후.
“배달 왔습니다.”
첫 배달을 시작으로.
“배달 왔습니다.”
“족발 배달 왔습니다.”
각종 음식이 숙소로 속속들이 배달되었다. 종류는 상당히 다양했다. 팀원들이 사랑하는 걸 넘어 존경하는 치킨부터 탕수육, 족발, 보쌈 등등 평소엔 구경하기 힘든 음식들이 잔뜩 있었다. 바닥에 놓인 음식을 보니 입이 쩍하고 벌어질 정도다. 입이 많긴 하지만 다 먹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내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잘 먹었다!”
승대가 불룩 튀어나온 배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뒤로 기댔다.
“더 이상은 먹으라고 해도 못 먹겠네.”
연호 역시 손사래를 치며 항복을 선언했다.
“형은 더 먹으면 안 되지. 여태까지 먹은 게 있는데. 좀 다른 사람들이 먹게 양보해.”
갑작스런 디스에 살짝 당황하는 연호. 사실 연호는 먹을만큼 먹었다.
진공청소기.
연호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난 단어였다.
“야. 원래 더 먹을 수 있는데 그냥 참은 거야.”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요.”
팀 분위기가 좋다.
사소한 농담에도 모두들 크게 웃는다.
마치 떨어지는 꽃만 봐도 꺄르르 웃는 여고생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당장 다음 승부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은 좋았다.
“더 먹지? 오늘의 주인공은 넌데.”
내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자 식사를 하고 계시던 감독님이 그릇을 슬쩍 밀어주셨다.
“배불러요. 정말 많이 먹었어요. 더 이상 먹으면 배 터질 것 같아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터질 것 같았다.
“그래? 그럼 푹 쉬어라. 체하면 큰일이니까.”
“알겠습니다.”
왁자지껄한 식사자리를 빠져나온 난 조용한 곳을 찾아 휴대폰을 꺼냈다. 엄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어. 아들?
몇 번의 신호가 가고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잘 있었어?
-난 뭐 항상 같지. 아들은?
-나도 잘 지냈지. 혹시 오늘 경기 봤어?
오늘 경기가 있다는 사실도, 내가 출전하게 된다는 사실도 알렸다. 전과 달리 이번엔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아휴. 일이 바빠서 못 봤어. 정말 보고 싶었는데. 1시면 한참 손님이 밀려 들 때니까.
엄마의 목소리엔 미안함이 가득 묻어나왔다.
일하느라 못 본건데 그걸 왜 미안해해. 엄마.
엄마는 현재 식당 주방에서 일하신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주방을 선택한 것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익숙했던 공간.
이렇게 힘들게 버신 돈으로 엄마는 홀로 우릴 키워오셨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동생한테 말해서 다운받아서라도 봐.
-응응. 꼭 그럴게.
엄마는 신들의 전쟁을 할 줄 모른다.
동생 역시 마찬가지고.
하지만 해설진들이 하는 칭찬을 들으면 내가 잘하고 있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거다. 그거면 된다.
-혹시나 해서 물어 보는 건데.
-응응. 말해봐. 아들.
-나 다다음주에 개인리그 경기하는데 혹시 올 수 있어?
예전부터 꿈꿔왔던 것이 있다.
개인리그 16강에 진출하고 첫 경기에 엄마를 모시고 오는 것.
물론 그 경기엔 승리하고 말이다. 아직 개인리그까진 머릴 있었지만 매일 일을 하는 엄마이기에 미리 말해두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6년간 미뤄왔던 꿈을 하나씩 이루고 싶었다.
-흠.
단 한 글자.
하지만 엄마의 심정이 느껴졌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하긴.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일주일 내내 일하는 엄마다. 하루 시간을 내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일 것이다.
돈이 많이 벌고 싶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엄마를 위해서였다. 주방에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것. 좋은 곳 놀러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지금 연봉으론 턱 없이 부족하다.
기다려. 엄마.
내가 우승도 하고 그래서 꼭 효도할게.
-아냐. 바쁘면 못 올 수도 있지. 뭐. 어차피 엄청 큰 무대는 아니야. 예선 지나고 하는 첫 경기인데 뭐.
내가 오히려 더 밝게 말했다. 실망한 내색을 보여선 안 되었다. 그랬다간 전화를 끊은 후 엄마의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질 테니까.
-미안해. 아들. 엄마도 꼭 가고 싶은데. 상황이...
-괜찮아. 내가 결승가면 되지 뭐. 결승 올라가면 와줄 거지?
-그래. 결승 때는 꼭 갈게.
-응. 그러면 됐지. 뭐. 이제 곧 다시 일하러 가야지? 몸 항상 챙기고. 아프면 병원가고. 알겠지? 시간 나면 또 전화할게.
-우리 아들도 잘 지내.
그렇게 전화를 끊은 난 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푹 쉴 수가 없었다. 적어도 결승에 진출해야하는 이유가 생겼으니까.
****
“그러니까 헬스를 다니고 싶다 이거지?”
“네. 이번 위너스리그 경기 치르면서 체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숙소에서 하는 운동엔 한계가 있다. 전문적인 수준까진 아니지만 나름 체계적으로 운동을 배우고 싶었다. 물론 목적은 몸짱이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닌 신들의 전쟁을 더 잘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해야지 뭐.”
감독님은 흔쾌히 승낙하셨다. 거기에 더해.
“비용은 팀에서 내줄 거니까. 개인 pt인가? 뭐 그것도 해.”
비용까지 팀에서 내준다고 하셨다.
“괜찮아요. 저 연봉 받는 거 있잖아요. 이번에 승리수당으로 40만원도 나왔고.”
첫 경기부터 올킬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승리수당을 챙겼다.
무려 40만원.
과거 S1에서 있었을 때 월급과 맞먹는 액수다. 이렇게 큰 돈을 하루 만에 벌었다니 쉽게 믿기지 않았다.
여윳돈이 있기도 했지만 개인 PT를 팀의 돈으로 하는 건 다른 팀원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네 몸이 어디 개인 몸이냐? 팀의 몸이지. 네가 체력이 떨어진다 느끼고 불편하다고 느끼면 그건 팀에서 케어할 문제지.”
“네? 그래도 형평성에서 저만 받는 건 좀...”
“참나.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그렇게 말하곤 선수들의 연습실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감독님.
“자. 전체 주목!”
감독님의 외침에 연습하던 팀원들이 경기를 멈추고 모두 감독님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헬스 하고 싶은 사람?”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배부르게 먹은지 얼마 안 되었는데 무슨 운동입니까? 배 님께서 노하십니다.”
팀원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난 당황했다. 헬스라는 말에 승대는 아예 고개를 다시 화면으로 돌려버렸다.
이 것 참 프리한 느낌일세.
적어도 S1에선 1군 선수들의 체력관리를 해주었다. 앉아서 게임만 하는 일에 무슨 체력이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에게 나는 확실히 답해줄 수 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체력이 소모된다고.
연이어 펼쳐지는 강행군에서 체력이 없으면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다. 그렇기에 S1에선 최소 주4회 이상 운동을 하는 시간을 따로 정해두었다.
“하고 싶은 사람 정말 없어?”
“없습니다.”
“저번에도 물으시더니. 마음이 변하면 말하겠습니다. 한 1000년 후쯤?”
“그럼 개인 PT 붙여주면 할 사람?”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시켜주시면 안됩니까?”
“오. 차라리 연호 말대로 해주십시오. 그게 훨씬 생산적인 일 같습니다.”
“오늘도 치킨 쏘시는겁니까?”
“오늘은 중국 음식 먹자. 중국 음식!”
갑자기 연습실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같은데?
손을 휘적거리며 고개를 가로 젓는 감독님. 표정이 모든 걸 해탈한 스님같았다.
“내가 괜한 말을 했다. 열심히 연습해라.”
그 말을 끝으로 감독님은 연습실 밖으로 나오셨다. 그리고 나를 보며.
“봤지? 걱정마라. 애들은 하라고 해도 안한다.”
“....넵.”
난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었다.
****
“으아. 죽겠다!”
내가 양 손을 하늘로 쭉 뻗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리자.
“그러 길래 쓸데없이 운동은 왜 해? 그냥 있는 체력이나 잘 관리할 것이지. 그러다가 몸상하면 경기력 훅 간다?”
연호가 한심하단 얼굴로 혀를 찼다.
난 어이없는 얼굴로 연호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마음에 안든다. 오히려 그 눈빛은 내가 해야 하는거 아냐??
지금 도대체 누가 한심한 건데.
열심히 운동을 하고 온 내가 한심할까? 아니면 침대에 배깔고 누워서 과자를 먹고 있는 네가 한심할까?
대국민 투표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감독님의 배려로 난 개인 PT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 PT가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라는 걸 깨닫는 데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처음 개인 PT를 하는 날. 난 팔 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 알게 되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들긴 했다. 그래도 난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힘들기만 했다면 당장 운동을 멈추었겠지만 운동을 할 때마다 조금씩 체력 스탯이 올라가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힘들어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누워있다간 돼지 될 걸?”
난 곧장 반격에 나섰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란다.”
연호가 피식 웃으며 몸을 빙글 돌렸다. 손에 들고 있던 과자를 한 주먹 입에 잔뜩 집어넣더니 우물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라? 묘하게 설득력 있는데?
“모르겠다. 어쨌든 너무 빡세게 하지마. 그러다 진짜 훅 간다.”
“걱정해 주는 거라 믿을게.”
“그래. 내일 경기에 영향을 주면 안되지. 그래도 뭐 무난하게 통과하겠던데?”
“듀토?”
“응. 16강 진출전에서 만났던 도재열에 비하면 다들 뭐.”
연호의 말처럼 상당히 힘든 상대를 만났던 OSL 16강 결정전에 비해 이번 MSL 듀얼 토너먼트는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들을 만났다.
프로리그에 거의 나오지 못하거나 승률 4할이 되지 않는 선수들.
확실히 무난한 상대들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되지. 경기는 해봐야 아는거니까.”
방심은 금물이다.
아무리 스킬을 지니고 있어도 내가 실수하면 상황이 확 기울어져버리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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