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3 Game No. 33 =========================================================================
김상연.
종족은 마수.
앞서 상대한 신상운과 달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선수다.
최고 성적은 개인리그 16강.
프로리그 승률로 5할이 안 되는 선수다.
“다음 맵이 영혼의 울림이야. 마수가 용족 상대로 상당히 좋은 맵이니까 나온 것 같다.”
원래 상성 자체가 마수가 용족을 크게 앞선다. 그 것도 힘든데 영혼의 울림이라는 전장도 마수가 용족을 크게 이기고 있는 곳이었다.
영혼의 울림은 전형적인 상성 전장이었다.
환국이 마수에게 유리하고 마수가 용족에게 유리한.
아무래도 3번째 멀티가 조금 떨어져있어 지키기가 용의치 않다. 막말로 마수가 대놓고 흔들어버리면 그걸 알면서도 용족 입장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갈 수 밖에 없다는 말씀.
‘그러니 성적이 안 좋은 김상연도 나올 수 있었겠지.’
스파키즈도 팀 내에서 많은 연구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 김상연은 연습 내내 영혼의 울림에서 용족전을 미칫듯이 팠겠지.
이러한 저격카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플레이 할게요.”
“그래.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이번 판 까지 잡아주면 진짜 승부 어떻게 될지 몰라. 김상연 더럽게 공격적인 스타일이니까 초반에 방어 충실히 하고. 정찰 꾸준히 해. 감독님은 아마 땡그슨대 올 것 같다고 하더라.”
“알겠습니다. 유의할게요.”
유의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보통 용족 선수들이 마수를 상대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하나다.
마수의 체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
마수의 체제 전환은 너무나도 유연하다. 처음 본 것과 전혀 다른 테크를 탈 수도 있다.
그러니 그슨대에 입구가 뚫리는 등 허무한 경기가 종종 나오는 것이다. 마수전을 가장 잘하는 용족 선수로 단연 김택윤을 꼽을 수 있는데 마수전에서 가장 큰 장점이 바로 꾸준한 정찰이었다.
일꾼이 죽지 않는다.
비비가 나오기 전까지.
그때쯤 일꾼이 죽는 건 상관없다. 그 다음 정찰은 공중 유닛인 비비가 대신 할테니까.
이처럼 김택윤은 마수의 체제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한다. 그렇기에 그리 높은 승률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마수가 무얼 하는지 완벽히 알 수 있다.
[날빌러]를 통해서 말이다.
상대가 올인을 준비했다면 [날빌러]는 방어용 빌드를 추천해준다. 반대로 배를 짼다면 공격형 빌드를 추천해주고.
이처럼 난 용족의 태생적인 단점을 극복 할 수 있다.
체력이 빵빵한 상태라면 오히려 마수가 상대하기 편했다.
“그럼 고생하고.”
“넵. 이번에 꼭 이길게요.”
“응원하마.”
내 말에 코치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부스 밖으로 나갔다.
-경기 준비 완료 되셨나요?
준비야 아까부터 완벽하게 되어있었다. 내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김상연의 대답이 나왔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이상하게 항상 듣는 효과음인데 들을 때마다 가슴이 떨린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사용한 [날빌러].
‘뭐야?’
[날빌러]의 빌드 추천을 본 난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날빌러]가 알려준 빌드를 하기 위해 일꾼을 앞마당으로 보냈다.
****
-자. 4세트 경기가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아스트로의 이승우 선수는 1시 방향이구요. 스파키즈의 김상연 선수는 5시 방향입니다. 매우 중요한 경기죠?
-그렇습니다. 이번 경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직 2:1로 스파키즈가 앞서있긴 하지만 여기서 패배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어? 김상연 선수 일꾼 더 이상 안 찍죠? 5마리에서 멈춰있습니다?
옵저버가 김상연 선수의 본진을 비춰주었다. 그리고 소굴 옆을 기어 다니는 벌레를 끊임없이 마우스로 클릭해주었다. 일꾼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었다.
-5일꾼 러시인가요?
-충분히 가능한 빌드죠. 사실 5일꾼 러시 자체가 대 환국전과 달리 용족전에선 그리 나쁜 운영이 아닙니다. 더블신전을 가져가는 용족을 노리고 만든 빌드인데 요즘 본진 플레이하는 용족 선수 없거든요? 거리 역시 세로입니다. 이거 눈치채지 못하면 크게 당할 수 있습니다.
마수가 용족을 상대로 강하다는 건 여기서도 드러난다.
환국을 상대로 5일꾼 마견 러시가 실패하면 경기가 급속도로 기운다. 하지만 용족을 상대론 실패해도 일꾼을 4기 이상만 잡으면 유리하게 시작한다.
대부분 용족은 11~12마리 일꾼 사이에 용무관을 앞마당에 건설한다. 조금이라도 배를 더 째기 위해서다.
그걸 노리고 만든 운영이 바로 5일꾼 러시.
올인이 아니다. 6마견 혹은 8마견까지 생산한 후에 다시 일꾼을 생산하는 빌드. 일꾼 수가 용족에 비해 적지만 크게 걱정할 필욘 없었다. 용족의 대부분의 일꾼은 자원을 채취하지 못하고 마견을 막기 위해 동원될테니까.
실제로 자원을 채취하는 일꾼의 수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수가 더 많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즉 용족이 앞마당에서 완벽하게 6마견을 틀어막지 않는 것이 아닌 이상 마수에게 최소 5:5 상황이 주어진다. 운영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해볼만한 상황이 나오는 것이다.
-날카로운 빌드엔 날카로운 빌드로 응징한다는 건가요?
-인터넷에 그런 말이 있죠. 날빌로 흥한 자 날빌로 망한다고. 김상연 선수 단단히 벼르고 나왔는데요?
-이거 요즘 잘 안 나오는 운영이거든요? 만약 이승우 선수가 촉이 좋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고 조금 빠르게 용무관을 짓는다던가. 일꾼 2마리로 동시에 정찰을 해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거든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갑니다! 이승우 선수의 일꾼 앞마당 쪽으로 나가죠. 보통 타이밍보다 조금 빠릅니다.
이승우의 일꾼이 앞마당으로 나가 솟대를 건설했다. 일반적인 타이밍보다 일꾼 하나가 적은 상황. 솟대를 지은 일꾼이 곧바로 정찰에 나섰다.
방향은 세로.
정확한 방향이었다.
솟대가 완성되고 잠시 후 본진에서 나온 일꾼에 의해 용무관이 지어졌다. 그리고 용무관을 지은 일꾼 역시 곧바로 정찰에 투입되었다. 2번째 일꾼이 향한 방향은 가로였다.
해설진들이 말하던 동시 2방향 정찰이 이뤄진 것이다.
이승우가 보낸 첫 번째 일꾼이 김상연의 본진에 도착했다. 동시에 가로로 보냈던 일꾼을 본진으로 회수하는 이승우.
첫 번째 정찰에서 상대의 본진과 빌드를 확인했기에 더 이상 정찰 일꾼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몰라요. 이거 몰라요. 첫 번째 정찰에 김상연 선수의 본진을 찾았어요!
-이러면 막을 수 있습니다. 침착하게 용광포 건설하고 일꾼 미리 나와 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그야말로 1초가 중요한 순간.
그때 생산 된 6마리의 마견이 이승우의 본진을 향해 뛰어갔다. 이미 군주 정찰로 인해 이승우가 1시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김상연은 인구수 제한을 풀어주는 군주를 생산하는 대신 금광 트릭을 사용해 2마리의 마견을 추가생산함으로서 이번 공격에 완전히 힘을 실었다.
반드시 피해를 주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는 것이다.
맵의 절반 정도를 뛰어가고 있는 6마견.
아직 용광포는 건설되지 않았다.
-자. 모릅니다. 아직 모릅니다. 김상연 선수 일꾼 5기만 잡아도 충분히 이득입니다.
-김상연 선수 무리할 필요 없어요. 지금 이승우 선수가 일꾼 몰고 앞마당에 나와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피해거든요? 무리하게 잃을 필요 없습니다.
6마견이 앞마당에 도착했지만 아직 용광포는 건설되지 않았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일꾼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드는 마견들.
용광포를 감싸고 있는 일꾼들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와아아아아!”
-대단합니다! 지금 맞고 있는 일꾼 본진 자원 찍어서 하나씩 빼주고 있죠.
-엄청난 컨트롤입니다.
-일꾼이 안 죽어요!
이건 예술의 경지였다. 1방만 맞으면 죽을 것 같은 일꾼들을 바로 본진으로 보내는 이승우.
-펑. 펑.
물론 완전 피해를 입지 않은 건 아니었다. 2기의 일꾼의 마견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터졌다. 하지만 마수는 5일꾼 러시를 감행했다. 이 정도 피해로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서로의 상황을 비교해 볼 때 이 정도는 아예 손해라고 볼 수 없었다.
그 사이 완성 된 용광포.
마견이 용광포를 감쌀 수 있는 상황이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 깨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마견을 뒤로 돌리는 김상연.
-캑!
물러나던 마견 중 1마리가 용광포의 공격에 죽었다.
-막았어요! 아. 정말 대단합니다. 특히 방금 전에 나왔던 일꾼 컨트롤은 정말 예술입니다!
-아. 이러면 이승우 선수가 상황 괜찮죠.
-괜찮은 정도가 아닙니다. 뭘 해도 됩니다. 지금은!
옵저버가 비춘 김상연의 본진.
허하다. 일꾼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몰아치려는 생각에 추가로 마견을 찍은 건 최악의 판단이었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이는 스파키즈 코치진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마찬가지로 김상연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마견을 더 생산하지 않고 일꾼을 뽑았다면 그래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끝낸다는 생각에 마견을 추가로 찍었지만 마견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정찰을 하고 있는 일꾼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닐 뿐.
반면 이승우는 부유하다. 어떤 선택을 해도 된다. 제단을 늘려 발업 된 용아로 몰아붙여도 되고 1방 병력을 갖출 때까지 움츠리고 있어도 된다.
이제 경기가 시작한지 5분이 겨우 지났지만 분위기는 이승우의 승리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
“됐다!”
이재명 감독이 어린아이마냥 환하게 웃었다.
2킬.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이승우가 터져버렸다. 상대편 에이스를 잡는 것도 모자라 2킬까지 달성!
이제 승부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스파키즈 쪽에도 남은 카드는 뻔하다.
이형민.
아마 중견으로 이 선수를 선택할 것이다. 다른 선수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개인리그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들로 이런 중압감 있는 자리를 이겨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이형민을 대장 카드로 쓰기 위해 아껴두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
잔인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형민을 제외한 남은 선수들은 필패 카드다. 괜히 내보내 패배한다면 상대방의 기세만 끌어올려주는 꼴이다. 어차피 이형민이 마무리 지어야한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내보내는 것이 좋다. 경기력을 위해서도 그 편이 좋았다.
“잘했다!”
경기를 마치고 부스에서 나오는 이승우를 향해 이재명 감독이 달려갔다. 그리고 이어진 격한 포옹.
“호오!”
“와아!”
동시에 함성이 쏟아졌다.
이승우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이재명 감독의 품에 폭 안겼다.
“정말 잘했다. 잘했어!”
지금 이재명 감독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방금 2경기에서 보여준 이승우의 경기력은 완벽 그 자체였다.
딱히 코치들의 주문이 없었음에도 완벽한 판단으로 2경기를 손쉽게 가져왔다.
이건 타고난 센스다.
방송 울렁증에 가려 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이재명 감독의 눈엔 이승우가 그저 복덩이로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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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한 후 난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열렬한 환호로 나를 반겨주었다.
“잘한다!”
“최고다!”
슬쩍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내가 2킬을 하긴 했지만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내가 올킬을 달성하거나 뒤에 나올 현우 형이 경기를 마무리 지었을 때 비로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관중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난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화장실로 향했다.
‘운이 좋았다.’
상대방의 마견 러시를 막은 이후로 경기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막말로 질래야 질 수 없는 경기. 물론 운으로만 만들어낸 상황이 아니다. [날빌러]의 추천빌드가 제 역할을 해주었다.
알려준 빌드는 평소보다 빠른 용무관 건설.
순간 감이 왔다.
상대가 초반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마 5일꾼 러시 일 줄이야.’
빨라도 이 정도로 빠를 줄 몰랐다. 순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막아내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만약 신들의 전쟁 매니저가 없었거나 있었다하더라도 [날빌러] 스킬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면 허무하게 경기를 내줄 뻔 했다.
[투신]을 사용해도 일꾼으로 마견을 모두 잡아내는 건 무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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