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0 Game No.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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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사인과 동시에 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프닝 촬영이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몇 시간이면 찍을 줄 알았는데 제대로 착각했다.
2분이 채 되지 않는 오프닝을 촬영하는데 하루를 꼬박 사용하였다.
S1에 있을 때 오프닝을 찍고 왔던 선수들이 녹초가 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구. 아구. 무릎 아파 죽겠네.”
난 무릎을 감싸 쥐며 의자에 앉았다. 무릎 관절이 뚜둑 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하긴. 그 동안 운동이라곤 숨쉬기 밖에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 움직임에도 힘들어하는 건 당연했다.
“이거 되게 하고 싶었는데. 진짜 어렵다. 그치?”
“그러게. 형. 그냥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알았는데.”
상황은 형규도 마찬가지였다.
형규의 표정은 우거지상 그 자체였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어하는 느낌. 마치 병원에 억지로 끌려 온 어린아이를 보는 듯 하다.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
나도 비슷한 표정이겠지?
잠깐 생긴 여유.
드디어 형규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하루 종일 같이 하면서도 오프닝 촬영이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했다.
“요즘 지낼 만해?”
“나야. 뭐 잘 지내지. 형은?”
“나도. 뭐 그럭저럭.”
형규의 활약은 놀라웠다.
2라운드 MVP를 차지했을 정도니까.
에이스 결정전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닥치는대로 승을 챙겨 담았다. 형규의 손에 의해 승부가 결정난 경기가 무려 4개나 되었다. 승부사 자질은 물론이고 든든한 1승 카드로 자리매김했다.
“이건 비밀인데 팀에서 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
네가 말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란다. 형규야.
잠깐? 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도재체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거야?
신경 안 쓰는 척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겉으로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나 보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형규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형 괜히 팀에서 내보냈다는 거지 뭐. 팀 입장에선 재열이 형이 형한테 질 줄 몰랐으니까.”
“그러게. 나도 몰랐지. 그럴 줄은.”
이건 진심이다.
“솔직히 좀 물어보자. 어디가서 말 안할테니까 속 시원하게 말해줘. 어떻게 이긴거야?”
“......”
난 아무말 없이 형규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 친하다고 너무 말 막 하는 거 아냐?
차마 다른 사람들은 묻지 못하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나.
그래. 이게 네 매력이지.
“각성했다...는 농담이고. 미친 듯이 게임했지. 눈 뜨면 게임하고 밥 먹고 게임하고. 자다가도 전략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서 게임하고.”
신들의 전쟁 매니저 이야기만 뺐을 뿐 거짓말은 아니다.
난 하루 종일 신들의 전쟁만 생각하며 보냈다.
“그랬구나. 조금만 더 그렇게 하면 좀 좋아? 같이 프로리그에서 활약하고.”
형규의 말에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온다.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내가 다른 팀으로 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러게. 조금만 더 빨리 각성할걸.”
함께 했던 약속들이 문득 떠올랐다.
프로리그에서 원투펀치로 활약하자는 약속.
개인리그 결승에서 만나자는 약속.
“우리 약속 지킬 수 있는 건 아직 남았잖아.”
“어떤거?”
“개인리그 결승에서 만나자는 거.”
“와. 형 많이 컸네? 이제 16강인데 벌써 결승 생각하고? 예전엔 프로리그 1번 나가게 해주십시오. 개인리그 예선이라도 치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코치님께 부탁했었는데.”
짓궂게 날 놀리는 형규.
그냥 두고 볼 수 없지.
난 주먹을 들어 그대로 응징의 펀치를 날렸다.
“윽. 프로게이머가 사람 패네. 아고고. 결승이라. 결승. 좋지. 가면.”
난 주먹을 내밀었다. 어디서 본 건 많다. 이럴 땐 이렇게 해야한다고 배웠다. 이래야 그림이 살지.
“가자. 결승.”
“나랑?”
“그래. 너랑 나랑.”
형규가 밝게 웃었다. 그리고 내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가져다 대었다.
“일단 16강이나 뚫고 이야기 합시다.”
내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자. 다시 촬영 시작합시다!”
촬영을 재개한다는 촬영 감독의 말에 목까지 차고 올라왔던 말을 다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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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아예 끝난 건 밤 10시가 지난 아주 늦은 시간이었다. 오프닝 촬영 현장에 남아있는 선수도 나와 형규, 현우 형 밖에 없었다. 현우 형은 나보다 나이가 1살 많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 나에게 존댓말을 썼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말을 썼던 연호와는 정 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호형호제를 허락 받았다.
“고생했다.”
현우 형이 내 등을 손으로 탁 쳤다. 미리 갈 수도 있었지만 나랑 같이 가겠다며 끝까지 남아있었다. 그 점이 조금 미안하긴 했다.
“먼저 갔어도 됐는데.”
“어떻게 나 먼저 가냐? 처음 진출 한 애 놓고.”
“역시 형이 최고야.”
이렇게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을 때 어디서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팀은 나 빼놓고 다 가버렸는데.”
바로 형규였다.
형규 역시 나와 촬영을 했기에 지금 시간까지 남아있었지만 그를 기다려준 팀 동료는 없었다.
“아. 제가 말 실수를..... 죄송합니다.”
현우 형이 즉각 형규에게 사과를 했다.
자신이 말실수 했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형.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 안 해도 되요. 얘 지금 장난 치는거에요. 그냥.”
아아. 난 이해한다.
칼 같은 S1의 분위기를.
먼저 갔다고 팀웍이 나쁘다거나 의리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저 팀의 특징으로 보면 된다. 더군다나 S1은 내일 프로리그가 있단. 16강에 진출한 선수들은 대부분 프로리그 주전이다. 컨디션 유지를 위해 적당한 휴식은 필수였다.
형규도 섭섭한 듯 말하고 있었지만 실제 표정에서 묻어나는 건 섭섭함 이 아니라 드디어 촬영을 끝냈다는 기쁨이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다는 기쁨.
“형. 그럼 조지명식 때 봐요!”
“그래. 그때 보자.”
형규와 인사를 한 후 현우 형과 함게 차에 올랐다.
“어때?”
“좋죠. 안 믿기죠. 제가 여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연습실처럼 생각하고 해. 그런 잘 할 수 있을거야.”
진심 어린 현우 형의 조언에 난 가슴이 따듯해지는 걸 느꼈다.
요즘 하루 하루가 너무 행복하다.
좋은 팀.
좋은 동료.
좋은 시간.
항상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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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 경기 열심히 해보자! 그 전까지 조금 안 좋았던 건 잊고 위너스리그에 최선을 다하자!”
이재명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파이팅 넘치는 목소리에 선수들도 결연한 얼굴이 되었다.
오늘은 프로리그가 있는 날.
저번주에도 프로리그 경기가 있긴 했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하다. 바로 위너스 리그 개막전이 있는 날이었다.
토요일인 오늘 양 방송사에서 각각 2경기 씩 총 4경기가 치러진다.
아스트로는 MBS게임 1시 경기에 출전한다.
상대는 화이트 스파키즈.
현재 순위는 8위로 아스트로보다 3계단이 높다. 8위라고하면 하위권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스파키즈는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팀이다.
1위인 S1과 2위인 CT가 압도적인 선두라인을 형성하고 있고 정규리그 포스트시즌을 노리고 있는 5위부터 9위까진 일주일 사이에 순위가 휙휙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 승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8위에 머물러 있지만 연승이라도 하는 날엔 곧바로 포스트시즌을 넘볼 수 있는 6위권 안으로 진입한다.
이처럼 스파키즈는 현재 순위와 상관없이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위너스리그라면 더욱 더 그렇다.
신상운이라는 든든한 에이스 카드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정규리그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횟수보다 위너스리그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횟수가 더 많은 정도로 스파키즈는 위너스리그에 강점을 보이고 있었다.
신상운 역시 올킬을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한 번 기세를 타면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역대 최강이라는 이영우조차 잡아내며 3킬로 CT를 잡아낸 전력도 있었다.
개인리그 역시 항상 8강 이상 오르는 클래스를 지닌 선수였다.
“승대야. 네가 잘해줘야해. 알겠지?”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독님.”
“그래. 너무 긴장하진 말고.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네가 보여 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줘.”
미리 엔트리가 공개되는 다른 라운드와 달리 위너스리그는 양 팀의 선봉만 미리 공개되었다. 어느 맵에 어떤 선수가 나갈지 모르니 전략의 유연성을 위해 경기장에서 직접 정하도록 하고 있었다.
아스트로의 선봉은 김승대.
반면 스파키즈의 선봉은 신상운이다.
에이스이기에 조금 아낄 줄 알았던 카드.
하지만 상대는 과감하게 선봉에 신상운을 출전시켰다.
‘쉽게 가자는 거지.’
이재명 감독은 상대 감독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어차피 아스트로는 육군 타이거즈와 함께 묶일 정도의 약팀이다.
에이스인 신상운에게 최대한 승을 많이 챙겨줌과 동시에 위너스리그에서 치고 나가겠다는 생각.
‘생각대로 안 되게 해주지.’
물론 상대팀 생각에 그대로 끌려갈 생각은 없다.
“아직 다음 세트 선수들까지는 정하지 않았어. 전장에 따라 그때 그때 바뀔 거니까 다들 언제든 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알겠지?”
“넵!”
“자. 그럼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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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위너스리그가 시작되었다.
어젯밤 가슴이 두근거려 잠에 들지 못했다. 이미 나의 출전은 확정되어있었다. 이재명 감독님이 생각한 4개의 카드 중 하나에 뽑힌 것. 다만 차봉이 될지 중견이 될지 대장이 될지는 아직 미정이라고 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어느 한 전장만 몰입해서 연습할 수가 없었다.
골고루. 골고루.
이것도 나름 힘든 일이었다.
-네. 모두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많은 팬들이 원하고 또 원하던 위너스리그가 드디어 시작합니다!
-항상 화제를 부르는 선수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이 위너스리그죠. 저도 참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 오늘 경기 들어가기에 앞서 양 팀 상황 한 번 보시죠.
화면에 우리팀과 상대팀의 정보가 떴다.
순위는 3단계 밖에 차이 안 났지만 승수는 꽤나 차이가 났다.
-보시다시피 양 팀의 승수는 꽤나 벌어져 있습니다. 아스트로 입장에선 잊어야합니다. 위너스리그가 별개의 리그다라는 생각으로 임해야합니다. 실제로 위너스리그만 따로 승수를 매겨 포스트 시즌을 진행하거든요?
-맞습니다. 위축되었다간 한도 끝도 없이 위축될 테니까요.
-그래도 아스트로 입장에선 나름 해볼 만합니다. 이번엔 제대로 복덩이가 굴러들어왔습니다.
이거 내 이야기인가?
-현재 MSL은 듀얼 토너먼트와 OSL 본선에 진출한 이승우 선수가 새롭게 아스트로에 합류 했습니다. 경기력 역시 상당해 괜찮았거든요? 만약 개인리그같은 플레이가 오늘도 나와 준다면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박현우 선수의 짐을 충분히 덜어줄 수 있을 겁니다.
내 이야기 맞네. 표정 관리 해야지.
꼭 이럴 때 보면 언급하고 있는 선수를 화면에 잡더라고.
아니라 다를까?
팀 소개가 이뤄지던 중앙 화면에 내 모습이 잡히기 시작했다. 정신 조금만 늦게 차렸으면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장면이 나올 뻔 했군.
-자. 그럼 잠시 후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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