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8 Game No. 28 =========================================================================
이 얼마나 사기 능력인가?
현재 내 공격력은 63이다. 여기에 50%가 증가하면 90이 넘는 사기 수치가 된다. 비록 유지 시간이 1분이긴 하지만 1분이면 경기 결과를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확실히 도재열은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마지막 행운이 아니었다면 좌절하는 건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일은 또 있었다.
도재열이 GG를 치는 순간 레벨이 무려 3이나 더 오른 것이었다. 도재열을 이겨서 오른 경험치 덕도 있었지만 그보다 OSL 본선 진출이란 업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오른 것이 더 컸따.
업적.
일종의 퀘스트 같은 걸로 보였다. 보통 게임에선 일반적인 사냥보다 퀘스트를 해결했을 때 더 많은 보상이 따른다.
신들의 전쟁 매니저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16강 결정전에서 도재열을 만나게 된 건 잘 된 일이었다. 새로운 스킬도 얻고 조금 더 극적인 상황으로 승리를 따낼 수 있었으니까.
어중간한 선수를 잡고 올라갔다면 오늘처럼 화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저런 걸 찾아보다 보니 어느새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다. 시간이 이토록 빨리 흐를 줄 몰랐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
16강 결정전이 끝난 S1 숙소.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할 만큼 공기가 무겁다.
도재열의 개인리그 탈락.
선수도 사람이다 보니 미끄러질 수 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그 것이 아니었다.
“우리 팀에서 방출 되었던 그 이승우한테 졌다고?”
“죄송합니다.”
“아니 그 녀석 재능이 없다며? 이게 어떻게 된거야?”
쏘아붙이는 주운 감독의 말에 코치진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비록 권 코치가 처음 제안하긴 했지만 다른 코치들도 동의한 내용이었기에 더욱 더 그랬다. 이승우의 방출을 반대한 건 박성훈 코치가 유일했다.
주운 감독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재열이 오면 뭐라고 하지 말고 그냥 둬. 어쭙잖게 조언같은거 하지 말고.”
도재열은 이제 막 데뷔한 신인선수가 아니다.
한참 주전으로 뛰고 있는 중견급 선수다. 코치의 과한 간섭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차라리 혼자 두는 것이 오늘 일을 극복하는데 더 도움이 될게다.
“알겠습니다.”
“우리팀 선수들 경기 언제 언제 있어?”
“당장 3일 후에 형규가 16강 결정전을 치릅니다.”
“상대는?”
“화성 오즈의 최영종입니다.”
“최영종이라.”
최영종은 과거 출중한 기량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용족 선수지만 지금은 전성기에서 내려온 선수로 평가받고 있었다. 최근 5시즌 정도 OSL에 보이지 않다가 이번에 기적으로 예선을 뚫고 16강 결정전에 진출한 상태였다.
“조금 조심하긴 해야겠군.”
현재 임형규의 기량은 전성기를 향해 치닫고 있다.
걱정되는 건 딱 하나.
경험 차이다.
경험을 무시할 순 없다. 종종 프로리그에도 올드 게이머들이 나와 승리를 챙기곤 한다. 순수 피지컬엔 현재 잘나가는 선수들을 당할 수 없지만 노장의 머릿속엔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최영종은 우승까지 경험해본 선수다. 자칫 잘못했다간 노련함에 휘둘릴 수가 있다. 그점만 조심하면 된다.
“지금 형규 실력으로 봐선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무난히 올라갈 것 같습니다.”
“재열이 경기할 때도 그말 했었지?”
“헙...아...”
주운 감독의 말에 코치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합 다물었다.
“뭐라고 하려는 거 아냐. 뭐 선수가 기계도 아니고. 떨어질 때도 있고 오를 때도 있는거지.”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할 필요 없고. 마수 코치들에게 형규 경기 좀 잘봐주라고 해. 연습도 많이 도와주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감독실을 빠져나가는 코치.
코치가 나갈 걸 확인한 주운 감독이 컴퓨터로 이승우 관련 된 기사를 검색했다.
기사를 읽는 주운 감독의 검지가 일정한 박자로 책상을 두드렸다. 기사는 칭찬일색이었다. 실제로 경기력도 그랬다. 중간에 지지부진한 움직임을 보여주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화끈한 싸움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1달 만에 이렇게 성장했단 말이지?’
원래 가지고 있던 실력은 아니다.
그랬다면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방출 된 후 실력이 늘었다는 말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의문은 머릿속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
16강 결정전이 끝나고 2주가 지났다.
난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아스트로 숙소에 정식으로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그 동안 선수 등록 절차때문에 아스트로에 합류하지 못했었다. 그 문제가 16강 결정전이 이후 모두 해결되었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설거지 아르바이트는 정리하게 되었다. 아스트로 숙소와 식당의 거리가 먼 것도 먼 것이었지만 그보다 정식 계약을 통해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이재명 감독님이 어디 좀 가자고 했을 때 그냥 식사나 하러 가는 줄 알았다. 헌데 아니었다. 우리가 향한 곳은 본사가 있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구단주님을 많았고 계약서에 싸인을 한 후 악수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야말로 상상 속에나 있던 일이 연달아 펼쳐졌다.
계약조건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연봉 2400만원에 프로리그 승리 수당 승당 10만원.
연봉 자체는 다른 팀에 비해 적었지만 그래도 승리 수당이 있으니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었다. 막말로 내가 프로리그 가서 많이 이기면 그만큼 연봉은 쭉쭉 오르는 것이 아닌가?
개인리그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잘해서 상금을 타면 된다.
여유롭지 않은 연봉 탓인지 개인리그에서 얻은 상금은 일절 팀에서 가져가지 않았다. 오롯이 선수의 몫이었다. 굉장히 좋은 제도지만 아직 활용 된 적은 없다.
4강 이상에 오른 선수가 아스트로 역사상 배출되지 않았으니까.
이건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일단 당장 기쁜 건 집으로 보낼 수 있는 돈이 늘었다는 점이었다.
S1 2군에 있을 때 받았던 연 600만원과 비교해보면 2400만원은 굉장히 큰 돈이다. 절반만 보내도 전에 보낸 액수에 2배가 되는 금액이다.
일단 매달 160만원씩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전처럼 모두 보낼까 하다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으니 1달에 40만원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치고 숙소에 정식으로 합류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숙소 생활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S1에서 6년이나 해왔지만 어디까지나 S1에서 한 것이지 아스트로에서 한 것이 아니었으니 긴장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잔뜩 얼어붙은 나를 반겨주는 건 팀원들의 환한 미소였다.
“와. 형 이번에 경기 잘 봤어요. 도재열 잡고 16강 가다니. 진짜 대단해요.”
김승대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내게 다가왔다. 그 역시 며칠 후 16강 결정전을 앞두고 있어 그런지 나를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난 김승대가 꼭 16강에 진출하긴 바랐지만 아쉽게도 며칠 후에 벌어진 16강 결정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때 김승대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나라 잃은 사람의 표정이 이럴까?
그 정도로 김승대의 표정은 암울했었다.
“고생했어요.”
팀의 에이스인 박현우도 나를 웃는 얼굴로 반겨주었다. TV에서만 보던 얼굴인데 이렇게 보니 되게 신기하긴 하네.
“반갑다. 우리 동갑이던데. 편하게 지내자.”
라며 다짜고짜 손을 내민 신연호는 사교성이 굉장히 좋은 성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미안하네. 예전에 형규랑 붙었을 때 신연호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 많이 했었는데.
확실히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한다.
언제 어떻게 그 사람을 만나게 될 줄 모르니까.
다행히 모두 날 경쟁자라기보단 동료로 봐주는 것 같았다. 혹 텃세가 있으면 어쩌지 했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며칠 지내면서 느낀 바론 S1보다 시설은 열약하지만 분위기 자체는 더 여유롭고 자유로웠다. 아. 여기서 기준은 S1 1군이다. 내가 있던 2군과 비교하자면 여긴 천국이다.
4인 1실.
2인 1실이나 1인 1실이면 더 좋았겠지만 과거 2군 생활을 생각해보면 4인 1실도 감지덕지였다.
아스트로의 선수는 총 10명.
선수들이 사용하는 방은 총 3개였다.
4인 1실 2개와 2인 1실 1개.
2인 1실의 주인은 박현우와 김승대였다.
어느 팀에 가나 확실히 에이스에 대한 대우가 다르긴 하구나. 나도 반드시 실력을 인정받아 2인 1실을 써야겠다는 의지가 마구 생겼다.
환경이 좋아진 덕분인지, 마음이 편해진 덕분인지 연습 경기 승률로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날 보는 코치님들의 표정도 밝아진 건 덤이었다.
숙소에 합류한 후 MSL 예선도 참가했다.
결과는?
당연히 통과다. 초보자 모드가 끝나 더 이상 스킬을 무한대로 사용할 수 없다하더라도 그 간의 레벨업 등으로 꾸준히 성장한 나다.
이제 예선에서 지면 어쩌지하는 걱정을 할 단계는 지나 있었다.
코치님과 함께 찾은 예선장.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불과 얼마전에 있었던 OSL 3차 예선때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땐 오히려 무관심에 가까웠었지.
어쨌든 나름 신기한 경험이었다.
누군가 나를 견제하는 느낌.
학창 시절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물론 기분 나쁘기보단 굉장히 좋았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두려운 대상이 될 수 있구나하는 뿌듯함이 가슴 한편에 차올랐다.
예선 결과는 OSL과 같았다.
2:0으로 무난한 통과.
어째 나보다 코치님이 더 좋아하셨던 것 같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나를 와락 안으며.
“넌 우리팀의 보물이야!”
라며 외치던 도민호 수석코치님의 표정이 아직도 아른 거린다. 이미 OSL 본선진출을 확정지은 내가 MSL까지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면 아스트로는 오랜만에 양대리거를 배출하게 된다. 팀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들뜰만한 일이겠지.
반면 난 생각외로 무덤덤했다. OSL 1차 예선을 뚫었을 때 처럼 짜릿한 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OSL처럼 본선에 오른 것도 아니고 그저 예선을 통과한 것 뿐이다. OSL 2차, 3차 예선에 해당하는 듀얼 토너먼트를 거쳐야 진정한 양대리거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문득 목표가 커졌다는 생각에 웃음이 지어졌다.
예전엔 예선에만 나가도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예선은 눈에 차지 않고 오직 본선만 보인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는 뜻이겠지?
물론 이 자신감이 자만으로 변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할 거다. 신들의 전쟁 매니저를 통해 높은 곳을 꿈꿀 수 있게 되었지만 갑자기 나에게 다가온 것처럼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혹 신들의 전쟁 매니저가 사라지더라도 계속 프로 게이머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게 꾸준히 연습을 할 생각이었다.
이렇게 내 주변 환경이 많이 바뀐 것처럼 신들의 전쟁 매니저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다.
가장 먼저 체력과 컨디션이 얼마나 중요한 능력치인지 알게 되었다.
먼저 체력은 스킬을 사용할 때 필요한 능력치로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체력이 15%씩 깎인다. %인걸로 보아 절대적인 수치가 아닌 상대적인 수치인 듯싶었다. 즉 체력 능력치를 올리면 스킬 횟수가 늘어나는 것.
조만간 레벨업을 하게 되면 체력에 스탯을 분해해 실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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