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7 Game No. 27 =========================================================================
-경기가 생각보다 길어지겠는데요?
-서로 가벼이 여길 수 없는거에요! 도재열 선수도 몇 번 들어갔다가 안 되니까 방법을 선회한 거죠! 서로 유닛이 크게 움직이고 있지 않지만 단순히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을 서로 그리고 있는 겁니다!
엄재웅 해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꺼내며 사람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서서히 지쳐갔다.
이유는 단 하나.
“이거 언제 끝나?”
“그러게.”
“벌써 30분 째 맵만 빙빙 돌고 있는데?”
지루하기 때문이었다.
날카로운 전략으로 승부가 단 번에 갈린 전 경기와 달리 이번 경기는 지지부진한 내용이 계속 이어졌다.
그나마 초반엔 지룡 컨트롤 싸움이 가장 볼만했고 그 뒤로는 그저 싸우고 비기고를 반복할 뿐이었다. 달아올랐던 열기도 서서히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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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난 1경기와 달리 2경기의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그럴수록 내 속도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막았구나. 막았어.’
방금 [엄대엄]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속절없이 밀리고 말았을 것이다. [엄대엄]의 효과는 대단했다. 도재열 쪽으로 경기가 기울만하면 다시 5:5로 맞춰주었으니까. 방금 전만해도 그렇다. 도재열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면 3번째 멀티가 밀리며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졌겠지만 다행히 [엄대엄]스킬을 사용해 간신히 멀티를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남은 병력이 없다. 전투에서 이겨 남은 병력으로 무언가 이득을 내야 승리를 할 수 있는 건데 막는 것에 그치고 있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엄대엄]은 수비형 스킬이지 공격형 스킬은 아니었다.
한번 먼저 공격을 가볼까?
‘갔다간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밀릴 거야.’
육룡이란 타이틀은 내기로 따낸 것이 아니었다.
도재열의 별명은 괴수.
괴수같은 물량을 쏟아내 전투를 펼치기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소규모 컨트롤은 다른 육룡보다 떨어지지만 인구수 150이상의 대규모 전투에선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몇 번 겪어 보지 않았던가?
‘이번 경기는 그냥 포기할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2번째 경기는 도재열에게 넘겨주고 3번째 경기에 모든 걸 걸까하는.
‘아냐. 2경기에서 정석으로 이기면 3번째 경기도 똑같을거야.’
이런 생각은 이내 무산되었다. 3번째 경기에도 도재열이 정석을 사용한다면 지금 상황의 반복 밖에 되지 않았다. 끝내려면 이번 경기에서 무조건 끝내야했다.
‘끝낼 수만 있다면 말이지.’
어느새 서로 먹은 멀티의 개수가 무려 5개였고 인구는 이미 200이 찬지 오래였다. 자원 역시 몇 천에 이를 만큼 꾸준히 쌓여갔다.
그럼에도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미 몇 차례 막힌 도재열은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었고 나 역시 먼저 싸움을 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경기에 대해 한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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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승우 선수 모든 병력을 중앙으로 모으고 있죠? 설마 공격을 들어가려는 건가요?
-어차피 이대로 있어봤자 승부가 안 난다는 건가요?
-정말 과감한 결단이긴 합니다만 이미 몇 번의 전투에서 제대로 된 승부를 내지 못했거든요? 혹 돌을 던지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이승우가 공격을 들어오자 도재열도 조금 놀란 듯싶었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
이내 병력을 정비하더니 처음부터 준비했던 것처럼 전투를 시작했다.
-잠시 당황한 듯 보인 도재열이지만 빠르게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역시 도재열입니다! 괴수같은 본능이 튀어 나오는거죠!
도재열이 대규모 전투를 잘하는 결정적인 이유.
바로 후속 충원이 빠르다는 점에 있었다. 전투에만 집중해도 이길까 말까한데 도재열은 그 순간에도 단축번호를 지정한 제단에서 끊임없이 병력을 뽑아 전장에 합류 시켰다. 수천씩 쌓여있던 도재열의 자원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투는 정말 화려했다.
비렴의 천벌이 화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사이로 용아와 용혼의 비명이 끊임없이 들렸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처음으로 터진 이펙트 있는 싸움에 관중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이래야 직관을 오는 맛이 있지!
-어? 도재열 선수의 병력이 빠르게 줄고 있습니다.
-병력 다 어디 갔죠?
옵저버가 도재열의 진영 구석구석을 보여주었지만 남아있는 병력은 거의 없었다.
멀티를 지키는 소수 병력이 전부.
반면 이승우는.
-이승우 선수 풍백이 많이 살아남았어요!
풍백은 천벌이란 술법을 사용하는 비렴 2마리가 합체해서 만들어지는 유닛으로 강력한 공격력과 함께 범위 공격을 지녔다. 달라붙어 전투하는 용아의 천적이었다.
압도.
전체적인 전투를 주도한 건 의외로 이승우였다. 어느 유닛 하나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없다. 용아는 풍백을 피해 용혼에게 달라붙었고 용혼은 뒤에서 적절한 딜을 꾸준히 넣어주었다. 동시에 비렴으로 상대 병력이 뭉친 곳에 천벌을 뿌림과 동시에 달려든 도재열의 용아를 풍백으로 막아버렸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전투.
-이승우 선수! 마치 윤영태 선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전투의 신이 이승우 선수의 몸에 깃들었습니다! 그렇게 밖에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압도적인 전투력이라뇨!
극찬이 이승우에게 쏟아졌다.
그 정도로 이승우의 마지막 전투는 뛰어났다. 이름을 가린다면 뇌제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윤영태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윤영태는 육룡 중 한 명으로 뇌제라는 별명과 함께 투룡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싸움을 잘했다. 특히 비렴의 천벌을 기가 막히게 썼는데 불리한 경기도 전투 1방으로 역전해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전투에서 밀리고 멀티가 2개가 동시에 파괴 된 도재열.
제 아무리 물량을 괴수처럼 뿜어대는 도재열이라도 먹는 것이 없으니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다. 이미 전세는 이승우 쪽으로 기울었다.
이승우의 병력들이 신이 난 것처럼 도재열의 본진을 휘저었다. 그들도 자신들이 승리하는 걸 아는 것 처럼 보였다.
그때 도재열의 얼굴이 화면에 비춰졌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온다. 이미 자신이 진 걸 알고 있지만 차마 GG를 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경기에 GG를 치게 되면 OSL 이번 시즌에서 완전히 탈락하기 때문이었다.
도재열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다.
첫 경기에 확신하지만 않았다면 지금처럼 안전하게 했다면 경기양상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온갖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엎지러진 물이다.
GG를 치지 않는다고 결과가 바뀌는 건 아니었다.
결국.
-도재열 : GG
-도재열 선수! GG 나왔습니다.
-이변입니다! 이변!
-아. 도재열 선수 저번 시즌에 이어 이번에도 아쉬운 탈락을 하고 맙니다. 프로리그에서 그렇게 날아다니는 도재열 선수가 개인리그만 오면 왜 이렇게 약해지는 겁니까?
전현석 캐스터의 쉰 목이 이 경기의 놀라움을 대변해주었다.
육룡 도재열.
작년 시즌 2회 준우승에 빛나는 S1의 주전선수가 16강 결정전에 탈락했다. 요즘 경기력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최근 펼쳐진 프로리그에서 에이스결정전을 포함 1경기에 2승을 챙길 정도로 전성기 기량을 회복한 상태였다.
상대가 같은 육룡이나 혹은 최강이라 불리는 리쌍이면 지금처럼 흥분 된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는 무려 이번 시즌 처음으로 16강 결정전에 오른 선수였다. 임형규처럼 각관받는 신예냐 하면 그 것도 아니다.
데뷔전을 몰수패로 만든 선수.
이승우가 그 주인공이었다.
-위기를 겪은 후 영웅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승우 선수도 무너질만한 일을 연달아 겪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우뚝 솟았고 당당하게 16강에 진출했습니다. 또한 자신을 방출시켰던 S1의 에이스인 도재열을 잡았다는 것 역시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일종의 선전포고에요. 나 같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방출하다니. 이승우 선수 입장으로선 최고의 복수를 S1에서 안겨준 셈입니다. 이제 진정한 진 로열로더의 길을 걷게 된 이승우 선수! 앞으로 어떤 활약을 더 펼칠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포장에 모든 걸 쏟아 붓는 엄재웅 해설.
웃음거리였던 이승우는 어느새 시련을 겪고 성장하는 영웅으로 변모해있었다.
“이승우! 이승우!”
“잘했다!”
“대박이다!”
“오늘은 네가 짱이다!”
이승우가 부스에서 나오자마자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관중들은 연신 이승우의 이름을 외쳤다. 이런 상황이 어색한 듯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이승우. 그는 나가는 길을 찾고 있던 것이다. 결국 스텝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무대 밖으로 내려갔다.
그 모습에 관중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폭발적인 경기력과 상반 된 모습이 재미있게 보인 것이다. 물론 전에 보냈던 웃음과 그 의미가 달랐다.
전엔 놀림이었다면 이번엔 매력을 느낀 것.
사람들의 인식이 이렇게 뒤바뀌는 건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경기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하는 프로 선수들이다. 좋은 경기를 보여주면 좋은 이야기가 나오고 나쁜 경기를 보여주면 나쁜 이야기가 나오는 것 뿐이다.
그 관점에서 봤을 때 이승우는 오늘 하루 종일 칭찬을 들어도 모자랄 정도였다.
-자. 첫번째 경기부터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벌써부터 제 목이 쉬다니. 이런 건 처음입니다. 목이 망가져도 좋으니 다음 경기에도 이와 같은 경기가 나오길 바랍니다. 그럼 잠시 후 경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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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난 나사하나 풀린 사람처럼 연신 웃음을 흘렸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보다 더한 상황이라도 좋다. 오늘은 그래도 되는 날이었으니까.
이번에 장만한 휴대폰으로 나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봤다.
<몰수로더! 로열로더의 길로!>
<중고 신인의 반란!>
제목만 봐도 다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에 대해 칭찬하는 기사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신들의 전쟁 커뮤니티의 반응도 뜨거웠다.
난 내 이름이 들어간 모든 글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안좋은 이야기도 있었지만 신경 쓸 건 못되었다. 좋은 내용이 90% 이상이었으니까!
항상 꿈꿔왔던 상황이다.
개인리그에서 활약하는 내 모습.
사실 무언가 이룬 건 아니다. 4강이나 결승에 오른 것도 아니고 16강에 오른 것뿐이니까. 하지만 불과 1달 전만해도 그저 상상으로만 만족했던 걸 생각해본다면 오늘 하루쯤은 즐겨도 된다.
‘그나저나 정말 운이 좋았어.’
지지부진한 경기를 이어가고 있을 때 스킬이 생긴 건 정말 행운이었다. 처음 신들의 전쟁 매니저를 얻게 된 것과 맞먹는 행운.
만약 그때 [투신]스킬이 생기지 않았다면 경기를 끝내지 못했을 거다.
[투신].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전투상황에서 사용하면 유용한 스킬이다. 설명을 빌려보자면.
[1분간 전투에 관련 된 속도, 컨트롤, 공격력, 반응속도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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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으셨다면 추천 1방 부탁드립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