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5 Game No. 25 날빌이 제일 쉬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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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를 끝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전장은 프로리그 전장으로도 쓰이는 태백산맥이었다.
태백산맥은 2인용 전장으로 언덕이 구비 구비 이어져 있다. 상대와 전투를 벌일 시 얼마나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전장이었다.
보통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전장은 적어도 1개, 많으면 2개까지 중복 된다. 아무래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선수들은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할 것 없이 많은 경기를 출전한다. 만약 프로리그와 개인리그의 전장이 서로 제각각이라면 선수가 연습해야 할 전장이 너무나도 많아진다. 그렇기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 중복으로 사용되는 전장을 미리 정해두었다.
이번 MSL와 OSL에서 사용되는 프로리그 전장은 태백산맥과 운명의 갈림길 2개였다.
처음 주어지는 4마리 일꾼을 가르는 순간 바로 [날빌러]를 시전 했다. [날빌러]는 꼭 상대가 무슨 시도를 해야만 빌드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미리 상대의 심리를 읽는 것처럼 상대가 하는 빌드를 제대로 찌를 수 있는 걸 알려주었다.
잠시 후 [날빌러]가 추천해준 빌드가 보였다.
[패스트 흑완.]
[날빌러]의 장점 중 하나가 상대의 빌드도 어느 정도 예측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흑완은 은신 유닛. 은신 유닛을 빠르게 가는 걸 추천했다면 도재열을 멀티 위주 혹은 흑완을 배제하는 빌드 쪽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게 아주 날 우습게 본다 이거지?
도재열의 생각이 읽혔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안전한 플레이.
그렇다면 상대보다 조금 더 배를 째며 후반을 도모하려는 생각이겠지. 그래. 만약 내가 신들의 전쟁 매니저를 얻기 전이었다면 네 생각대로 경기가 흘렀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배 불리고 있어라.
내가 그 배 제대로 찢어 줄테니까.
난 먼저 용아 1마리를 뽑아 입구를 단단히 틀어막았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흑완 빌드를 타고 있지 않다는 걸 들키지 않는 것이었다.
들키게 되면? 답이 없지.
용광포를 깔거나 용의 신전을 가버리면 난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버린다. 굉장히 불리한 상황으로 경기가 흘러가겠지. 어제까지만 해도 [날빌러]가 실패했을 때의 상황을 계속 걱정했지만 지금은 걱정하지 않는다. [엄대엄]이라는 든든한 스킬을 손에 얻었으니까!
그렇다고 경기를 여유 있게 할 생각은 없다.
끝낼 수 있을 때 끝낸다. 쉽게 끝낼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먼 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장기전이 되면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체력이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지면 능력치들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그럼 스킬로 극복이 되지 않는 상황이 나올지도 몰랐다.
새로운 스킬에 빠져 이런 상황을 염두 하지 못할 뻔 했다.
뒤늦게 라도 깨달았으니 됐지 뭐.
걱정과 달리 상황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도재열의 정찰은 완벽하게 차단했다. 일꾼을 잡으면 더 좋겠지만 욕심을 내진 않았다. 괜히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가 틈을 주어 정찰을 허락하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난 용혼이 나올 때까지 단단히 입구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첫번째 용혼이 나왔을 때,
-차캉.
앞서 생산 된 용아를 언덕 아래로 내려 보내 일꾼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정찰의 위험? 이젠 없다. 이미 용혼이 입구를 봉쇄하고 있었으니까. 근접 공격 유닛인 용아로 속도가 빠른 일꾼은 잡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앞마당 근처를 배회하던 일꾼을 다른 곳으로 내쫓는데 성공했다. 그 사이 2번째 용혼이 나왔고 전 병력(그래봤자 1용아, 2용혼 뿐이지만)을 앞마당 쪽에 전진 배치시켰다.
나름의 심리전.
마치 앞마당을 먹을 것 같은 동작을 취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용혼의 사정거리 업(일명 사업)이 되지않은 걸 절대 들켜선 안된다.
그 사이 본진의 빌드는 무난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황룡성지가 완성 될 때쯤 난 2번째 제단을 올렸다. 앞마당을 먹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맹공으로 경기를 끝내는 것이 더 나았다.
지금 도재열의 머릿속엔 초반보단 중반 이후의 상황을 계속 그려나가고 있을 것이다. 절대 내가 공격적으로 플레이 한다는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2제단에서 생산 된 흑완으로 무조건 끝낸다.
뒤는 없다. 어설프게 했다가 막히면 곤란해진다. 어떤 빌드를 택했는지 모르지만 분명 뒤늦게라도 용의 신전을 올리긴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판부턴 분명 내가 다른 빌드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염두 해 둘 것이다. 도재열을 놀라게 할 수 있는 건 이번 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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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첫번째 16강 결정전이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도재열 선수의 진영입니다. 7시. 그리고 이에 맞서는 이승우 선수ᅟᅳᆫ 1시입니다. 도재열 선수 저번 시즌 너무 허무하게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엔 단단히 벼른 것 같던데요?
-그렇습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선수 본인을 만났는데 이번 OSL 진출 의지가 아주 상당합니다!
-여태까지 드러난 것만 보자면 도재열 선수 입장에선 아주 좋은 상대를 만났습니다.
-이미 서로 스타일에 대한 건 너무나도 잘 알거라 생각합니다. 이승우 선수 아스트로에 합류하기 전 S1에서 2군 생활을 6년이나 했거든요? 분명 그 때 서로 어떤 스타일을 지녔는지 파악했을 겁니다.
-서로를 잘 아는 두 선수간의 대결. 과연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 궁금합니다. 아직까진 너무 무난.....어? 지금 이승우 선수 사업 안돌아가죠? 실수인가요?
전현석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이승우는 프로리그에서 한 번 방송사고를 낸 경험이 있는 선수다. 당시 방송사고의 원인은 극도의 긴장. 그때처럼 지금도 긴장으로 인한 실수를 분명 할 수도 있었다.
-아. 실수 아니네요. 지금 황룡성지 올라갑니다. 이승우 선수 처음부터 강한 수를 꺼내듭니다. 이거 흑완 가겠다는 거거든요?
-반면 도재열 선수. 첫번째 제단 이후로 아무 것도 올라가고 있지 않고 있어요. 설마 앞마당 가나요?
-지금 도재열 선수가 앞마당을 가면 흑완이 도착할 때 절대 현룡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아. 도재열 선수 아예 흑완은 배제했어요.
-빌드가 갈렸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면 절대 막지 못합니다.
-이승우 선수 도재열 선수의 정찰을 꼼꼼하게 차단하고 있어요. 앞마당을 먹는 척 심리전을 걸고 있거든요. 도재열 선수 이승우 선수의 생각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죠!!
빌드가 갈리는 동시에 경기 양상이 급박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공격하는 자와 막는 자.
변칙을 시도하는 자와 정도를 걷는 자의 대결.
첫 경기부터 벌어진 상황에 관중들 조차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다.
-이미 늦었어요. 도재열 선수. 아예 흑완은 머릿속에 없는 모양입니다.
-지금 봐도 소용없습니다. 이건 깔끔하게 빌드가 갈렸습니다.
상황은 도재열에게 점점 안좋은 상황으로 흘렀다. 이승우는 매우 꼼꼼한 플레이로 자신의 흑완 빌드를 완벽하게 감추었다. 어느새 제단에서 흑완이 찍힌 상황. 반면 도재열은 감지 기능을 가진 용광포나 현룡을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단에서 2마리의 흑완이 생산되었습니다!
-끝났죠! 그냥 걸어가면 끝입니다! 볼 수 있는 수단이 없습니다!
-이승우 선수! 처음으로 진출한 16강 결정전부터 사고 치나요!
-이거 아주 대박인데요!!!!!
중계진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이는 사건이었다.
도재열은 육룡이라 불리는 최강의 용족 선수 중 하나다. 그런 선수가 이번에 처음으로 16강 진출전에 올라온 선수에게 잡히기 일보직전인 것이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승우 선수 진 로열로더 후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도재열이란 거대한 산을 보고 전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선수에겐 육룡이란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을 도재열 선수지만 이미 한솥밥을 먹으며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이승우에겐 제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그저 뒷산에 불과한 거죠!
엄재웅이 잔뜩 흥분해서 외쳤다.
-정말 놀랍습니다. 과감한 선택.
-아. 늦었어요. 너무 늦었어요. 지금 용의 신전 올라가고 있지만 흑완은 벌써 앞마당에 도착을 해버렸습니다.
그 순간 도재열 선수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재열 선수 놀랐습니다. 허를 찔렸어요!
-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흑완 1킬! 2킬! 3킬! 제 안방마냥 도재열 선수의 앞마당을 휘젓고 있습니다. 아. 길 잃은 일꾼들이 우왕좌왕 방황합니다.
전현석 캐스터가 목이 쉬어라 외쳤다. 흑완의 공격력은 대단했다. 한 번 칼질에 일꾼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도재열의 병력이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공격?
가봤자 후속 흑완에 막힌다.
방어?
불가능하다. 볼 수 없는 적을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이미 경기는 뒤집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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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뭐지? 설마?’
뒤 늦게 용의 신전을 건설하고 앞마당의 일꾼을 관리하던 도재열의 눈에 흐물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현룡인가?’
정찰을 하기 위해 보낸 현룡인가 싶었지만.
‘젠장.’
아니었다.
흐물거리는 건 1개가 아니라 2개였다. 현룡을 2기를 동시에 앞마당에 들이미는 프로게이머는 없다. 같은 흐물거림이지만 이건 현룡이 아닌 흑완이었다.
서걱하는 칼질과 함께.
-펑.
일꾼 1기가 그대로 터져나갔다.
도재열이 입술을 깨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등줄기로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방법이 없다. 흑완이 보여야 상대를 할 것이 아닌가? 철저히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춘 이승우의 흑완은 자신의 본진을 제 본진인 양 누비고 있었다.
‘흑완 찌르기를 할 줄이야.’
유일하게 배제했던 빌드.
그걸 이승우가 딱 써버렸다. 마치 생각을 읽어버린 것처럼.
빌드가 완벽히 갈렸다.
용족 동족전에서 간혹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지면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진 것이니까.
그 와중에도 흑완은 착실히 일꾼을 썰어나갔고 남아있는 일꾼은 이제 몇 남지 않았다.
도재열이 마우스에서 손을 내려놨다.
그리고.
-도재열 : GG
그렇게 첫 경기는 이승우의 승리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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