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0 Game No. 10 인생 최악의 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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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에이스 결정전! 역시 S1과 나무전자답네요.
-중간에 안 좋은 일이 있긴 했지만 나머지 세트에선 정말 순위에 걸맞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거든요. 이번 에이스 결승전 역시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먼저 나무전자 입니다. 역시. 송병호 선수가 에이스 결정전에 나오네요. 비록 1경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무전자의 에이스거든요.
-맞습니다. 그가 다시 나왔다는 건 1경기에 나왔던 정명혁 선수 다시 나오라는거에요. 에이스 결정전에서 붙자. 누가 진정한 에이스인지 가려보자!
-그런 나무전자에 대한 S1의 답은!
-정말 놀라운 답을 내놓았습니다! 1경기에서 승리한 정명혁 선수가 아닌 5경기에서 승리한 임형규 선수가 에이스 결정전에 출전합니다.
-이 거 참 의외인데요? 나무전자 선수석도 술렁거리고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엔트리거든요.
-그렇습니다. 사실 저 역시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임형규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반 경기였고 상대가 해볼만한 상대들이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에이스 결정전! 어깨에 팀의 운명을 그대로 짊어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부담감이죠. 그리고 상대는 택뱅리쌍으로 불리는 최강의 선수 중 하나인 송병호거든요.
-그래도 맵은 임형규 선수에게 웃어줍니다. 운명의 갈림길은 상성맵으로 용족을 상대하기엔 환국보다 마수가 유리하긴 합니다. 주운 감독의 도박수가 과연 먹혀들어갈지 궁금합니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두 팀의 운명이 결정지어집니다. 마지막 에이스 결정전 이제 시작! 합니다!
해설진이 놀란 것처럼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관중들도 크게 놀랐지만 나무전자 코칭스태프 정도까진 아니었다.
“엔트리 잘못 제출한 거 아냐? 정명혁이 아니라 임형규라고?”
이여름 감독이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도재열이나 김택윤 하다못해 어현수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임형규라니. 이게 갓 데뷔한 햇병아리 아닌가?
에이스 결정전에 나온 경험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게요. 무언가 준비한 수가 있나보던데요?”
“흠. 그래도 병호가 알아서 하겠지.”
송병호의 강점은 환국전에 있지만 마수전 역시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세 종족전 모두 잘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택뱅리쌍이라는 최강자에 이름을 끼워넣을 수 있었겠지.
“대신 날빌같은 거 조심하라고 한 번 더 말해. 그런 거 맞아서 경기 이상하게 흘러가면 안되니까.”
신인은 데이터가 없다.
그래서 어떤 경기를 할지 예측할 수 없다.
최악의 상황은 예상치 못한 빌드에 아무 것도 못하고 당하는 것이었다.
신들의 전쟁이 인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최강자라고 항상 이기지 않는다. 준비를 잘해 온 상대에게 언제든지 꼬꾸라질 수 있다.
경기가 한참 준비되고 있는 와중 코치가 송병호가 있는 부스로 향했다.
그 모습을 이여름 감독이 팔짱을 낀 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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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규! 너 대박이다!”
“벌써 3승이라니! 그 것도 송병호를 잡고.”
“쩐다. 쩔어!”
돌아오는 벤의 분위기는 그야 말로 축제였다.
형규는 거짓말처럼 송병호를 잡아버렸다.
그 것도 완벽한 운영으로.
해설진, 관중 할 것 없이 모두가 흥분해 소리를 높였다.
형규가 부스를 나설 때 모두들 하나 되어 형규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이로서 경기는 4:3.
우리 팀의 승리였다.
도택, 장기로 치자면 차포를 빼고 한 아주 힘든 경기였다. 그런 경기에서 힘들긴 하지만 이겨버렸다.
이로서 프로리그 1위 자리를 조금 더 견고하게 지킬 수 있었다.
축제 분위기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나는 빼고. 난 구석에 그대로 조용히 쳐 박혀있었다. 팀원들의 얼굴을 도저히 볼 자신이 없었다.
얼른 숙소에 도착하고 싶었다.
그리고 2층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1층, 그러니까 1군은 내 자리가 아니었다. 난 그 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지옥 같은 30분이 지나고.
-띠띠띠띠.
난 곧바로 2층으로 올라왔다.
혹 코치님이나 감독님이 부르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그런 일은 다행히 없었다.
2군이나 2군 코치님의 반응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올라왔음에도 그저 묵묵히 연습에 집중할 뿐이었다. 경기장에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싫었는데 지금 와 다시 생각해보니 차라리 그게 나은 것 같다.
지금은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그나저나 엄마나 동생한테 경기에 나간다고 말 안한 걸 정말 잘한 것 같다.
만약 말했다면?
끔찍하다.
몸서리가 절로 난다.
난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아직 시간이 이름에도 불구하고 잠이 쏟아졌다.
오늘은...
지독한 악몽을 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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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악의 사건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났다.
난 며칠간 한 게임도 치르지 못했다. 인터넷엔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한 번 들어가긴 했다.
어떤 글들이 올라왔을까하는 호기심 때문에.
몹쓸 호기심이었다.
승드셋.
몰수로더.
첫 경기 만에 두개의 별명을 얻었다. 모두 불명예스런 별명들이었다. 헤드셋을 거꾸로 쓴 내 이름 가운데 승자를 가져다 승드셋이란 별명을 만들었고 데뷔 첫 경기에서 몰수패를 당했다고 해서 첫 진출에 우승한 선수를 칭송하는 로열로더를 바꿔 몰수로더라는 별명을 만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이다.
욕설이 들어간 원색적인 비난은 기본이었고 내 사진이나 그때 동영상을 이용해 만든 우스꽝스러운 합성 자료들이 신들의 전쟁 커뮤니티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댓글을 읽은 나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그렇게 조롱거리가 되고 있을 때 형규는 반대로 찬양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S1 마수의 새로운 희망.
데뷔전 승리도 모자라 3연승.
그 중 1명이 최강자인 송병호.
커뮤니티의 많은 사람들은 형규의 별명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나처럼 놀림이 아닌 폭군이나 혁명가같은 진짜 별명을 말이다.
“젠장.”
인생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니 분명 기회였다. 근데 난 그 기회를 발로 뻥 차버렸다. 다신 주워올 수 없을 만큼 아주 멀리.
반면 형규는?
완벽히 잡았다. 한번 주어진 기회를 발판 삼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버렸다.
난 왜 그렇게 하지 못한 걸가?
이불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호의로 날 추천해준 박성훈 코치님을 원망할까?
아니면 날 과감하게 기용해준 주운 감독님을 원망할까?
아니다.
그 분들은 잘못이 없다.
잘못은 모두 내가 했다.
차라리 원망할 대상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도 없었다.
아직 팀에선 나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어느 정도 예상가는 바는 있다.
6년이나 2군에 있었지만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다.
혹시 방송 체질일까 싶어 경기에 내보냈지만 결과는?
가망이 없다는 걸 확인한 정도 뿐.
그렇게 나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마냥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감독님께서 면담 좀 하자고 하신다.”
감독님의 부름이 있었다.
박성훈 코치님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 떠있다. 도대체 왜 코치님이 미안해 하는걸까? 오히려 미안해 해야할 사람은 나인데. 내가 잘했으면 코치님도 이런 곤란한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박성훈 코치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들어와.”
오랜만에 다시 오는 감독실.
그때와 모든 것이 너무 다르다.
기분도. 상황도. 전부 다.
안엔 주운 감독님이 앉아계셨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얼굴로.
“왔구나. 이쪽에 앉아.”
난 긴장 된 얼굴로 주운 감독님 맞은편에 앉았다.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알고 왔지만 막상 앞에 앉으니 긴장이 되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은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마.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사실 유환이도 몰수패를 당한 적이 있잖아. 안 그래?”
“그렇습니다.”
“너무 그렇게 위축되면 앞으로 게임 못해.”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난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았다.
S1이란 팀은 최고의 팀이다.
항상 최고만을 추구하는 팀이 S1이다.
선수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팀이지만 반대로 선수가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했을 때의 대우 역시 확실하다.
“내 마음 같아선 조금 더 곁에 두고 키워보고 싶지만 게임단 운영을 나 혼자 결정하는 건 아니니 그럴 수가 없게 되더군. 단장님이나 프런트 쪽에서 이미 6년이나 있던 선수이고 그 기간 내에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으니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겠느냐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더라고. 미안하네. 감독으로서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했는데.”
“....네.”
난 소리가 나오지 않는 목에서 간신히 소리를 뽑아냈다. 목소리는 가뭄에 말라버린 논처럼 사정없이 갈라져있었다.
사실 경기가 끝난 후 부터 체념하고 있었다.
내가 팀을 떠나게 되리란 걸.
사실 2군으로 6년이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게임단 자체에서 포기를 했다하더라도 서운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그저 취미로 즐기기 위해 만든 곳이 아니었으니까. 여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하는 프로의 세계였으니까.
난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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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출.
내 6년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 것도 내 손에 의해서.
그래도 야박하게 당장 나가라고 하진 않았다.
일주일 내로 짐을 정리해서 나가라고 했다.
대충 짐을 챙겼다. 챙기고 보니 굳이 미리 챙길 필요가 없었다.
생각보다 많진 않았으니까. 옷이랑 키보드와 마우스가 전부다. 6년 간 생활 했던 곳을 정리하는데 나온 짐이 커다란 가방 하나에 모두 들어갔다.
옷마저 얼마 없다.
대부분 츄리닝을 입고 보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6년간 차려입고 나갈 일이 없었다. 게임단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날 일이 없었다. 그 보다 근본적인 건 옷을 살 돈도 없었다. 그저 게임단에서 지급한 츄리닝이 전부였다.
입던 것이라 그런지 이건 두고 가라고 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게임단 것.
하긴 컴퓨터도 게임단 것이고 식기를 비롯한 모든 것도 게임단에서 구매해 준 것이다. 심지어 내가 가지고 나가는 옷과 키보드, 마우스 역시 모두 게임단에서 지급해준 것이다.
생각해보니 난 몸만 가지고 들어왔네?
“야. 너네 뭐해?”
난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는 2군 녀석들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말을 걸자 녀석들이 움찔 놀란다. 난 피식 웃으며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누구 죽었냐? 뭐 그렇게 울상을 짓고 있어?”
왜 너네가 울상을 짓고 있냐?
지금 울고 싶은 건 난데.
예전 같으면 내 장난에 헤헤 거리며 웃었을 녀석들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땅만 바라볼 뿐.
대부분 평생을 게임만 하던 녀석들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에 있어 남들보다 미숙하지만 녀석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안타까움. 그리고 슬픔.
그래도 내가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나보다.
나를 위해 이렇게 슬퍼해주는 사람이 가족 말고도 또 있으니까.
“너네가 그러면 내가 더 힘들어져. 오늘 다들 할 일 없지? 마지막으로 치킨이나 먹자.”
항상 돈이 없어 골골 거리던 내가 어디서 돈이 났냐고?
구단에서 퇴직금 명목으로 돈을 주었다.
1000만원.
순간 이렇게 돈을 많이 주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6년 동안 쌓인 금액이니 그리 많은 돈은 아니었다.
당장 어디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녀석들을 위해 치킨을 살 생각이다. 6년간 지내오면서 내가 한 번도 무언가를 산 기억이 없었다.
적어도 한 번쯤은 사주고 싶었는데.
그게 이런 식이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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