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6 Game No. 6 기회를 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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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바쁘냐?”
“네?”
연습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의 이어폰을 뽑아놓고 바쁘냐고 묻는 건 뭐지? 난 멀뚱거리며 박성훈 코치님을 바라보았다.
“바쁘냐고.”
“저요?”
“지금 여기에 너 빼고 누가 있냐?”
하긴. 그렇긴 하다. 내 자리에 내가 아니면 누가 있겠는가.
“딱히 바쁘고 안 바쁘고가 어디 있어요. 그냥 평상시 하던 대로 연습게임 하는 중이죠.”
“이거 누구랑 하고 있는 거냐?”
“그냥 래더인데요.”
연습경기엔 2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같은 2군 선수들이나 다른 팀 2군 선수들과 연습을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바로 래더 게임을 통해하는 것.
신들의 전쟁은 배틀넷이라는 말그대로 싸우는 공간이 따로 있는데 그 곳의 고수들과 게임을 하는 것이다.
래더는 F에서 A까지 있는데 보통 B정도 되면 준프로에서 2군 정도의 실력이라고 보면 된다. 나 역시 B에서 A 왔다 갔다 거리는 편이고.
“그럼 나가도 되겠네.”
“어? 어? 저 이거 지면 래더 등급 떨어져요!”
나의 외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박성훈 코치님은 게임을 끄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꺼진 신들의 전쟁. 눈 앞에 나타난 바탕화면을 보며 난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이씨. 다 이겼는데.
5분이면 이길 수 있었는데.
“지금 래더가 중요한 게 아냐.”
“그럼 중요한 게 뭔데요?”
“저 나랑 1층에 좀 다녀오자.”
“1층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의 손을 박성훈 코치님이 잡아끌었다. 계속 이렇게 바보처럼 있을 거냐는 눈빛을 보내면서.
“다녀오자면 다녀와!”
그렇게 난 박성훈 코치님 손에 이끌려 1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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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야?”
“네. 그렇습니다.”
박성훈 코치님의 손에 이끌려 내려간 곳은 다름 아닌 감독실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들어온거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난 얼떨떨한 표정으로 각을 잡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편하게 앉아.”
주운 감독이 인자한 웃음과 함께 말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 운명을 쥐고 있는 사람 앞에서 어찌 편하게 있을 수 있겠는가?
비유가 좀 이상하지만 호랑이 앞에 있는 사슴같은 느낌.
호랑이가 너 안 잡아 먹을 거니까 편하게 있어라고 한다고 편하게 있을 사슴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 조금이라고 바뀌는 순간 죽은 목숨인데.
“야. 네가 너무 그렇게 있으니까 내가 군기 잡아놓은 거 같잖아?”
박성훈 코치님의 귓속말.
네. 압니다. 지금 제 모습이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다.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동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고 있겠지.
당연한 거 아닌가?
지금 내 멘탈은 가루가 되어 스프레이처럼 허공에 뿌려지고 있는데. 아아. 보인다. 보여. 흩날리는 내 멘탈이.
2군 선수가 1군 감독을 이렇게 만나는 건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결과도 극과 극이다.
완전 나쁜 일이거나.
완전 좋은 일이거나.
“박성훈 코치에게 많은 이야기 들었다. 네가 2군에서 요즘 플레이가 좋다는.”
오. 박성훈 코치님.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치님이다.
내가 플레이가 좋다고?
분명 입이 찢어질 정도로 기분 좋은 상황이지만 아마추어처럼 티를 내면 안 된다.
“아닙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맞아. 부족한 점도 많지.”
그대로 찬물을 끼얹는 감독님.
이게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아. 아니지 병 주고 약주 고? 아니 약주고 병 주고구나.
“확실히 현재 용족 라인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커.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 프로리그 경기에 재열이와 택윤이가 나오지 못해.”
오잉? 무슨 일이 있었나?
두 선수는 우리 팀의 보물이자 주축이다. 그 둘이 빠진다면 전력이 반이 빠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감독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경기 네가 한 번 나가줘야겠다.”
그렇구나. 그래서 제가 경기에 나가게 되.....엥?
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독님을 바라보았다. 지금 제가 들은 게 맞나요?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솔직히 나도 너의 실력을 믿는다기보단 박 코치의 눈을 믿은 거다.”
감독님의 말에서 전후사정이 어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박성훈 코치님이 날 추천해주셨구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토록 바라던 자리에 내가 앉게 되다니. 얼마나 정식 부스에 앉아 경기를 하는 모습을 꿈꾸었던가?
“일단 정식 1군은 아니고 잠은 원래 자던 곳에서 자고 연습 할 때만 1층으로 내려와서 연습해라.”
감독님의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오직 다음 경기에 내가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만 들렸다. 만약 박성훈 코치님이 쿨 찔러 눈치를 주지 않았다면 벌린 입에서 침까지 흘러나왔을 것이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내가 감독님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잘해내겠습니다.”
“그래. 나도 네가 잘했으면 좋겠다.”
진짜 잘했으면 좋겠다는 느낌보단 반쯤 포기한 느낌이 강하긴 했지만 상관없다. 내가 경기에 나가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감독님 방을 나온 직후.
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재열이랑 택윤이는 왜 경기에 못 나와요?”
박성훈 코치님이 혹 누가 들을 새라 귀에 바짝 입을 대고 소근거렸다.
“음식 잘 못 먹고 탈났데. 그래서 프로리그 날 용족이 빵꾸가 났고. 대책 회의 때 내가 널 추천했어. 감독님도 나름 좋게 보셨는지 흔쾌히 오케이 싸인 하셨고.”
그럼 지금 내가 들은 게 사실인거지?
꿈이 아니지?
혹시 몰라 볼을 꼬집어봤다.
“아!”
아프다.
이건 꿈이 아니다. 현실인 것이다!
하필 이 타이밍에 용족 선수 둘이 탈이 나다니!
정말 신이 주신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좋아하지는 마. 형규처럼 정식으로 1군에 합류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 이번 경기만 임시로 합류하는 거야. 즉 너한테 남은 기회는 이번 1번이 전부란 뜻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네네. 알겠습니다!”
아무렴 어떠랴? 여태껏 주어지지 않았던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이번 경기에 나가서 만약 승리를 한다면? 형규처럼 정식으로 1군이 될 자격이 주어질지도 모른다. 꼭 승리를 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좋은 경기력만 보여줘도 1군으로 올라올 수 있다.
용족에 아무리 최강의 조합인 도택이 있다해도 이 둘만 믿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같은 일이 또 생기지 않는다는 법이 없으니까. 적어도 제3의 용족, 그러니까 백업카드를 뽑아야한다는 소리인데. 그게 내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목표가 작다고?
겨우 백업카드에 만족한다고?
아니다.
어찌 첫술에 배부르랴.
시작은 미천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백업카드로 자주 얼굴을 비추고 경험을 쌓아 개인리그까지 정복! 이러면 도택 부럽지 않은 용족 선수가 될 수 있겠지.
내 이름이 이승우니까.
무슨 라인으로 불리려나?
도택승? 도택리? 도택우?
“야. 도대체 무슨 생각하는거냐?”
기분 좋은 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난 입맛을 다시며 박성훈 코치님을 바라보았다.
“좋은 상상 좀 했습니다. 상상은 자유잖아요.”
“너무 흥분하지 말고. 그러다 제 실력하나도 보여주지 못하고 내려오는 수가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 많아. 반대로 연습 땐 그저 그런데 방송 경기에서 경기력이 폭발하는 경우도 있고. 이런 것 까진 바라지 않으니까 적어도 네 온전한 실력은 꼭 보여주고 내려오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코치님!”
박성훈 코치님의 말에서 나를 걱정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반드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절 추천해주신 박성훈 코치님에게 폐가 가지 않게!
오히려 감독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박성훈 코치님을 향해 한걸음 다가갔다.
“뭐야?”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챈 코치님.
하지만 내가 한 발 빨랐다.
“사랑합니다! 코치님!”
난 그대로 코치님을 와락 안았다. 내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코치님이 몸부림을 쳤지만 내 단단한 팔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볼에 뽀뽀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정말 쳐 맞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코치님을 꼭 껴안던 내가 팔에 힘을 풀었다. 그제야 빠져나온 박성훈 코치님이 한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잘해. 임마. 알겠지?”
“꼭 잘 하겠습니다.”
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눈빛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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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내가 1군 경기에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
물론 실력이 형규 다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도재열, 김택윤이 경기에 나오지 못한 것이 더 컸다.
마지막으로 박성훈 코치님의 추천까지.
세 박자가 고루 어우러지지 않았다면 난 경기에 나설 수 없었을 젓이다.
어쨌든 실력때문이건 운때문이건 내가 경기에 나간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처음으로 용족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다른 종족이었다면 이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겠지. 연습환경도 조금 변화가 생겼다. 생활은 2층에서 하지만 연습은 1층에서 했다. 즉 1군들과 함께 연습 경기를 한 것이다. 확실히 경기의 질이 달라졌다. 2군 녀석들이나 래더 고수들보다 훨씬 날카롭고 묵직한 공격이 이어졌다. 한 판 한 판 할 때마다
그래도 좋았다.
배운다는 기분이 들었고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1군 1군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점은 또 있었다. 프로리그가 열리는 날 까지 설거지를 비롯한 잡일에서도 해방이 된 것이다.
흐흐흐. 이게 제일 좋구나.
첫 연습을 마친 내가 2층으로 올라왔다.
“형. 축하해요.”
“드디어 형이 1군 경기에도 나가보네.”
“그러게? 난 형이 2층의 수호자로 평생 남을 줄 알았는데.”
축하인지 악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녀석들.
예전이었으면 가만히 두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봐 준다 봐줘.
일단 녀석들의 눈빛엔 악의가 없었다. 오히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동정심인가?
2군으로만 6년을 보낸 나를 동정해주는 뭐 그런 것?
아무렴 어떠랴.
모두들 날 응원해주고 있는데!
그나저나 엄마랑 동생한테 경기에 나간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정식으로 1군이 된 것이라면 당장 이야기하겠지만 혹 단발성으로 그칠지도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항상 나올 줄 알았던 아들이 1번만 나오고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크게 실망하실 것이 분명했다.
그래. 이번엔 이야기하지 말고 결과가 좋아 정식 1군이 되면 그때 말씀드리자. 엄청 좋아 하실거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어느새 경기 당일이 되었다.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의실에 들어왔다.
긴장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애송이 티가 다 나겠지?
그 곳엔 주운 감독을 비롯하여 1군 코치님 그리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만 들어올 수 있었다. 떨린다 떨려. 내가 드디어 첫 경기를 출전하다니! 내가 데뷔라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상황이 드디어 나왔다.
무려 6년 만에!
6년 만에 데뷔라니. 구름 위를 둥둥 사랑 인가봐. 독창적..아 이게 아니지. 어쨌든 너무 기분이 좋아 정신이 어떻게 되버린거 같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다는 것.
“야. 너 집중 안해?”
주운 감독님의 서릿발 같은 외침에 난 정신을 번쩍 차렸다.
힘들게 얻은 기회가 뺏겨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오늘 경기는 상당히 힘들 수 있다. 상대는 나무전자야. 현재 4위에 올라있지만 승이 겨우 2개 밖에 차이가 안 난다고. 오늘 패배하면 1위를 계속 지키는 것이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난 옆에 있는 형규를 바라보았다.
형규가 형도 올라올 줄 알았어라는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둘이 함께 1군에 가 경기에 함께 나가는 것.
그리고 둘 다 승리를 하고 팀도 승리를 하는 것.
그 꿈을 이룰 날이 오늘로 나가왔다. 형규가 5경기에 나서고 내가 6경기에 나선다. 팀이 승승장구하면 내가 경기에 나가기도 전에 끝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위기에 처하면 내 위치가 굉장히 중요해지는 것이다.
게임을 끝낼 수도 있고 혹 에이스 결정전까지 끌고 갈 수도 있고.
뒤에 이어진 감독님의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난 정말 기분이 좋았다.
“다들 알다시피 개인 사정으로 택윤이와 재열이가 출전을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명혁이 네가 반드시 초반에 1승을 챙겨 줘야해. 그리고 에결도 생각해야하고.”
1승 카드인 정명혁의 활약이 중요하다.
만약 명혁이가 패배한다면 오늘 경기는 나무전자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알겠습니다.”
명혁이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승자 출신은 다르구나. 표정 하나까지 멋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알겠지만 오늘 경기에 얼마전까지 2군이었던 선수 2명이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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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으셨다면 추천 1방 부탁드립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