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5 Game No. 5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
그날 저녁 연습 시간이 끝난 후.
난 오랜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마음 같아선 매일 매일 집에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직 이룬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 누구보다 나를 반겨주실 분이 엄마라는 걸 잘 알지만 선뜻 전화에 손에 가지 않았다.
조금 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때까지 미뤄두고 싶었다.
몇 번의 통화음이 가고.
“어. 엄마. 나야.”
-아들! 잘 지냈어? 오늘은 일주일만에 전화를 걸었네?
언제 전화를 걸었는지 다 세고 계신 모양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죄송스럽긴 하네.
“응. 더 자주 하려고 했는데 팀이 워낙 바빠서 전화를 못했어. 미안.”
내가 할 수 있는 핑계는 팀 핑계를 대는 것이 전부였다.
-미안하긴. 괜찮아. 이렇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어디 몸 아픈 곳은 없고?
“나야. 늘 건강하지. 엄마는? 그때 허리 아픈 건 어떻게 되었어? 괜찮아졌어?”
얼마 전 길에서 넘어지시면서 허리를 살짝 삐끗하셨다고 했다. 물론 엄마는 그 사실을 나에게 꽁꽁 숨겼다. 만약 동생과 통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아휴. 그놈의 기지배는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해야 가지고. 살짝 넘어진거야. 아주 살짝. 며칠 쉬니까 괜찮아졌어.
“다행이네. 이만 끊어야겠다. 내가 또 전화걸게.”
-그래. 아들. 아들 목소리 들으니까 기분 좋네. 엄마는 괜찮으니까. 아들도 몸 건강히 잘 있어!
“응. 사랑해.”
-엄마도 아들 사랑해.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내가 마지막에 한 말은 순 거짓말이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팀에서 해야 할 일도 없다. 그저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전화를 서둘러 끊었을 뿐이다.
전화를 끊은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토요일 오후 1시.
신들의 전쟁 프로리그가 열리는 날이다. 아직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인데 이미 경기장엔 사람이 가득 차있었다. 신들의 전쟁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듣자하니 그냥 한국에서 방송되는 걸 넘어 미국이나 유럽에 수출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판 중계권을 프로리그 성적순으로 차등 배분한다고 했다. 그러니 감독들이 개인리그 성적보다 프로리그 성적에 더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다.
“오늘 데뷔전이라니. 진짜 떨리겠다.”
“그러게. 난 저기 가면. 으. 상상만 해도 몸이 떨린다.”
2군 선수들의 관심은 오직 형규에게 쏠려있었다.
과연 데뷔전에서 승리할지 패배할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믈론 모두 형규의 승리를 바랐다. 속으로 다른 마음을 먹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오늘 경기는 아스트로와의 경기였다.
아스트로는 현재 프로리그 순위 11위로 포스트 시즌은 진작 물 건너간 팀이었다. 아스트로 밑에 있는 팀은 오직 하나 육군 타이거즈 뿐이었다. 육군 타이거즈의 주축 멤버는 과거의 스타거나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군대에 가야 할 나이가 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즉 아스트로가 실질적인 꼴찌였다.
형규가 데뷔전을 치르기 아주 적절한 팀이란 말이지.
경기는 일방적으로 흘렀다.
3:0.
이제 1 경기만 더 이기면 4:0으로 무난하게 이긴다.
그리고 4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는 형규였다.
상대는 아스트로의 신연호였다.
경기는 형규의 주도하에 흘러갔다.
그야 말로 완벽한 운영.
녀석은 중계진을 비롯한 관중들의 극찬을 받으며 승리를 따냈고 그 결과 우리 팀은 아스트로를 4:0으로 압도했다.
경기에 승리한 부스 밖으로 나와 한 손을 공중으로 번쩍 들어올리는 형규.
그리고 그런 형규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
분명 좋은 일이고 축하해줄 일인데.
왜 자꾸 입맛이 쓴지 모르겠다.
****
‘왜 또 내가 설거지야?’
설거지는 2군들이 일정표대로 돌아가서면서 한다. 오래 있던 순으로 한다면 6년이나 2군에 있던 내가 설거지를 할 리가 없다. 원래 오늘 설거지는 내가 아니었지만 중간에 일이 꼬여 내가 하게 되었다.
-띠띠띠띠.
“야. 너 진짜 잘했다. 오늘 플레이 쩔었어.”
“누가 보면 제가 리쌍이라도 잡은 줄 알겠어요.”
“야. 너 오늘 데뷔전이야. 데뷔전. 그렇게 큰 무대에서 달달 떨던 녀석이 경기에 들어가자마자 눈빛이 그렇게 달라져?”
문이 열리고 1군 선수들과 코치진이 들어왔다. 그들은 4:0 승리에 아주 기분이 좋아보였다. 최약체인 아스트로라곤 하지만 기분 좋을 수 밖에 없다.
많은 점수차로 이기면 승점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만약 같은 7승 1패라면 조금 더 세트 스코어를 챙긴 쪽이 높은 순위가 된다.
상대가 어찌되었던 승점 4점을 벌었다는 건 앞으로 진행 될 프로리그에 청신호였다.
물론 나랑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1군 선수들의 말에 난 묘한 위축을 느꼈다. 절대 난 끼어들 수 없는 이야기.
올라가자. 올라가.
얼추 설거지도 끝났으니까.
난 1군 선수들과 마주치기 전 나쁜 짓을 들킨 어린아이마냥 2층으로 후다닥 올라왔다.
****
S1 게임단 회의시간.
앞으로 있을 프로리그나 선수들의 개인리그에 대한 회의가 주를 이룬다.
지금 모인 이유는 이틀 앞으로 다가온 프로리그 일정 때문이었다.
프로리그 기준 회의 참석자는 주운 총감독과 종족별로 2명씩 있는 1군 코치와 2군 코치 3명을 포함하여 총 10명이었다.
현재 프로리그 1위를 달리고 있기에 화기애애해야 할 회의실의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게 식어있다.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죄송합니다.”
평상시 냉철하기로 소문난 주운 감독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죄송하면 다야? 무슨 대책을 내놓아야 할 거 아냐?”
주운 감독의 불호령에도 1군 코치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하긴 지금 상황은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1군 선수들 몇몇이 모여 몰래 야식을 시켜먹은 모양이다.
여기까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젊은 혈기에 그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시켜 먹은 음식이 잘못되었는지 모두 탈이 난 것이다. 더욱 더 큰 문제는 탈이 난 선수 중 도재열 선수와 김택운 선수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이틀 후에 있는 프로리그에 구멍이 생겼다.
두 선수 모두 출전이 예정되어있었기에 그 피해가 더욱 더 컸다.
“도대체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했길래 이딴 황당한 일이 생겨? 너네가 애들이야? 어? 선수들 상태는 어떤데?”
“탈이 난 정도라 며칠만 쉬면 괜찮다고 합니다.”
1군 용족 코치인 권 코치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답했다.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다.
선수들이 따로 음식을 먹는 걸 몰랐던 것이 아니다.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 했다. 선수 출신이었던 권 코치였기에 그런 가벼운 일탈이 소소한 재미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일이 이 정도로 나쁘게 흐를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반드시 말렸을 것이다.
그때였다.
가장 구석에 앉아 있던 박성훈 코치가 손을 들었다.
“무슨 할 말 있어?”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이 나주평야에 나올 용족 선수가 없기 때문 아닙니까?
“그렇지. 나주평야는 완전 용족맵이야. 용족맵. 다른 종족을 내보낼 수가 없다고. 그간 이 맵 때문에 승 꼬박꼬박 챙겼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박성훈 코치가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2군에서 용족 선수 1명 추천해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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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