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2 Game No. 2 연습 그리고 또 연습. =========================================================================
“그래. 하자. 방 파놔.”
계속 푸념만 하고 있을 순 없지.
난 자리에 가서 앉아 게임을 준비했다.
놀면 뭐하나?
연습해야지.
전장은 현재 프로리그에서 쓰이고 있는 폭풍의 언덕이다.
4인용 전장으로 마수가 용족에게 7:3 정도로 유리한 맵이다.
골라도 하필 이딴 걸 고르냐.
안그래도 마수가 더 유리한데.
“야. 너 진심으로 이딴 맵 고른거냐?”
“응. 현재 프로리그에서 쓰고 있는 맵이잖아. 쓸데없이 투혼 연습하느니 현재 쓰고 있는 맵 연습하는 것이 훨씬 낫지.”
투혼은 밸런스가 환상이라 불리는 전장으로 몇 년 전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전장이다.
마음 같아선 투혼에서 하자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녀석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투혼은 예전 전장이다.
어떻게든 코치 눈에 들려면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전장에서 연습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 가자 가.”
폭풍의 언덕 스타팅 포인트는 각각 11와 1시, 5시, 7시 방향.
가장 무난한 스타팅 포인트다.
폭풍의 언덕은 마수에게 너무나도 유리한 전장이다. 게임을 길게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5...
4...
3...
2...
1...
게임스타트.
위치는 11시.
자원 수급 면에서 나쁘지 않은 곳이다.
7번째 일꾼이 생산 되려할 때 앞마당 멀티가 있는 지역으로 일꾼을 빼 솟대를 건설했다.
솟대는 용족의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해주는 기본 건물로 솟대의 영향권 안에서만 건물을 지을 수 있다. 만약 솟대가 파괴되면 영향권 안에 있던 건물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멈춘다.
9마리의 일꾼이 딱 생산되었을 때 솟대의 건설이 완료되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일꾼 2마리를 더 찍고 용광포를 지을 수 있는 용무관을 건설하겠지만.
-지잉.
내 선택은 다른 선택이었다.
같은 철 자원 150을 들여 건설할 수 있는 제단이었다.
제단은 용족의 지상 유닛을 생산할 수 있는 건물이다. 보통 때라면 용무관 후에 올라갈 건물.
난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철 150이 모이는 순간 바로 2번째 제단을 건설했다.
일명 99제단.
초반 용족의 공격 유닛인 용아로 초반 찌르기를 감행하려는 생각이었다.
장단점이 명확한 빌드다.
일꾼을 쉬면서까지 용아를 뽑기 때문에 초반에 피해를 주지 못하면 게임이 급속도로 불리해진다. 운영으로 넘어가 아주 힘겨운 싸움을 여러 번 이겨낸 후에 간신히 균형을 맞추고 그때부터 역전을 발판을 마련해야한다.
반대로 빌드가 완전 엇갈린 경우 피해를 주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아예 게임을 끝내는 것도 가능하다.
형규 녀석의 플레이 스타일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무난한 플레이 혹은 배를 째는 스타일.
오늘 그 배를 한 번 째버릴 작정이다.
다시는 나한테 도발하지 못하게 말이다.
그러는 사이 정찰 성공.
형규의 빌드를 확인한 내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그려졌다.
역시. 녀석은 가장 무난한 빌드인 12일꾼 앞마당을 선택했다.
마견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마견숲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통했다.
빌드가 완전히 엇갈렸다.
내가 설거지라 불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프로게이머는 프로게이머다.
생산 된 첫 번째 용아가 마수 앞마당에 도착하는 순간.
“아. 이게 뭐야!”
형규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뭐긴 뭐야.
초반 찌르기지.
조금 큰 칼로 찌르는 거지만.
“왜 그래. 2군 최강 임형규. 이거 충분히 막을 수 있잖아?”
난 여유롭게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 형규의 일꾼 하나가 용아에게 잡혔다.
안봐도 뻔하다.
두 눈에서 불똥을 키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열나게 누르고 있겠지.
그런데 어쩌지?
3번째 용아까지 벌써 도착했는데.
용아만 도착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이 정도까지 갈린 상황 아예 경기를 끝내기 위해 일꾼 3기를 함께 몰고 왔다. 형규 역시 마견과 일꾼을 함께 동원하여 막아 보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느새 펴진 마수 소굴 옆에 일꾼으로 촉수를 건설하려 했지만 그마저 막혀버렸다.
솟대가 있어야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 처럼 마수 역시 우토가 펼쳐져 있어야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우토는 마수소굴이나 촉수를 통해 펼칠 수 있는데 지금 마수 소굴로 인해 펼쳐진 자그마한 우토 구역엔 내가 보낸 일꾼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마수 일꾼들이 촉수를 지으려는 걸 방해하고 있었다.
자자. 이제 슬슬 끝냅시다.
어느새 뽑은 용아의 숫자는 7마리.
전투를 벌이는 중 2마리가 죽어 남은 용아의 수는 5마리지만 아무 상관없었다. 마수가 입은 피해는 이 것보다 몇 배가 컸으니까.
“아.”
들려오는 깊은 탄식.
곧 게임을 던진다는 뜻이다.
결국 앞마당에 펼친 마수 소굴이 용아의 공격에 날아갔다.
게임 끝이다.
차라리 앞마당을 깔끔하게 포기했으면 모를까 이렇게 병력은 병력대로, 돈은 돈대로 쓰고 파괴되면 더 이상 뒤가 없다.
남은 용아가 마수 본진으로 올라가는 순간.
-임형규 : GG.
형규가 GG를 선언했다.
GG는 Good Game의 준말로 말 그대로 좋은 게임을 했다는 뜻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패배를 선언할 때 반드시 쳐야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겼다.”
내가 우승이라도 한 것 처럼 손을 번쩍 치켜들자 형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실룩거렸다.
인정못하면 어쩔건데? 한 대 치려고?
“치사한 거 아냐?”
“뭐가 치사한데?”
“연습 하려고 한거면 운영을 가야지. 치사하게 날빌을 선택해버리네.”
날빌? 그거 참 듣기 섭섭하다.
날빌의 의미는 2가지다.
첫번째는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날카로운 빌드.
두 번째는 공짜로 승을 먹으려는 올인성 날림 빌드.
누가 봐도 두 번째 의미로 말한 거다. 사실 첫 번째 의미도 방송에서 포장하기 위해 부랴부랴 지어낸 말에 불과했다.
물론 무슨 말을 하려는 줄은 안다. 초반 빌드로 게임이 갈리는 것보다 운영으로 승부하는 것이 더욱 더 연습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실전처럼 하길 원해서 폭풍의 언덕 맵 고른 거 아니었어? 프로리그나 개인리그 나가면 자. 우리 모두 팬들에게 재미있는 경기 보여주기 위해서 무조건 운영으로 갑시다. 10분간 러쉬 없는 거 알죠? 이렇게 하냐? 이런 것도 생각하고 있어야지. 처음부터 배제하면 그렇게 얻어 맞는 거라고.”
내 반격에 형규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녀석이 처음에 말한 것처럼 내 말도 틀린 말이 하나 없었으니까.
오히려 프로리그나 개인리그는 더욱 더 많은 날빌이 난무한다.
날빌로 이기든 남들이 감탄하는 운영으로 이기든 팀 입장에선 어차피 같은 1승이었으니까.
“후. 말이라도 못하면. 계속 연습합시다. 연습!”
형규가 차분히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쟤 눈빛 변한 거봐. 어후. 저게 형을 보는 눈빛이야?
원수를 보는 눈빛이지.
아. 지금 게임하면 안 될 것 같은데.
하지만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은 없다. 무시무시하게 빛나는 저 눈동자를 보며 어찌 그만하자고 할 수 있을까?
따고 배짱이라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 뻔하다.
어차피 연습도 해야 하니 몇 게임 더하지 뭐.
이 결정을 후회하기까지 난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
“.......”
“수고하셨습니다!”
개운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펴는 형규.
“오늘 참 뿌듯하게 연습했다. 그치?”
“......”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가 온 형규가 해맑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이 상황만 봐도 둘 간의 연습이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 있겠지?
정확히 5:2.
처음 한판을 제외하면 4:1이다.
정말 무참하게 썰렸다.
녀석은 변화무쌍한 전략으로 나를 괴롭했다.
공중 유닛인 닷발귀부터 극 후반 불가살 운영까지.
그야 말로 마수한테 용족이 당할 수 있는 험한 꼴은 다 당한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슨대는 사기인거 같아.”
그슨대는 마수의 초반 유닛으로 그슨대굴을 건설하면 마수 소굴에서 생산 할 수 있는 유닛이다.
이놈이 참 사기인데 소형, 중형, 대형 가리지 않고 원래 데미지를 그대로 준다.
특히 용족의 정석 빌드인 더블 신전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어야하는 용광포를 더럽게 잘 깬다.
한 무리가 와서 톡 치고 가면 그대로 깨지니 말 다했다.
초반 정찰이 무리 없이 이어졌다면 녀석이 테크를 올리지 않고 초반에 그슨대로 찌르려 한다는 걸 알았겠지만 어찌나 귀신같이 정찰을 차단하는지 2번이나 초반 그슨대 러시에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슨대가 사기라니. 내가 잘하는거지!”
“생각해보니 그슨대가 사기가 아니네.”
자신의 말을 공감해주는 줄 알았는지 형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치? 이제 형도 날 인정해주는구나.”
“그슨대가 사기가 아냐. 그냥 마수 자체가 용족한테 사기야. 마견 그 새끼들은 초반 유닛인데 후반에 왜 그렇게 세냐?”
마지막 경기도 짜증나긴 매한가지였다.
40분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졌다.
정말 용족으로 할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을 갖추었다. 어떤 병력과 싸울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무자비한 마수의 물량 앞에 야금야금 병력이 깎이더니 곧 GG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초반에 나오는 마견이 극 후반까지 쓰이다니. 발업과 공속업이 된 마견은 사기 중에 사기였다. 첫 경기에서 형규를 패배로 몰고갔던 용아도 풀업 된 마견 앞에선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마견이 몇 초 투다다다다하면 속절없이 터져나갔다.
마견을 잡으려면 지룡이나 풍백이 필요한데 모두 금을 많이 잡아먹는 유닛들이다.
반면 마견은?
2마리에 철 50이다.
이런 개사기. 이가 절로 갈린다.
그러고 보니 그건 환국의 궁병도 마찬가지네?
역시 용족이 제일 약해.
쓰레기야. 쓰레기.
그렇게 자책하고 있을 무렵.
“조금 쉬었다가 다른 2군들이랑도 해봐.”
“그럴까?”
“응. 다들 형이랑 하고 싶어 하는 눈치던데.”
흠흠.
내 입으로 말하기엔 조금 쑥스럽지만 2군들 사이에서 형규 다음으로 실력이 좋은 것이 나다. 그러니까 나랑 하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 줄을 섰다는 말이지.
생각해보면 가장 2군에서 오래 머문 사람도 나다.
게임실력이라도 좋아야지 만약 2군 중에서도 애매한 순위였다면 고개를 들고 있지 못할 것이다.
솔직히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같은 시기에 드래프트에 나왔던 동기들 중 2군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으니까.
나머지 애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1군에 올라가거나 방출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26살이라 하면 굉장히 어린 나이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로서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역대 최고령 우승자가 26살.
보통 26살이면 그래프가 꺾이는 시기다. 그 전에 최전성기를 찍고 서서히 내려오는 시기란 말이다. 흔히 S급이나 불리는 엄청난 게이머들은 여전히 그 실력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 게이머들은 아예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니 굳이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다시 우울해지네.
“그래야겠다. 딱 1시간만 쉬었다. 게임 해야지.”
연달아 다섯 게임이나 했으니 1시간 쉰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겠지?
살짝 2군 코치의 눈치를 봤다.
별 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걸 보니 상관없을 듯싶다.
가장 오랜 기간 2군에 머물렀기 때문일까?
코치들의 표정을 읽는데 선수가 된 것 같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으셨다면 추천 1방 부탁드립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