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49화 (149/152)

# 149

한편 도수는 엘 파소로 복귀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우려처럼 이곳에 오래 남는 것은 위험했다.

궁지에 몰린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하는데, 미국령에 속한 엘 파소 병원 주차장에서 사람을 쏘는 막장 카르텔이 어떤 일이 벌일지 알 수 없었다.

이동 목적으론 병원 헬기를 이용할 수 없었기에, 도수는 이근육과 상의 끝에 차로 이동하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속속들이 경호요원들이 도착한 후 그들은 함께 차를 탔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이근육이 말했다.

그는 라크리마에서의 실수가 마음에 걸렸는지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멕시코 카르텔은 범죄 조직 주제에 잠수함을 구입해서 숨겨둘 정도로 규모가 큰 조직이었으므로.

경호 인력을 아무리 많이 동원한다 해도 압도적인 화력 앞에선 오합지졸에 불과한 법이다.

다소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동한 지 얼마나 됐을까?

미국 국경이 저 멀리 보이는 시점에, 이근육이 주위를 살피며 표정을 굳혔다.

“놈들인 것 같습니다.”

도수 역시 그 시선을 쫓았다.

주변 차량 안에 각각 네, 다섯 명의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한두 대 차량만 그런 게 아니었다. 수십 대의 차량 안에 남자들만 대거 탑승하고 있는 광경.

창문을 통해서 총기가 보이진 않았지만 가족 단위도 아니고,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내 도수가 물었다.

“카르텔인가요?”

“시카리오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근육이 대답했다. 시카리오. 멕시코 카르텔의 암살자들을 가리키는 단어다. 그는 무전기를 들어 앞뒤에 배치된 차량 안에 탑승하고 있는 경호원들에게 지시했다.

“충돌에 대비한다.”

여기서 충돌이라는 것은 총격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에 있던 차량들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국경 검문으로 꽉 막힌 상태라지만 도로 위에서 차문을 열고 내리는 것 자체가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각각 손에 기관총을 꺼내 들고 있었다.

“꺄악!”

“총이다!”

창문을 열고 더위를 식히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적들이 이를 드러낸 이상 경호원들이라고 가만있을 리 없었다. 안 그래도 단단히 무장하고 있던 그들은 차에서 내리며 적들을 겨누었다.

가장 먼저 총성이 터진 것은 카르텔 쪽이었다.

타앙! 탕! 타타타타타탕!

총격이 오가기 시작했다.

경호원들과 시카리오들은 서로를 쏴대며 차량 뒤에 몸을 엄폐했다.

반면 총탄이 날아들자 이근육은 도수를 감싸며 외쳤다.

“차량 옆쪽으로 이동하십시오!”

도수가 반대쪽 문을 열고 내렸다.

총성이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라크리마에서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겪었던 도수여서 망정이지, 평화로운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몸을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총성만이 총알이 날아온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도, 반사 신경으로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공포였다.

그야말로 재수 없어서 눈 먼 총알에 한 발 맞기라도 하면 머리가 날아가거나 심장이 뚫릴 수도 있는 까닭이다.

“젠장!”

이근육은 욕지거리를 뱉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했다고 해서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건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주인공들의 모습이고, 실상은 아무리 노련한 베테랑 요원이라도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단지 노련한 이들은 사태에 비교적 침착하게 반응하는 것뿐이다.

“앞뒤가 다 막혔습니다!”

이근육이 말했다. 안 좋은 소식이었다. 퇴로가 막혔다는 뜻이니까. 그에 반해 시카리오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경호 인력을 최대한 동원한다고 동원했는데도 시카리오들 머릿수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빌어먹을… 완전히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력이 너무 많아요.”

이근육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침착하다니. 제아무리 전쟁터에서 살았던 소년이라 해도 일반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근육 만큼이나 상황을 냉정하게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도수는 한 술 더 떠서 말했다.

“제 목숨을 노리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이근육이 물었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만약 제 목숨을 노렸다면 이쪽을 집중사격 해야 하는데, 정작 경호원들이 숨은 곳으로 총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아뇨. 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굳이 정면충돌을 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멕시코 카르텔에 대해 조사를 해봤어요. 놈들은 제거 대상이 생기면 대부분 폭탄을 씁니다. 여기가 미국도 아니고, 치안이 허술한 후아레즈에서 차량 몇 대에 폭탄을 설치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희생을 감수하고 국경에서 총격전을 벌인다? 이상하지 않아요?”

“이 상황에 그런 생각을…….”

탕탕탕!

타타타타타타타!

총성이 들려왔다.

이근육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폭탄을 설치했으면 우리가 먼저 놈들의 의도를 알아챘을 겁니다.”

의도가 밝혀질 것을 우려해서 폭탄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카르텔의 방식은 공포심을 심어주고 움직이는 것이다.

적어도 도수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랬다.

‘힘들겠어.’

전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경호원들이 밀리는 게 확연히 보였다. 이미 과반수의 요원들이 총상을 입은 상태. 이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손실을 보고 있다면 결말은 안 봐도 빤했다.

‘군경이 올 때까지 못 버틴다.’

그게 라크리마에서 수많은 전투를 목격했던 도수의 판단이었다.

무의미한 사상자가 발생할 테고 결국 도수가 납치를 당했을 땐, 몇몇만 살아남을 것이다.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빤했다.

명중률이나 실력은 경호원 측이 압도적으로 우월했지만 시카리오들의 쪽수가 몇 배는 많았기 때문이다.

“…위치추적기 주세요.”

도수의 말에 이근육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방법이 없습니다.”

“안 됩니다.”

그러나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구하러 오세요. 저는 한국인이지만 미국 시민권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이었다.

미국인들을 살리고 영웅이 됐을 때 받은 혜택이다. 결국 미국의 의사 자격을 취득하진 않았지만 시민권은 보유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한국인으로서 납치당한 것과 미국인으로서 납치당한 것의 여파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국가가 가진 힘이고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미국 시민이 납치당했다면 미국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에서 영웅으로 불리는 젊은 의사가 납치를 당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하려고 들 터였다.

놈들이 도수의 목숨을 노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그들은 왠지 목숨을 노리고 있지 않았다.

“추적기.”

도수 말에 이근육은 다시 한번 주위를 훑었다. 전투가 가능한 경호원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 있었다. 이미 전력이 무너지는 것은 예정된 사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양상이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었다.

“개자식들……!”

이근육은 이를 갈았다. 설마 일개 범죄 조직이 이 정도 병력을 동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놈들 중에는 매수된 경찰들도 껴 있었다. 국경 인근은 놈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한 게 실수였다.

그야말로 이런 식으로 국경에서 전쟁터를 방불케 할 규모의 총격전을 벌인다는 것은 너 죽고 나 죽자는 뜻이다. 그럼에도 놈들은 예측을 부수고 더 과감하게 움직였다.

“꼭 구하러 가겠습니다.”

이근육이 추적기를 내밀자, 도수가 망설임 없이 추적기를 삼켜 버리고 대답했다.

“매디 보웬 기자한테 연락하세요. 그쪽이 빠를 겁니다.”

그녀는 도수가 어떤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는지 훤히 파악하고 있을 터.

도수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움직여만 준다면 훨씬 더 빠른 구출이 가능할 터였다.

물론 그 전까지 버티는 건 도수의 몫이다.

‘최대한 협조한다.’

그래야 한다. 계속 협조하지 않는다면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맛보게 될 터였다. 그래서 멕시코 카르텔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잡혀가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쪽을 선택할 정도다.

이내, 이근육이 무전기를 들었다.

“항복한다. 무장해제, 무장해제.”

그는 하얀 내의를 북 찢어 벌집이 된 차량 보닛 위로 흔들었다.

경호원들이 무장해제를 하자 총격이 멎었다.

이근육이 먼저 일어났고, 경호원들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항복 의사를 확실히 한 것이다.

역시나 시카리오들은 도수의 목숨이 목적이 아니었는지 다들 총을 겨눈 채 모습을 드러내고 말했다.

“닥터 리를 넘겨라.”

그제야 도수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두 손을 든 채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두근, 두근…….

심장이 가파르게 뛰었다.

그래, 라크리마에서도 반군에서 납치된 가운데 탈출했던 그였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그는 공포심을 꺾고 침착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좇은 의사로서의 사명은 사람을 살리는 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희생한 채 잡혀가는 것은 그의 사명에도 위배되는 일이었다.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기 이전에 죽어가는 사람이 없게끔 하는 것이 먼저지 않겠는가.

성자라도 되냐고?

아니.

결과가 변하지 않음을 알기에 할 수 있었던 판단이다. 두려움이 치밀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카르텔 앞에 당도했다. 이들도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악마의 탈을 쓴 사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놈들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판단을 한다면 살 길이 있을 것이다.

“죽일 거 아니면 빨리 갑시다.”

오히려 총을 들고 있는 시카리오가 당황했다. 이토록 당당한 태도로 납치되는 놈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카리오는 도수의 머리에 검은색 면포를 씌웠다.

“가자!”

거칠게 밀어붙였다.

순식간에 차에 태운 뒤 출발한다.

구해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도수는 그게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을 구할 수 있었다면 총격전이 한참일 때 나섰을 것이다.

어디론가 한참을 향했다.

시카리오들이 멕시코에서 쓰는 에스파냐어로 무어라 지껄이는 소리는 들려왔으나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그 외에 놈들은 도수에게 어떤 말도 묻거나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차가 멈췄을 때, 도수는 다시 국경과 멀어졌음을 직감했다. 면포를 벗고 마주한 곳은 한눈에 봐도 인적이 드문 카르텔의 아지트였다.

시카리오들이 다시금 도수를 몰아붙이며 아지트 안쪽에 있는 작은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런 뒤 의자에 손발을 결박하고 영어로 말했다.

“개 같은 새끼! 너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이자도 이번 총격전에서 동료를 잃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보스는 도수 탓에 도망자 신세가 될 판이다. 자신들의 벌이에도 영향을 받게 된 셈이다.

“보스 명령만 아니었으면 죽여 버렸을 텐데.”

시카리오가 이를 갈았다.

보스란 자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도수도 알고 있었다.

“당신들 보스는?”

“닥치고 기다려.”

짝!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긴 시카리오가 침을 퉤 뱉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카르텔의 보스가 아니었다.

도수의 기억 저편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얼굴. 그 얼굴보다 주름이 더 늘고 살이 빠졌지만 그 얼굴이 분명했다. 시카리오들이 들이닥쳤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도수는 눈을 부릅뜬 채, 감히 상상도 못 했던 한 마디를 뱉었다.

“아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