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46화 (146/152)

# 146

도수는 시신을 보기 위해 안치실로 향했다.

샤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을 발휘하자.

환자의 심장에 흥건하게 비추는 이물질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도수가 물었다.

“약물 반응은 안 나왔습니까?”

중년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서 투약한 약물을 포함해 생명에 지장이 갈 만한 약물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도수의 눈에 보이는 이물질은 뭐란 말인가?

도수가 입을 열었다.

“환자 보호자들을 뵙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무슨 이야긴지 알 수 있겠습니까?”

도수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부검 요청을 해볼 생각입니다.”

“부검이요?”

중년 의사가 눈을 크게 떴다.

“큰일 납니다. 가족들이 먼저 원한 것도 아닌데 부검을 하자고 하다니요?”

“…제가 직접 부검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규정에 맞지 않아요.”

“환자는 제게 유서를 남겼습니다. 진실을 밝혀달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환자의 유지를 이으려면 제가 직접 부검하는 방법뿐입니다.”

“저는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중년 의사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분명 가족들도 납득하지 못할 겁니다.”

“환자를 죽음으로 내몬 게 누구인지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도요?”

“…….”

중년 의사는 확신하지 못했다. 유가족들 입장에선 부검 자체를 꺼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남편이자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원흉을 밝혀내는 일이라면 또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말리진 않겠습니다. 직접 말씀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도수는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제가 직접 얘기하죠.”

“험한 꼴을 당하실지도 모릅니다. 만약 원하시면 제가 대신 전달해 보겠습니다.”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도수의 시선을 읽은 중년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곧 자리 주선하지요.”

***

다음 날.

유가족들이 도착했다.

중년 의사는 약속한 대로 도수를 불렀다.

도수가 면담실로 들어갔을 땐, 이미 유가족들이 앉아 있었다.

가장 처음 입을 연 것은 창백한 안색을 한 남자였다.

“아버지를 수술하신 의사라고요.”

“그렇습니다.”

도수는 장내 분위기를 살폈다. 중년 의사의 앞섶이 흐트러져 있고 목에는 붉은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중년 의사는 환자의 죽음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을 테고,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듯했다.

이를 짐작한 도수가 말했다.

“설명은 들으셨습니까?”

“전 믿을 수 없습니다.”

남자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스스로 돌아가셨다고요? 가족들을, 우리를 남겨두고 말입니까?”

“…….”

“유서는 봤습니다. 아버지의 서명도요. 하지만 내용만은 믿을 수 없습니다.”

침묵하던 도수가 물었다.

“제가 온 이유를 아십니까?”

“의사나 병원의 실수가 아니란 말씀을 하러 오신 거라면 됐습니다.”

“부검을 제안하러 왔습니다.”

“뭐요?”

남자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아버지를 죽인 것도 모자라 시신까지 훼손하겠다는 겁니까?”

“훼손이 아닙니다. 사인을 밝혀내려면 부검이 필요해요.”

“왜요? B&W와 마약상이 손잡았다는 허무맹랑한 추론을 밝혀내기 위해서? B&W는 세계적인 제약회사예요. 그런 곳이 뭐가 아쉬워서 마약상과 손을 잡는단 겁니까?”

“그것까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 한 가지뿐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면 왜 돌아가신 건지 밝혀내야 합니다.”

“그럼 바로잡을 수는 있고요?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어요.”

“적어도 고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진 않을 수 있겠죠. 그리고 고인을 그렇게 만든 원흉을 색출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이 유서가 아버지가 쓴 게 아니라면? 그땐 어쩔 겁니까. 더 이상 아버지를 욕되게 하지 마세요.”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무서운 것이다.

B&W는 세계적인 대기업이고 제약회사다. 그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공신력을 가진다.

심지어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들조차 유서를 보고도 B&W를 의심하기보단 병원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수는 반대로, 바로 이런 인식 때문에 B&W가 대담한 일을 자행할 수 있다고 여겼다.

“다른 각도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떤 각도로요?”

“유가족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유서만으로 부검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을 가장 잘 아는 건 가족들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버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그게 무슨……!”

남자가 화를 내려는 순간.

그동안 조용히 있던 여자가 손목을 잡았다.

“잠깐. 들어보자.”

남자가 눈을 부라렸다.

“뭘? 이놈들이 하는 얘길?”

“당신은 지금 누구한테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고 있어.”

“…내가 지금 화를 내는 걸로 보여?”

“응. 아버님께 무심했던 당신 자신이 가장 미운 거잖아? 자기 자신을 증오할 수는 없으니까 그 책임을 다른 사람한테 돌리는 거고.”

“다 안다는 듯이 말하지 마.”

“적어도 난 당신을 알지. 안 그래?”

“내가 그렇게 못난 놈처럼 보여?”

“아니.”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그 감정 자체는 창피한 게 아니야. 하지만 아까도 그렇고, 지금 당신이 보이는 행동은 창피한 거야. 안 그래?”

“…….”

“난 당신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지혜롭게 말문을 틀어막는 여자를 보던 도수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 남기신 유서가 진짜라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겁니다. 많은 가정이 무너지고 가족들은 불행해지겠죠. 하지만 유서에 거론된 제약회사는 너무나 교묘해서 어떤 방법을 써도 밝혀낼 수 없는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유서에 따르면 아버님은 그걸 확인했고 시간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상대는 당신을 두려워해서 총격까지 가했습니다. 죽다 살아났지만 앞으로 얼마나 버틸지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 당신이 아버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남자를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는 늘 가정보다 양심을 우선시했다. B&W에서 퇴사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아버지가 퇴사하면서 집안은 경제적으로 내몰렸다. B&W에서 같은 업종 간의 이직을 알게 모르게 막았던 것이다.

그 후에도 아버지는 다른 일을 찾기보단 조건도 나쁜 엘 파소까지 가서 B&W의 비리를 파헤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을 해고시킨 회사에 대한 일시적인 울분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언젠가부터는 소식도 끊은 채 간간이 안부만 전해왔다.

아버지라면 충분히, 양심과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끝까지…….’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떠났단 말인가?

타인들의 행복을 위해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빠드득.

남자는 이가 갈렸다.

“…부검을 한다면 사인을 정확히 밝혀낼 수는 있는 겁니까?”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미 시신의 몸속을 훑어본 그였다. 심장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이물질을 보았다. 생체 활동이 멈춘 이상 그 붉은색 이물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도수를 응시한 남자가 다시 물었다.

“만약 밝혀내지 못한다면?”

“모든 책임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신을 고소할 겁니다. 이 병원도.”

“아뇨.”

도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 모든 건 제가 진행하는 사항입니다. 병원은 아무런 연관도 없어요. 그리고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버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게 아니라면 모든 책임은 수술을 집도한 제게 있습니다.”

“이름이 뭡니까?”

“이도수입니다.”

도수가 말을 이었다.

“이 이야기가 믿음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총상을 입은 아버님을 치료하기 위해 엘 파소 병원에서 헬기를 타고 이곳까지 날아왔습니다. 그러니 제게 부검을 맡겨주신다면 아버님을 그렇게 만든 원흉을 반드시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약속드리죠.”

“당신 말이 사실이라고 칩시다.”

남자가 이어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당신네 의사들, 환자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한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엄연히 말하면 당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 일이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전 환자가 아픈 이유를 찾아내고 치료하는 게 일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버님께선 제 환자셨죠. 그 외에도 다른 환자들이 있습니다. 확장성 심근병증 환자들이고, 심장성형술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중에는 B&W의 심장성형제를 복용한 환자도 있어요. 만약 B&W사의 심장성형제가 문제가 있다면, 그분들은 근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신 겁니다. 그래서 전 B&W의 심장성형제에 대한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환자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의사 선생, 아직 젊은 것 같은데 한 마디만 하죠.”

“예.”

“우리 아버지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 말하는 겁니다. 당신은 양심적으로 마음이 편할지 몰라도, 당신 주위 사람들은 힘들 겁니다. 일에 대한 당신의 열정은 높이 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명심하죠.”

도수는 진심으로 대답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스스로 깨달았다. 자신은 앞으로도 이런 삶을 살아갈 것임을. 이 고집을 절대 바꿀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그가 사람을 고치고 이런 문제에 깊게 파고드는 건 영웅이 되고 싶어서나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직업이 고되지만 보람차고, 이 일을 할 때 세상 어떤 것보다 값진 감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늘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 자신이 특별할 수 있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다친 사람을 치료해 줄 수 있어서다. 만약 그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그 순간 그는 특별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크게는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편 남자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으나, 마침내 중년 의사를 보며 물었다.

“…이분한테 부검을 맡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몇 시간 후, 도수는 부검을 시작했다. 해부학을 배운 적이 있었지만 따로 부검을 배운 적은 없었다. 따라서 부검의가 함께했다.

도수는 가슴을 열고 심장을 확인했다. 얼마나 많이 복용했으면, 병리학자가 스스로 복용한 약물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절반은 혈관으로 흘러들어 가고 절반은 스며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건만 아직도 치사량 이상의 약물이 남아 있던 것이다.

부검의가 도수를 보며 말했다.

“진짜 있군요.”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말 그대로였다.

어떤 검사로도 문제점을 밝힐 수 없었던 약물을 대량 확보한다고 해서 숨은 부작용을 밝혀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병리학자는 자신의 몸을 열어보면 답이 들어 있을 거라고 유서에 썼고.

역시나, 그가 들이켠 약물도 그냥 약물이 아니었다.

샤아아아아아.

도수의 눈에 보이는 물질.

그건 기존 심장성형제 자체의 약물에 색깔을 입혀 문제가 되는 성분만 구분한 형태의 약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