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45화 (145/152)

# 145

도수는 휘청거렸지만 수술대를 잡은 덕분에 넘어지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거짓말이다.

전혀 안 괜찮았다.

오히려 도수 본인이 환자가 돼서 수술대에 누워야 할 판이었다.

그만큼 세상이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러자, 덜컥 겁이 났다.

‘만약 투시력을 잃어버린다면……?’

지금 이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환자를 통해 보고 있는 장면 때문이었다.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나면서 투시력이 힘을 다한 것이다. 지금껏 지속적으로 투시력을 사용해 왔고, 언제부턴가 이 능력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감조차 완전히 떨쳐낸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투시력이 사라진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투시력이 없더라도 그는 노련한 써전. 실력은 그대로겠으나 정신적으로 받는 타격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먼다고 생각해 보라.

그전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느낄 터였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렇기에 두려웠다.

‘기우일 뿐이야.’

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비칠비칠 수술실을 나섰다.

조심스럽게 뒤에 붙어 따라온 중년 의사가 말했다.

“닥터 리를 보면 정말 목숨을 걸고 수술하는 것 같습니다. 장렬한 기분이 들 정도로…….”

어쩌면.

그럴지도.

정말 목숨을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 인체부터 물건까지 세상 모든 것에는 생명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도수는 그 생명력의 존재를 확신했으나 언제나 눈앞의 환자가 먼저였다. 그런 그에게 이런 이야기는 하필 지금 상황에선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것밖에 안 됐다.

쉽게 말해 듣기 싫었다.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네.”

그래야 한다.

아직은 할 일이 많았으니까.

“먼저 가보겠습니다.”

“제가 쉴 곳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중년 의사는 성큼 나섰다.

그러자 수술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근육이 다가왔다.

“저와 함께 움직이시죠.”

“이분은…….”

도수와 함께 왔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이근육의 정체에 대해 모르는 중년 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도수가 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경호원입니다.”

“경호원이요?”

도수가 시선을 보내자.

이근육이 대신 설명했다.

“후아레즈는 위험한 곳이니까요.”

더 이상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다.

중년 의사 역시 크게 의문을 갖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위험한 곳이죠. 병원 안에선 별일이 없지만 병원 밖에선 별의별 일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환자들도 많고…….”

“말로 안내해 주시면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이근육의 말에 중년 의사가 대답했다.

“예, 그러시죠.”

복도를 걸으며 이근육이 물었다.

“혹시 후아레즈 카르텔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저는 의사인데 뭘 알겠습니까. 그저 마약상이고 멕시코 경찰이고 정신없이 들이닥칩니다. 아, 그리고 마약상이 제법 많은 경찰들을 매수했어요. 혹시라도 그들과 맞닥뜨린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실려 와서 총구를 들이대는 마약상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병원에는 깨끗한 경찰 인력이 상주하고 있어서 대부분 진압이 되긴 하지만 몇 번은 의료진이 다친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직 심각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만.”

“그건 그렇지만 병원 밖을 보면 심각하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매일같이 사람이 죽어나가고 시체가 매달리니까요.”

“말씀 감사합니다.”

이근육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드는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현실로 접하니 저절로 긴장이 됐다.

중년 의사가 덧붙였다.

“자기들의 이권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모두 치워 버리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자들이죠. 미국과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칫 마약상을 잡아다 경찰에 넘기기라도 하면 보복이라도 할 자들입니다.”

뒤에서 듣던 도수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약상을 마약단속국에 넘긴 적이 있었다. 더불어 마약상과 B&W가 연루되었다면 그들의 이권마저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도수를 노린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가만히 두면 도수는 계속 이 문제를 파고들게 될 테고, 그 첫발이 오늘 수술에 성공한 병리학자가 될 터였다.

“후.”

한숨이 나왔다.

이런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았는데 마약단속국 요원의 걱정보다 더 깊게 연루된 것 같았다.

이근육과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휴게실로 갔다. 서로 마주 앉자 이근육이 먼저 입을 뗐다.

“최대한 빨리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

“언제 돌아갈 생각이십니까?”

“환자랑 함께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수술 받은 환자… 말씀이십니까?”

“예.”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회복 속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알 수 없죠.”

“오래 남아 있을수록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근육이 경고했으나 도수는 돌아가겠다고 결정하는 대신 되물었다.

“경호 인력이 오고 있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버텨보죠.”

“하지만…….”

도수의 임무는 환자를 살리는 것까지. 나머지는 그의 역할이 아니었다. 이는 도수도 인정하는 부분이었으나 힘들게 목숨을 붙여놓은 환자가 다시 위험해지는 꼴을 볼 수는 없었다.

“제가 여기 있으면 경호 인력이 모이겠죠.”

“그렇습니다.”

“환자가 왜 멕시코까지 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적했는데도 총을 맞아서 실려 왔습니다. 다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제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 경호원들이 머물게 됩니다. 환자도 안전해질 거예요.”

“그럼 경호 인력을 분산해서 배치해 두겠습니다. 먼저 출발하시죠.”

“주치의의 역할은 수술뿐만이 아닙니다. 치료도 포함되죠. 이곳에도 실력 있는 의사들이 많지만 전 제 환자를 끝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실 핑계였다.

도수가 이곳에 남고자 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수술은 잘됐지만 예후까지 장담할 수는 없다. 언제 어떻게 잘못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중상 환자였기 때문에 차마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중태에 빠진 환자들이 늘 품고 있는 위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유로 죽어버릴까 봐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근육은 입을 닫았다.

그를 보며 도수가 입을 열었다.

“저를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셨죠?”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드릴 겁니다.”

“그 말씀 믿어도 될까요?”

“…….”

이근육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지켜주는 건 어디까지나 통제에 잘 따랐을 때’라고 협박이라도 하고 싶었다. 위험은 피할수록 줄어드는 법이니까. 하지만 경호원이란 상대의 상황에 맞춰서 대상을 지키는 것이지, 자기 뜻대로 대상을 끌고 다니는 임무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믿어주십시오. 지켜 드리겠습니다.”

이근육은 다짐했다. 멕시코 카르텔 전체가 병원을 습격해도 도수만은 꼭 지켜주겠다고. 환자를 위해 엘 파소에서 사지가 될지도 모르는 후아레즈로 뛰어든 남자다. 거기다 탈진할 때까지 수술을 하고도 환자의 안위부터 걱정한다.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환자를 안전하게 지켜주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의사도 그러할진대.

그를 지키는 경호팀장인 이근육 또한 그 의지를 물려받았다.

도수는 환자를 지키고 그는 도수를 지킨다.

이근육이 목숨을 걸고 이뤄야 할 사명이었다.

***

그 날.

도수는 곯아떨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만 이틀이 지난 후였다.

그가 처음 들은 이야기는 비보(悲報)였다.

“…사망했습니다.”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인연이 닿을 듯 닿지 않던 병리학자가 기어코 사망하고 만 것이다.

“…….”

말을 잃은 도수에게 중년 의사가 덧붙였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닥터 리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출혈량이 너무 많았고, 컨디션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기에 버티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으나 그 역시 담담하지 못할 터였다.

“가족들은요?”

도수가 묻자 중년 의사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연락은 됐습니다. 그동안 실종 상태였다고 하더군요.”

대체 그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병원을 떠나서 가족들한테조차 연락을 끊었었다.

몇몇 지인들에게만 연락을 했다고 하는데, 그마저도 살아 있다는 소식 정도였다.

“…가족들은 뭐라고 합니까?”

“그게…….”

잠시 대화를 잇지 못하던 중년 의사가 말을 이었다.

“그 전에,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주치의에 제 이름을 올렸습니다. 실제로 수술 후 이틀간 제가 지켜봤으니까요. 수술은 성공했고 만약 책임 소지가 있다면 제 불찰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뇨.”

중년 의사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닥터 리의 상태도 매우 안 좋았습니다. 지금껏 멀쩡하게 환자들을 수술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과로가 심했습니다. 이틀 내리 고열이 사십 도를 넘나들었어요. 다른 문제가 생길까 심히 우려되는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회복되셨지만요.”

“…….”

“아픈 곳은 없으십니까?”

“…예. 괜찮습니다.”

“주치의 이름은 제 말씀대로 하시죠. 알아보니 지금껏 단 한 번의 수술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모두 어려운 수술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로 인해 경력에 흠집이 나면 안 됩니다.”

“의사에게 환자의 죽음은 받아들이고 책임져야 할 숙명과도 같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참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아닙니다. 무리한 부탁이었고, 무엇보다 써전으로서도 실수한 게 없습니다.”

“…….”

도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사망한 것이다. 그래선 안 됐는데, 그런 일이 있을까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정신줄을 놓고 있던 이틀 사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자 중년 의사가 다시 입을 뗐다.

“그리고, 환자가 닥터 리에게 남긴 유서가 있습니다. 잠시 정신이 들었을 때 써두었던 것 같더군요.”

“유서요?”

“예. 개봉해 보진 않았지만…….”

도수가 눈을 치떴다.

환자와는 아직 일면식도 없는 사이.

도수의 존재를 아는 것을 넘어 그에게 유서를 남긴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미리 가져왔는지 중년 의사는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일면식도 없는 의사한테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유서까지 썼을까.

멀리서부터 와서 수술을 해줘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

그 정도 짐작만 해본 도수는 유서를 펼쳐서 읽었다.

이도수 선생께.

멕시코에 있는 사이 당신에 관해 조사를 했습니다. 놀라운 일들을 이뤄내셨더군요. 각설하고, 제가 엘 파소 병원을 떠난 것은 멕시코 카르텔로부터 행적을 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 B&W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등잔 밑으로 숨어들 생각을 했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멕시코 카르텔이나 B&W 측으로부터 진실을 얻을 방법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제 스스로 진실을 새겼고, 제 몸속에 비밀을 남겨뒀습니다. 제 목숨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려 합니다. 제가 직접 모든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선생께 부담을 안기고 떠나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뿐입니다. 그렇더라도 부디 저 대신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모든 증거는 제 안에 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서명만 있을 뿐 어떤 추신도 없었다.

도수는 충격을 받은 얼굴을 들고 물었다.

“…어떻게 사망하셨습니까?”

“예?”

“이 환자, 어떻게 사망했죠?”

“간밤에 갑자기 어레스트가 났습니다. 간호사들이 대처했지만 이미…….”

도수는 유서와 정황을 듣고 확신할 수 있었다. 유서가 사실이라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유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마약과 관련된 B&W의 신약이 널리 퍼질 터였다. 즉, 더 많은 희생이 뒤따를 터였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결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붙잡아둔 목숨인데 스스로 끊는단 말인가?

아무리 방법이 없어서라지만…….

중년 의사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시신을 기증했나요?”

감정이 완전히 식어서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목소리.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중년 의사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만…….”

감정을 다스리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도수가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시신을 좀 봐야겠습니다.”

“그게 무슨…….”

도수는 설명 대신 유서를 내밀었다.

이 일에 깊게 연루된 정도가 아니라, 이젠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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