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턱.
메스를 받은 도수는 투시력을 사용했다.
샤아아아아아아아아.
머리가 핑 돌았다.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도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버텨야 돼.’
버텨야 한다. 환자가 생사의 기로에서 버티고 있는 것처럼 그 역시 흔들려선 안 된다.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
누구도 입을 떼지 않고 있었지만 다들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들 모두 도수에 대한 소문만 들어봤을 뿐 직접 손발을 맞춰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집도의를 맡겼던 중년 의사가 물어왔다.
“괜찮으십니까?”
“보조 부탁드립니다.”
“…….”
침묵하던 중년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언제든 힘들면 말씀하십시오. 바꿔 드리겠습니다.”
“그러죠.”
도수는 칼끝을 보았다. 어느새 떨림이 잦아들어 있었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환자를 위해서도 있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봐도 수술을 오래 끌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외상 수술은 경상부터 중상,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까지 치료했던 다양한 경험들이 있는 분야였다.
발가벗긴 환자가 수술대 위에 피를 쏟고 있었다. 핏물이 수술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작하겠습니다.”
도수가 메스를 움직였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거즈패킹과 혈관 봉합이었다. 일단 피를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적혈구가 모자란 지금 가장 치명적인 것은 출혈이었다. 출혈만 막으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길 터였다.
스으으윽.
칼날로 피부를 절개한 그가 말했다.
“포셉.”
칼을 반납하고 집게를 받았다.
“혈관부터 묶겠습니다.”
“혈관을요?”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중년 의사에게 덧붙였다.
“출혈이 일어나는 지점마다 모두 거즈로 패킹해 주세요. 출혈점을 막고 최대한 출혈을 줄입니다.”
“…알겠습니다.”
중년 의사는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보통 총상 환자의 경우 총알을 제거하고 손상된 조직 절제 후 나머지 치료를 하는 것이 매뉴얼이었다. 환자의 몸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이상 하나씩 순서대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한데 도수는 그 순서를 완전히 무시했다. 오히려 거꾸로 뒤집어서 절개 후 대뜸 환자의 혈관을 찾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혈관 중 정확히 어떤 혈관이 끊어졌는지, 손상을 입었는지, 장기나 피부에서 발생한 출혈은 아닌지 모든 원인이 뒤엉킨 상황에서도 그는 정확히 핵심을 찔렀다.
턱.
미끄러운 혈관을 마치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붙잡은 도수가 밖으로 꺼내서 봉합하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거지?’
중년 의사는 무조건적으로 믿고자 마음을 먹었으나 애가 탔다. 가슴 한 켠에 불안감도 싹트고 있었다. 환자 몸속에서 치명적인 출혈을 일으키고 있는 혈관만 찾아서 봉합한다는 건 상식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수에게는 그가 모르는 투시력이 있었고 항상 그 투시력으로 남들은 불가능한 수술을 성공시켰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컷.”
툭……!
순식간에 봉합을 마친 도수가 다시 혈관을 찾았다.
턱.
그러고는 들어 올렸다.
슥, 스윽.
봉합 후.
“컷.”
툭!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중년 의사의 의구심은 점점 더 깊어가고.
다른 의료진들도 시계 분침과 환자의 혈압을 확인하며 애간장을 태웠다.
한국에서 온 의사는 매뉴얼을 싹 다 무시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수술을 하고 있었다. 그 정확성도 알 수가 없다. 이 수술이 어떤 성과를 보여줄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시간은, 결국 환자의 목숨을 앗아갈 터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만큼의 출혈량이 발생할 테니까.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짓든 어떤 의문을 갖든 도수는 멈추지 않았다.
슥, 스윽.
“컷.”
툭!
순식간에 일곱 개의 혈관이 묶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서서히 떨어지던 혈압의 감소 속도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
“뭐죠? 피가 멎고 있는 것 같은데.”
“설마 출혈점만 골라서 잡은 거예요?”
여기저기서 의문이 터져 나오자.
도수는 중년 의사를 보았다.
“아직 완전히 잡히진 않았습니다. 피부, 장기에서 발생하는 출혈도 무시 못 해요.”
“그럼 방금까지 하시던 게… 끊어진 혈관들을 모두 찾아서 이었단 말씀이십니까?”
“예. 비교적 큰 혈관들은.”
토막 난 혈관은 모두 이어놓았다.
물론 중년 의사는 믿지 못했다.
“몇 개의 혈관이 몇 조각났는지 알고요? 어디부터 어디까지 대미지를 입었는지 그걸 어떻게……!”
“총알이 들어간 방향. 그리고 환자의 피부와 근육이 수축된 모양으로 짐작할 수 있어요.”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오랜 기간 동안 투시력을 쓰면서 많은 환자들을 관찰한 도수는 굳이 투시력을 쓰지 않아도 환자 몸의 반응만으로 대략적인 외상 부위와 체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반드시 투시력이 필요했다. 놓치는 부분이나 오류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수는 굳이 지금껏 숨겨왔던 투시력의 존재 여부를 말하지 않았고, 중년 의사에게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술 중 더 방해가 될 만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정도는 됐다.
“…일단 진행하시죠.”
안 그래도 도수는 수술을 속개하고 있었다. 잘려 나간 혈관들을 이어놔서 대량 출혈을 막았으니 다음은 피부 쪽이다. 다행히 장기 손상은 심한 편이 아니었기에 미뤄둘 수 있었다.
“거즈 떼어주세요.”
“피가 쏟아질 텐데요.”
“피를 멎게 하려는 겁니다.”
“거즈로 막아도 비집고 흐르는 출혈을 어떻게… 봉합을 하면 박힌 총알을 찾기 힘들어질 겁니다. 장기 손상도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하고요.”
당연히 도수도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지금 그가 봉합하려는 부위들은 총알이 관통한 곳들이었다. 장기를 헤집고 들어간 곳도 아니었다.
“저를 믿고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끝까지.”
도수는 어조에 힘을 주었다.
그의 두 눈을 빤히 응시한 중년 의사는 어떤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신은 그에게로 전염됐다. 너무나 강렬한 눈빛 덕분이다.
“…알겠습니다.”
“칼.”
도수는 그 즉시 손상된 조직을 절제하고 주문했다.
“봉합침, 봉합사 주세요. 신경 수술 할 때 쓰는 걸로.”
곧 봉합사와 봉합침이 넘어왔다. 수술방의 지휘관이었던 중년 의사가 칼자루를 도수에게 넘겼으니 의료진들도 토를 달지 않는 것이다.
도수는 당장 봉합이 가능한 피부부터 봉합했다. 투시력을 한껏 끌어 올리자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들만큼 자잘한 미세혈관들이 보였다. 그 혈관들을 기막히게 피해서 살을 붙이는 것이다.
스윽, 슥.
빠른 건 둘째 치고.
중년 의사는 이 미세한 차이를 감으로 눈치챘다.
‘뭐야? 왜 출혈이…….’
근무하는 지역이 무법 지대에 가깝다 보니 수많은 외상환자를 접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외상 수술 경험이 쌓였던 그였다. 따라서 봉합 시 발생하는 출혈이 현저히 적자 바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수는 묵묵히 피부를 꿰맸다.
슥. 스윽…….
그리고 머지않아.
그에 대한 반응이 초조하게 지켜보던 의료진의 입을 통해 나왔다.
“환자, 혈압 돌아오고 있습니다.”
“말도 안 돼…….”
“혈압 잡혔어요!”
그들 표정에 환희가 스쳤다.
도수는 피부 봉합까지 마치고 의료진에게 말했다.
“환자 돌려 눕혀주세요.”
탄력을 받은 의료진이 힘을 합쳐 환자를 돌려 눕혔다. 총알이 등에 박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수술대 위는 이미 핏물로 흥건했다.
“아… 여기서……!”
미처 발견 못 하고 있던 의료진이 말했고.
다른 이들도 눈을 크게 치떴다.
하긴, 이런 숨은 상처가 있으니 출혈이 그렇게 심했던 것이다.
신기한 것은 도수는 겉만 보고도 숨겨진 상처들을 속속들이 찾아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 몸속 깊이 자리잡은 손상된 혈관들까지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연결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데 더 이상 놀라울 것도 없었다. 아니, 수술이 길어지면서 놀랄 힘도 없었다.
그럼에도 도수는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체력은 바닥을 기고 있었지만, 미미하게 남은 그 체력마저도 박박 긁어서 투시력에 쏟아붓고 있었다. 더불어 완벽히 몰입한 데서 나오는 초인적인 힘을 손끝의 신경에 때려 박았다.
“다른 곳은 괜찮은데 십이지장을 휘저어놨습니다.”
“……!”
의료진이 누을 부릅떴고.
도수가 말했다.
“굵직한 혈관들은 살아 있어요.”
“후……!”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도수가 손을 뻗었다.
“충분히 쉬었으니 바로 들어가죠. 보비, 포셉.”
충분히?
30초도 안 지났다.
하나 수술에서 ‘충분하다’는 말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 지금 같은 상황에선 30초가 아니라 10초도 많이 쉰 셈이다.
턱.
보비와 포셉을 받은 도수가 연기를 내며 환자의 십이지장을 해체하고 들어갔다.
치이이이이익.
매캐한 냄새가 올라왔다.
다른 의료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중년 의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냄새였다. 장기가 타들어가는 냄새. 그런데 이상하게, 어떤 수술에서도 아랑곳 않았던 그 냄새가 새삼 역겹게 느껴졌다. 인턴도 아닌데 멀미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의료진들의 혈색도 창백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었나…….’
중년 의사는 시계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 벌써 20분이 넘게 지나고 있는 것이다. 수술 과정에 비해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그는 2분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몰입했다는 뜻이다. 과몰입은 신체에 부담을 초래했다. 그게 지금 느끼는 울렁증의 원인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훨씬 더 많은 집중력을 쏟아붓고 있는 도수는 멀쩡해 보였다.
물론.
겉보기에만.
‘젠장.’
1초, 2초… 초침이 흘러감과 함께 현기증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
무거운 바위가 뇌를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머리는 무겁고 몸은 더 무거웠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조금만 더…….’
도수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십이지장을 마치 물리학 박사가 유아용 큐브를 다루듯 손쉽게 다루고 있었다.
슥, 스윽.
눈을 감고도 수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도수를 가리키는 표현일 터였다.
중년 의사는 그 정도로 깊게 감탄하는 중이었다. 감탄을 넘어 경악하고 있었다. 일련의 모든 수술 과정들을 떠올리면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설계된 듯하다.
‘어떻게 이런…….’
환자와 외상에 대한 높은 이해도. 그리고 미래를 훤히 읽고 짠 듯한 수술 순서.
소문도 대단했지만 실제로 본 그는 대단함을 넘어 인간 이상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신이 있다면 이런 의술(醫術)을 펼칠 것이다.
신이 죽을 운명의 인간에게 기적을 실행하는 과정을 본다면 이런 장면을 목도할 수 있으리라.
“컷.”
툭!
마지막 실밥을 잘라낸 도수는 물에 빠진 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술대 모서리를 붙잡았다.
턱.
휘청이는 그를 향해.
중년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이 외쳤다.
“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