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타타타타타타타!
엘 파소 상공을 날아 이동하는 사이.
이근육이 주의할 점을 말해주었다.
“수술실 외 다른 곳에서의 단독 행동은 자제해 주십시오. 병원 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실은 의사나 간호사들밖에 출입하지 못해서 큰 상관이 없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의사나 간호사로 위장해서 수술실 안까지 잠입하는 킬러들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픽션.
마약상들이 도수를 노린다면 그건 병원 밖. 아무리 대담해도 수술실에 진입하기 전까지일 터였다.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움직이시기 전 제가 먼저 안전한지 확인을 하겠습니다. 차로 이동하는 경호원들이 도착하기 전까진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예.”
“…태연해 보이시는군요. 보이드 파스칼 요원의 말에 의하면 멕시코 카르텔이 닥터 리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저도 한국에서 좀 지냈다고 이런 상황이 익숙하진 않습니다.”
“…….”
“하지만 라크리마에선 더 했어요. 총탄이 빗발치는 곳에서 부상자를 치료했습니다. 총알에는 눈이 없죠. 반군 모두가 저를 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근육은 고개를 저었다.
“전 아직도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다니셨는지 믿기지가 않습니다.”
“전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사실이었다.
도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순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죽음을 염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김광석의 가족들과 완전히 한 가족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그는 전쟁터에서나 한국에서나 끊임없이 목숨 걸고 외줄 위를 걷고 있는 것이다.
그가 두려운 건 하나였다.
“하지만 환자를 잃는 건 두렵습니다.”
“…잃어보신 적 있습니까?”
“손도 못 댄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제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걸 봤어요. 그때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세요?”
“모르겠습니다.”
“내가 손댄 이상 절대 잃고 싶지 않다. 어떤 의사들은 이 일을 하면서 죽음에 익숙해진다고 하던데, 저는 아닙니다.”
“…….”
이근육은 도수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었다. 그는 의사가 아니고 죽어가는 환자의 목숨을 회생시킬 재주도 없었다. 거기서 오는 책임감은 모르지만, 한 가지는 공감할 수 있었다.
‘전우들.’
라크리마에서 겪었던 몇몇 전투에서 여러 명의 전우를 잃었다. 그러고 난 다음이면 새로 온 동료한테 정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 새로운 동료와 다시 전우애가 생겼을 때 또 다시 동료를 잃게 되면, 이전에 느꼈던 만큼 괴롭고 힘들었다. 의사든 군인이든 죽음을 보는 것에 익숙해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약상들도 반군만큼이나 잔인한 놈들입니다. 반군처럼 밥 먹듯 폭탄을 터뜨리고 건물에 포격을 쏟아붓진 못하지만, 놈들 방식대로 매일 같이 사람을 납치하고 죽입니다. 거침없죠.”
“조사하신 겁니까?”
도수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근육은 단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크리마에서 저는 제 임무를 실패했습니다. 다시 한번, 닥터 리를 잃을 뻔했죠.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놈들에 대해선 빠삭하게 파악했습니다. 저를 믿으시면 됩니다.”
“그러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헬리콥터가 후아레즈 병원 앞 헬기장에 내려앉았다.
이근육은 먼저 내려서 주위를 훑은 뒤 손짓했다. 주변에 주차된 차 안, 은폐나 엄폐가 가능한 기물 등 엘 파소 주차장에서 총질을 했던 이들과 같은 시카리오(카르텔 소속 암살자)들 혹은 저격수들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을 확인한 것이다.
이내 도수를 비롯한 구조대원들이 내려서 병원으로 내달렸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 앉아있는 환자들과 분주한 의료진이 보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응급실 소속 백인 의사 한 명이 다가와 묻자 도수가 대답했다.
“엘 파소에서 왔습니다. 이도수라고 합니다.”
“아……!”
백인 의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소문이 후아레즈까지 퍼진 걸까? 그의 시선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는 응급실 한쪽으로 안내했다. 가림막을 걷기 무섭게 가림막 밖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훅 밀려들었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역시 밖과는 천지 차이였다.
“패드 가져와! 빨리! 피는 왜 이렇게 안 와?”
“센터 갔어요!”
“아니, 지금 가서 언제……!”
난리도 아니었다.
상하체 통틀어 여섯 발의 총상을 입은 환자는 계속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도수는 의료진에게 상황을 묻기도 전에 투시력을 발휘했다.
샤아아아아아아아.
환자의 몸속에 박힌 총알들이 손이 잡힐 듯 들어왔다. 하지만 총알들을 잡아서 빼내려면 피부를 절개하고 들어가야 한다.
다음 도수가 살핀 것은 총알의 위치가 아닌 혈압이었다. 다른 이들은 기계를 통해 혈압을 확인하지만, 도수는 직접 눈으로 몸속에 흐르는 혈관을 관찰해 혈행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장…….”
도수가 입을 떼자 의료진들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들이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도수가 재차 말했다.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빨리 수술실 잡고 옮겨주세요.”
“아직 검사 결과도 안 나왔습니다. 출혈이 너무 심해서 검사하는 데만 삼십 분 넘게 잡아먹었어요. 한두 발도 아니고 육안으로 확인한 것만 여섯 발입니다. 지혈하면서 버텨야지 총알이 몇 개나 몸속에 남았는지, 어디가 망가졌는지 확인도 안 하고 들어가서는…….”
그렇게 말하던 멕시코계 중년 의사가 대뜸 물었다.
“근데 누구십니까?”
“엘 파소에서 왔습니다.”
“닥터 리?”
“맞습니다.”
중년 의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고민하더니 함께 있는 의료진에게 말했다.
“…옮겨.”
“예?”
“옮겨, 당장! 수술실로!”
“아, 알겠습니다!”
말을 더듬은 의료진들이 힘을 합쳐 환자를 데리고 나갔다.
뒤에 남은 중년 의사가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도수에게 말했다.
“직접 오실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안 했습니다.”
“…….”
평소 같으면 ‘저를 아세요?’라고 물었겠지만 도수의 의식은 오로지 환자에게 쏠려 있었다. 이미 투시력으로 환자의 상태를 세세하게 파악한 그는 어떻게 수술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것이다.
중년 의사 역시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빠르게 이어 물었다.
“수술이 가능하겠습니까?”
그가 섣불리 환자를 수술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못한 건 검사 결과가 안 나와서도 있지만, 검사 결과도 안 나온 상태에서 수술했을 때 반드시 환자를 잃을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도수가 아무리 유능한 써전이라도 신이 아니다. 누구보다 환자를 살리고 싶고, 그 외에도 직접적인 인연은 아니지만 병리학자와 간접적인 인연을 맺게 된 상황. 간절하지만, 간절함이 환자를 살려내진 못한다.
중년 의사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부담스러우시면 집도의 이름은 제 이름으로 올려두겠습니다.”
엄연히 주치의는 중년 의사였다. 도수가 아닌 것이다. 그저 도수의 도움을 받고 싶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자신 없는 환자를 맡긴다는 것은 환자를 잃었을 때 도의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책임을 전가시킨다는 뜻도 됐다. 여기서 그는 양심이 찔리는지 법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도수는 그딴 것들이 별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책임을 지든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은 환자다. 지금은 환자를 살리는 것만 생각하기에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건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수술실이 어디죠?”
“이쪽으로 오십시오.”
중년 의사는 직접 도수를 안내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그가 덧붙였다.
“저도 수술에 참여할 겁니다. 만약 수술이 잘못되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최선만 다해주십시오.”
열혈 의사다.
도수가 어기까지 온 이상, 그가 왜 왔는지 정도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텐데도 스스로 책임을 지겠단다.
“예.”
대답을 들은 후에도 중년 의사는 긴장감과 부담감이 큰 탓인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전 원래 다른 사람한테 제 환자를 맡기지 못합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우위를 가릴 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도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생각했다.
환자마다 상태가 다르고 회복력이 다르다.
의사들 또한 그날그날 컨디션이 다르고 감각도 다르다.
메스를 쥐는 각도 하나, 순간순간의 사고방식 하나. 그 유동적이고 자잘한 차이들이 수술의 결과를 결정짓는다.
하지만 이러한 써전의 능력 측면에서도 의사들이 절댓값으로 치는 부분이 있었다.
중년 의사가 그 부분을 입 밖으로 뱉었다.
“하지만 닥터 리는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전쟁터에서의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검사도 없이 어려운 수술을 척척 해낸다고 들었습니다. 감각도 다른 의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더군요.”
기사를 본 것이 아니다.
기사를 쓰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수술 결과만 알뿐 그 과정은 직접 보지 못했을 테니까. 아니, 본다고 해도 그가 말한 부분들은 전문가만이 느낄 수 있는 범주였다.
“…….”
도수가 말이 없자 그가 덧붙였다.
“입에 입을 타고 소문이 퍼졌습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불이 들어오고 있는 층 번호를 확인했다.
이내 3층에 불이 들어오자,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고 나가서 수술복을 입고 손을 소독했다.
그런 뒤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준비 마쳤습니다.”
아래서 환자를 보고 있던 의료진이 말했다.
“적혈구가 부족합니다. 가져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환자가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굳이 투시력을 써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중년 의사가 도수 대신 대답했다.
“이번 수술은 여기 계신 닥터 리가 집도하실 거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평소대로 하시면 됩니다.”
처음 손발을 맞추는 거다.
수술실 안에서 의료진들 사이의 호흡은 환자의 생명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하다.
하지만 도수는 그들의 호흡 속에 녹아들 자신이 있었다. 나아가 선두에서 수술을 이끌고 갈 자신이 있었다. 이미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던 라크리마에서 한국에 오고, 병원생활을 하고, 엘 파소에서 또 처음 보는 사람들과 손발을 맞춰본 뒤 느낀 점이다.
“서두르죠. 환자 얼마 못 버팁니다.”
도수는 환자의 우측에 섰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환자의 상태도 최악이라 시간을 충분히 줘도 성공하기 힘든 수술인데, 지금은 시간까지 없었다.
환자의 몸에서 피가 일정량 이상 빠지기 전에 최대한 출혈 없이 수술을 끝내야 한다.
끔찍한 부상과의 싸움.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이다.
도수는 이미 오늘 아침 있었던 대수술로 인해 잔뜩 피로감이 묻은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며 손을 뻗었다. 신이 있다면 빠르게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릴 능력을 주길. 환자의 생명력이 부디 같은 편에 서서 시너지를 일으켜 주길.
의지할 곳 하나 없이 형체도 없는 대상에게 바라며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