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41화 (141/152)

# 141

메스 날은 날카로웠다. 일회용이라 언제나 그 예기를 유지했다.

도수의 감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회용은 아니었지만 항상 예기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날카로운 칼날을 날카로운 감각으로 내리그었다.

스으으으윽.

피부가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흐트러짐 없는 칼질이었다.

도수의 주위는 전에 없던 기류로 가득 찼다. 다른 의료진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떻게 매번…….’

강미소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도수의 수술에 여러 번 참여한 상황. 그럼에도 매번 느낌이 달랐다. 언제나 처음 수술방에 들어오는 기분이다. 환자 목숨이 하나뿐이듯 도수의 수술 역시 매번 한 번뿐인 수술이었다.

“톱.”

피부를 열었으니 이제 뼈를 연다.

이로서 가슴을 완전히 열어젖혔다.

그 속에선 한껏 비대해진 심장이 뛰고 있었다.

개흉기로 열어젖힌 가슴을 고정한 도수는 심장을 노려봤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투시력을 쓰는 내내 생각했다. 하지만 심장은 생각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대상이었고, 조금만 엇나가도 목숨이 날아갈 만큼 예민한 존재였다.

따라서 도수는 투시력을 늘려 썼다.

샤아아아아아아아.

체력이 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전까지 바가지로 퍼서 버리는 정도였다면 이젠 아예 대야째로 쏟는 느낌이었다.

“후…….”

나지막이 숨을 내쉰 도수는.

손을 뻗으며 말했다.

“보비.”

턱.

본격적인 절제에 들어갈 차례였다. 잔뜩 부어오른 조직을 자르고 심장을 원래 크기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심장이 활력을 잃지 않도록 혈관을 재구성하고 근육을 붙여야 한다.

그때, 강미소가 물었다.

“심정지액은 언제 투입하실 건지…….”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갑니다.”

“예?”

뛰고 있는 심장을 수술한다는 뜻.

강미소는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혈관이라도 건드리면 어떡하시려고요?”

이건 심각한 문제다. 만약 심장이 뛰는 상태로 수술하다 실수해서 환자가 죽어나갈 시, 이는 의료 사고를 넘어 살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수는 심정지액을 투여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심기능이 한참 떨어진 상태예요.”

“…….”

“심장이 한번 멎으면,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

강미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이 됐다. 언제 한번 도수가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고 계속 생각해 왔다. 도수는 언제나 대담하고 무모했다. 아직까진 대담한 쪽으로 치우쳤지만, 어느 한순간 무모한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지금일 수도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는 너무 많은 수술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운이 다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난 상태였다.

그러나 도수는 이전까지 그랬듯 이번에도 오직 환자의 생존을 위한 선택을 했다.

“해보죠.”

도수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채 말했다.

“절제 시작합니다.”

그걸 시작으로.

도수가 들고 있는 보비가 심장을 헤집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이익.

연기가 오르며 매캐한 냄새가 수술실 내에 진동했다.

‘제발.’

강미소는 기도했다.

다른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아사다 류타로만이 말없이 도수의 솜씨를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그는 조금도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도수의 손놀림을 조금이라도 안 놓치겠다는 듯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심장이 움직이는 폭을 정확히 내다보고 있다.’

아사다 류타로는 지금 상황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런 게 가능한가 싶었다. 그의 상식은 끊임없이 불가능을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도저히 도수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백 보 양보해서 이전까지 도수의 실력을 감안했을 때 정말 보기 드문 감각을 가진 써전이라고 하자.

그렇다 해도 심장이란 건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활동성을 가지고 있다.

심박 수도, 움직이는 폭도 다르다.

쉽게 말해 계산하거나 감각으로 좇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란 의미다.

한데 도수는 마치 창조주처럼 심장을 주무르고 있었다. 변수 그 자체인 심장을 정확하고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듯한 눈길로 노려보며 보비를 놀리고 있었다.

치이이익.

잔뜩 부어서 터질 듯한 근육을 떼어낸다.

그러면서도 복잡하게 뒤엉킨 혈관은 스치지도 않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사다 류타로는 마치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한 영역에 한발 들어서서 새로운 세상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꿈속에 있는 것 같았다.

‘깨지 않길.’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인간을 벗어난 신의 경지를 엿보고 싶었다. 그는 이 자리 이 순간 심장수술의 권위자가 아닌 참관인으로 돌아가 있었다. 의대 시절 교수님들의 수술을 보며 열심히 뇌에 새기던 마음으로 회귀해 있었다.

“석션.”

도수의 말에 아사다 류타로는 경건한 자세로 조금씩 번지는 핏물을 빨아들였다. 도수가 행하는 절제 범위에 비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출혈량이 적었다. 이 모든 장면이, 순간순간이 기적이었다.

절제와 동시에 도수가 말했다.

“이식할 근육 준비해 주세요.”

이미 여러 차례 손발을 맞춘 경험이 있는 아사다 류타로다. 그는 아쉬움을 삼키며 즉시 자리를 옮겨 환자의 신체에서 심장 근육을 대체할 근육을 떼어냈다.

그사이 도수는 수술을 계속했다.

샤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은 더 정교해졌다.

혈관들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다.

스스스스스스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심장의 진동폭이 눈에 잡혔다.

두근, 두근, 두근…….

도수는 덜컥 두려움이 치밀었다.

‘이게 무슨…….’

한참 수술하면서 집중하느라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마치 뇌 활동이 인간의 경계를 벗어난 것 같았다. 과부하가 걸릴 것 같았다. 그 자신이 의사이기에 인간의 신체가 가진 한계를 알고 있었다. 한계를 넘으면 반드시 과부하가 걸리게 마련이다. 지금 딱 그 상태로 느껴졌다.

‘그래도.’

도수는 환자의 심장을 쳐다봤다.

‘살릴 수만 있다면.’

지금 그의 눈앞에는 한 명의 환자가 있었다. 이 환자를 회복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을 것이다. 그 이후는 생각지 않았다. 매번 그런 각오로 살아왔고, 환자를 치료해 왔다. 그랬기 때문에 실낱같은 희망의 끄트머리라도 잡고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품었던 ‘겁’이 서서히 물러가며 굳건한 의지가 가슴을 채웠다. 심장은 단단해졌지만 오히려 어깨 근육은 이완되며 힘이 빠졌다.

“칼.”

도수는 보비를 내려놓고 메스를 요구했다. 지금 이 감각이라면, 심장을 다시 만들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딱 그 절반.

심장을 재구성하는 정도면 된다.

“여기.”

강미소가 메스를 건네주었다.

도수는 한참을 잡지 않고 환자의 심장을 주시했다. 머릿속에 앞으로 진행해야 할 수술의 설계도가 그려졌다. 그 설계도의 밑바탕은 투시력으로 보고 있는 환자의 심장 자체였다.

“센터장님?”

스윽.

메스를 받아 든 도수는 칼날을 심장으로 가져갔다.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건드려야 할 혈관들이 있었다. 피해야 할 혈관도 명확했다. 그는 출혈이 발생할 시 막대한 위험이 몰아칠 것을 알았지만, 그 위협을 물리치고 머리에 구상한 설계도 대로 칼날을 움직였다.

스으윽!

푸슉!

피가 튀었다.

“센터장님!”

“지금 뭐 하시는……!”

다들 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그러나 도수는 처음과 같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빠르게 말했다.

“거즈.”

“아……!”

“거즈!”

“예!”

거즈를 쑤셔 넣어 피를 제거하며 메스를 움직였다. 속도가 붙었다. 그 순간에도 정교함만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스으윽. 스윽.

손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나왔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타이 할게요. 빨리.”

봉합침과 봉합사를 받아 들고 손끝으로 타이를 시작했다. 동시에 출혈이 생긴 부분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르며 지혈했다.

“와…….”

의료진 중 누군가 탄성을 뱉었다. 경악은 놀람으로, 놀람이 다시 감탄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강미소는 고개를 돌려 바이탈을 확인했다.

묘하게 바이탈이 안정을 찾고 있었다.

아니, 안정을 찾는다고 하기에는 혈압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마지노선이었다.

‘말도 안 돼.’

급격히 하락하지 않는다.

모두 도수가 거즈패킹과 손바닥으로 출혈점을 누르며 봉합을 하기 때문이다.

본 적 없는 신기였다.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테크닉이었다.

하지만 혈압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바이탈을 잡아두는 것도 분명 어느 시점까지다. 도수는 일반적인 써전이라면 엄두도 못 낼 짧은 시간 안에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완성시켜야 한다.

그래도.

‘센터장님이라면……!’

강미소는 그런 기대가 생겼다.

분명 이론적으론 심장이 뛰는 와중에 출혈이 발생한 부분을 싹 다 꿰매고 혈관을 다시 재구성해 잇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이미 도수는 이론을 한참 뛰어넘은 상식 위에서 놀고 있었다.

도수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이상한 믿음이 샘솟았다.

다른 의료진들 역시 이러한 도수의 모습에 물들었는지 그녀와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도수가 수술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 하나 막거나 버벅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도수는 그들이 탄 배의 함장이 되어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며 이 수술을 이끌고 있었다.

슥, 스윽.

결찰절제를 했던 이름 모를 혈관들이 서로 이어지며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존에 뛰고 있던 심장과는 다른 구조로 심장이 재구성됐다. 더 황당한 것은 혈관이 터져 나가거나 당장 멈춰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심장의 출력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 근육을 붙이니 심장이 힘차게 뛰었다.

이런 거다.

기존에 컴퓨터 회로의 1번 선과 1번 선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치자. 2번은 2번, 3번은 3번. 이런 식으로 연결됐다고 치자. 그 1번 선과 정확한 정체도 모르는 168번쯤 되는 선을 연결하고, 2번 선과 142번쯤 되는 선과 연결하는 것이다.

그럼 대개 에러가 나야 한다.

아예 작동이 안 되거나 아주 맛이 가야 정상이다.

한데 도수는 마치 컴퓨터를 훤히 꿰고 있는 장인들이 기가 막히게 회로를 재구성해 기능을 되살리듯 환자를 고치고 있었다.

인간의 몸은 컴퓨터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많은 변수를 내포하고 있다.

마치 현대과학에서도 모두 밝혀내지 못한 우주와 같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수는 수만 권의 의학 서적에서도 나오지 않는 혈관들과 근육들을 재구성해 환자의 심장을 살려내고 있었다.

“이런…….”

아사다 류타로는 눈이 빠질 정도로 놀랐다. 충격을 받은지 얼마나 됐다고 더 큰 충격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충격은 수술방 안을 가득 지배하고 있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

도수는 그 가운데 새로운 영역으로 한발 진입했다. 이전까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가끔씩 엿보기만 하던 영역이었다. 이 영역에 들어서자 그전까지 느끼고 생각하고 보았던 모든 것들이 한 줌 먼지처럼 사라졌다.

환자와 도수.

지금 그에게 환자의 인체는 풀지 못하던 방정식을 풀어낸 것처럼 가슴을 활짝 펼친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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