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40화 (140/152)

# 140

도수는 매일같이 찾아오는 환자들을 상대했다.

때로는 진료를 보고 때로는 수술에 들어갔다.

그중에는 심장성형술 대상자들도 있었다.

심장성형술.

쉬운 수술이 아니었다.

첫발은 성공적으로 뗐지만 매 차례 고도의 긴장감을 요했다.

도수는 가진 모든 기술과 지식을 걸고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슬아슬한 성공을 거두었다.

도수나 수술팀 입장에서야 매번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환자들처럼 외줄을 타는 심정이었으나, 다른 이들 시선에선 마치 도수의 신의(神醫)처럼 보였다.

심장 수술 가운데에서도 심정지 상태에서 하는 수술은 첫 손가락에 꼽히는 어려운 수술이었고, 그중에도 심장성형술은 완벽히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초고난도 수술이었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수술을, 도수는 번번이 성공으로 이끌었다. 말하자면 출항 때마다 신대륙을 찾아내는 콜럼버스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건 도수를 완벽히 신뢰하지 못하고 은근한 불신을 가지고 있던 정영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봤습니까?”

그의 질문을 받은 것은 엘 파소 병원에서 흉부외과를 전공하고 있는 딘 로만이었다.

“믿을 수 없소. 역사상 이런 흉부외과의가 존재했는지도 모르겠군.”

어느 정도 정영구도 동감하는 바였다.

“신경외과 수술도 수준급입니다.”

“수준급?”

딘 로만은 고개를 저었다.

“평가가 박하군. 그의 솜씨가 닥터 정 못지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오.”

“…….”

정영구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역시 환자를 잃는 순간에 도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잠시 말이 없자 딘 로만이 덧붙였다.

“인정해야 합니다.”

“…예.”

“그가 뭘 하든 난 그를 도울 생각이오.”

정영구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도수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가 온 뒤로 엘 파소 병원의 주역들이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환자 치료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인턴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도수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기까지 했다.

문득, 아버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자리가 사람을 바꾼다고 했지? 그 녀석은, 자신이 있는 자리를 자신이 있을 자리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천하대병원에서 적응하는 것보다 엘 파소에서 적응하는 게 힘들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인종차별이나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간의 신경전 때문이 아니다.

이곳에서 천하대병원 인력은 언제고 떠날 ‘손님’이기 때문이다.

엘 파소의 터줏대감들은 결코 손님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이는 정영구 또한 부임 후 몇 년 간 계속 느껴왔던 것.

도수는 그 모든 선입견을 실력 하나로 돌파하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단시간에, 성공적으로.

정영구는 묘한 질투심과 대리만족이 버무려진 감정 상태로 물었다.

“…어떻게 도우실 생각이십니까?”

“그가 다니엘 해로우를 찾고 있다더군.”

“병리학자요?”

“그렇소. 그의 부탁을 받은 타임즈의 매디 보웬 기자가 내게 물어왔소.”

“그는 병원을 떠났지 않습니까?”

“나와는 계속 연락을 하고 있소.”

“아……!”

정영구가 눈을 치떴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제법 친밀한 관계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평소 남 일에 개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딘 로만이 기꺼이 이 일에 발 벗고 나서줄 줄은 몰랐다.

“제가 알기로 다니엘은 자신의 소재를 비밀로 하고 싶어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소. 그가 이곳을 떠난 건 두려워서니까.”

“두려웠다고요?”

딘 로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깊게 알진 못하지만… 그는 일개 병리학자로서 연루되어선 안 될 일에 연루되었소.”

“혹시… B&W와 관련된 일입니까?”

“아마도.”

“…….”

“…….”

두 사람은 말을 잃었다.

그들이 B&W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참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마 다른 병원의 몇몇 의사들이나, 그들보다 더 윗물에 있는 인물들은 B&W의 행보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섣불리 나서지 못한 이유는 B&W가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이기 때문. 그리고 자신들마저도 B&W의 약품을 오랫동안 써왔기 때문이다.

만약 B&W가 무너진다면?

이는 제약회사 한 곳의 문제가 아닌, 해당 제약회사의 약품을 쓰는 세계 각지의 병원들까지 싸잡아 의혹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문제였다.

고인 물은 흐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리 잡은 지위와 권력을 보존하고 싶은 의사들 역시 현재 의사 사회가 이룬 균형에 균열을 초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점을 상기한 정영구가 물었다.

“단순히… 닥터 리의 실력 때문입니까?”

“뭐가 말이오?”

“그를 돕는 게요.”

딘 로만이 피식 웃었다.

“순진한 소리를 하는군. 이미 그는 이 문제에 우리가 보는 것보다 깊게 파고들었소. 세상의 모든 것에는 생명력이란 게 있지. B&W의 생명력도 여기까지인 건지… 닥터 리에게 뒤를 내주었소. 이미 깨져 나가고 있는 제약회사보단 앞으로 떠오를 태양에 편승하고 싶은 것뿐이오.”

그는 정영구의 어깨를 두드렸다.

“닥터 정은 닥터 리와 친인척 지간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잘 생각해 보길 바라오. 그는 더 이상 일개 의사가 아니니까.”

정영구는 딘 로만의 말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에도 상원의원의 자제가 그의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군부에 강력한 힘을 가진 할리 무어 장군과도 밀접한 관계라고.

그 모든 관계가 본인의 생명이나 가족의 생명을 매개로 이어진 관계다. 즉, 쉽게 깨질 인맥이 아니란 의미였다.

‘단순히 우리 병원에 연수를 온 놈인 줄 알았더니… 태풍을 몰고 다니는 녀석이로군.’

정영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그 시각.

정작 태풍의 눈이 된 도수는 막 수술을 마치고 마지막 대기 순서로 기다리고 있는 수잔 제임스에게 찾아갔다.

휴가를 냈는지, 벤 제임스도 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차례가 온 거요?”

벤 제임스는 속이 바싹 타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수는 그의 간절함을 채워줄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아!”

벤 제임스가 수잔의 앙상한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불안하던 참이오. 입원한 후 기다렸다는 듯 증세가 나타나면서 병세가 악화되고 있으니.”

도수는 그 사이 투시력을 발휘한 상황이었다.

샤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이 강해지며 수잔 제임스의 심장이 반투명으로 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져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심장이 비대해지면서 저절로 혈관에도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대해진 심장이 있기에 그녀의 가슴 속은 비좁기 그지없었다.

여기서 가장 좋은 방법은 심장이식이었다.

본격적으로 심장이 붓고 증세가 나타났으니 이식 대상자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이식에 적합한 심장을 기다리려면 한참이 걸린다. 벤 제임스가 상원의원으로서 힘을 쓰면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한다 해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결국 그녀를 치료할 방법은 도수의 심장성형술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내 예상보다 훨씬 상황이 안 좋다.’

도수의 표정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방금 전까지 수술을 했고, 급한 순서대로 수술한 것이 맞다. 그 덕분에 몇 사람의 환자가 더 살았다.

그러나 벤 제임스나 수잔 제임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 때문에 살아난 사람이 몇 명이냐가 아니라, 본인들이 앞으로 행복한 삶을 도모할 수 있느냐다.

도수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어제와 오늘 병의 진행도가 달랐다. 수술 들어가기 전과 수술을 마치고 나온 후의 심장 모습이나 활력이 다르다.

매 순간 사진을 찍어서 확인할 수 없는 의사들은 미처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도수는 투시력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빨리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이제 와서 왜 갑자기?”

“믿기 힘드실 수도 있겠지만.”

도수가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과 지금 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장이 단시간에 비정상적으로 부어올랐습니다.”

확장성 심근병증은 이런 일이 가능해서 무서운 병이다.

벤 제임스의 표정이 달라졌다.

“…나와의 약속은 잊지 않았길 바랍니다.”

“예.”

대답한 도수가 수잔에게 다가가 말했다.

“바로 수술 들어가실 겁니다.”

“선생님.”

“예.”

수잔은 그를 빤히 응시하다 물었다.

“제가 살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요?”

“…….”

도수가 대답할 말을 찾고 있자 그녀가 덧붙였다.

“곤란하시면 질문을 바꿀게요. 그동안 몇 명이 수술을 받았죠?”

“…열다섯 명입니다.”

“성공률은요?”

“완쾌할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전부 다요?”

“예.”

수잔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이내 고개를 주억거린 그녀가 말했다.

“다행이에요. 지금까지처럼… 선생님의 판단이 이번에도 옳았길 바라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수는 이 순간 ‘실패한 이후’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눈앞의 존재는 이 나라 상원위원의 딸.

지금까지 벤 제임스의 태도를 고려해 볼 때 혹시라도 수술이 실패하면 결코 도수는 명예롭게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터였다.

어쩌면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고 의사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한국에까지 영향력이 미칠지도 몰랐다.

그렇다 해도 모든 걸 각오했다.

모든 것을 각오하고 수술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

어쩌면 미국에 온 목적과 자신이 일구고 싶은 미래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이런 모든 고민을 버렸다.

오로지 눈앞의 환자에게 집중하는 것.

그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남들은 본인 욕심에 취해 빙빙 돌아가는 가시밭길을 도수는 오직 환자만을 응시하며 눈 돌리지 않고 이 자리까지 직진했다.

그 선택이 있었기에 지금도 어떤 외부의 압력 없이 환자를 볼 수 있으므로, 그 선택에 대한 후회는 추호도 없었다.

“그럼.”

가볍게 목례한 도수는 뒤돌아서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아사다 류타로, 강미소와 함께 직접 수술 준비에 참여했다.

수잔 제임스와 도수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귀한 시간이 흐르고.

한 시간 후 도수는 수술방에 있었다.

마취된 수잔 제임스를 내려다보며.

도수가 손을 뻗었다.

“칼.”

“…….”

강미소가 메스를 건넸다. 그녀도, 아사다 류타로도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수술하게 될 환자의 신분과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환자든 똑같이 보라.

모든 의사가 배우는 것이지만 실상 적용시키기는 힘든 주문이었다.

그래서 더 도수가 대단해 보이는 건지도 몰랐다.

도수만큼은 모든 상황과 살 떨리는 긴장감 속에서도 자유로워 보였으니까.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며 냉정한 눈길과 뜨거운 가슴으로 수술하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도수도 긴장을 한다.

샤아아아아아아.

특히 이렇게.

심장이 부어서 터져 나갈 것 같은 상황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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