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닥터!”
“어레스트입니다!”
젠장.
그 새를 못 참고 어레스트가 났다.
만약 도수가 어설픈 써전이었다면 놀라서 잡고 있던 총알을 놓치거나 뇌를 후벼 파는 실수를 범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침착했다.
“대기.”
짧게 뱉은 도수가 그대로 총알 제거를 진행했다.
의료진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바이탈그래프와 환자를 번갈아 보았다.
심정지시, 환자를 되살릴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사 분 이내.
지금 흐르고 있는 1초, 1초가 골든아워였다.
그리고.
삼십 초가 넘어갈 때쯤 돼서야 총알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텅!
쟁반에 총알을 던져놓은 도수가 즉시 외쳤다.
“AED(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 제세동기)!”
드르륵!
“환자 목 고정시켜요!”
이근육이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며 힘으로 환자가 머리를 꼼짝 못 하도록 억압했다.
그사이.
턱!
제세동기를 받은 도수는 망설이지 않고 외쳤다.
“백 쥴 차지! 셧!”
쾅!
몸을 들썩인 환자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바이탈 역시 ‘삐-’ 소리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이백 쥴! 셧!”
쾅!
그러자.
환자의 바이탈이 살아났다.
삑. 삑. 삑. 삑.
“하……!”
“돌아왔습니다!”
“환자 살았어요!”
도수는 제세동기를 내려놓고 환자의 머릿속을 확인했다. 다행히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모든 건 환자가 깨어나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수술을 최소한의 대미지만 준 채 끝냈다.
“이제 회복하는 건 환자의 몫입니다. 타이 하죠.”
도수는 머리를 열던 과정과 반대로 총알이 뚫고 들어간 터널을 봉합했다.
스윽, 슥.
순차적으로 하나하나 봉합을 해나가는 손길이 정교하기 그지없었다.
이렇듯 머리를 다루는 일은 다른 부위보다 훨씬 더 세심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투시력을 쓰는 동시에 대뇌 속에 박힌 총알을 정확히 제거해 낸 그였다. 지금처럼 투시력을 쓰지 않은 상태로 봉합하는 일쯤은 어렵지 않았다.
스슥.
봉합을 마친 도수가 고개를 들었다.
“수고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의료진의 눈빛은 수술 전과 또 달라져 있었다. 볼 때마다 놀라운 실력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홀로 집도하며 간호사들과 손발을 맞추는 것은 여러 명의 의사가 참여한 수술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패널티는 도수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환자 옮겨주세요.”
그 말을 남긴 도수는 쉴 틈 없이 수술실 문을 열고 나갔다. 지금 수술을 하고 있는 강미소, 아사다 류타로, 정영훈. 그리고 먼저 수술에 들어간 정영구의 수술 결과가 신경이 쓰였다.
수술실을 나서기 무섭게 가장 먼저 맞닥트린 건 DEA요원들이었다.
“닥터!”
“어떻게 됐습니까?”
도수는 눈으로 책임자를 찾았지만 보이드 파스칼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바로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터 리.”
보이드 파스칼이었다.
다행히 총을 맞은 DEA요원은 그가 아닌 모양이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예후는 지켜봐야겠지만요.”
고개를 끄덕인 보이드 파스칼이 말했다.
“그놈이라도 꼭 살려야 합니다. 죽으면 안 돼요. 그놈이 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일로… 우리 요원 한 명이 순직했습니다.”
도수는 심장이 철렁했다.
마약상 주제에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까지 건드리다니.
그야말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를 떠나지 않고 수술 결과를 말해주고 있던 정영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자신만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암담한 얼굴로 말했다.
“네 환자라도 살아서 다행이다.”
“…….”
“네가 들어갔다면… 이쪽도 살았을지 모르는데.”
원래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수술 과정에서 마음에 걸리는 상황이 있었던 듯했다. 그러나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닥터가 못 살렸다면 누가 들어갔다 해도 힘들었을 겁니다.”
진심이었다.
함께 수술해 본 결과 정영구는 이미 정점에 가까운 실력을 가진 써전이었다. 그건 메스 잡는 각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더욱이 방금 전과 같은 신경외과 수술은 그의 전공. 그런 그가 살려내지 못했다면 도수라고 해서 큰 차이를 만들진 못했을 터였다.
그저 환자 운이 좋았을 뿐이다.
대부분 수술 도중 사망하는 뇌출혈 환자는 출혈이 너무 심하기 때문. 그나마 도수의 환자가 출혈이 덜해서 산 것이다.
결코 써전의 실력 차가 결과를 만들진 않았지만, 정영구는 도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맙다.”
쓸쓸하게 몸을 돌려 멀어지는 그.
그에게서 눈을 뗀 도수가 ‘수술 중’이라고 써 있는 전광판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후.
‘수술 중’이란 문구가 ‘회복실 이동 중’이라는 문구로 바뀌며 드르륵, 수술실 문이 열렸다.
환자가 살았다는 뜻.
“후.”
문밖으로 나선 세 사람은 상반된 표정이었다. 강미소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한 표정이었고, 아사다 류타로는 침착했으며, 정영훈은 전에 없이 진지했다.
그중 정영훈이 입을 열었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언제 진지했냐는 듯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환하게 웃는 그.
그를 돌아본 강미소가 말했다.
“왜 이런 실력을 가지고…….”
“쉿.”
정영훈이 빙긋 웃었다.
“비밀이다. 우리 아버지가 싫어하시거든.”
“뭘를요? 수술하는 걸……?”
“아니. 내가 성형외과로 간 걸.”
“…….”
도수는 의외였다.
집도의는 분명 강미소였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정영훈 선생님과 아사다 선생님이 거의 다 하셨어요.”
그녀는 어울리지 않게도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마 그녀가 어리숙하게 대처했을 테고, 정영훈과 아사다 류타로가 본격적인 수술을 주도한 것 같았다.
‘정영훈 선생의 실력은… 의외다.’
그를 바라보는 도수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그저 말 많고 장난기 넘치고 써전으로서의 욕심은 그다지 없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두 차례의 희소식을 들은 DEA요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보이드 파스칼이 말했다.
“…정말 엘 파소에 이렇게 유능한 분들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이 병원이 아니었더라면… 모두 사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순식간에 여러 명의 중상 환자가 터졌을 경우 제때 조취하지 못하고 골든아워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
도수가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텍사스 관할인 엘 파소에서 맥시코 카르텔들이 버젓이 총을 쏠 수 있는건지…….”
“닥터가 항문의 마약을 찾아낸 그놈… 방금 수술하신 그놈은 우리가 오랫동안 쫓고 있었던 카르텔의 중책을 맡고 있는 놈입니다. 이름은 후안 카르도나. 악랄한 놈이죠.”
“입막음을 하려고 제거한 거군요.”
“그렇습니다.”
라크리마에서도 비일비재했던 일이다.
더 관심을 두지 않은 도수가 말했다.
“아마 당분간은 정상적인 소통이 힘들 겁니다. 그보다 더 상태가 안 좋을 수도 있고요.”
“그렇군요…….”
“반대로 좋을 수도 있으니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아직은 한 가지 가능성일 뿐이지만 정상 생활이 가능할지도, 저들 카르텔끼리 떠들었다는 ‘제약회사’에 대해서도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보이드 파스칼이 말했다.
“그리고… 이런 사건에 연루되게 해서 죄송합니다.”
“연루요?”
도수는 의사였다.
죽어가는 환자가 있었고, 살렸을 뿐이다.
그런데 연루라니?
“전 의사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놈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입막음을 위해 DEA까지 건드렸어요. 다시 말해 미국을 건드린 겁니다.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뭔가가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닥터께서 놈들이 죽이려 했던 자를 살려냈습니다. 워낙 집요하고 잔인한 놈들이고, 그런 행위들로 조성한 공포를 적절히 이용하는 놈들이라… 이 일은 비밀로 하겠지만 조심하시는 게 좋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요원을 붙여 드리죠.”
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를 노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보이드 파스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마도요. 현 상황이 보도된다면 더 위험이 커질 테니 당분간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도수는 굳이 자신의 공로를 방방곡곡 떠벌릴 생각이 없었기에 냉큼 수긍했다.
마약상들과 가까워지는 건 사양이었다.
보이드 파스칼이 못내 걱정되는지 물었다.
“워낙 정보력이 뛰어난 놈들입니다. 밀수에 마약까지 불법적인 거래를 하려면 어쩔 수 없죠. 혹 돌아가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심장성형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환자들 치료도 시급하지만, 그 일을 해내야 B&W의 심장성형제에 대한 단서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보이드 파스칼 역시 더는 채근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증인보호프로그램에 넣어드리겠습니다.”
“예.”
대화는 거기서 일단락 됐다.
다소 찜찜한 기분을 안고 인사를 나눈 도수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귀퉁이를 돌자 엿듣고 있던 매디 보웬이 보였다.
“다 들었어요?”
“물론. 정말 여기 남을 생각이야?”
“일단은요.”
“…….”
매디 보웬은 고개를 절레 젓고 말했다.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오래 안 걸릴 거예요. 그보다, 한 사람만 찾아주십시오.”
도수의 말을 들은 매디 보웬이 눈을 치떴다.
“누구?”
“얼마 전까지 여기서 근무했던 병리학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다니엘 해로우.”
그대로 받아 적은 매디 보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볼게.”
“정보료는…….”
“이 일이 끝나면 자연스레 받게 될 거야. 우린 파트너잖아?”
눈을 찡긋하는 매디 보웬.
도수는 피식 웃었다. 그가 아는 사람 중 그녀보다 정보가 빠른 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세계 곳곳의 정보들을 간파하고 있다. 마치 발 없는 전령이 그녀에게 각지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 같을 정도다.
“그럼 부탁드리죠. 최대한 빨리.”
“오케이.”
수첩을 덮은 매디 보웬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맥시코 후아레스에 위치한 대저택.
수영장 앞에 앉은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DEA요원이 죽어?”
“예.”
“후안 카르도나는?”
“살아 있다고 합니다.”
남자는 탁자를 쾅 소리나게 때렸다. 쟁반이 엎어지며 과일들이 수영장으로 떨어졌다.
“이런 빌어먹을! 대가리에 총알이 박힌 놈이 어떻게 살아 있어?”
“그게…….”
“미국놈들한테 얘기해. 어떻게든 막아달라고. DEA 놈들이 미쳐 날뛰어서 내가 잡혀 들어가면 B&W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빌어먹을.”
남자는 계속 욕지거리를 씹어뱉었다. 이번에 DEA를 건드린 것은 원래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B&W와의 거래에 대해 알고 있는 후안 카르도나가 잡히는 바람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까지 가서 머리에 총알을 박았는데, 죽어가던 놈이 기적처럼 살아난 것이다.
“누구지?”
“예?”
“우리 일을 망친 놈.”
“아… 이도수라는 놈입니다.”
“이도수?”
“예.”
“미국 놈인가?”
“아닙니다.”
대답한 부하가 재차 입을 열었다.
“…보스. 설마 그놈을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놈이 우리 물건을 찾아냈다면서?”
“예.”
“후안 카르도나도 살렸고. 운반책도 살렸고.”
“…예.”
“매디 보웬, 그년도 만났다며.”
“그렇습니다.”
남자는 수영장에 둥둥 떠다니는 과일을 빤히 응시하다 말했다.
“매디 보웬 그년은 못 건드려도 그 의사 놈은 처리해야 돼. 그래야 똑같은 짓을 하는 놈들이 안 생긴다.”
“하지만 지금 시기가…….”
“매일 하던 일이잖아?”
“…….”
“엘 파소에 있는 의사 놈 하나 납치해 오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아닙니다.”
“잘 들어.”
남자는 부하를 또렷하게 쏘아보며 말했다.
“B&W와 우리의 관계가 드러나는 순간 둘 다 죽는다. 그 의사 놈은 분명 뭔가를 알고 있어. 미국놈한테 우리 일을 방해한다고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다. 그런 놈이라 우리 일을 캐고 있는 기자 년과 접촉하는 거야. 우리 소행인지 모르게 진행해.”
“알겠습니다.”
수하가 고개를 숙이자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저택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번엔 확실히 처리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