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도수와 매디 보웬은 엘 파소 병원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잘못 됐어.’
총성이라니.
도심 한가운데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라크리마에선 매일같이 들어왔던 총성이지만 이곳에서 듣는 총성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타타타탓!
길을 건너 병원 정문을 지날 때쯤.
전화 벨이 울려 퍼졌다.
따르르르르르르.
“헉, 허억…….”
도수가 숨을 고르며 전화를 받자.
수화기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터, 총상 환자예요! 병원 주차장에서…….
“지금 갑니다.”
말을 자른 도수는 전화를 끊었다.
숨이 차서 전화를 오래 이어갈 상태가 아니었다.
저 뒤에 한참 거리가 벌어진 매디 보웬이 보였다.
도수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매디 보웬은 도수의 등을 보며 헉헉대고 있었다.
‘뭐 저리 빨라?’
당연한 일이다.
도수는 지난 시간 동안 투시력을 오래 유지해 오기 위해 틈 날 때마다 체력 단련을 해왔으니까.
일반인인 매디 보웬이 따라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야?’
아무리 엘 파소가 매일 총격전이 끊이지 않는 멕시코 국경과 인접한 동네라 해도 이곳은 국경에서 한참 떨어진 병원이다.
쉽게 총성을 들을 수 있는 지역이 아닌 것이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자 분주한 의료진들이 보였다.
“두부 총상이에요.”
간호사가 다급하게 말하자.
도수가 환자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며 물었다.
“상태는?”
“심각해요. 두 명이 머리에 총상을 입었고 한 명은 복부 총상이에요. 셋 다 출혈이 심해요. 이리로!”
도수는 사람들을 헤집으며 움직였다. 총격을 당한 환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의료진이 지혈하고 있는 게 보였다.
“혈압 떨어집니다!”
“검사할 시간 없어요!”
“지금 두부 총상 수술 가능한 외과의는?”
“…모두 퇴근하고 닥터 정은 수술 들어가셨습니다!”
도수는 그들의 대화에서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정영구가 두부 총상을 입은 DEA요원을 먼저 데리고 수술실에 들어간 것이다.
남은 환자는 둘.
한 명은 마찬가지로 두부에 총상을 입은 마약상,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복부에 출혈을 일으키고 있는 DEA요원이었다.
“둘 다 위급한 상태예요.”
강미소였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DAD요원과 마약상. 누구부터 수술을 해야 할 것인가.
어느 한쪽도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두 환자를 응시하던 도수가 말했다.
“강 선생님.”
“예?”
“수술 들어가죠.”
“네? 누구부터…….”
“같이 갑니다. 한쪽은 강 선생이 맡아요.”
“예? 그게 무슨……!”
강미소는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아직 집도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수는 침착하게 말했다.
“외상 수술 많이 해봤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할 수 있습니다. 아사다 류타로, 정영훈 선생이 어시스트 서죠.”
아사다 류타로와 정영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정영훈이 물었다.
“강 선생은 나랑 들어간다 치고, 넌 어떡할 건데?”
작은 수술이 아니다.
다시 말해 혼자 감당할 만한 수술이 아니다.
실력 여하와는 관계없이 큰 수술에는 반드시 동원되는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이 병원에 남아 있는 인원은 간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두 환자 모두 시간이 없다.
도수가 말했다.
“전 간호사들이랑 들어갑니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권이 없습니다.”
“…….”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의사가 아닌 간호사들이랑 손발을 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일이 코치를 하며 수술을 한다고 해도 간호사들의 본 업무가 아닌 이상 미숙할 수밖에 없다.
즉, 도수가 실력 발휘를 못 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
그럼에도 도수는 미동 없이 덧붙였다.
“환자 상태로 봐선 이대로 두면 둘 다 십 분 안에 어레스트 날 겁니다.”
“…….”
모두가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말을 잃은 그때.
강미소가 대답했다.
“해볼게요.”
다른 이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정말 이대로 진행할 생각이냐는 뜻. 그러나 강미소는 자신의 실력을 똑바로 인지하고 있었고, 뛰어난 써전인 아사다 류타로와 정영훈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이 수술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두 분은 비전공이고 저도 서툴러요. 우리 모두 합심해도 살릴 수 있을까 말까예요. 다른 환자는… 센터장님이잖아요.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걱정 말아요. 하지만 한 가지. 해보는 건 안 됩니다. 해내야 돼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강미소는 일종의 전율을 느끼고 부르르 떨었다.
“해낼게요.”
“쉬운 수술이 아닐 겁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간호사를 제 수술방으로 보내요.”
“네……!”
강미소의 대답을 들은 도수가 다른 이들을 보며 지시를 내렸다.
“환자 수술실로 옮기겠습니다. 빨리!”
“예!”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긴박한 상황과 도수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맞물려 이뤄낸 호흡이었다.
차르르르르륵!
스트레쳐카에 실린 환자들이 널찍한 응급환자용 엘리베이터로 들어가자 도수가 이근육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합니다.”
이근육은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도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이근육이 지난 상황을 설명했다.
“갑자기 총성이 들리더니 세 사람이 실려 왔습니다. DEA 측 용의자를 차에 태우던 중 총격을 받았다더군요. 아마 후아레즈 카르텔 짓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병원에서.”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란 뜻이겠죠.”
중요한 인물?
그럴지도 모르지만, 도수는 웬지 ‘엘 파소 병원까지 와서 총질을 할 만큼 반드시 지켜야 할 비밀’이 있다고 초점을 뒀다.
물론 내색하진 않았다.
“지금은 환자한테 집중합시다.”
“예.”
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들은 손을 소독한 후 수술복을 입은 채 수술실 안으로 들어섰다.
간호사가 장갑을 씌워주며 말했다.
“닥터, 환자 상태가 너무 나쁩니다. 맥박도 거의 안 잡혀요.”
맥박이 거의 안 잡힌다는 것은 수술을 해도 살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남더라도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수는 지금껏 이런 상황에서 포기해 본 적이 없었다.
그사이 마취를 마친 마취과 과장 휴 윌슨이 말했다.
“이제 옆방으로 건너가 봐야 해요. 이 환자도 위중한데… 마취과의 서포터 없이 혼자 할 수 있겠습니까?”
“해보는 데까지 해보죠.”
도수는 짧게 대답했다.
그를 빤히 응시하던 휴 윌슨은 도수의 ‘해보는 데까지 해본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차분한 눈동자 속에 가라앉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을 본 것이다.
“…건투를 빕니다.”
어깨를 두드린 휴 윌슨이 수술실을 나갔다.
그러자 도수가 환자한테 다가갔다.
샤아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을 쓰며 몸을 한차례 훑자.
두부를 뚫고 들어간 총알이 보였다.
두피, 두개골, 경질막을 관통해 대뇌까지 깊게 파고들어 있었다.
다른 곳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지체할 건 없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칼.”
척.
스으으윽!
두피를 가르고.
도수가 말했다
“두피 클립.”
그는 직접 두피를 고정하고 말을 이었다.
“개두기.”
척.
도수는 총알이 뚫고 지나간 곳 주위로 구멍을 뚫고 전동 톱으로 잘랐다.
지이이이이잉.
뼛가루가 묻어 나왔다
“석션.”
시이이이이익!
석션호스로 뼛가루가 빨려 들어갔다.
덜컥.
두개골을 드러낸 도수의 시야로 경질막이 들어왔다.
“현미경 착용해 주세요.”
간호사가 현미경을 씌워주었다.
그러자 도수가 말했다.
“칼.”
턱.
도수는 예리한 칼끝을 정교하게 놀리며 세 개의 막을 절개하고 총알이 박힌 대뇌로 들어갔다.
“……!”
곁에 선 이근육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살릴 수 있는 겁니까?
눈빛이 그렇게 묻고 있다.
그러나 도수는 대답 대신 지시를 했다.
“디섹터(Dissector: 귀이개 형태의 수술 도구), 포셉(Forceps: 집게 형태의 수술 도구).”
턱.
긴장감이 흘렀다.
뇌의 조직은 두부처럼 연해서 디섹터나 포셉을 조금만 잘못 놀려도 패일 수 있었다. 그 순간 환자는 장애를 안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도수의 손기술에 모든 게 달려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영역에 들어서는 셈이다.
“…….”
이를 지켜보는 이근육의 이마에도 땀이 흥건했다.
“믿습니다.”
도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놀렸다.
스윽.
디섹터.
그리고 포셉이 총알이 지나간 구멍을 따라 진입했다.
스으으윽.
도수의 시야가 미치는 범위는 총알이 들어간 입구까지였다.
그러나.
샤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이 눈빛을 따라 쏟아졌다.
그러자 뇌에 난 통로가 선명하게 보였다.
원래 같으면 이 정도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했겠지만.
도수는 투시력을 쏟아붓는 걸 멈추지 않고 더욱 더 집중했다.
샤아아아아아아!
‘제발.’
투시력의 한계치가 더 넓어졌길.
약물의 ‘색깔’까지 구분이 됐던 것처럼, 현미경을 쓰고 처음 투시력을 썼을 때처럼, 시야가 더 정교하게 변하길 바랐다.
그 부름에 부응한 걸까?
도수의 눈에 그 전까진 현미경을 쓰고 투시력을 써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샤아아아아아아.
뇌 표면, 뇌실질의 혈관들뿐 아니라 그 안쪽의 혈관들까지 컴퓨터 칩의 회선들처럼 쫙 뻗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치 전구처럼 대뇌 전체가 투명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도 전부 다 다른 색깔로 깜빡이고 있다.
‘이건…….’
도수는 그 색깔이 대뇌가 담당하고 있는 영역별로 구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해부학 공부를 할 때 대략적으로 어느 부분이 어디를 담당하는지 정도는 파악해 둔 덕분이었다.
“후.”
짧게 숨을 뱉은 도수는 호흡까지 멈추곤 잠시 멈추었던 디섹터와 포셉을 미동(微動)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범위 속에서 놀렸다. 치명적인 곳은 최대한 피하며 한쪽 벽에 붙여서 진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틱.
아주 미세한 감촉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총알에 디섹터와 포셉이 닿았다는 신호다.
‘뺀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총알이 회전하며 틈이 생기긴 했겠지만 디섹터가 포셉을 자칫 조금이라도 무리해서 넣다간 뇌실질에 돌이킬 수 없는 흠집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슥, 스윽.
도수는 총알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디섹터를 걸치고 포셉을 놀렸다.
틱.
다시 한번 아주 미세하게.
총알이 포셉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됐다.’
투시력을 썼기에.
시선이 대뇌를 관통해 총알의 형태까지 아우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
다시 한번 숨을 뱉은 도수는 진입할 때와 같이 호흡을 멈추고 포셉을 빼냈다.
바로 그 순간.
총알이 다 빠져나오기도 전에, 들려선 안 될 경고음이 들려왔다.
삐이이이이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