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다윗과 골리앗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아사다 류타로는 혀를 내둘렀다.
‘말도 안 돼.’
그가 신기한 건 도수의 실력이 아니었다. 실력이야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매번 이렇게 긴박한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일단 해산해서 각자 업무를 보고 있던 아사다 류타로는 은근슬쩍 강미소에게 말을 붙였다.
“뭔가 쎄하지 않습니까?”
강미소가 고개를 돌렸다.
“뭐가요?”
“마약 사건입니다. 그것도 카르텔이 활개치는 멕시코 접경지역인 엘 파소에서…….”
“우린 의사예요. 병원에 온 환자를 치료했고. 그것뿐이에요.”
그녀 역시 기분이 이상했던 것이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환자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위안하고 있었다. 이번엔 별문제 없이 엘 파소 병원에서 연수를 마칠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아사다 류타로는 그 생각을 부정했다.
“느낌이 안 좋아요.”
한숨을 내쉰 강미소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느낌이 틀리길 빌죠.”
***
한편 도수는 병원 내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부임 첫날부터 췌장암 3기 환자를 기사회생시킨 의사, 아무 사전준비도 없이 ‘췌두십이지장절제술’이란 고난도 수술을 집도한 의사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약상 검거까지. 그야말로 화려한 데뷔전이었다.
그 소식이 기자한테까지 들린 걸까?
매디 보웬에게서 연락이 왔다.
-매디.
“미국에 온 소감은 어때?”
-이 정도면 B&W가 아니라 당신이 스토커 같은데요?
“무슨 섭섭한 소릴. 네가 사건을 몰고 다니는데… 난 기자로서 할 일에 충실한 것뿐이라고.”
-지나치게 소식이 빠르단 생각 안 들어요?
“난 평범한 기자가 아니니까.”
도수는 피식 웃었다.
“그래서,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마약상이 잡혔다고?
“예. 마약상은 잡혔고 마약 유통책이었던 환자는 수술했습니다. 지금 어디예요?”
-엘 파소 병원에서 나오는 길.
도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저랑 직접 얘기하지 않고.”
-병원에는 보는 눈이 많아. B&W 같은 제약회사가 깊이 개입된 곳이기도 하고… 밖에서 얘기하자.
이해가 됐다.
지금까지 B&W의 행보를 고려했을 때 굉장히 용의주도했기 때문.
도수가 대답했다.
“퇴근하고 뵙죠. 장소는?”
-병원 맞은편 길 건너 커피숍.
“이따 뵙죠.”
-오케이.
뚝.
전화를 끊은 도수는 병원을 둘러봤다. 둘러보고 느낀 것은, 아로대병원이나 천하대병원에 비해 응급실이 한적하다는 것.
환자가 한국보다 적어서?
그건 아닐 것이다.
단지 미국의 의료비가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응급실은 한적한 반면 보험 적용이 되는 병원은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된다. 오죽하면 일반진료를 보기 위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 부분에 국한돼서 생각하면 참 거지같은 나라다. 한국이 얼마나 의료 제도가 잘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새삼 느낀 도수는 위 속에 마약을 품고 있던 환자를 찾아갔다. 그러자 환자 곁을 지키고 있던 보이드 파스칼이 알은체를 했다.
“닥터 리.”
“환자는요?”
도수가 묻자 그가 말했다.
“막 심문하려던 참입니다.”
보이드 파스칼이 옆으로 비켜서자 안색이 창백한 환자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환자는 덜덜 떨고 있었다.
“저, 전… 그놈들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가족들한테 돈을 준다기에…….”
“그럼 왜 우리한테 총격을 가했지?”
보이드 파스칼이 쌍심지를 켜자 잔뜩 겁을 집어먹은 환자가 대답했다.
“마약 반입은 중죄니까요. 전… 가족들에게 돌아가야합니다…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태도에서 안쓰러움이 묻어났지만 보이드 파스칼은 냉정했다.
“범죄는 범죄다. 마약 반입을 도운 것도 모자라 마약 단속국과 총격전을 벌였어. 공범이란 뜻이지.”
“…….”
환자는 말 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를 빤히 응시하던 보이드 파스칼이 물었다.
“…하지만 우린 그리 꽉 막힌 사람들이 아니야. 법의 심판을 받아야겠지만 네가 어느 정도 협조하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 감경될 수 있다. 만약 이대로 감방에 간다면 넌 가족들 얼굴도 까먹을 만큼 푹 썩게 될 거야.”
“아…….”
환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내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도수가 물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괜… 찮습니다.”
씁쓸한 음성.
살아난 기쁨보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엿보였다.
환자는 도수에게 말을 잇지 않고 보이드 파스칼을 보며 애원했다.
“우린 가난하게 태어났습니다. 우리한테는 선택권이 없었어요. 제가 엘 파소가 아닌 후아레스 병원으로 갔다면 마약상 놈들에게 죽었을겁니다. 아니, 지금쯤 제 가족들이 시체가 돼서 매달렸을지도 모르죠…….”
그러자 보이드 파스칼이 도수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수는 그의 표정에서 대답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저 환자를 압박하기 위해 의견을 물어본 것뿐이다.
그리고 역시.
“전 헛소리 같은데요.”
허나 도수는 그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을 했다.
“…아마 사실일 겁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진실에 손쉽게 다가가기 위해선 상황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했다. 이 부분은 도수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질문에 도수가 대답했다.
“환자 말처럼 단순한 운반책이 아니었다면 항문에 마약을 숨겼을 겁니다. 굳이 목숨 걸고 마약이 든 봉지를 삼키진 않았을 거예요. 만약 조금만 늦어졌다면 환자는 사망했을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도수가 아니었으면 환자는 사망했을 터였다.
도수를 빤히 보던 보이드 파스칼이 환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실이냐?”
환자는 마치 암흑 속에서 한 줄기 광명을 만난 듯 도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마, 맞습니다. 제가 목숨을 걸었던 건 모두 그놈들한테 약속받았던 돈 때문이에요. 마약상 놈들은… 절대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총에 맞아도 달아날 궁리를 하지, 총에 맞는 즉시 즉사할 수 있는 위치에다 마약을 숨기지 않아요.”
“흐음.”
보이드 파스칼은 일리가 있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리 너그럽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네 범죄가 정당화되진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입장을 법 앞에서 인정받고 싶다면 협조해.”
“…….”
“네 가족들이 당하기 전에 우리가 잡아주마. 틱톡, 틱톡… 시간이 없다. 빨리.”
보이드 파스칼이 시계를 보며 재촉했다.
그런 그를 보던 환자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도수에게 시선을 옮겼다.
“DEA.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여기 이 선생님이 내 목숨을 살려주고 내 입장을 변호해 줘서 제가 아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 뭐든.”
보이드 파스칼이 건조하게 대답하자 그가 입을 뗐다.
“며칠 정도… 감금을 당했습니다. 그사이 마약상 놈들이 하는 얘길 들었습니다. 단순히 마약으로서의 효용 가치가 아닌, 치료약의 재료로도 가치가 있다고… 제가 운반한 이 약이면 지긋지긋한 카르텔 간의 전쟁을 끝내고 멕시코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요.”
“치료약?”
보이드 파스칼과 도수가 동시에 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의도는 사뭇 달랐다. 보이드 파스칼은 금시초문이라 되물은 것이고, 도수는 ‘치료약’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짚이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안 그래도 ‘심장성형제’와 ‘마약’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던 참이다.
설마 B&W가 그런 만행까지 저지르진 않았으리라고 의심을 억눌렀지만 완전히 거둘 수는 없었다.
그사이 보이드 파스칼이 물었다.
“그리고? 또 아는 게 있나?”
“전… 말씀드렸다시피 운반책에 불과합니다. 이 이상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봐, 그따위 정보로는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해. 네 처벌을 감경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 순간 도수가 개입했다.
“잠깐.”
두 사람의 시선이 그를 향하자.
도수가 환자에게 물었다.
“혹시 심장치료약이라고 안 했습니까? 아니면 B&W란 이름이 나왔든지.”
“B&W? 거긴 왜…….”
보이드 파스칼이 눈을 치뜨는 그때.
곰곰이 생각하던 환자가 대답했다.
“B&W는 모르겠고… ‘심장’이란 단어는 들은 것 같습니다.”
“이봐. 어떻게든 죗값을 줄여보겠답시고 막 둘러대면 안 돼. 알아?”
“저, 정말입니다.”
“근데 왜 방금 전엔 얘길 안 했지?”
“선생님 말을 들으니까 생각이…….”
이미 두 사람에게서 관심이 다한 도수는 한숨이 나왔다. 설마 했는데 심장치료약과 마약이 연관이 있다니. 점점 더 B&W가 가진 비밀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비밀은 단순히 몇 사람 목줄이 걸린 수준이 아니었다. 훨씬 더 큰 스케일의, 세계 굴지의 제약회사인 B&W의 모든 것을 통째로 흔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비밀이었다.
물론 아직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존재했다.
‘굳이 왜……?’
대체 왜 이렇게까지 일을 벌린단 말인가?
도대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얻을 이익이 얼마나 크기에 이 같은 미친 짓을 벌일 수 있는 걸까?
…지금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모든 가설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머리가 복잡해진 도수가 말했다.
“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보이드 파스칼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시죠.”
“…….”
환자는 애타는 눈길로 도수를 보았지만 이건 DEA와 마약 운반책 간의 문제였다. 그가 개입할 여지는 더 이상 없었다.
“그럼.”
짧게 목례한 도수는 병실을 나서서 담당 간호사에게 몇 가지 오더를 던져준 뒤 다시 업무에 치중했다. 그러나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병원을 나섰다.
병원 맞은편, 길 건너 커피숍에선 미리 와서 일을 보고 있는 매디 보웬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도수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살이 더 빠진 것 같은데?”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흥분되네.”
매디 보웬이 입술을 축였다. 지금껏 도수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의료 활동에만 집중하고 싶어 하는 그가 이렇게 대놓고 달려들 정도면 얼마나 큰 건일지 기대가 됐다.
그리고 도수는 그 기대에 충족하는 대답을 던져줬다.
“오늘 오전 수술한 환자를 DEA 요원이 취조하던 중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환자 위 속에서 터진 마약이 심장 치료약으로 쓰일지도 모른다는 것.”
“뭐?”
매디 보웬이 눈을 치켜떴다.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난 거야?”
“환자가 직접 얘기하더군요. 마약상들이 하는 이야길 들었다며.”
“말도 안 돼.”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도수는 탁자를 톡톡 두드리던 손짓을 멈추고 덧붙였다.
“한번 알아봐 주세요. 저는 저대로 알아볼게요.”
“어떻게?”
매디 보웬의 물음에.
도수의 눈빛이 달라졌다.
“방법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바로 그때.
마치 그들이 진실을 알아낸 것에 대한 축포가 터지듯 도심에선 듣기 힘든 이질적인 총성이 들려왔다.
타앙!
탕! 탕! 탕! 타앙!
두 사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총성의 발원지는 길 건너편 엘 파소 병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