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35화 (135/152)

# 135

차르르르르르륵!

이동식 침대가 이동하며 엘리베이터로 돌진했다.

도수는 정영구를 보며 말했다.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뭐?”

미간을 찌푸린 정영구가 고개를 저었다.

“수술 욕심은 알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

“제가 필요하실 거예요.”

도수는 눈을 피하지 않고 빤히 응시했다. 투시력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 배 속에 있는 이물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정영구가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정영구는 짧게 답했다.

“…사람 찜찜하게 만드는군.”

그는 몸을 홱 돌렸다.

도수가 뒤따라갔다.

두 사람은 소독을 마치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수술실 의료진들이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뒤에 따라 들어온 도수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루에 두 번의 수술.

내내 도수가 함께하는 것에 대해 의아하겠지만, 정영구는 설명을 더하지 않고 말했다.

“수술 시작하지.”

엘 파소 병원 마취과 과장 휴 윌슨이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혈압은 백십에 칠십, 심박수 백삼 회야.”

이 환자는 출혈이 심한 상태. 지금보다 더 떨어졌어야 정상이다.

“좀 높은데?”

정영구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이송 중에 수액이 많이 들어갔나 보지.”

그러나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수액이 많이 들어간 게 아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환자 배에서 터진 약물이 혈압을 비정상적으로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약물이 무엇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최악의 경우 한 가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마약.’

그사이 정영구가 말했다.

“일단 총알 제거하고 출혈부터 잡자고. 메스.”

메스를 받은 정영구가 개복을 시작했다.

“보비.”

치이익.

복막이 열린다.

츄악.

피가 샜다.

도수는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리게이션을 실시했다.

촤악!

그리고 곧바로 거즈를 환자 배 속에 채워 넣었다. 지금도 출혈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석션을 하기엔 너무 늦다.

철퍽! 철퍽!

거즈를 냅다 잡아 뺀 정영구가 고개를 들었다.

“석션 계속해 줘. 메스.”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석션 호스를 가져다 댔다. 정영구의 메스를 따라 석션 호스가 움직였다. 출혈이 날 때마다 모조리 호스에 빨려 들어갔다.

“센스있군.”

조직을 절제한 정영구는 박혀 있던 총알을 빼냈다.

“다행히 장기는 크게 손상되지 않았어. 바로 타이하지.”

간호사가 봉합사와 봉합침을 건넸다.

그러자 순식간에 봉합이 이루어졌다.

슥, 스윽.

빨랐다.

하지만 도수는 감탄할 새도 없이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움찔, 움찔.

아무도 보지 못했겠지만.

몸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도수가 투시력을 사용했다.

샤아아아아아아.

두 눈이 빛을 머금고 심장으로 향했다.

두근, 두근, 두근!

빠르다.

심박수가 급격하게 오른다는 건.

피를 공급하는 펌프질이 빨라졌다는 뜻.

“혈압.”

“응?”

정영구를 비롯한 의료진들의 눈길이 향하자, 도수가 짧게 덧붙였다.

“혈압 확인해야 돼요.”

마취과 과장 휴 윌슨이 고개를 돌렸다.

“……!”

삑. 삑. 삑. 삑.

아니나 다를까.

혈압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다시 열어야 합니다.”

도수가 정영구에게 말했다.

“환자의 위 속에 마약이 들었을 겁니다.”

“마약?”

만약.

그 이물질이 마약이 아니었다면.

밀가루나 튀김가루를 밀봉한 것이었다면 굳이 지금처럼 수술로 제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빨리!”

도수가 외치자.

정영구가 다시 봉합하던 실을 메스로 잘라냈다.

촤악!

활활 타는 불길에 강풍이 분 것처럼 출혈이 가속도를 붙였다.

“젠장. 거즈!”

거즈를 아무리 밀어 넣어도 순식간에 빨갛게 젖어버린다.

“혈압 백팔십에 백이야! 심박수는 백팔십… 이러다 브이에프(Ventricular Fibrillation: 심실세동) 올 수도 있어!”

“약이 이미 전신에 돌았다……!”

정영구가 절망적으로 외쳤다.

그 순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자가 거품을 물며 깨어났다.

“커… 컥! 커컥!”

그야말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환자 깨어났습니다!”

대공황 상태.

수술실은 혼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취과! 다시 마취를…….”

정영구가 부랴부랴 외치며 수액 들어가는 정맥관을 쳐다봤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이미 약을 바꾸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휴 윌슨?

아니다.

그 역시 멍하니 약을 바꾸는 누군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바로.

도수였다.

“케타민(Ketamine: 전신 마취제의 일종) 들어갑니다.”

“……!”

그는 이질감이 들 만큼 침착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수술실의 누구도 지금처럼 환자가 수술 도중 마취가 깨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지만.

도수는 전쟁터를 전전하며 숱한 경험을 했던 것이다. 마취약이 부족해서 완전히 마취를 시키지 못했던 적도 있고, 심지어 어느 땐 환자를 묶어놓고 맨 정신인 상태로 수술을 하거나 절단을 했던 적도 있었다.

환자의 눈꺼풀이 다시 감기자.

도수가 손을 떼며 말했다.

“위에 아직 흡수되지 않은 약부터 제거하죠.”

침착한 목소리.

정영구는 땀범벅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손을 막 가져다 대는데.

미세하게 손이 떨렸다.

“……!”

단 한 번도.

하늘에 맹세코 이런 적은 없었다.

써전이 손을 떨다니!

그것도 정영구처럼 수많은 수술을 경험한 써전이 수술 중에 손을 떠는 일은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정영구는 그 원인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젠장.’

환자가 수술 도중 깨어난 걸 보고 일시적으로 근육이 경직됐던 것이다.

손에 힘을 줘봐도 근육의 지배를 벗어날 순 없었다.

“후…….”

그가 도수를 보았다.

“날 좀 도와다오.”

한국말이다.

물론 수술실 모두가 그 말뜻을 알게 되겠지만, 그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도수가 같은 한국말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바이탈을 확인했다.

간당간당하다.

언제 어레스트(Arrest: 심정지)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다량의 마약이 체내에서 터진 환자는, 그 역시 처음이었다.

‘마취가 깼다는 건 체내에서 터진 마약이 중추신경 자극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

중추신경 자극제. 그렇다면 코카인일 확률이 높았다.

“코카인 결합 항체 투약해 주세요. 시간만 벌어주시면 어떻게든 환자 살려보겠습니다.”

도수가 휴 윌슨에게 말했다.

그러자 마취과 과장 휴 윌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퍼진 약은 신경 쓰지 말고 체내에 남은 약만 최대한 제거해 주게.”

“예.”

대답한 도수가 말했다.

“위치 바꾸죠.”

정영구와 도수가 위치를 바꾸었다.

의료진들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두 사람을 보았다.

하지만 뭔가를 묻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데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삑. 삑. 삑. 삑.

바이탈을 확인한 도수는 다시 수술을 재개했다.

“칼.”

턱.

도수는 핏물이 차오르고 있는 배 속으로 메스를 든 손을 밀어 넣었다.

“위 절개합니다.”

스으윽.

최초 정영구가 절개했던 절개선을 따라 메스가 움직였다.

치이이이이익!

석션을 하고 있던 정영구가 물었다.

“시야 확보는 문제없나?”

“네.”

당연했다.

도수는 투시력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래 몇 차례 수술을 거듭할 때마다 투시력도 점차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지금 같은 경우 위 안에서 터진 마약 가루가 오묘한 색깔로 눈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착시 현상은 아니다.’

착시 현상이라기엔 너무 또렷하다.

‘그럼 이건 무슨 뜻이지?’

색깔이라.

의문이 들었지만 다른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도수는 메스를 움직이던 방향으로 계속 절개를 진행했다.

마약이 터진 부위까지 칼날을 내리긋고는, 위를 벌리며 손을 집어넣었다.

지걱, 지걱.

봉지 속 가루가 더 흘러나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꺼낸 도수는 쟁반 위에 둘둘 싸인 비닐봉지를 올려놨다.

텅!

“엑티브 카본(Active carbon: 활성탄).”

숯가루 성분의 활성탄은 지금처럼 중독 응급상황에 남은 물질을 흡착, 제거하기 위해 쓰이는 가루였다. 지금 같은 경우, 이리게이션과 병행한다.

촤아악!

활성탄을 뿌린 도수가 흡인기를 가져갔다.

“석션.”

시이이이이익!

물에 불어난 가루가 석션호스를 통해 빨려 나왔다. 위 속에 퍼진 가루를 꼼꼼히 제거한 도수는 손을 빼냈다. 그사이, 환자 바이탈은 안정적으로 돌아와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즉사했을 거야.”

휴 윌슨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약물이 치사량(致死量) 이상 퍼진 상태였다면 환자는 사망했을 것이다.

빨리 발견했고, 빠르게 수술한 게 다행이었다.

“네 말대로 됐군.”

정영구는 하얗게 탈색된 안색으로 말했다. 도수가 수술참여를 부탁하며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제가 필요하실 거예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왜 네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지? 아직 검사도 못 한 환자의 몸 속까지 들여다봤을 리는 없고.”

때론 툭 던진 말이 정답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도수는 있는 그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미세하지만, 체내에서 문제가 생기면 체외로 신호를 보내곤 하죠.”

“…….”

“제가 혈압이 떨어지기도 전에 환자가 경련하는 걸 보고 위 속에 수상한 약물이 있다는 걸 알아챈 것처럼요.”

“그냥 보는 것만으로, 그렇게 예측했다고?”

“출혈로 인해 혈압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환자 같지 않았어요. 일종의 감이죠.”

“그렇군. 어떻게 알아봤는진 모르겠지만…….”

정영구는 굳이 그 이상 묻지 않았다. 방금 그들이 겪은 상황은 도수를 칭찬하고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추궁할 일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고했다. 환자가 살아나서 다행이야.”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경찰 불러야죠.”

“이미 연락했습니다. 지금쯤 도착했겠네요.”

간호사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수술에 혼선을 빗고 있는 상황에서도 신고를 했다니.

“빠르네요.”

그 말에는 정영구가 답했다.

“하루에도 총상 환자가 꼭 몇 명씩 들어온다. 총상 환자가 오면 경찰한테 먼저 연락을 하지. 여기 매뉴얼은 한국과는 좀 달라.”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수고했다. 그리고…….”

“…….”

“고맙다.”

“별말씀을.”

도수는 의료진을 보며 덧붙였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마취과 과장 휴 윌슨이 말했다.

“내 실수를 막아줘서 고맙네.”

고개를 숙이자.

다른 의료진들도 한 명씩 순차적으로 목례를 하는 게 아닌가?

접하기 쉬운 광경은 아니었으나.

도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수술실을 나섰다.

도수, 그리고 정영구가 수술실 문을 열고 나가자 한 사람을 수갑 채운 경찰 다섯 명이 그곳에 기다리고 있었다. 방탄조끼를 입은 모습이 일반 경찰은 아닌 듯했다.

“DEA(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마약단속국) 소속 보이드 파스칼입니다.”

자연스럽게 빼지를 보여준 히스패닉계 남자 요원이 덧붙였다.

“지금 수술실 안에 있는 자는 후아레스 카르텔 조직에서 마약을 밀입국하기 위해 보냈다는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국경 근처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총상을 입고 도주한 자입니다.”

“그렇군요.”

정영구가 대답하자 보이드 파스칼 요원이 물었다.

“그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살았습니다.”

DEA요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정영구가 그들이 수갑을 채운 채 데리고 있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그럼 이쪽 분은……?”

“저희와 총격전을 벌인 자의 동료로 의심했던 자입니다. 갑자기 소식을 듣고 이렇게 달려왔는데, 혐의점이 없으니 풀어드릴 겁니다.”

그가 고갯짓을 하자.

다른 요원들이 남자의 수갑을 풀어주려 했다.

바로 그때.

“혐의점이 없진 않은 것 같은데요.”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누구신지…….”

보이드 파스칼이 묻자, 수갑을 찬 남자를 빤히 보던 도수가 대답했다.

“닥터 이도수입니다.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마약 밀입국을 하려 했던 장본인을 수술한 의사란 걸 감안한 보이드 파스칼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러자 도수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오늘 식사 하셨습니까?”

눈알을 굴리던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안 했소. 근데 그게 뭐 문제라도 됩니까?”

“공복 상태시군요.”

“그렇습니다.”

“중추신경자극제를 상습적으로 투여할 경우 식욕이 떨어지죠.”

“……!”

다들 놀랐지만.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반론했다.

“단지 밥을 굶었단 것만으로 내가 마약중독자라고?”

그는 자신의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번 걷어보라고.”

피식 웃기까지 한다.

하지만 도수는 웃지 않았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항문에서 직장까지 대변으로 막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쪽은 그 대장 안쪽에 다른 게 있는 것 같은데요.”

샤아아아아아아.

도수의 눈이 빛났다.

그러자 대장 안쪽, 수술실에 누워 있는 환자가 삼켰던 것과 같은 약 봉지가 선명하게 보였다.

“항문을 통해 약을 숨겼습니까?”

“무, 무슨…….”

콰악!

보이드 파스칼이 순식간에 남자의 안면을 벽으로 밀어붙이며 외쳤다.

“사실이냐?”

그리곤 동료들에게 말했다.

“확인해 봐.”

DEA요원들이 바지를 벗겼다.

버둥거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남자.

이 광경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정영구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직감이죠.”

수술 때도 그렇고, 도수는 대답을 둘러댔다.

“…마약을 들여온 걸 빤히 알면서도 모른 척할 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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