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와, 씨……!”
정영훈은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못했다.
췌두십이지장절제술은 한국에서도 가능한 써전들 이름을 열거할 수 있을 만큼 어렵기로 손꼽히는 수술이었다.
일단 간담췌 파트를 전공해야 하고, 전공했다 하더라도 모두가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그런 수술을 전공자도 아닌 도수가 표준 시간보다 무려 한 시간 반 이상 빠른 속도로 끝낸 것이다.
수술의 정확성 또한 완벽에 가깝게.
“강미소 선생. 우리 이도수 센터장이 간담췌 수술도 저렇게 잘했었어?”
“저도 몰랐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미소가 말했다.
“간이고 위고 췌장이고 전부 부서진 환자도 수술을 하니까 췌장암 수술도 할 수 있나보다 싶었던 건데… 이렇게 잘할 줄은 저도 몰랐어요. 정말 알면 알수록 새로운 사람이네요.”
“양파야, 양파.”
정영훈은 참관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응시하며 말했다.
“저렇게 놀라신 모습은 내가 성형외과 간다고 밝혔을 때 이후로 처음 본다.”
“아무래도… 첫발은 성공적으로 뗀 것 같죠, 우리?”
정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수 옆에만 꼭 붙어 다니면 될 것 같다.”
“사람이 왜 그래요? 독립적으로 인정받을 생각은 안 하고.”
“어쭈. 파견 왔다고 너 아주 기어오른다?”
“…….”
강미소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도수가 정영구한테 인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인정한 이상, 이 병원에서 그들을 대놓고 함부로 대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여기서 문제는 정영구가 사심 없이 도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시기하고 질투하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빨리 내려가 봐요, 우리. 아버님께서 우리 센터장님한테 뭐라고 하실지 궁금하니까.”
“그놈에 센터장은 여기까지 와서도 센터장이야?”
정영훈은 투덜투덜 대면서도 그녀와 함께 참관실을 나섰다.
한편, 수술실을 나선 도수는 정영구와 마주섰다.
“어디서 수술을 배운 거냐?”
“라크리마에서요.”
도수가 짧게 대답하자.
정영구가 다시 물었다.
“누구한테?”
“부모님한테요.”
“…….”
찰나지간.
정영구의 얼굴에 그늘이 스쳐갔다.
“…내 동생, 그러니까 네 엄마는 그렇게 된 지 한참 됐다고 알고 있다만.”
“네. 돌아가신지 한참 됐죠.”
“그런데 어떻게…….”
“열두 살 때까지 어깨너머로 배웠고, 그 후에는 전쟁터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저절로 깨우쳤습니다.”
“그걸 믿으라고?”
“못 믿으셔도 상관없는데.”
“…….”
“저도 뭐 하나만 묻죠.”
“말해라.”
“왜 저를 싫어하시죠?”
도수는 정영구를 똑바로 응시했다. 분명 수술실에선 동질감을 느꼈다. 나름대로 호흡도 척척 맞았다. 정영구는 감탄했고 즐거웠다.
시기? 질투?
그런 감정은 아니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도수를 싫어하려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정확했다.
“넌 내 동생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그놈 아들이기도 하니까.”
“제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안 좋으셨나 보네요.”
“최악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더 싫어졌다. 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네 어머니가 그렇게 될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 빌어먹을 논문만 아니었어도…….”
“아들 면전에 대고 아버지 욕이라니.”
도수가 말을 이었다.
“제 부모님이 직접 하신 선택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든 논문으로 저는 심장성형술을 개발했습니다. 그 덕분에 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살 수 있게 됐어요. 그래도 ‘빌어먹을’ 논문입니까?”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정영구가 미간을 찌푸렸다.
“뭘?”
“이곳에 B&W에서 이직한 병리학 박사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
“누구죠?”
“그는 없다.”
“네?”
도수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눈을 치켜떴다.
한숨을 내쉰 정영구가 말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후아레스 범죄조직에서 그를 타깃으로 잡고 협박했어.”
후아레스 범죄 조직?
“카르텔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말했듯 이유는 나도 모른다.”
뭔가 구린 냄새가 났다.
그러나 억측은 보류. 도수는 떠난 사람에게 미련을 두지 않고 말했다.
“그럼 다른 부탁을 드리죠.”
“자꾸 부탁을 하는군.”
“심장성형술에 들어와 주십시오.”
“심장성형술에?”
“뛰어난 써전이시잖아요. 오늘 같은 복부 수술도 직접 하시고 흉부외과 수술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정영구는 부정하지 않았다.
“…전공이 아니다. 전공만 할 수 없는 환경이니 여러 수술을 하는 것뿐.”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정영구는 도수를 빤히 응시했다. 뭘 믿고 이렇게 뻔뻔할 수 있는 걸까?
실력을 믿는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실 정영구 또한 도수의 수술을 더 보고 싶었으니까. 사감은 사감이고 일적으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설마 나한테 계속 네 어시스트나 서란 얘기냐?”
“그렇습니다.”
“거절한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만…….”
도수가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심장성형술을 할 때만 어시스트를 해주시는 겁니다. 대신 전 새로운 심장성형술을 공유해 드리죠. 실력 있는 써전만 가능한 수술입니다.”
“내가 흉부외과 수술을 탐낼 것 같으냐?”
“예.”
도수는 확신하고 있었다.
“심장성형술을 완벽히 터득하실 경우 세계에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될 겁니다. 저 혼자인 것보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겠죠. 수술법이 상용화되는 시기도 앞당겨질 테고요.”
그는 환자 중심으로 이야기했으나.
정영구는 자기 식대로 해석했다.
‘녀석 말이 사실이라면, 수술이 상용화될 때까진 영예를 누릴 수 있다. 밑져야 본전이긴 한데…….’
나쁜 제안이 아니기에 정영구는 고민에 빠졌다.
그의 마음을 흔드는 내용은 두 가지였다.
심장성형술을 할 줄 아는 전 세계에 둘뿐인 의사. 이건 분명 앞으로의 활동에 좋은 타이틀이 된다. 앞으로 그가 물려받을 병원 홍보에도 강력한 무기가 될 터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의사로서의 호기심. 애초에 이런 호기심이 없었다면 모든 외과 수술을 통달하는 경지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망설이는 이유도 분명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장점을 얻는 걸 포기할 만큼 강력했다. 집도의가 아닌 어시스턴트로 수술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 그리고… 병원 내 시선.
그가 망설이고 있는 그때.
도수가 승부수를 던졌다.
“심장성형술을 익히는 동안 수술실 배정은 닥터 이름으로 하셔도 됩니다.”
정영구는 자신의 알량한 마음을 들킨 기분이 들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꼭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건 아니고.”
“제가 원하는 것뿐입니다.”
도수는 기꺼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멍석을 깔자, 정영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원하는 게 있다.”
그에 도수가 물었다.
“말씀하세요.”
“내가 지정한 케이스의 환자가 들어올 경우 내 수술에 어시스트를 서준다면 나도 제안을 수락하지.”
“어떤 환자입니까?”
“헤드 샷(Head shot) 환자.”
머리에 총상을 입은 환자를 말하는 것이다.
도수는 정영구가 몇 번 그 같은 환자를 받았고, 매번 환자를 잃어야만 했던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 그게 한으로 남은 듯했다. 도수를 영입해서라도 자신이 실패했던 수술을 성공시키려는 욕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도수 역시 자신의 손으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는 목적은 같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환자도 환자지만.
신경외과 쪽 실력을 향상시키기에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그제야, 정영구가 답변을 줬다.
“나도 네 제안에 협력하마.”
손을 내미는 그.
도수는 그 손을 맞잡았다.
물론 정영구는 이 순간의 악수가 어떤 의미를 내포했는지 꿈에도 모를 터였다.
심장성형술을 그와 공유하게 되는 순간 심장성형제를 개발한 는 더 골치가 썩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도수가 홀로 완성시킨 심장성형술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게 될 때까지 아무에게도 이 수술을 유출하지 않을 줄 알았겠지만, 도수는 오히려 반대로 행동한 셈이다.
따라서 두 가지 이점을 얻게 된다.
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한국과 미국에서 고루 유명한 정영구의 영향력을 빌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성과 발표만 남았다.’
심장성형술 대상자들을 최대한 많이 수술하고, 성공률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 심장성형제 프로젝트를 난항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인 것이다.
***
수술실을 나서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간 정영구는 피로를 풀 겸 편히 기대앉아 천하대병원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내, 수화기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먼저 전화를 다하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영화 아들을 만났습니다.”
정영화.
여동생을 말하는 것이다.
-네 조카지.
“아직 그 정도로 친밀감이 생기진 않았고. 함께 수술을 해봤습니다.”
-수술을?
“췌장암 3기 환자였고 췌두십이지장절제술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귀신같더군요.”
-하하하하.
“영화랑, 이찬 그놈이 신의(神醫)를 낳았어요. 네 시간 십칠 분. 제가 보고 들은 중 신기록이었습니다. 아마 모든 수술 기록을 통틀어도 가장 빨랐을지 모릅니다.”
웃음기를 다 거두지 못한 이사장이 수긍했다.
-그래, 그 녀석은 상식을 깨는 실력을 가졌지. 내 생전에 네가 누군가를 인정하는 걸 다 보고 말이다.
“전 인정하지 못한 적 없습니다. 인정할 만한 사람을 못 봤을 뿐.”
-어련하실까.
“…저한테 바티스타… 아니, 이찬의 논문을 본 따서 완성시킨 심장성형술을 같이하자더군요. 제게 가르쳐 주겠답니다.”
-이크!
무릎을 탁 친 이사장이 말했다.
-그래, 그 수가 있었구나. 그 녀석이…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아니다.
이사장은 말을 아꼈다. 막내딸의 죽음. 거기서부터 시작된 이 사건은 결국 그녀의 가족 모두와 의 전쟁이 되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이렇게 될 일이었다. 다만, 의 실체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건 없었다.
-그래서. 대답은 했느냐?
“하기로 했습니다.”
정영구는 별말을 보태지 않았지만 이사장은 크게 놀랐다.
-네가? 그 자존심에 승낙했다고?
“그건 나중에 얘기하시죠.”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지, 정영구가 말을 잘랐다.
그러자 잠시 말이 없던 이사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네 조카를 잘 챙겨주거라. 외삼촌으로서… 그래야 돼
“제가 안 챙겨도 스스로 클 놈입니다.”
그 순간.
정영구의 호출기가 울렸다.
삐빅. 삐빅.
“호출입니다. 가봐야겠어요.”
전화를 끊은 그는 응급실로 갔다. 곁에 바짝 붙은 레지던트 환자 한 명이 브리핑을 했다.
“후아레스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트랜스퍼된 응급 환자입니다. 그쪽은 오늘 아침 국경에서 벌어진 총격전으로 이외 환자 커버가 힘들다고 해서 우리 쪽으로 넘어왔습니다. 복부 총상으로 인한 출혈이 너무 심해서 바로 응급수술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준비는?”
“끝냈습니다.”
정영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들어가지.”
그 순간.
막 간이 휴게실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도수가 환자를 발견하곤 미간을 찌푸렸다.
‘응급?’
출혈이 심했다.
당장 수술해야 할 상황.
판단을 마친 그는 씨티를 찍어볼 시간조차 없다는 걸 알아채고 투시력을 가동했다.
샤아아아아아.
투시력이 발휘되자.
복부 속, 환자의 구멍 난 위가 시야로 들어왔다. 그런데…….
‘저건 뭐지?’
위 안에 이물질이 있었다.
옆구리가 터진 비닐봉지.
그 안으로부터 새어나온 새하얀 가루가 연기처럼 퍼지며 위액에 섞여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