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가위.”
턱.
환자의 위가 눈에 들어왔다.
도수는 눈대중으로 절제선을 그린 뒤 경계선 쪽으로 대망(Greater omentum)을 잡고 잘라나갔다.
서걱, 서걱.
막이 양갈래로 갈라지며 혈관이 드러났다.
도수는 능숙하게 혈관을 묶었다.
스윽.
운동화 끈을 묶는 것도 이보단 어려울 것 같았다.
너무나 쉽게 혈관을 묶어버린 도수가 가위로 혈관을 잘라냈다.
결찰절제(結紮切除)다.
서걱.
피가 조금씩 올라왔다.
“석션.”
말이 떨어졌을 땐.
이미 정영구가 석션호스를 가져다 댄 상태였다.
치이이이익!
피가 빨려 나가고.
빠른 대응에 감탄한 도수가 놀란 기색을 지우며 말했다.
“리니어 스테이플러(Linear stapler: 선형문합기).”
턱.
고데기와 비슷한 형태의 문합기를 받은 도수가 위를 절제했다. 절제와 동시에 문합을 시켜주는 의료도구.
별 출혈 없이 위가 떨어져 나오자.
도수는 위벽가지를 제거했다.
‘빠르다.’
정영구는 도수의 속도에 다시 한번 놀랐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술이란 건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를 기억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췌두십이지장절제술처럼 장장 여섯 시간에 걸린 대수술의 순서를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하나라도 빠지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정영구는 혹시 실수가 있진 않을까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봤다. 그러나, 작은 실수조차 없었다.
‘이토록 물 흐르듯 진행하다니…….’
수술의 퀄리티를 결정 짓는 건 정확성과 속도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놓치는 게 생기면 그 순간 수술은 실패다.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데.
도수는 생각할 틈도 없이 손을 놀리고 있었다.
슥, 스윽.
“후.”
정영구는 보는 것으로도 숨이 찼다.
여섯 시간의 표준 수술 시간.
영화 세 편의 대사를 통째로 술술 외는 일보다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도수는 그보다 훨씬 쉽게 해내고 있으니.
길은 하나다.
수도 없이 해봤다는 것.
‘그게 가능한가?’
정영구는 마스크 위로 드러난 도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제 스무 살 갓 넘은 애송이.
그런 녀석이 췌장암 수술을 해봐야 몇 번이나 해볼 수 있단 말인가?
암은 전염병이 아니다.
라크리마에서 아무리 많은 암 환자를 봤다고 하더라도 수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절레절레.
고개가 저어졌다.
경험이 아니라면.
천재성이다.
머리가 특출나게 좋은 써전은 한두 번만 수술에 참여해도 대강 순서를 외우기도 하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대강 순서를 외운’ 정도가 아니잖아?’
복잡한 수술이다.
경험자는 경험자대로 다른 수술과 헷갈릴 수 있을 만큼.
한데 준비할 시간도 없이 들어와 놓고 작은 틈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때 도수가 말했다.
“불독겸자(Bulldog forceps: 주로 서혜부에서 대퇴부, 복부의 혈관에 사용하는 지혈겸자).”
턱.
겸자를 받은 도수의 눈이 번쩍였다.
샤아아아아아아아.
세세하게 보이는 혈관들.
진흙탕에 손을 밀어 넣듯, 겸자를 든 도수의 손이 환자의 배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콰악!
단번에 혈관을 집은 도수가 고개를 들었다.
“칼.”
턱.
총간관을 절제한 도수가 쉴 틈을 주지 않고 말했다.
“원 제로 실크(1-0Silk: 봉합사의 일종).”
“아……!”
간호사의 손이 템포를 놓쳤다.
그 틈을 비집고, 정영구가 봉합사를 건넸다.
“……!”
“닥터……!”
“내가 하지.”
정영구는 반응이 늦은 의료진을 나무라지 않았다. 간호사가 늦은 게 아니라 도수가 너무 빠른 거다. 이 정도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수술 순서를 기억하고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이 수술실에서 정영구뿐이었다. 그 역시 뛰어난 써전이기에 도수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봉합사를 받아 담관 끝을 순식간에 묶어버렸다.
“주기적으로 담즙 흡인해 주세요.”
그는 보조 레지던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치이이이이익!
석션 호스가 하나 더 들어가고.
도수는 췌장을 들어 올렸다.
“췌장 절제합니다. 혈관 테이프.”
지걱, 지걱.
배 속이 뒤엉키고 출혈이 발생했다.
“넬라톤카테터(Nelaton’s catheter: 튜브형 기구).”
수술실 레지던트가 튜브를 건네자.
도수가 말했다.
“좀 더 짧게.”
툭!
정영구가 튜브 끝을 잘라냈다.
‘이런…….’
그는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오랜만에 서는 어시스트라서일까?
나이를 먹어서인지 따라가기도 힘에 부쳤다.
‘아니, 아니다.’
젊었어도.
어시스트를 매일 같이 서던 때라도 똑같이 벅찼을 거다.
이건 그가 느린 게 아니라 도수가 빠른 것이었다.
췌장을 감은 테이프를 튜브 안으로 넣어서 고정시킨 도수가 말했다.
“칼.”
턱.
“겸자도.”
절제측을 겸자로 단단히 잡고 덧붙였다.
“뇌헤라 들어갑니다.”
정영구가 주걱 형태의 헤라를 췌장과 상장간막정맥 사이로 거치했다. 절제 부위를 고정시키자, 도수의 메스 날이 파고들었다.
“피 나요.”
석, 서걱!
“석션.”
치이이이이익!
메스가 췌장의 절제면을 수직으로 잘라냈다.
“배측(복측과 멀리 떨어진 등쪽).”
도수는 반대쪽 절제면 또한 비스듬히 잘랐다.
“췌장 확장 없습니다. 췌관 튜브.”
턱.
그는 튜브를 받아 췌관 안으로 밀어넣었다. 저항 없이 들어가자, 도수는 췌관 튜브를 그대로 둔 채 췌액을 수술대 밖으로 배액했다.
“석션.”
치이이이이익!
정영구가 알아서 착착 들어갔다.
소동맥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온 출혈을 석션 호스가 잡아갔다.
그와 함께.
도수가 출혈점을 단번에 찾았다.
턱.
“꿰맵니다.”
슥, 스윽.
순식간에 오므라드는 출혈점.
점차 출혈이 멎자 도수는 췌장 절제면의 목에 감겨 있던 혈관테이프를 느슨하게 풀어 제거했다.
바로 그 순간.
츄욱!
봉합한 곳에서 피가 샜다.
봉합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혈행이 너무 거세서 봉합사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정영구의 잇새로 억눌린 음성이 새어나왔다.
다른 의료진들 역시 눈을 부릅 떴지만.
도수는 침착하게 손을 펼쳤다.
“칼!”
턱!
정영구 역시 노련한 써전답게 멈칫대지 않았다. 그에게 메스를 받은 도수는 혈액이 유입되고 있는 배측 췌동맥을 한 줄 절제해 버렸다.
‘혈행을 늦췄다!’
정영구는 속으로 감탄했다.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누구든 빠삭하게 췌두십이지장절제술을 공부했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 대응을 할 수 있었겠지만, 도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바로 그게 중요했다. 이는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했거나 동물적인 기지를 발휘했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수술 귀신’이란 말이 떠오를 만한 반응속도였다.
순식간에 다시 출혈이 잦아들자 의료진이 마스크 아래로 입을 딱 벌렸다.
“혈압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출혈이 잡혔어요.”
정영구는 기가 막힌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무슨 코피 막듯 출혈을 잡아버리는군.”
도수가 못 들은 척 췌장 후면의 결합조직을 절제했다.
서걱, 서걱.
췌장을 고정시키고 있던 조직이 떨어져 나가자 췌장의 목이 길죽하게 늘어났다. 이 역시 수술 후반부 진행할 췌공장문합시 좀 더 편리하게 문합할 수 있도록 미리 처리한 것이다.
이어서 상장간막정맥 우벽, 하췌십이지장 정맥까지 뚝딱 처리해 버린 도수가 말했다.
“췌두신경총 절제합니다.”
정영구는 어느새 수술 속도가 손에 익었는지, 벌써 준비한 두 개의 만곡견인기로 상장간정맥을 잡아 젖혔다.
그 순간 도수의 투시력이 다시 한번 발현됐다.
샤아아아아아.
췌두부 암은 췌신경총을 통해 진행된다. 그렇다고 췌신경총을 모조리 잘라내 버리면 난치성 설사가 발생하게 된다.
인체의 상호작용이 준 난제였다.
하지만 도수는 그리 고민하지 않았다. 투시력으로 보고, 암이 재발하지 않을 정도로. 난치성 설사로 다시 병원을 찾지 않을 만큼의 적당 범위만 절제하면 그뿐이었다.
“켈리포셉. 보비.”
양손에 무기를 쥔 도수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박리겸자로 신경다발을 얇게 건져 올린 뒤 보비로 절제했다.
치이이이이익.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민도 없이…….’
정영구가 못내 불안한지 물었다.
“너무 적은 범위만 절제한 거 아닌가?”
“적당합니다. 더 자르면 설사해요.”
“…….”
정영구는 입을 닫았다. 어떻게 이렇게 손쉽게 신경총 절제 범위를 결정 짓는진 어차피 이 짧은 순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하지 못한다. 모두가 집도의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 그것만이 수술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길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수술 중이다.’
정영구가 의심을 버리는 사이.
도수는 췌두신경총 2부까지 절제해 냈다.
의료진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바로 이 속도가 수술실 모두를 잡아끄는 강력한 힘이 됐다. 생각할 틈이 없으니 의심할 틈도 없는 것이다.
“공장절제 들어갑니다.”
신경총절제를 순식간에 마무리 짓고 바로 공장절제로.
치이이이이익.
보비가 지나간 자리로 복막이 열렸다.
스윽.
단숨에 동정맥을 묶어버리고.
“칼.”
메스로 혈관을 자른다.
서걱!
정영구는 도수가 잘 보이도록 공장을 우측으로 고정시켰다. 나이가 있어 그런지 도수의 수술 실력에 매료돼서 그런지 관자놀이로 땀이 흘렀다.
간호사가 땀을 닦아주고.
도수는 계속 칼을 놀렸다.
지걱, 지걱…….
“리니어 스테이플러.”
턱.
“가위.”
턱…….
안 그래도 빠른데 점점 더 빨라지는 손놀림. 그리고 그 속도에 맞춰 호흡하는 어시스트들. 그들 모두 최고의 메디컬 탑 팀다웠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절제가 끝나고.
환자 배 속은 토막 난 장기들과 혈관들이 뒤엉킨 양상이 됐다.
이제 재건(再建)을 할 차례.
뱃속을 해체할 때보다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집중력을 요하는 단계다.
나지막이 한숨 돌리는 것만으로 모든 휴식을 마친 도수가 짧게 말했다.
“문합 들어가죠. 포 제로 바이크릴(4-0 Vicryl).”
양 끝에 바늘이 붙은 봉합사를 받은 도수가 주체관의 머리측에 두 바늘, 꼬리측에 세 바늘 걸었다.
“파이브 제로 피디에스(5-0 PDS).”
여기저기 계속해 바늘이 걸렸다.
두 번이 없었다.
모조리 단번에.
정확히 바늘을 걸어둔 모습은 마치 해부학 교과서를 환자 배 속으로 옮겨놓은 듯 정확했다.
“깔끔한 솜씨야.”
정영구는 칭찬인지 감탄인지 헷갈리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 한마디는 이 수술실 모두의 생각이기도 했다.
벌써 총 여덟 개의 바늘이 췌장과 공장 사이에 걸린 상태.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운 광경이지만.
도수는 순서대로 봉합에 들어갔다.
스윽, 스윽.
빠른 손놀림.
모든 실이 봉합됐을 땐, 췌장 단면과 공장벽이 밀착돼 있었다. 공장벽이 췌장을 덮어 누르는 듯한 형상이 된 것이다.
“췌공장문합 끝.”
정영구가 말했다.
그러자 의료진은 참지 못하고 마스크 안으로 한 마디씩 했다.
“진짜 빠르네요.”
“벌써…….”
“오늘 저녁은 제때 먹을 수 있겠는데요?”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 안에 끝내죠. 간관공장문합 시작하겠습니다.”
별 얘길 한 것도 아닌데.
수술실 안의 사기가 한껏 고양됐다.
“이대로 가자고.”
정영구가 메스를 건넸다.
그와 눈을 맞춘 도수가 고개를 끄덕이곤 메스를 받아 들었다.
스으으윽.
문합예정부의 공장벽이 갈라졌다.
마치 자로 잰 듯 간관지름에 딱 맞아떨어졌다.
“켈리포셉.”
턱.
“모스키토(겸자의 일종).”
턱.
“포셉.”
턱.
“튜브.”
스으윽.
“타이.”
도수의 손이 예술적인 봉합술을 펼쳤다. 몇 차례 의료 도구가 오가고 바늘이 환자의 배 속에서 움직이자 순식간에 간관공장문합이 마무리됐다.
“위공장문합합니다.”
“……!”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 자식 뭐야?’
정영구는 수술 내내 충격에 충격을 받았다. 그 어떤 반전서스펜스 영화도 오늘 수술처럼 여러번 놀라진 못했을 것이다. 반전 하나 없이 쭉 일관된 이유로 놀라는데, 또 다시 놀랐다.
“보비.”
턱.
치이이이익.
“타이.”
슥, 스윽.
“…….”
의료진들은 넋을 놓고 쫓아가기에 급급했다.
“브라움 문합.”
위를 횡행결장막에 고정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도수는 환자 배에서 췌관, 담관에 연결했던 두 개의 튜브를 복벽 밖으로 빼냈다. 그리고 공장벽을 꿰매서 복막에 고정시켰다.
“이리게이션.”
촤악!
“석션.”
치이이이이익!
마지막, 복강 내 세척이 시작됐다.
모두들 피로감이 피크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그 피로를 앞서는 건 도수가 보여준 광경에 대한 신선함이었다.
피로했지만 피로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된 이들.
손쉽게 삼 층으로 된 복벽을 봉합해 폐쇄한 도수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탁!
긴장이 풀리자.
수술실 의료진들이 휘청거렸다.
그나마 멀쩡히 서 있는 건 정영구 정도였다.
“네 시간 십칠 분.”
“……!”
의료진들이 놀라는 가운데.
정영구의 한마디가 떨어졌다.
“신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