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32화 (132/152)

# 132

사십오 세 췌장암 3기 환자.

췌장암의 경우 재발률이 높아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이었다.

따라서 3기면 사망률도 높은데, 정영구는 나름대로 어려운 수술을 맡긴 것이다.

수술에 들어가는 건 이번 파견 인력 중 도수 한 명.

수술 어시스턴트 명단에 정영구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는 걸 보니, 아마 도수가 실수를 하거나 수술에 막히는 구석이 있으면 직접 나설 생각인 것 같았다.

도수는 아로대병원에 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 익숙했기에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단지 문화의 차이가 있을 뿐 어딜 가나 엘리트사회는 대개 비슷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들만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채 규격 외의 불청객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같은 한국인 의사들도 그럴진대 미국인들 틈에서 생활할 땐 더하면 더했지, 덜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이 도수에게는 환자를 살리는 과정에서 얻는 하나의 성취감일 뿐이었다.

째깍, 째깍…….

다섯 시 삼십오 분.

도수는 수술실로 올라갔다.

“화이팅입니다, 우리 센터장님. 다 박살 내고 오세요!”

강미소가 주먹을 흔들었고.

정영훈 역시 머쓱하게 말했다.

“그래도 너한텐 외삼촌인데 너무 놀래켜서 심실세동(Ventricular fbrillation: 심장의 박동에서 심실 각 부분이 무질서하게 불규칙적으로 수축하는 상태)까지 오게 하진 말고…….”

도수는 피식 웃었다.

아직 근무를 시작하기 전이기에 두 사람 다 참관인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집도의는 도수.

시차 부적응으로 인한 피로감이 전신을 짓누르는 가운데, 엘 파소 병원에서의 첫 수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도수는 소독을 마치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느낌.

“안녕하세요.”

한국과 달리 영어로 인사하는 보조들.

오늘 처음으로 손을 섞게 될 정영구의 메디컬 팀이다.

“잘 부탁합니다.”

도수가 손을 들자.

금발의 간호사가 수술 장갑을 착용시켜 줬다.

그녀는 아무 말도 안 했고, 도수도 아무 말도 묻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느낄 수 있었다.

상호 간 신뢰감이 제로라는 것을.

“…….”

이럴 때, 수술이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원래 혼자 수술을 해왔고, 대학병원에 있을 때도 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던 도수에게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도수가 환자 우측으로 가서 선 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며 눈만 드러낸 정영구가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수술 팀 의료진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도수를 볼 때와 정영구를 대할 때의 차이였다. 그들이 정영구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좋은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든든한 써전은 맞는 것 같았다.

도수의 맞은편에 온 정영구가 입을 뗐다.

“수술 시작하지.”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말했다.

“칼.”

스으으으윽.

칼날이 환자의 검상돌기(Xiphoid process: 칼돌기라고도 불리며 가슴뼈 아래쪽에 튀어나온 뼈. 명치 부위.)부터 배꼽까지 죽 파고들었다. 그 뒤 배꼽 우측을 돌아 빠져 나왔다.

정중절개술(Median incislon)이 발휘된 것이다.

그걸 본 정영구의 눈매가 미세하게 떨렸다. 단숨에 내리긋는 칼 솜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여러 번’ 수술했던 써전이 보일 수 있는 솜씨가 아니었다. 적어도 수백 번, 어쩌면 수천 번 수술한 써전만이 보일 수 있는 움직임.

‘이게 무슨 조화지?’

정영구는 믿을 수 없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그는 자기도 모르게, 도수의 일획(一劃)만 보고도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도수가 빠르게 메스를 반납하며 말했다.

“보비.”

그는 바꿔 든 전자메스로 간원인대(Round ligement: 태아순환의 흔적인 배꼽 정맥이 폐쇄되어 섬유 끈으로 변한 것) 우측에서 복막을 절개하며 말했다.

“개창기(Self-Retaining retractor: 조직을 압박해서 수술시야를 넓히는 기구) 들어갑니다.”

옥토퍼스 개창기를 준비하고 있던 레지던트 두 명이 환자의 개복 부위를 넓혔다. 그들이 십이지장 수동(Kocher maneuver: 십이지장까지 시야 확보가 되도록 개창기를 조작하는 작업)을 실시하는 사이 도수가 보비를 정영구에게 넘겼다.

그러자 정영구는 도수가 십이지장을 끌어당길 틈도 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보비를 움직였다.

바로 그때.

도수의 투시력이 발현됐다.

샤아아아아아아.

보비의 진행 속도.

그리고 십이지장을 견인하는 힘.

이 두 가지가 정확히 맞물릴수록 견인기 조작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것.

그런데.

도수가 정영구의 지나치게 빠른 속도에 정확히 알맞은 힘으로 십이지장을 견인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문합근막을 복벽측에 남기고 장측근막의 틈으로 박리하는 통상적인 층 분리 방법이 아니었다.

“……!”

도수는 뱀 같은 손기술로 근막을 절제 측에 붙여서 빼냈다.

“왜…….”

“췌후면에 침윤이 의심됩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당연하다.

투시력을 쓰고 있으니까.

의심이 아닌 확정이다.

“미세하게 보였습니다.”

“그걸 봤다고?”

좁은 절개부 시야.

그 사이로 침윤된 곳을 포착했다는 건, 예리해도 너무 예리했다.

“어떻게…….”

“집중하시죠.”

“……!”

근막을 빼내는 과정 하나에 수술 결과가 달라지긴 않기에, 정영구는 열었던 입을 다시 닫았다.

도수가 잠시도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수술을 진행한 것이다.

“보비.”

턱.

다시 받은 그는 대망(Greater omentum: 위의 아랫부분으로부터 전복벽의 안으로 쳐져 있는 넓은 막)과 횡행결정간막 사이를 잡아 들어 올린 후, 박리해결장(대망 끈) 부착부를 절제했다.

치이이이이익.

연기가 솟으며 십이지장과 횡행결장간막 사이의 유합근막이 물갈퀴 모양으로 남아 있는 게 보였다.

지금까지의 박리가 성공적이라는 의미다.

도수는 유합근막도 보비로 절제하기 시작했다

메스를 다루듯 정교한 움직임.

‘빠르다.’

정영구는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마치 인체 해부도를 클로즈업해서 보며 평면에다 연습하는 느낌이다. 좁은 절개부를 통해 보이는 근육들을 마치 내비게이션을 보고 따라가듯 순식간에 박리하는 모습은, 그를 경악에 빠지게 했다.

‘다섯 시간도 안 걸리겠어.’

이 속도로 끝까지 간다면, 그럴 것이다.

표준 수술 시간 여섯 시간.

그 같은 ‘췌두십이지장절제술’을 다섯 시간 만에 끝낸다는 건 도수가 최상급 실력을 가진 써전이란 반증이었다.

그가 놀라는 순간에도 수술은 줄기차게 진행되고 있었다.

도수가 말했다.

“클램프.”

턱,

겸자를 받은 도수가 복잡하게 엉킨 장기와 근육들 사이로 보이는 부우결장 정맥을 절제하고 유합근막을 마저 절제했다.

상장간막정맥(Superior mesenteric vein: 장간막내를 지나고 상행해 췌장의 두부 뒤쪽을 지나 문맥으로 유입되는 정맥)에 이를 때까지 근육을 잡아 빼내자, 가동화(Mobillization: 지방산이 혈액에 의해 수송되는 지질로 전환되는 것)된 췌두십이지장부가 눈에 들어왔다.

“잘 됐군.”

정영구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뱉었지만.

도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한결같이 침착했다.

“이제 시작인데요.”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그의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십이지장수평부를 들어 올린 도수가 말했다.

“쿠퍼 가위.”

서걱, 서걱.

십이지장 주위의 결합조직을 가위로 절제해 트라이츠인대를 길게 늘어뜨린 도수는 다음 위결장정맥간을 클램프로 집고 절제했다.

서걱.

그러자.

마침내 절제해야 할 췌두십이지장부의 윤곽이 모습을 드러냈다.

췌두십이지장 절제로 종양이 모두 절제 가능할지 판단해야할 순간이 온 것이다.

“이런…….”

정영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애매했기 때문이다.

다른 의료진들도 침음을 삼켰다.

“음…….”

그들이 수술 전 생각했던 것보다 배 속의 상황은 비극적이었다. 이대로 췌두십이지장절제술을 강행했을 때 종양 부위가 완전히 절제되지 않는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헛수고가 되는 셈이다.

췌장암은 재발할 테고, 환자는 사망할 것이다.

하지만 도수는 이미 투시력으로 암의 침습부를 보고 있었다. 할리 무어 장군을 수술했을 때처럼, 아슬아슬하게 생존할 정도만 남기고 암을 절제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알면서도 물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주치의는 정영구다.

도수가 멋대로 결정해서 수술한다면 그는 반감을 갖고 배를 닫을지 몰랐다.

정영구의 입에서 ‘닫지’라는 말이 나온다면 어떻게든 설득해야겠지만, 일단은 그에게 지휘봉을 넘겨주었다.

아마 정영록이라면 자신의 경력을 위해 닫는 쪽을 선택하겠지만.

그래도 정영구는 환자의 생존에 대한 열정이 더 높았다.

“할 수 있겠나?”

“네.”

“힘들 것 같으면 얘기하지. 내 생각보다 어려운 수술이 됐어. 실력은 잘 봤으니 부담 갖지 말고 멈춰도 좋아. 나머진 내가 해결하지.”

“불안하시면 칼자루를 넘기겠습니다.”

“‘불안하면’ 넘기겠다고?”

“네. 전 자신 있습니다.”

도수는 굳이 환자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수술에 대한 야심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 것일까?

정영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없다면 멈췄겠지. 그대로 진행하자고.”

그는 어느새 도수의 열정에 동화됐다. 함께 수술을 한다는 건 남자끼리 목욕탕을 가거나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것과 흡사했다. 적어도 정영구에게는 그렇듯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도수가 그저그런 써전이었다면 교감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이미 교감을 넘어 어떠한 유대가 생긴 기분이었다.

물론 도수는 그렇지 않았다.

수술은 수술.

유대는 유대.

그가 대답했다.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목적이 같으니 내외할 필요는 없었다.

스윽.

멈추었던 도수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클램프, 칼.”

“보비가 아니라?”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시간을 단축시키죠.”

“출혈은?”

“비슷할 겁니다.”

칼로 잘라내는 것과, 전기로 지지면서 지혈을 동반하는 보비를 쓰는 것과 출혈량이 비슷하다고?

정영구는 믿을 수 없었지만, 마냥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없었다.

이미 믿기지 않는 속도를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메스 줘.”

그 지시에 간호사가 메스를 건넸다.

턱.

칼자루를 잡은 도수가 칼끝을 움직였다.

석, 서걱.

속도가 붙었다.

고무처럼 질긴 근육은 보비로 절제하는 편이 수월했으나 부드러운 장기는 메스가 더 빨랐다.

이론적으론 그렇다 쳐도.

말이 쉽지, 근육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혈관이 뒤엉킨 심부(深部)를 보비 대신 메스로 헤집었다간 자칫 환자 배 속이 피 투성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수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놀라운 칼솜씨, 그리고.

샤아아아아아아아.

훨씬 더 향상된 투시력.

지난 고난도 수술을 거치면서 투시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렸던 덕분에 전과 달리 지금은 육안으로 보기 힘든 혈관들조차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야 사이로.

메스 날이 귀신같이 움직였다.

석, 서걱!

“미친…….”

정영구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다른 의료진들 역시 눈을 부릅뜬 채 잘 보이지도 않는 장기, 혈관들 사이로 번쩍이는 메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혈관도, 내막도 손상되지 않았다.

추후 절단면 누출이나 동맥류 형성이 되지 않도록 완벽하게 수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신기(神技)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리게이션.”

촤아악!

“석션.”

치이이이이익!

그와 함께 점차 강화되는 투시력.

샤아아아아아아.

“클램프, 가위.”

도수는 수술 도구를 바꿔가며 순식간에 수술을 진행했다.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배 속으로 들쑥날쑥하던 그는 위 절제의 순간까지 도달했다.

위, 담관, 췌장, 공장을 절제하고 췌관과 공장을 문합해야 하는 대수술.

뇌실질 혈종 제거나 바티스타 수술보다 높은 난이도를 가진 수술이라고 할 순 없지만 복잡한 수술임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삑. 삑. 삑. 삑.

여전히 환자의 바이탈 사인은 안정적.

이를 확인한 정영구는 고개를 들었다.

“대체 정체가 뭐냐?”

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정교하고 신속한 속도로 수술이 가능한 써전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든 말든 도수는 가볍게 대꾸했다.

“이도수입니다.”

“…….”

본인이 이도수라는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정영구는 자기도 모르게 나온 질문이었기에, 다시 묻지 않고 말했다.

“큰 수술이니 모두 긴장하도록.”

“예……!”

의료진들이 너나할 것 없이 답했다.

일련의 과정만으로도 도수는 스스로의 실력을 증명했지만.

췌두십이지장절제술은 이제 첫발을 뗐을 뿐이다.

도수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말했다.

“위 절제 들어가겠습니다.”

정영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는 더 이상 도수를 ‘광대’에 비유하던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물론 의료진들도 누구 하나 도수를 무시하지 못했다.

무턱댄 반감과 의구심으로 똘똘 뭉쳤던 이들이 강력한 우군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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