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26화 (126/152)

# 126

인터뷰

“좋아.”

매디 보웬이 말했다.

“그럼 인터뷰부터.”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조용한 객실로 이동했다.

매디 보웬과 도수가 마주 앉자, 매디 보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국 최대의 제약회사 B&W에 대해 할 얘기가 있으시다고요.”

그녀는 존대를 했다.

도수 역시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씀 부탁드립니다.”

“동일본 쓰나미로 인해 파견된 B&W의 구호팀은 부상자들에게 동의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시험 단계에 있는 신약을 실험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이뤄진 실험이었죠?”

“일단 부상을 입은 채 구출된 환자들을 고립시켰습니다. 신약을 투약할 만한 환경을 만든 거죠. 그다음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몇 가지 약물과 섞어서 투약했습니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고립됐던 환자들이 자신이 복용한 약물에 대한 의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만든 겁니다. 만약 그들 중 누군가 나중에 의심을 갖고 의혹을 제기하더라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약물을 투약받은 사람들이 다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합심해서 진실을 밝혀낼 수 없게 한 거죠.”

“B&W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약을 실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립된 환자들을 구출하지 않고, 여러 약물로 혼선을 주면서 신약을 끼워 넣었다는 건데요.”

“맞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처벌이 뒤따르지 않을까요?”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구속되고 천문학적인 벌금을 맞게 되겠죠.”

“B&W측도 그걸 알고 있을 텐데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 이상의 기업 홍보 효과와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것만으로는 동기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가 B&W 쪽 사람이 아니니 정확한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이 일로 얻게 될 손익에 앞서 자신들이 행한 범법 행위가 절대 밝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제가 듣기에도 모두 추측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들리니까요. 만약 범법 행위가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안 들킬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B&W는 이번 구호책임자의 약점을 쥐고 있습니다. 책임자만 입을 닫았다면 실제로 이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테고요. 저 역시 B&W의 악행을 모르고 지나쳤을 겁니다.”

“약점이요?”

“그 얘긴 B&W 구호책임자 마이크 휴잇 씨가 대답해 주실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매디 보웬이 마이크 휴잇에게 눈길을 돌렸다.

“마이크.”

“후…….”

길게 숨을 뱉은 마이크 휴잇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닥터 리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 딸은 확장성 심근병증이라는 선천적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바티스타 수술의 예후가 좋지 않고 이렇다 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B&W의 심장성형제 개발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원하는 몇몇 특정인들에게 시험 판매를 하고 있는 단계였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린 그 약을 받아 복용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복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심장성형제는 치료약이 아닌가요?”

“치료하는 데에는 지속적인 복용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강력한 중독성 때문에 아이가 힘들어했습니다.”

“중독성이요?”

“예. 마치 마약을 복용한 것처럼 금단증상이 심각했습니다.”

“그건 좀 이상하네요. 확장성 심근병증을 완치하게 되면 결국 약을 끊어야 할 텐데.”

“그렇습니다만 사실 그 자체로 큰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치료를 위해 마약성 진통제나 중독성이 있는 약물들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죠?”

“B&W의 일을 돕지 않겠다고 했더니 우리 딸을 심장성형제 시험 판매 대상에서 제외시켰던 것이 문제입니다. 무언의 협박인 거죠.”

“맙소사. B&W처럼 큰 회사가 개인을 협박한다고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충직하게 일선에 나서줄 총알받이가 필요했던 겁니다.”

“믿기 힘든 얘기네요.”

“이를 증명할 어떠한 증거도 없습니다. 다만 B&W의 구조선과 교신 내역이 있습니다. 부상자들이 고립돼 있는 것을 알면서도 구조를 미룬 내용입니다.”

“실험에 대한 내용도 있나요?”

마이크 휴잇은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은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아요.”

“그럼 결국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네요. 도의적인 책임 외에는.”

“…그렇습니다.”

“개발 단계에 있는 신약을 시험했다는 것을 알아볼 방법은 없나요? 가령 검사를 해본다거나.”

“그 역시 판매 중인 제품들 중 비슷한 약물들이 있어서 밝혀내기 어려울 겁니다.”

매디 보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녀는 꿋꿋하게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이상한 점이 있어요.”

“예.”

“이 사실이 보도되면 B&W는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거예요. 한동안 시끄러워지겠죠. 신약 실험이 사실이든 아니든 여론을 잠재우려면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필요할 겁니다.”

“그렇겠죠.”

“…그 사람은 마이크 휴잇 씨가 될 확률이 높고요. 제 생각만 그런 건가요?”

“아닙니다. 아마 제가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B&W에서 따님에게 제공하던 심장성형제를 중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심장성형제로 우리 부녀를 협박한 것을 자인하게 되는 셈이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을 겁니다.”

“더 이상 심장성형제를 제공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습니다. 우리 애는 닥터 리에게 심장성형술을 받을 거예요.”

“아……!”

“제가 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닥터 리의 실력을 직접 보고 나서입니다. 닥터 리가 우리 애를 수술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이제 닥터 휴잇의 행동이 설명되네요.”

그 순간.

도수가 나섰다.

“기사를 써주시는 건 기자님 몫이지만 꼭 실어주셨으면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뭐죠?”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고 있으신 분들은 비용 걱정 말고 모두 천하대병원으로 문의를 달라는 내용을 실어주십시오.”

매디 보웬이 눈을 치켜떴다.

“적지 않은 수술 비용이 든다고 알고 있는데… 비용을 무상 처리 해주시겠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라고 묻는 듯한 표정.

씁쓸하게 웃은 도수가 대답했다.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불안정한 약을 복용하고, 중독되고,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그렇게 대놓고 선언해 버리면 B&W에서 굉장히 의식할 텐데.”

“어차피 부딪혀야 할 관계입니다. B&W는 제가 심장성형술을 성공했을 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저만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저는 B&W가 정말 문제없는 심장성형제를 만든다면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태도를 바꾼 거죠?”

“B&W에서 해당 제품을 영업하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하지만 B&W는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큰 제약회사예요. 세계 각지의 병원들에서 그 회사 제품을 사용하고 있죠. 그런 곳을 비난한다는 것은 자칫 B&W만이 아닌 그들과 거래하고 있는 병원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일이 될 수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두렵지 않나요?”

도수는 매디 보웬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도수를 영웅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도수의 생각이 어떻든, 그편이 매디 보웬이 B&W의 비리를 밝혀내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도수는 순순히 응해주었다.

“그 힘을 믿고 B&W에서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면, 그 힘을 개의치 않는 누군가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닥터 리의 용기에 감명받았습니다.”

매디 보웬이 빙그레 웃었다.

“그 외에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예.”

도수가 말했다.

“전 얼마 전까지 내전이 끊이질 않던 라크리마에 있었죠. 기업부터 자선단체까지 수많은 구호단체들을 접해왔습니다. 그 경험에 빗대 생각하건대 구호가 필요한 지역은 대부분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받는 구호품이나 구호 활동의 진의를 의심하거나 분석할 여력도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여력이 된다 해도 일반인의 의료 지식으론 한계가 있고요. 그렇다고 정부에서 그 역할을 대신해 주지도 않는 실정입니다.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구호 인력이나 구호품에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의를 떠나 마땅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구호 물품들은 대부분 인체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흔하게는 먹을 것부터 시작해서 각종 약품, 의료 장비들까지.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인명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매디 보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목은 꼭 실어드리죠.”

빙그레 웃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고립돼 있던 부상자들 인터뷰 좀 따야겠어. B&W의 신약이 얼마나 뛰어난지 먼저 보도를 하고, 관심이 몰렸을 때 지금 한 인터뷰를 터뜨릴 거야. 말도 안 되게 효험이 좋은 ‘훌륭한 약품’이, 역시 말이 안 될 정도로 좋아서 ‘의심이 가는 약품’이 되도록. 지금 취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B&W의 양심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를 만하니 내가 굳이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을 받게 되겠지.”

“그런 오해를 막으려면 B&W에서 스스로 기존 약품들과 앞으로 나올 신약들을 검증할 수밖에 없겠군요. 검증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의심받아 마땅한 거고.”

“맞아. 신약의 부작용이 의심된다면 기존 약물들이라고 안심할 순 없는 거니까.”

“좋은 생각이에요.”

“그리고 넌 영웅이 될 거야.”

“예?”

“안 그래도 인천 선박 침몰 사건 때 현장에서 뛰던 모습이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어. 이번에는 본인도 죽을 뻔했으면서 그 와중에 고립된 부상자들을 치료했지. 네게 치료 받은 사람들은 B&W의 신약에서도 얘기하겠지만, 너에 대해서도 얘기할 게 분명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 대사도 꼭 써주지.”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도수는 어쩐지 낯간지러웠다. 정치인이라면 언론 플레이를 통해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겠지만, 도수는 의도적으로 뭔가를 노린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사람들을 치료하고, 더 많은 환자들이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의 생각이 어떻든.

아이러니하게도 사고, 재난, 질병, B&W의 시커먼 저의 같이 끔찍하고 흉물스러운 것들이 되려 도수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었다.

***

뉴욕 B&W 본사.

한 사람이 흐뭇한 표정으로 TV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세계적인 제약회사 <브라운&윌리암슨>의 중책을 맡고 있는 사내였다.

뉴라이프 프로젝트.

미래연구개발부의 부장.

다시 말해 B&W의 실세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일 하나는 참 잘해.”

그가 겨냥한 대상은 마이크 휴잇이었다.

이학승에게 듣기로, 그가 유명한 타임즈 기자를 데려와서 잘 구워삶은 부상자들에게 B&W의 신약 효능을 증명하는 인터뷰를 했다고 들었다.

B&W 본사에선 단순히 ‘언론 보도’만 지시했을 뿐인데 퓰리처상까지 받은 거물을 데려와서 취재할 줄이야.

그야말로 센스가 있었다.

흡족하게 TV를 통해 일본 쓰나미 현장에서 날아온 소식을 감상하는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네.”

-보스. 뉴욕포스트의 폴 콘리 기자입니다.

“연결해요.”

곧, 폴 콘리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다급하고 초조한 음성.

불길한 느낌을 받은 남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뭡니까?”

-뉴욕타임즈에서 B&W에 대해 공격적인 기사를 실을 예정이랍니다.

충분히 당황할 만한 소식이었으나.

남자는 내색하지 않고, B&W에 대한 칭찬 일색인 TV를 주시하며 다시 물었다.

“내용은?”

-대략적인 것밖에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B&W의 구호선박이 근처에 있었음에도 고립된 부상자들을 방치했다는 것. 그리고 구호책임자로 파견됐던 마이크 휴잇이 증언을 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놈이 증언을 했다고?”

-예.

남자는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센스 있게 일 처리를 해주는 덕분에 지금 TV에선 B&W의 신약에 대한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는 판국에.

‘배신을 했다고?’

딸아이 목숨이 저당 잡힌 자가 배신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당장 심장성형제를 제공받지 못하면 언제 목숨이 달아날지 모르는 아이다.

‘확장성 심근병증’이라는 것은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는 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대부분은 갑작스러운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기도 했다.

딸이 그런 상황에 처했는데 배신이라니.

“착오가 있는 것 아닌가?”

-아닙니다. 그리고…….

“또 있어?”

-이건 더 정확하지 않은데, 이도수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들었습니다. 그자가 향후 B&W의 해외 구호 활동에 제동을 거는 발언을 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

남자의 표정이 돌변했다.

방금 전만 해도 들떴던 기분이 서서히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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