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조우
일본에 도착한 매디 보웬은 즉시 현장으로 갔다. 가장 먼저 쓰나미가 덮친 이후 현장을 취재한 그녀는 동일본병원에 들렸다.
그러나 도수를 만날 수는 없었다.
“…실종된 상태입니다.”
통역가를 통해 소식을 들은 매디 보웬의 눈꺼풀이 떨렸다.
“실종이요? 그게 무슨 소리죠?”
아사다 류타로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출동 나갔다가 여진으로 인한 이차 쓰나미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진작 막았어야 했는데…….”
“맙소사…….”
매디 보웬은 다리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항상 위험한 곳을 전전하던 도수.
그러나 매번 영웅적은 면모를 보이며 무사히 부상자들을 구출해 왔다.
그래서 간과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날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수만큼은 이런 끔찍한 사고를 당하지 않으리라고.
“대응은요? 찾고 있나요?”
“예. 최선을 다해 찾고 있습니다. 언론에는… 아직 공개하지 말아주십시오.”
“…….”
“닥터 리의 실종이 국제사회에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를 고려한 일본 총리께서 직접 특별 지시를 내리셨다고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정부 측 요청입니다.”
“이틀.”
“예?”
“이틀 기다리겠다고 전해주세요.”
매디 보웬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쓰나미가 덮친 전 지역을 수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하루. 그 외 시설들을 탐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하루.
이렇게 이틀이 지나도 도수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지금쯤 바다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가 사라진 시간을 감안했을 때, 표류하고 있다면 그건 살아 있는 도수가 아닌 시신일 터였다.
아사다 류타로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매디 보웬은 미세하게 떨려오는 손을 등 뒤로 감추며 몸을 돌렸다.
‘이렇게 가려고 그 전쟁통에서 살아 돌아왔던 거야?’
식은땀이 흘렀다.
도수의 실종.
그게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살아 있지?’
그녀는 창밖의 회색빛 하늘을 일별하곤,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강미소, 이하연, 나유하가 눈이 퉁퉁 부은 채 초상집 분위기로 앉아 있었다.
왈칵.
매디 보웬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저기 껴서 함께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자.
입술을 깨물고 그들에게 가서 말을 붙였다.
“저는 뉴욕타임즈의 매디 보웬입니다. 실종된 닥터 리와는 친분이 깊었어요. 여러분들이 닥터 리와 함께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시죠?”
***
기적이 일어난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도수의 소식은 병원이 아닌 매디 보웬의 개인 번호로 들어왔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벨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매디 보웬이 전화를 받았다.
“매디 보웬입니다.”
-오랜만이에요, 매디.
“……!”
벌떡.
몸을 일으킨 매디 보웬이 이불을 발로 걷어차며 물었다.
“닥터 리?”
-맞습니다.
“뭐야? 몸은 괜찮은 거야? 이게 다 어떻게 된…….”
-하나씩.
“뭐라고?”
-하나씩 물어보세요.
“아!”
매디 보웬은 얼굴이 붉어졌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막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재수 없네. 사람들 걱정은 혼자 다 시키고.”
-미안합니다. 사정이 있었어요.
“무슨 사정?”
-구조 작전 중에 쓰나미에 휩쓸렸습니다.
“들었어.”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일본이에요?
“그래.”
-이쪽으로 좀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도수의 말을 들은 매디 보웬은 즉시 수첩을 폈다.
“어딘데?”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어요. B&W의 윌리암슨호고, 일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항해하고 있습니다. 헬리콥터를 이용하시면 될 거예요. 찾아올 수 있겠어요?
B&W?
뜻밖의 상호를 들은 매디 보웬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지금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모든 것은 만나면 밝혀질 터.
그녀가 간단히 답했다.
“나 매디 보웬이야.”
-그럼 오셔서 뵙죠.
“그때까지 몸조리 잘하고 있어. 다친 덴?”
-괜찮습니다.
“오케이.”
전화를 끊은 매디 보웬은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디 보웬이에요.”
-그곳 상황은 어때?
“생각보다 피해가 커요.”
-뉴스를 통해 소식은 들었어. 자넨 우리 회사의 중역이니 무리하지 말고 몸을 아끼게. 남들 다 취재하는 빤한 뉴스에 목숨 걸지 말란 뜻이야. 이제 자네도 일선 기자는 아니니까…….
“보스.”
-왜?
말을 자른 매디 보웬이 덧붙여 물었다.
“제가 언제 빤한 기삿거리 가져간 적 있어요?”
-뭐?
그녀의 상사는 오래 손발을 맞췄던 파트너답게, 그 질문에 담긴 의미를 금세 알아챘다.
-새로운 소식이 있는 건가?
“이도수 선생. 기억하세요?”
-자네가 라크리마에서 취재했던?
“맞아요.”
-한국에서도 굉장한 활약을 했다면서.
“한국만이 아녜요. 일본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으니까.”
-어떤 활약?
“일본 국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직접 출동했다가 실종됐었어요. 얼마 전까지.”
-얼마 전까지?
“지금은 B&W 소유의 선박에 탑승하고 있더군요.”
-B&W라면…….
“맞아요. 우리가 캐던 제약회사.”
-구린내가 나는데.
“직접 가서 확인해 보려고요. 근데 B&W의 선박이 바다 한가운데 있어서 위치를 파악하기도, 이동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에요.”
-선박 이름은?
“윌리암슨호.”
-내가 알아봐 주지.
대답을 들은 매디 보웬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부탁드려요.”
-누구 부탁이라고. 알겠네. 그럼 끊지.
전화가 끊기자마자.
매디 보웬은 도수를 만나러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도수가 자신에게만 우선적으로 연락한 점. 또한 돌아와서 이야기하지 않고 그녀를 B&W의 선박으로 초대한 것으로 미뤄 볼 때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여겼다.
“B&W… 자꾸 엮이네.”
매디 보웬의 눈이 반짝였다.
***
타타타타타타타타!
매디 보웬은 대사관에서 지원해 준 헬리콥터를 타고 윌리암슨호로 향했다.
동일본병원에서 도수가 있는 위치까지 걸린 시간은 사십 분.
그녀가 탄 헬리콥터가 착륙하자, 미리 소식을 들은 마이크 휴잇과 도수가 마중을 나왔다.
“마이크 휴잇입니다.”
“매디 보웬이에요.”
두 사람이 악수를 했다.
그사이 매디 보웬은 상대를 관찰했다.
‘마이크 휴잇?’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B&W 측에서 구호팀장으로 여기저기 파견했던 남자다.
외상외과 파트에서 제법 명성을 날린 권위자로, 얼마 전까지 소말리아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었다.
“소말리아에선 언제 오신 거예요?”
“저에 대해 잘 아시나 보군요.”
“B&W를 조사하고 있어서요.”
“타임즈에서 B&W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타임즈가 아닌 저 하난데요.”
“뭐… 어쨌든.”
“그나저나 이상하네요.”
그녀는 도수를 일별했다.
“두 사람 같이 저를 마중 나오다니. 마치 한패 같잖아요?”
빙그레 웃은 도수가 한 발 다가오며 말했다.
“비슷합니다. 이차 구호팀 책임자인 이학승 사장은 기자가 온다는 걸 모르고 있어요. 기자님을 저와 인연이 깊은 외상외과 전문의로 알고 있죠.”
이학승 사장은 B&W 한국지사 사장이었다.
매디 보웬이 눈을 치떴다.
“이학승 사장? 그 사람이 직접 B&W 구호팀을 이끌고 있다고요?”
“그렇게 됐습니다. 자세한 얘긴 들어가서 하시죠.”
세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미팅 룸으로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이학승이 세 사람을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이학승입니다.”
“매디 보웬이에요.”
그녀가 소속과 직업을 밝히지 않고 도수의 눈치를 살피자.
피식 웃은 도수가 말했다.
“타임즈 기자님입니다.”
“……!”
이학승이 눈을 치떴다.
그러더니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그 질문에 대답한 것은 마이크 휴잇이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우리 B&W의 신약이 얼마나 기막힌 효험을 가지고 있는지, 현장에 있었던 환자들 증언을 취재하러 오신 거니까요.”
“그럼 왜 내게 타임즈 기자분이 오신다고 솔직히 말하지 않은 겁니까? 상부에 보고도 않고 이런 짓을 벌이다니.”
“우리가 그런 걸 일일이 보고할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게다가 제가 따로 기자분을 모신 걸 이학승 팀장이 아셨다면 막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인한테 호의적인 기자들을 따로 부를 테니까. 뭐, 어쨌든 상부에는 제가 따로 보고서를 올릴 생각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마이크 휴잇이 빙그레 웃자.
이학승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이런 분이셨습니까?”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우리 관계에 따라 달라지겠죠. 솔직히, 아직까진 당신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우린 조금 더 알아갈 필요가 있겠군요.”
그렇게 대답한 이학승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기자 앞에서 B&W의 내부적인 분란을 대놓고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그는 마이크 휴잇의 표정을 자세히 뜯어보았으나 속내를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추측은 가능했다.
‘공로를 내게 넘기기 싫은 건가?’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마이크 휴잇은 B&W 구호책임자로서 은밀히 전달된 본사의 밀명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신약을 시험할 환자들을 발굴해 냈고, 그들을 한데 모아 기존에 판매되고 있던 신약과 실험할 신약을 적절히 섞어 투약했다.
그 대가로 팀원들을 잃었지만 어디까지나 사고로 인한 과실.
본사에선 그의 공로를 인정해 줄 터였다.
한데 여기서 이학승이 이차 구호팀 책임자로 투입되면서 자신이 이룬 공로가 모두 이학승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본사에선 현장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현장을 정리하는 책임자는 이학승이 될 것이므로.
‘머리 좀 썼군. 그런데…….’
그의 눈길이 도수를 향했다.
‘이 자식은 뭐야?’
이곳에 있으면 안 될 인물이 이곳에 있었다.
그 시선을 빤히 마주친 도수가 미소를 지었다.
“두분 모두 너무 날 세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B&W의 신약을 투약받고 심각했던 부상을 고통스럽지 않게 치료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너나할 것 없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환자들에게도, B&W에게도요.”
“허.”
이학승은 헛바람을 뱉었다.
‘이놈 봐라?’
설마.
자신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해 놓고 마이크 휴잇에게 붙은 것인가?
B&W 신약의 효능을 보고 B&W 쪽에 투신하기로 태세 전환 했다?
가장 그럴듯한 가설을 세운 이학승이 말을 이었다.
“그것참 다행입니다. 국제사회에 적잖은 영향력을 떨치고 계신 분이니. 몸 성히 한국으로 돌아가셔야지요.”
비아냥대는 투가 역력했다.
도수가 지금 와서 B&W를 돕는다면, 자신만 물 먹은 게 되는 셈이다.
그가 이런 위험한 곳까지 와서 구호팀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모두 도수 때문이었다.
B&W 한국지사장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내지 못했기에.
지금은 자신의 실을 공으로 덮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 같은 입장이 전혀 관심 없는 도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할 일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기자님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도수가 매디 보웬과 함께 미팅룸을 나갔고.
마이크 휴잇도 뒤따라 목례를 했다.
그때, 이학승 사장이 발목을 잡았다.
“뭡니까?”
“뭐가요?”
“닥터 리는 우리 회사에 반감이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요. 그게 중요한 겁니다. 우리 회사 약을 먹고 목숨을 구했고, 지금은 우리 회사 약을 국제사회에 홍보해 줄 키 맨이 됐습니다.”
“…….”
이학승이 미간을 찌푸린 채 할 말을 잃은 사이.
마이크 휴잇이 문을 열고 나서며 덧붙였다.
“그럼 저도 제가 맡은 임무를 끝까지 책임지고 완수하러 가보겠습니다.”
***
미팅룸을 나선 매디 보웬은 도수의 뒤를 쫓다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자 걸음을 멈췄다.
“무슨 생각이야?”
도수가 고개를 돌렸다.
“뭐가요?”
“좀 혼란스럽네.”
“……?”
“몸이 괜찮은 건 반가워해야 할 일인데. 지금은 반가운 마음이 식으려고 해. 정말 B&W를 돕기라도 할 셈이야?”
“신약에 문제가 없다면 못 도울 것도 없죠.”
“심장성형제를 복용한 사람들을 보고도…….”
“그 부작용의 원인이 심장성형제란 것도 확실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너, 어떻게……!”
피식.
웃은 도수가 대답했다.
“농담입니다. 최대한 이목을 끌어야 폭탄을 터뜨렸을 때 화력이 멀리까지 가죠.”
“그 얘기는?”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B&W의 신약은 지금 당장 느꼈을 땐 정말 신묘한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신약이 심장성형제와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졌다는 거죠. 같은 부작용을 가졌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해? 부작용을 증명할 방법이라도 찾은 거야?”
“아직이요.”
“그런데?”
매디 보웬이 고개를 갸웃하자.
도수가 차분하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어차피 단숨에 무너질 기업이 아닙니다. 일단 의혹 정도만 키워도 돼요. 진실을 알려서 B&W에 대한 의혹을 심어두면 나중에 부작용을 밝혀냈을 때 기폭제 역할을 할 겁니다. B&W는 쓰나미로 인해 고립된 부상자들을 일부러 구출하지 않고 그들에게 신약을 시험했어요. 이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반향이 있을 겁니다.”
“증거는?”
“증인은 있죠.”
도수가 매디 보웬의 어깨 너머를 향해 턱짓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뒤따라온 마이크 휴잇이 입을 열었다.
“제가 증인입니다. 직접 회사로부터 지시를 받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