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24화 (124/152)

# 124

마이크 휴잇은 믿기 힘들었다.

철근에 옆구리가 찔려 폐까지 손상된 환자를 간단히 수술해 내다니.

외상외과 전공의 써전인 그이기에 더 와닿았다.

‘말도 안 돼.’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비장이 파열되고 간이 부서진 환자.

그 외에도 장기나 혈관이 손상된 환자들을 척척 수술했다.

‘닥터 리한테 맡기길 잘했어.’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도수의 손놀림만 봐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써전인지 느낄 수 있었다.

“보비.”

턱.

“켈리.”

서걱, 서걱.

순식간에 의료 도구들이 바뀌며 끔찍했던 환자들의 상처가 가지런하게 정리됐다.

장기, 혈관만이 아니었다.

정형외과에서 담당하는 뼈.

그리고 신경외과 파트인 신경에 문제가 생긴 환자까지.

도수는 여러 파트를 넘나들며 수술에 임했다.

‘역사상 이렇게 다양한 방면에 두각을 드러냈던 써전이 있었던가?’

마이크 휴잇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분명 오늘 이 순간이 되기까진 소문이 과장됐다고 여겨왔다. 상식적으로 바라봤을 때 도수의 존재가 규격 외의 케이스였으니까. 그의 수술 실력도 여론의 바람을 받아 많이 불려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건…….’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

소문은 약과였다.

직접 본 도수의 실력은 소문을 한참 뛰어넘는 경지였다.

왜 그 정도만 알려졌는지 의아할 만큼 차이가 심했다.

‘게다가 검사도 하지 않은 상태의 환자를 자유자재로 수술하고 있어. 현대의학조차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의 감각을 가진 외과의라.’

투시력을 모르는 그는 모든 것을 ‘감각’으로 치부했다. 하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마이크 휴잇의 입장이었다.

그는 입을 쩍 벌린 채 도수의 손끝을 눈으로 좇았다. 뿐만 아니라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빠져들었다.

슥, 스윽.

마이크 휴잇이 봐왔던 어떤 외과의도 따라잡기 힘든 정교함과 속도.

도수의 손놀림은 두 가지 써전의 판단 가치를 자동 탑재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외과의들의 손놀림이 마치 죽은 물고기 같다면, 도수의 손놀림은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활어(活魚) 그 자체였다.

감탄을 넘어 감동이 느껴질 지경이다.

따라서 마이크 휴잇의 심장도 함께 뛰었다.

두근, 두근.

‘어쩌면.’

딸아이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이자라면…….’

완치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B&W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도수라면 그 질긴 악연의 끈을 잘라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수가 결정적인 유명세를 얻은 것은 심장성형술이란 신종 수술법으로 임옥순 여사를 살린 후.

그 사실만은 팩트고, 도수의 솜씨를 직접 보니 그저 행운에 기대어 이룬 결과는 아닌 듯했다.

딸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자 절로 긴장이 됐다.

“후…….”

웃음기가 가신 마이크 휴잇의 얼굴.

그 얼굴을 훔쳐보던 샤론 카퍼렐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그녀는 오래도록 마이크 휴잇과 손발을 맞춰온 한 팀.

그래서 B&W의 이번 프로젝트에도 그를 따라 가담한 것이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지금 마이크 휴잇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B&W에서 심장성형제를 받았을 때도 지금과 같은 표정과 눈빛을 하고 있었으므로.

‘설마… B&W를 떠나시려는 건가?’

그동안.

두 사람은 B&W의 일을 처리하면서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의료인으로서 달가울 만한 일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샤론 카퍼렐리는 기쁨보단 불안감을 느꼈다. B&W의 힘이 얼마나 강대한지 잘 아는 그녀이기에. 한국의 일개 써전인 도수보단 B&W가 더 신경이 쓰이는 그녀였다.

***

두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도수는 오로지 수술에 집중하고 있었다.

“컷.”

툭!

실밥이 잘려 나갔다.

고개를 든 도수가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환자 보죠.”

쉴 틈이 없었다.

마이크 휴잇의 눈치를 보던 중 화들짝 깬 샤론 카퍼렐리가 대답했다.

“예……!”

“그리고.”

도수가 그녀를 향해 칼같이 지적했다.

“좀 더 긴장해 주세요. 연달아 환자를 받느라 피곤한 건 알지만, 집중력이 떨어지면 안 됩니다.”

“…예,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여 보인 샤론 카퍼렐리가 막사 밖에서 다음 환자를 데리러 갔다.

그 틈에 소독을 하는 도수를 빤히 응시하던 마이크 휴잇이 그 자신도 손을 소독하며 물었다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은데.”

도수는 의외였다. 그가 먼저 이런 말을 던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왜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까?”

“물어보면 대답해 주실 겁니까?”

“…….”

침묵을 지키던 마이크 휴잇은 다시 한번 도수의 예상 밖으로 달아났다.

“얘길 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손을 문지르던 도수의 손놀림이 멈췄다.

“해주세요.”

“뭐든 물어봐 준다면.”

“좋습니다.”

도수가 다시 손 소독을 재개하며 말을 이었다.

“환자들은 상당히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것에 비해 두 분은 태연해 보이시더군요. 이곳에는 환자를 돌보면서 버틸 인력이나 물자가 현저히 부족한데도.”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B&W의 선박이 있습니다.”

“……!”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도수가 물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여기서 이렇게 고립돼 있냐는 뜻이다.

한숨을 내쉰 마이크 휴잇이 대답했다.

“우리와 함께 왔던 구조팀은 모두 물살에 휩쓸렸고 오직 샤론과 저만 남았습니다. 그에 비해 환자들은 많이 남았죠. 아주 곤란하고 열악한 상황이죠. 그리고 이렇게 곤란하고 열악한 상황이라야 우리가 환자들에게 어떤 응급조치를 하든 용인이 됩니다. 가령 여러 케이스의 환자에게 진통제 효과가 있는 B&W의 신약을 쓴다든지.”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럼 B&W에서 자신들의 신약을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두 분과 환자들을 내버려 두고 있단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런 미친.”

도수는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은 그 미친 짓에 동조했고?”

마이크 휴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도수가 멱살을 틀어쥐고 밀쳤다.

콰앙!

등을 벽이 부딪친 마이크 휴잇이 작은 신음을 뱉고는 고개를 들었다.

“후… 당신이 얼마나 큰 분노를 느끼고 있을지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내 딸 역시 B&W의 심장성형제를 복용한 상태입니다.”

“…뭐라고?”

“방법이 없었어요. 부모는 자신이 악마가 돼서라도 천사 같은 자식을 살리고 싶은 심정뿐입니다. 그렇다고 내 죄를 합리화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닥터 리, 당신이 심장성형술을 공개하기 전까진 내 딸이 앓고 있는 확장성 심근병증의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도수는 밖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 많은 사람들의 피를 일부러 말리고 있다고? 그게 의사란 사람이 할 말인가?”

“B&W는 심장성형제에 들어가는 성분 중 일부가 심장병 치료 목적 외에도 쓰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케이스의 환자들에게 직접 투약해 볼 기회를 잡은 겁니다.”

“이게 기회라고?”

“제가 얘기하지 않았다면, B&W에서 개발한 신약의 효과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겁니다. 안 그래도 실종 처리 된 환자들은 메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이들이 벌 떼처럼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 B&W의 의료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얘기한다면? 그리고 B&W에선 그들이 먹은 약품이 현재 시판을 앞둔 신약이란 사실을 발표한다면?”

그가 미끼를 던지자 도수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었다. B&W는 지금 이 끔찍한 재난 상황을 철저히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홍보 목적으로, 또는 제품의 새로운 판매 루트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저열한 상술에 이곳에 갇힌 환자들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고.

“악랄하군.”

도수가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풀며 물었다.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만약 마이크 휴잇이 말하지 않았다면 도수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알아냈다 하더라도 증거가 없다면 달라지는 건 없었을 터.

하지만 도수가 이 모든 사실을 알아낸 이상 마이크 휴잇은 죄값을 받아야 할 테고, B&W 역시 비난을 피해 가지 못하게 된 셈이다.

침묵하던 마이크 휴잇이 어렵사리 대답했다.

“재난상황내가 B&W의 앞잡이가 돼서 이런 만행을 저지른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닥터 리, 당신이 내 딸에게 심장성형술을 해줬으면 합니다.”

도수는 즉답하는 대신 질문을 바꿨다.

“이 일이 끝난 후 그 애를 내게 보냈으면 될 일을. 왜 굳이 밝히는지 모르겠군.”

어느 정도 비아냥대는 말투였으나 마이크 휴잇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나 역시 좋아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를 안고 있으면 내 딸이 수술을 받는다 해도 하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나와 B&W는 죗값을 받을 겁니다.”

“아니.”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B&W는 이 정도 일로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거야.”

“그렇겠죠.”

“당신이 독박을 쓰겠지.”

“괜찮습니다.”

“B&W에 원한이 있나?”

마이크 휴잇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들은 내 딸을 중독시켰습니다. 지금은 심장성형제를 복용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자들은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을 앓고 있는 내 딸을 이용해서 나를 악용해 온 겁니다.”

그가 뱉는 말에서 도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마이크 휴잇이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까지.

“…B&W의 심장성형제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모르고 있나 보군.”

마이크 휴잇이 눈을 부릅떴다.

“부작용……?”

도수 역시 매디 보웬을 통해서. 그리고 아버지나 엄승진을 통해 여러 번의 우연이 겹쳐 알아낸 사실이니, 마이크 휴잇이 부작용에 대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가 만약 부작용에 대해 알았다면 도수에게 모든 것을 토로하진 않았으리라.

“그래, 부작용.”

도수가 말을 이었다.

“만약 당신 딸의 심장을 심장성형술로 치료한다 해도 B&W의 심장성형제를 오래 복용한 부작용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나도 정확히 어떤 시기에 어떤 증상이 발생하는 부작용인지까진 알지 못해. 만약 B&W의 심장성형제가 독약이라면 중독됐을 시 어떤 해법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그게 무슨……!”

마이크 휴잇의 얼굴이 휴지 조각처럼 구겨졌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얼마 전까지 은은하게 입매에 감돌던 미소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그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부작용이라니……. 그런 말은 없었어.”

“굳이 당신한테 얘기할 이유가 없지.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보안 유지에 유리할 테니.”

“그 개새끼들이……!”

마이크 휴잇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한편 도수는 힐긋 문 쪽을 바라봤다. 곧 샤론 카터렐리가 환자를 데려올 시간이었다.

해서, 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마이크 휴잇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비관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정신 바짝 차려보자고. 내 환자 중에 심장성형제를 장기 복용 한 환자가 있다. 그가 겪은 부작용은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난 심장성형술로 그 환자를 살려뒀어. 하지만 언제 또 부작용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 환자와 당신 딸, 그리고 또 다른 심장성형제를 복용한 환자들. 난 힘닿는 데까지 그들 모두를 완치시킬 거야.”

“…….”

마이크 휴잇은 도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완치시켜 주겠다고?’

믿어도 될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주워 담을 수 없다.

더구나 도수는 그가 봐온 실력자 중 으뜸가는 실력자.

그가 할 수 없다면 어떤 의사라도 해낼 수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마이크 휴잇은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만… 해주십시오. 그럼 뭐든 하겠습니다.”

그가 머리를 떨구며 말했고.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내 일에 집중할 테니,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당신 딸 같은 아이가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 속죄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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