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마이크 휴잇은 도수가 부탁한 대로 착착 수술 준비를 진행했다.
임시로 간이 수술실을 만들고 수술 도구들을 들여놓은 것이다.
무균 수술실까진 아니었으나 제법 그럴듯했다.
그때, 간호사 샤론 카퍼렐리가 물어왔다.
“마이크. 괜찮겠어요?”
“뭐가?”
“그에게 수술시킨 걸 알면 본사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마이크 휴잇은 표정을 미묘하게 비틀었다.
샤론 카퍼렐리의 우려가 빗나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근래 다시 한번 영웅으로 명성을 떨치며 B&W의 골칫거리로 자라나고 있는 도수다.
순항하고 있는 B&W의 암초.
그것이 B&W의 판단이었다.
허나 마이크 휴잇에게는 B&W에 대한 충성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샤론. 여기 있는 몇 사람만 입을 닫으면 이 사실이 알려질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환자들이 있잖아요?”
“닥터 리가 수술을 강행했다고 하면 될 일이야.”
“아…….”
확실히.
그렇게 되면 마이크 휴잇이 권한 것이 아닌 게 된다.
초조한지 입술을 축인 샤론 카퍼렐리가 물었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환자들의 증상은 마이크, 당신도 대부분 파악하고 있잖아요? 직접 수술할 자신도 있을 테고요.”
“그래.”
마이크 휴잇은 부정하지 않고 웃었다. 그는 B&W에 용병 같은 개념으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구호팀장을 맡을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마이크 휴잇의 목적은 환자의 치유가 아니었다. 도수가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그 과정이 궁금했다.
“샤론. 자네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백전백승이라고 했어. 닥터 리의 수술법을 내 눈으로 보고 판단하지.”
“뭘 판단해요?”
“정말 회사에서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아직도 판단이 안 서신 거예요?”
“난 내가 본 것만 믿어. 특히 닥터 리에 대한 소문은 워낙 믿기 힘든 것들이 많아서.”
“하긴…….”
샤론 카퍼렐리도 여러 가지 의구심을 지닌 상태였다. 아니, 도수의 수술법을 접한 외과 소속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같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정말 소문만큼 수술을 잘할까?’
소문이란 입에서 입을 통하다 보면 어느 정도 부풀려지기 마련.
샤론 카퍼렐리 또한 새삼 궁금해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보게 될 거야.”
그렇게 중얼거린 마이크 휴잇은 예의 그 뜻 모를 미소를 보였다.
‘부디 소문이 사실이었으면 좋겠군.’
그에게는 B&W의 일을 돕는 데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그가 굳이 병원을 떠나 이 일을 시작한 이유.
바로 심장성형제 때문이었다.
하나뿐인 그의 외동딸. 아내와 사별한 뒤 유일하게 남은 삶의 희망. 그 아이는 하필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고 있었고, 아직은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사망할 확률이 크기 때문에 그 전에 고쳐야 하는 상황.
B&W에서 심장성형제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약을 구하려던 시점에 B&W에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회사에 대한 모든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 구호팀에 소속되어 B&W 신약 배포에 힘쓸 것을 약속했다.
그 대가로, 심장성형제와 부작용 억제제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억제제만 있으면 심장성형제는 평생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테고.
딸을 치료할 수 있을 테니까.
천사 같은 딸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자신은 쓰레기든 악마든 무엇이라도 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도수의 소식을 들었다. 확장성 심근병증을 수술적 방법을 써서 치료했다는 소식.
예후는 호전적이라고 했으나 부작용에 대한 것은 아직 알 수 없었다.
아니, 도수가 그 수술을 매번 성공할 만한 실력을 가졌는지도 의문이었다.
의사에게는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끊이지 않지만, 정작 환자한테는 목숨을 건 수술이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단번에 성공해야 한다.
그렇기에 마이크 휴잇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도수가 우연에 기대 기적적으로 단 한 번의 대수술을 성공했던 건지.
아니면 정말 그런 수술을 척척 해낼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졌는지.
마이크 휴잇은 도수에 대해 조사를 했을 뿐 그를 이런 식으로 만나리라곤 예상치 못했으나, 만난 이상 직접 볼 요량이었다.
도수의 실력을.
‘제발 그만한 실력을 가졌길 바란다.’
항상 웃고 있어도 속내는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는 마이크 휴잇은 진심으로 기도했다.
***
두 사람이 간이 수술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손을 마사지하던 도수는 몸의 변화를 감지했다.
‘어처구니가 없군.’
결코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은 게 확실한데.
처음 깨어났을 때와 지금 컨디션은 또 달랐다.
아까보다 점점 더 컨디션이 업되고 있는 것이다.
‘각성 효과.’
한데 일반적인 각성 효과와는 조금 달랐다.
도수야 심장성형제 성분에 마약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는 추정을 하고 있으니 의심을 하는 것이지만 다른 이들이라면 마약을 해본 사람도 쉽게 마약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몸이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각성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몸이 좋아지고 있는 느낌이라니.’
실제로 운동을 하고 난 직후처럼 몸이 가볍고 기분도 삼삼해졌다.
한 번 복용한 것만으로 이런 효과를 낸다?
실로 무서운 약물이었다.
‘이게 심장이 녹아내리게 하는 마약성분으로 인한 효과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야.’
일반적인 환자들 중에는 자신의 느낌을 맹신하는 환자가 많았다.
특히 확장성 심근병증처럼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
매번 검사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검사를 받는다 해도 이상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약물을 맹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도수마저도 자신이 복용한 약이 정말 부작용을 동반한 신약이 맞는 걸까 의심이 들 정도이니.
‘당장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간이 수술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환자에게 집중할 때였다.
결코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은 환자이므로.
바짝 긴장해도 모자랄 판이다.
또한 환자도, 도수 자신도 알 수 없는 약물로 인해 일시적으로 고통을 감소시키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언제 어느 때 몸에 이상 반응이 올지도 알 수 없었다.
그야말로 변수 투성이인 것이다.
‘집중하자.’
손 소독을 마친 도수는 타월로 물기를 닦고 머릿속에 오늘 수술할 과정들을 그리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준비 끝났습니다.”
마이크 휴잇이었다.
그는 환자를 보며 덧붙였다.
“일단 겉보기엔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런 것 같군요.”
대답한 도수는 투시력을 써서 직접 확인했다.
샤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이 발휘되고.
환자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철근이 옆구리 살을 찢고 늑골을 부러뜨리고 폐까지 뚫었다.
지금은 철근을 제거하고 수술 패드로 감아둔 상태였다.
그러나 출혈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고.
지금은 몸에서 피가 많이 빠진 상태였다.
“이 정도면 폐가 손상됐을 것 같습니다.”
도수가 돌려 말하자.
마이크 휴잇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추측했지만 바로 수술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벌기 위해 지혈만 해둔 상태고요.”
“시작하죠. 켈리.”
턱.
수술이 시작됐다.
서걱, 서걱, 서걱…….
패킹해 둔 패드를 잘라낸 도수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쉴 틈 없이 입이 열렸다 닫혔다.
“칼.”
턱.
“포셉.”
척.
“클램프.”
찌걱, 찌걱.
“보비.”
치이이이이익.
도구를 바꿔가며 순식간에 옆구리 속을 파고드는 도수의 모습을 보던 마이크 휴잇은 저절로 머릿속에 감탄을 떠올렸다.
‘빠르다.’
그것도 지나치게 빠르다.
지금의 도수는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 올린 상태였다.
방금 전 복용한 신약이 어떤 증상을 일으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는 새 감각을 떨어뜨릴 수도, 투시력과 상호반응을 일으켜 수술에 지장을 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빠르게 수술을 마무리할 작정이었다.
샤아아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은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갔다.
“칼.”
턱.
도수는 복부 속에 엉망으로 틀어박힌 뼛조각을 들어낸 후 혈관과 장기들을 비집고 폐의 손상된 조직을 절제했다.
서걱, 서걱.
주변 장기들, 혈관, 근육을 미끄러지듯 파고드는 교묘한 움직임.
그야말로 뱀처럼 부드러운 손놀림이었다.
“맙소사……!”
샤론 카퍼렐리가 마이크 휴잇 곁에 서서 감탄했다. 그녀 역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것이다.
‘누가 축구를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것과, 축구선수의 플레이를 함께 운동장에 나가서 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 딱 그랬다.
무슨 상상을 했든 그 이상이었다.
“도가 텄네요.”
샤론 카퍼렐리의 말을 한 귀로 흘린 마이크 휴잇이 도수에게 말했다.
“이래선 제가 할 일이 없겠습니다.”
“수술 부위를 고정시켜 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이 환자가 끝이 아니잖아요.”
“…얼마 정도 걸리겠습니까? 환자와 환자 사이에 몇 분 정도 간격을 둬야 할지.”
“필요 없습니다.”
“예?”
“릴레이 식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환자 한 명을 수술한 즉시 준비만 하고 다음 환자를 받겠단 뜻.
‘미친 건가?’
마이크 휴잇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수술 실력이 대단한 것은 잠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수술을 잘해낼수록 집중력은 그만큼 많이 소모되기 마련이다.
극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수술.
기계처럼 뚝딱, 뚝딱 찍어내듯 환자를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란 뜻이다.
한데 도수는 바로바로 환자를 받겠다고 했다. 그것도 쉽지 않은 중증 외상 환자들을.
“무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도수가 대답했다.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마이크 휴잇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이미 천하대 응급외상센터 인력들은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려 잠시도 쉬지 못하고 바로바로 수술을 해왔다는 것을.
이보다 더 심한 외상 환자들이 쉴 틈 없이 밀려들었을 때도 있었다.
정말 바쁠 땐 이십사 시간 동안 한숨도 못 자고 대기 아니면 수술하며 보내야 했던 나날들.
초과 근무가 당연한 환경.
그런 반면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
살 수 있는 환자를 한 명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일 분, 일 초를 아껴가며 시간에 쫓기고 고군분투해야 하는 입장을 마이크 휴잇이 알 리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야? 집중력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건가?’
엄연히 말하면 도수는 지금 푹 잤고 이상한 신약까지 먹은 상태라 오랜만에 컨디션이 팔십 퍼센트 이상 올라 있었다.
잠도 못 잘 정도로 환자가 물 밀듯 들이닥쳤을 땐 이십 퍼센트 미만의 컨디션을 짜내가며 수술했던 적이 다반사.
따라서 지금은 투시력을 들이부으며 환자들을 줄줄이 수술할 자신이 있었다.
“타이.”
그 말에 모두가 놀랐다.
‘벌써…….’
손상된 폐 조직을 제거하고 봉합을 앞둔 것이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처음 호흡을 맞추는 간호사 샤론 카퍼렐리는 그의 속도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숨찼다.
‘이 괴물은 뭐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바늘과 실을 건네자.
봉합침과 봉합사를 받은 도수의 손이 좁은 궤적 안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슥, 스윽.
“와.”
샤론 카퍼렐리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과도 같은 단말마를 뱉었다.
넋이 나간 것은 마이크 휴잇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손이 빠르다니.’
단연코, 간단치 않은 수술을 이토록 간단하게 하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도수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마이크 휴잇은 점점 그의 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