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분투
흔들.
막 봉합을 시작하려던 손이 바깥쪽으로 튕겨 나갔다.
“젠장.”
으드득.
이를 악문 도수는 고개를 돌려 먼 바다를 쳐다봤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해안선을 따라 새하얀 기포가 밀려오고 있었다.
속도가 매우 빠르다.
“피신해야 됩니다!”
누군가 외쳤고.
도수는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어디로?”
“…….”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릴 따름이다.
사방이 난간으로 막힌 옥상.
난간 밖은 물바다였다.
도망칠 곳이 없다.
그 순간.
쉬이이이이이익!
상공에서 구조대원이 로프를 타고 내려왔다.
“저한테 붙으세요! 빨리!”
사람들이 엉겨 붙었다.
그래봐야 둘이다.
아래 남는 사람만 부상자와 도수까지 다섯.
“선생님 어서……!”
구조대원은 도수를 불렀다.
그러나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여자나 가벼운 환자부터.”
“…….”
“중량으로 봐도 그게 더 유리합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자신에게 달라붙은 이십 대 여자 둘을 꽉 고정시킨 구조대원이 위로 수신호를 보냈다.
곧 그가 위쪽으로 사라지자.
도수는 다시 환자를 보았다.
“후우.”
파도가 밀려들 때까지 기껏해야 일 분 안쪽.
지금처럼 상처가 벌어져 있으면 이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사실, 파도에 쓸려간 이상 죽거나 실종될 가능성이 구십 퍼센트 이상이다.
그럼에도 도수는 파도에 쓸려갈 경우를 대비했다.
‘항상 각오했던 일이다.’
그는 연기처럼 흩어지려는 각오를 끈덕지게 다졌다. 총탄이 날아드는 전쟁터 한복판에 뛰어들어 부상자들을 치료할 때도, 악천후에 헬리콥터를 타고 환자가 있는 곳으로 향할 때도, 그리고 쓰나미가 덮친 이곳에 올 때도 어느 정도 각오했던 상황이다.
‘이하연 선생 악몽이 헛된 건 아니었나 보군.’
여진이 멎은 틈을 타서 손을 놀리던 도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물론 기뻐서 웃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마당에 출동하기 전 이하연이 했던 말이 떠오르다니.
끝이라고 생각하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슥, 스윽.
그는 출혈이 발생하고 있는 상처를 봉합했다. 종아리를 뚫은 철근을 제거하고 상처를 봉합하는 것은 병원에서 하던 수술에 비하면 그리 힘이 드는 일은 아니었다.
환자 역시 어느 정도 고통을 덜었는지, 어느새 절반쯤 다가온 파도를 보며 말했다.
“다들 고맙습니다. 어서 피하세요.”
그러나 그를 붙잡고 있던 남자 둘은 고개를 저었다.
“여자들부터.”
“한 사람이라도 더 사는 쪽으로 갑시다.”
그들도 도수와 같은 각오를 다진 듯했다.
여자들은 오열하고 있었다.
“과장님, 그래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사이 땅에 안착한 구조대원이 자신의 장비를 풀기 시작했다.
그를 보던 여자가 물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이거 입으십시오.”
구조대원은 여자의 몸에 장비를 레펠 장비를 걸쳐주었다.
“위에서 줄을 당길 테니 꽉 잡고 계시면 됩니다.”
“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구조대원이 고개를 돌리며 다른 여자들을 재촉한 것이다.
“이분한테 매달리세요. 위에서 줄을 당길 때까지 잘 버티셔야 합니다. 매달리시는 즉시 헬기가 이동할 거예요.”
…그 역시 각오한 것이다.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어도 행동과 표정에서 그 같은 결의를 읽은 도수가 영어로 말했다.
“환자는 봉합 끝났습니다. 소량의 바닷물이 새어 들어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겠지만, 살아남아서 다시 치료받을 수 있다면 충분히 완치 가능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구조대원이 위에다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위에선 여자들을 끌어 올렸다.
곧 헬리콥터가 이동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 모든 희망은 사라지게 된다.
하나 구조대원은 아무리 열악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하는 것이 사명. 도수 역시 비슷한 사명을 가졌기에, 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깡깡!
난간을 두드린 구조대원이 옥상에 남은 사람들의 이목을 주목시켰다.
그리고 일본어로 말했다.
“여러분 모두 구조대원을 꽉 잡고 계세요. 어떻게든 모두 살아남읍시다. 구조대원을 믿으면 살아남을 수 있어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무리 슈퍼맨 같은 구조대원들이라 해도 자연의 섭리에는 저항할 수 없음을.
그럼에도 그들은 믿었다.
“네!”
크게 대답하는 사람들.
옥상에 내려와 있던 구조대원이 사람들에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설명하는 사이.
그들의 공포를 덜어준 구조대원이 도수에게 다가왔다.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그 말을 듣고 억지스러운 미소를 살짝 드러낸 구조대원이 말했다.
“환자만 잘 잡고 계셔주십시오. 선생님은 제가 꽉 잡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우린 파도에 저항하지 않을 겁니다. 저런 파도에 저항하는 건 무의미해요. 곧 휩쓸리게 되면 물속에 떠밀려 내려온 쓰레기들이 많을 겁니다. 다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참고 버텨야 합니다.”
점점 말이 빨라졌다.
“긴장 풀고 심호흡하세요. 제가 ‘셋’을 외치면 숨 참으시면 됩니다.”
그는 ‘긴장을 풀라’고 하고 있었지만 본인이 더 긴장하고 있었다. 도수는 그 모습이 마치 의사들이 어려운 수술 전에 환자나 보호자에게 ‘긴장 풀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라고 말하던 것과 비슷하다고 여겨졌다.
‘이렇게 신뢰가 안 가는 말이었나?’
그런 생각을 하자 또 다시 웃음이 났다.
그리고 어느새.
귀청을 때리는 어마어마한 굉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칫,”
드디어 왔다.
벌써 왔다.
마지막 순간에 그래도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었다.
라크리마에서의 인연들과 한국에서의 인연들.
한번 보거나 한번 통화할 여유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평소 바쁘단 이유로 변변한 연락 한 통 못 해왔는데 죽음으로 재회할 것을 예감하니 불쑥 눈시울이 붉어져 왔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치인지.
그들을 향해 거대한 파도가 들이닥쳤다.
***
마치 악몽을 꾸면서 잠을 설치는 것 같았다.
깜깜한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간 도수는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중간중간 정신을 차렸다.
생존의 희망을 본 것은.
구조대원이 구조대원답게, 쓸려가는 와중에도 주변 기물에 버클을 걸어 떠내려가는 것을 막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도수는 선택해야 했다.
안 그래도 간신히 한 손으로 2인분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구조대원이 더 버티기 힘들어 보였으니.
도수는 자신의 조끼와 환자의 조끼를 연결하고 있는 버클을 풀어버렸다.
콰아아아아아.
도수가 금세 빨려 들어가자.
“지금 무슨……!”
물밖에 고개를 내밀고 있던 구조대원의 비명 같은 외침.
하나 두 사람과 도수는 순식간에 멀어지고 말았다.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게 된 도수는 전신이 갈가리 찢기는 기분이었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혹은 세탁기 속에 들어간 것처럼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여기저기 쓸리고 찔렸다. 당연히 여기저기 살이 터지고 뼈가 겹질렸다.
‘윽!’
비명이라고 지르려고 하면 입속으로 순식간에 바닷물이 들어왔다.
일반적인 바닷물이 아니다.
오염된 게 분명한 바닷물.
도수는 최대한 들이마시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물살에 휩쓸려 내려갔다.
쓰나미가 발생한 진원지로부터 움직이는 시속은 팔백 킬로. 항공기가 비행하는 속도에 준한다. 그렇다 보니 위력 또한 수십 톤의 힘을 가진다. 절대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위력인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밀려오는 사이 위력이 많이 빠진 쓰나미긴 했지만, 도수는 저항하지 못했다.
콰앙!
어깨가 부딪칠 때면 뼈가 으스러지는 통증을 받고.
촤악!
물건이 스칠 때면 끔찍한 상처가 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동시에 구름처럼 핏물이 퍼진다.
목이 졸리듯 숨은 막혀오고.
의식은 점점 멀어진다.
‘죽는 건가.’
버틸 대로 버티던 도수가 단념하려는 순간.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길이 있다고 하던가?
물속으로 쑥 손이 들어와 도수의 겨드랑이를 잡아챘다.
“빨리!”
‘영어?’
도수는 그 와중에도 상대가 영어로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촤악!
고개를 내밀고 실눈을 뜬 상태로 상대를 쳐다보자.
따갑고 먹먹한 시야 속으로 푸른 눈에 갈색 머리를 가진 털북숭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끔찍하군!”
아마 도수의 상태를 말하는 것일 터.
‘그래도… 구출된 건가?’
누군가한테 발견됐다는 사실이.
생존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물론 기쁨의 눈물을 흘리거나 방방 뛸 만한 기력은 전혀 안 됐지만.
도수를 끌어낸 남자가 동료에게 말했다.
“이봐, 이 자식 얼굴 좀 보라고.”
‘얼굴?’
다행히도, 얼굴을 다친 기억은 없다.
한데 왜 얼굴에 관심을 가진단 말인가?
‘동료들이 벌써 실종 신고라도 한 건가?’
잠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부정했다. 도수의 실종 소식이 닿고 동료들이 대응할 때쯤이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휩쓸려 떠내려가면서도 아직 살아 있다는 건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는 뜻.
도수가 간신히 입을 열어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 말에 화들짝 놀란 남자가 도수를 내려다봤다. 영어 발음이 너무 능숙해서 놀란 게 아니었다. 도수가 아직 얘길 할 정도로 의식이 깨어 있다는 사실에 도둑놈이 집이라도 털다가 걸린 것처럼 반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신색을 되찾았다.
“허허, 대단한 양반이로구만. 당신 얼굴 알고 있소. 이도수 선생 아니오? 아, 대답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한테 구출됐으니 안심하고 누워계시오.”
그렇게 말한 외국인이 다른 누군가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이, 진통제 가져와. 상처가 너무 심하군.”
이내 그는 도수에게 알약 한 알을 먹였다.
기진맥진한 도수는 알약을 삼킬 수밖에 없었고.
그제야 정신이 좀 들며 남자가 입은 조끼에 프린팅된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B&W……?’
브라운 앤 윌리암슨.
이 제약회사 구호팀이 동일본 재난 지역에 파견됐다고 듣긴 했다.
한데 우연히 이들에게 구출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내 얼굴을 알아봤군.’
도수는 의식이 흐려지는 동시에 반대로 전신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감소하는 것을 체감했다.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후우.”
숨을 길게 뱉는 그를 보며 남자가 말했다.
“여기도 병원이나 간이 치료 시설은 아니오. 돌아가는 길이 막혀 급한 대로 위급한 부상자들만 모아둔 대피소요. 지금 복용한 약이 임시방편은 될 터이니 얼른 기운 차려서 우릴 좀 도와주시오. 그래야 구조팀이 올 때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버틸 수 있을 테니…….”
그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반대로 도수는 의문점이 한참 남아 있었다. 그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스스로의 몸 상태를 체크했던 것이다.
‘다행히 골절은 없다.’
엉망이긴 했지만 운이 좋았다.
충분히 부러질 수 있었던 상황에서조차 도수의 뼈는 버텨주었다.
의외로 강골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단숨에 기운을 차려 이들을 도울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충분히 엉망인 상태. 그걸 빤히 알 텐데도 B&W 소속 외국인 남자는 왜 단숨에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처럼 얘길 하는지.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면, 도수에게 정확히 어떤 약을 복용시켰는지.
이 모든 것이 의문점이었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조금이라도 기력을 회복하는 게 먼저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이 전무한 상황.
도수는 의문을 접어두고 눈을 감았다. 당장은, 조금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 와중에도 한 가지 의문만은 덮어둘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은 무사히 피신했을까.’
목숨 걸고 헬기로 옮겼던 환자들.
그리고 함께 파도에 휩쓸려 버린 구조대원들과 민간인들.
의식을 잃는 순간에도 그들의 안위에 대한 궁금증만은 버리지 못한 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