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20화 (120/152)

# 120

구출 작전!

이노우에 료코는 죽을 맛이었다. 순식간에 마을을 뒤덮은 쓰나미. 지금 이 상황이 악몽이지 현실인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가물가물해가는 시야.

그곳에 구조용 헬리콥터와, 그곳에서 떨어져 내리는 구원자들이 보였다.

구원자의 도착을 환호하는 직장 동료들의 모습도.

그중 한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동료들에게 무언가 부탁했다.

곧 동료들이 팔다리를 잡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고.

어마어마한 고통이 엄습했다.

“으으윽…….”

그녀는 너무 아파서 신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몸을 비틀고 뒤틀며 괴로워할 뿐이었다.

‘뭐 하는 거야?’

상처를 헤집는 손길.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기력조차 없었다.

‘그만해!’

그러나 그럴수록.

상대의 손은 가차 없이 그녀의 옆구리를 헤집었다.

“……!”

고통이 너무 큰 탓일까?

몸에 받은 충격이 의식을 튕겨냈다.

점점 멀어지는 의식.

그녀는 죽음이 코앞에 들이닥쳤음을 직감했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눈물이 흘렀다.

아파서인지, 서러워서인지 모르겠다.

아니,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면서 고통도 줄어들었으니 고통 때문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주르륵.

관자놀이를 타고 눈물이 떨어지며, 방금 전까지 있었던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저 멀리 보이는 헬리콥터 여러 기.

상공에 멈춘 헬기들은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갇힌 옥상에 오기까진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살길을 궁리했다.

중학교 때까지 수영 선수였던 경력을 살려서 반대편에 보이는 보트까지 건너가려 했다.

모두의 목숨이 그녀에게 달린 시점.

난간을 밟고 다이빙을 하려는 순간 사고가 일어났다.

난간이 무너지며 바닥에 박혀 있던 나사가 튀어 오른 것이다.

그다음 눈을 떴을 땐 동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피……!”

“빨리 지혈해!”

“료코! 료코, 정신 차려!”

이노우에 료코는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렸다. 뜨거운 고통이 아랫배를 엄습했다. 아니, 겨드랑이 아래쪽에도 저미는 통증이 있었다.

“아…….”

그녀는 흐르는 피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진 후.

어마어마한 출혈량과 꼼짝도 못 할 만큼 깊은 상처.

반대편 보트로 건너가는 건 이미 꿈만 같은 일이 됐고, 이대로라면 금방 죽음이 닥쳐올 것만 같았다.

“아… 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마음을 아는 걸까?

동료들이 외쳤다.

“정신 차려!”

“료코, 조금만 참아봐!”

그녀는 그 외침에 부응해 이를 악물고 정신을 붙잡았다. 앞길이 구만리인데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죽을 순 없었다. 기필코 살겠다. 그리 마음먹었고, 한참을 버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의지는 약해지고 의식은 희미해졌다.

그렇게 한참.

머릿속이 온통 집에 두고 떠난 가족들. 안위가 걱정되는 가족들로 가득 찼을 때야, 헬기 한 대가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지혈이 되지 않으니 일차적으로 봉합을 했습니다. 옮길 수 있겠습니까?”

희미한 목소리.

남자 목소리다.

방금 전 그녀의 옆구리를 헤집은 남자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료코는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몸을 빼려 했다.

“아… 안 돼……!”

“진정하세요.”

남자, 도수가 그녀를 진정시켰다.

“전 의삽니다.”

능숙한 영어.

료코 역시 해외영업부 직원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니, 이 정도는 수영선수 시절 올림픽을 준비하며 배웠던 영어만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아……!”

말을 알아들은 그녀의 몸부림이 잦아들었다.

의사란 한마디.

그 한마디의 파급력은 온통 공포에 물든 사람 한 명을 그곳에서 끄집어내 줄 만큼 강력했다.

“사, 살려주세요.”

그녀의 멘트가 바꼈다.

도수의 대답 또한 달라졌다.

“살 수 있습니다.”

“저, 정말이에요?”

그녀는 다시 물었다.

“정말이죠?”

“예.”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혈은 끝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지혈이라니…….”

료코는 자신의 옆구리를 보았다.

진짜 피가 멎어 있었다.

‘어느새?’

아니, 내가 기절한 지 그렇게 오래 지났나?

그런 의문이 스쳤지만 주위를 의식하고 보니 전혀 오래된 것 같지 않았다.

주변 동료들의 놀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연이어,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말도 안 돼…….”

“의사들이 꿰매는 건 처음 보는데, 정말 귀신같구먼.”

“아냐. 나 예전에 무릎 찢어져서 병원 갔을 땐 한참을 잡어 먹었다고.”

끄덕끄덕.

동조한 동료가 말했다.

“맞아, 이분 실력이 대단한 것 같은데. 료코, 운이 좋구나. 선생님 잘 만나서 살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료코가 부랴부랴 도수에게 말했다.

“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구조대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어느새 이야기가 됐는지 덧붙였다.

“옮겨주세요.”

“알겠습니다.”

구조대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들것에 실어 레펠에 매달았다. 그리곤 위를 보며 크게 팔을 돌리며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위에서 들것이 매달린 밧줄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늘로 솟는 들것과 곁을 지키는 구조대원.

그를 보던 료코가 물었다.

“저 괜찮은 거예요?”

“예, 괜찮습니다.”

구조대원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정말 위험한 상태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 아래 의사분께서 출혈이 멎도록 봉합을 해주셨어요.”

“저… 아래서요?”

료코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살짝 고개만 돌려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떨어지면 어떻게 될 줄 상상이 돼서?

그것도 그거지만, 옥상은 아주 좁은 공간만을 남긴 채 이미 물바다였다.

“왜 의사 선생님은… 올라오지 않으시는 거예요?”

“한 번에 여러 명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이곳까지 들어온 헬기는 한 대뿐.

상황을 이해한 료코가 입을 벌렸다.

“아… 그래도…….”

“괜찮으실 겁니다. 직접 남으신다고 했어요. 이노우에 씨보다 더 다친 사람은 없지만, 응급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은 더러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무래도 헬기 안에서보다 아래서 응급처치를 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

구조대원은 그렇게 납득을 시켰지만 옥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일반적인 피부보다 물에 젖은 피부가 꿰매기 더 힘들다. 수축이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냥 솜보다 물먹은 솜을 꿰매기 더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뿐만 아니라 옥상 주위는 물바다. 보통 간담이 아니고서야 언제 수장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침착하게 환자의 상처를 봉합할 수 있는 의사는 많지 않다.

‘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야?’

레펠도 능숙하게 타고 이런 상황에 이성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재난 지역에 자진해서 들어올 정도로 용감한 의사들은 종종 보아왔지만 본인에게 위험이 닥치는 순간에도 이런 평정심을 보이는 이는 흔치 않았다.

냉철한 판단을 하기는 그보다 더 힘든 일이다.

구조대원은 환자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갑자기 나타난 외국인 의사라… 몇 사람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군요.”

***

타타타타타타타!

상공에 멈춰 있는 헬리콥터.

료코를 첫 타자로 올려 보낸 도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노우에 료코보단 나은 편이지만, 그들 역시 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후.”

숨을 돌리며 예리한 눈빛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순서대로 꿰뚫은 도수가 입을 열었다.

“다리 다치신 분 이쪽으로 오세요. 나머지 분들은 아까처럼 꽉 잡아주시고요.”

그러자 종아리가 철근에 뚫려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남자가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물론 이대로도 헬리콥터로 옮길 수는 있었다.

하지만 기왕 아래 내려온 이상, 아래서 일차적인 처치를 할 수 있는 환자들은 최대한 수습을 해서 올려 보내는 편이 나았다.

아무래도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응급처치를 하는 것보다야 아래서 하는 편이 수월하기도 하고, 그렇게 일단락 해서 올려 보내는 쪽이 위에서 부상이 심한 료코한테 집중하기도 좋았다.

구조대원들이 왔다갔다 옮기는 시간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단지 문제가 있다면 마취는 불가하다.

마취약이 돌만큼 기다릴 틈도 없을뿐더러 물에 젖으면서 알 수 없는 감염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또한 예상보다 넓은 범위에 마취가 되면 환자를 옮기는 데에도 방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속사정이 있었지만.

남자도, 주위 동료들도 묻지 않고 일전 료코의 경우처럼 치료받을 준비를 마쳤다.

이미 앞서 도수의 실력을 보았기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것이다.

“자세히 보죠.”

도수는 상처를 덮고 있는 헝겊을 풀었다. 이렇게 옷이 가리고 있으면 투시력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다. 그의 투시력은 오직 인체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상처가 드러나는 순간.

샤아아아아아.

도수의 투시력이 발휘됐다.

동시에 상처 부위가 정확히 분별됐다.

‘이런.’

철근 주위가 푸르뎅뎅하게 물들어 있었다.

녹슨 철근이 피부 깊숙이 박히는 것과 동시에 주변 조직들을 괴사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철근부터 제거하고 피부 조직 절제 후 봉합하겠습니다.”

원래 봉합까지 할 생각은 없었으나 철근을 제거하고 주변 조직까지 절제하게 되면 출혈이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정이 있었지만 도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고.

간신히 몇 마디 영어로 내용을 추측한 남자 또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뭐든 해주십시오. 이 지옥에서 살아서 나갈 수만 있다면…….”

“알겠습니다.”

도수는 꿰뚫린 상처 부위를 소독했다.

콸콸콸콸.

소독약이 흐르자.

남자가 신음을 뱉었다.

“크윽.”

그래도 이만하면 잘 참는 것이다.

철근과 종아리를 한쪽씩 잡은 도수가 말했다.

“뽑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저기 거즈를 이용해서 출혈을 틀어막아 주세요.”

도수가 눈짓하자 동료들이 센스 있게 거즈를 가져와서 반응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수가 철근을 힘껏 당겼다.

파악!

“큭.”

남자가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주변 동료들이 거즈로 피를 막았다.

도수는 다시 한번 소독약을 부으며 다른 손에는 거즈를 들고 한데 섞인 소독약과 피를 지워냈다. 그러자 핏물이 고이듯이 차올랐다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는 상처 부위가 눈에 들어왔다.

“꽉 잡아주세요.”

동료들이 환자를 잡은 손에 힘을 가하자.

도수는 메스를 꺼내 들었다.

칼날을 보고 화들짝 놀란 환자가 덜덜 떨었다.

“후아, 후아, 후아…….”

아무리 준비를 해도 고통은 변치 않기 마련.

도수는 상처 부위를 메스로 쑤셨다.

스으으윽.

“끄아아아악!”

도수의 손놀림에 따라 썩은 부위가 잘려 나갔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몇 밀리미터 혹은 몇 센티미터 깊이까지 썩어 들어갔는지 누구라도 알 수 없었겠지만.

도수만은 투시력을 써서 구별하고 있었다.

샤아아아아아아.

깨끗이 썩은 살을 발라낸 도수가 외쳤다.

“거즈!”

그러면서 그 자신도 도려낸 부위를 거즈로 눌렀다.

피는 계속 났지만, 거즈는 일시적으로 출혈량을 감소시키는 역할 정도는 해주었다.

그리고 이내.

봉합침과 봉합사를 꺼내 소독한 도수가 타이를 하려 했다.

그 순간.

쿠구구구구구구구궁!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