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17화 (117/152)

# 117

직진

“놀라운 소식이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매디 보웬이 대뜸 물었다.

“너, 일본 간다며?”

그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정보가 빨라도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은데.”

“너무 감탄하면 부끄럽잖아.”

“어떻게 안 거예요?”

“너한테 매스 잡는 법을 물어보는 것만큼 빤한 질문은 하지 말아줄래?”

“그렇게 빤한 것 같진 않은데.”

도수는 구시렁거리면서도 더 캐지 않았다.

“그렇다 치고. 제가 일본에 가는 게 재밌는 소식은 아닐 거고. 뭐예요?”

“네가 아니라 B&W가 일본에 구호인력을 파견했다는 소식이야.”

“B&W…….”

여기서 또 이 이름을 듣게 될 줄 몰랐다.

굳이 어울리지 않으려 해도 동선이 겹치고 있었다.

“이젠 좀 지겨워지려고 하는데.”

“매력 없긴 하지. 스토커처럼 널 따라다니는 느낌일 거야.”

“비슷해요.”

“그런데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면, 그쪽에서 널 보는 시선도 똑같겠지.”

“제가 가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겠군요. 그건 알겠는데 이상한 점이 있어요.”

“뭐?”

“제약회사라면 구호 물품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요? 실어 나를 비행기랑. 근데 구호인력을 파견했다고요?”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법. 사람을 보냈으면 당연히 구호 물품을 들려서 보냈겠지.”

“B&W는 영 미심쩍어서. 좋은 일을 했는데도 저의가 의심이 가네.”

“동감이야.”

빙그레 웃은 매디 보웬이 표정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B&W의 심장성형제 때문에라도 미심쩍을 수밖에 없지.”

“심장성형제가 정말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하는 약물이라면 다른 약에도 장난을 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긴 하죠.”

“바로 그거야.”

매디 보웬이 손가락을 부딪쳤고.

도수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아직은 근거가 너무 빈약하지만 B&W와 마약이 연관성이 있다. 그렇게 가설을 세워보자구요.”

“그래. 난 제법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왜 그렇게까지 할까요?”

“왜?”

“이상하잖아요. 심장성형제가 정말 심장성형이 되고 부작용이 없다면 납득이 되지만. 굳이 법으로 금지시킨 마약까지 써가며 부작용이 있는 심장성형제를 만든다? 앞뒤가 안 맞아요.”

“이익을 위해서?”

“B&W 규모가 얼만데요.”

“기업 가치를 생각하면 말이 안 되긴 하지. 걸리면 쫄딱 망할 텐데. 관련자들을 갖다 바치고 살아남는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될 테고.”

“그러니까요. 심장성형이 필요한 심장질환 환자들 모두가 B&W의 심장성형제를 산다고 해도 영업이익이 기업 가치를 넘어서진 못해요.”

고개를 끄덕인 매디 보웬이 대답했다.

“여기까지. 의심은 의심으로 남겨두자.”

더 파고들면 본질이 흐려진다.

가설과 현실의 분간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도수 역시 그 부분에 대해 수긍했다.

“그 의심이 틀렸으면 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두 사람 모두 진심으로 헛된 망상이길 바랐다.

그러나 적어도 도수는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엄승진.’

그 역시 마약을 복용했다고 했다.

모종의 마약을 복용한 뒤, 심장성형제를 복용한 후 겪은 것과 같은 증상을 겪은 환자가 둘이나 되는 것이다.

‘젠장.’

그냥 남겨둬도 될 의구심이 아니었다.

만약 그와 매디 보웬이 세운 가설이 진실이라면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야만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그 의문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상, 두 사람의 추측은 어디까지나 가설로 머물 따름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영원히 머물렀으면 했다.

같은 속내일 것이 분명한 매디 보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우린 일본으로 가야 해.”

“전 연수 때문이라고 치고. 기자님은 왜요?”

“난 B&W를 조사하고 있으니 B&W가 있는 곳에 내가 있는 건 당연한 거지.”

“B&W는 미국에 있을 텐데.”

“일본에도 온다잖아. 여기에서 가깝고. 이 기회에 여기저기 여행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아니.

일하러 가서 여행을 즐길 여자가 아니다.

가까워서 일본을 들른다는 것은 더 가벼운 헛소리다.

잠시 침묵하던 도수가 말했다.

“그럼 또 동선이 겹치겠군요.”

“반갑지 않은 얼굴이다?”

“매번 비보를 가져오시니.”

“아는 게 힘이야.”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죠.”

도수는 진심으로 얘기했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모르면 몰랐지, 재앙이 올 걸 알면서 손 놓고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사는 한 사람의 환자만 치유하는 직업이 아니다.

수많은 환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을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부모님 일로 시작된 관심이 점점 더 감당키 힘든 의구심을 만들어 나가자 안 그래도 쉴 틈 없는 두뇌가 피곤해져 왔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그를 보던 매디 보웬이 피식 웃었다. 뚱한 표정을 보니 도수의 나이다워 보여 불쑥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손 떼고 싶어?”

“네.”

도수는 숨김없이 대답했다.

“떼고는 싶은데, 발목이 단단히 잡혔어요.”

“나 혼자선 영웅이 될 수 없거든. 나한테 히어로 영화 속 히어로 같은 능력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파트너를 잘못 구하신 것 같지만…….”

“웃겨. 너 아니면 누굴 믿어? 라크리마의 영웅, 한국의 성자인데.”

“전혀요.”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들 하지.”

“농담은 이 정도로 하죠.”

도수가 덧붙였다.

“저 피곤해요. 일본 연수는 가능한 한 앞당겨 보겠습니다. 제 스토커는 언제 일본 도착한대요?”

스토커.

B&W를 말함이다.

“글쎄. 보름 내로.”

“시기 맞추죠.”

매디 보웬이 입을 벌렸다.

“와, 엄청 저돌적이네. 손 뗀다 뭐 한다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도수가 대답했다.

“답 안 나오는 문제 갖고 머리 굴려봐야 제자리걸음이에요. 머리 아플 땐 직접 부딪쳐 보는 게 빠릅니다.”

“그래, 들이받는 성격이었지.”

매디 보웬은 피식 웃었다.

라크리마에서 총리에게 총을 겨눴던 열아홉 살 난민 소년이 떠오른 것이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든.

도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몸을 돌렸다.

정말로 B&W에 대한 생각은 그만할 요량이었다.

깔짝깔짝 겉돈다고 잡을 수 있는 구렁이가 아니라면, 직접 칼을 들고 구렁이 소굴로 들어가서 구렁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해야, 엄승진이라는 환자를 치료할 길이 보일 터였다.

***

도수가 함께 갈 팀원들을 선정하고 가져갈 물자를 분류하는 등 한참 일본 연수를 준비하고 있는 사이.

그는 못 느꼈지만, 의료계는 충격에 빠졌다.

바로 도수가 행한 뇌출혈 수술 때문이었다.

기자들의 손을 통해 그 모든 과정과 결과가 세세하게 밝혀졌고, 그 결과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도수만의 수술법은 그만이 가능한 듣도 보도 못 한 수술법이라고.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수술을 받은 정동진 환자의 예후가 충격에 충격을 더했다.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정동진이 부종이 가라앉자마자 이렇다 할 후유증 하나 없이 말끔하게 생활을 재개했던 것이다.

뇌수술 자체가 부작용을 피한다 해도 어느 정도 후유증과 재활은 반드시 동반하는 것.

이를 감안하면 도수가 보여준 수술의 결과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신경외과 분야 써전들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을만한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문제는.

역시.

도수밖에 할 수 없는 수술이라는 것.

그때문일까?

천하대병원은 도수 덕에 다시 한번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후.”

한숨을 내쉰 이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간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에게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사석도 아닌 공석에서.

과장 회의에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니까.

잠시 침묵하던 그가 말을 이었다.

“다른 병원에 뇌출혈로 입원해 있는 환자들, 당장 오늘 내일 수술이 잡힌 환자들까지 전부 다 이도수 센터장을 찾고 있어.”

“…….”

과장들은 뭐라 말을 못했다.

좋아할 일이라고?

물론 많은 사람들이 천하대병원으로 몰리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도수 한 사람을 보고 다른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까지 천하대로 몰리는 건 그리 즐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환자 한두 명이 아니야. 신경외과 환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려 하니 해당 병원들에서도 항의가 빗발치고 있네.”

“끙.”

신음을 뱉은 병원장이 입을 열었다.

“이거야… 여러모로 정말 파란을 일으키는 친구군요.”

그는 먼저 이사장의 의사를 물었다.

“어떻게 하실 요량이십니까? 이러다간 우리 천하대병원이 잘못도 없이 다른 병원들에 공분을 살 텐데요.”

이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건 부정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의사 집단 전체에서 들고일어나면 도리가 없다.

“…아무래도 센터장의 일본 연수를 앞당겨야겠어. 잠잠해질 때까진. 이 상황을 알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본인도 그걸 원하더군.”

“역시 센터장입니다. 처세술이 대단해요. 허허허허.”

병원장은 심각한 오해를 하며 칭찬했다. 다른 과장들도 한시름 놓은 표정이었다.

그때 부원장이 말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환자들을 받으시죠. 몇몇 환자만 이도수 센터장이 직접 보고, 나머지는 천하대병원 이름으로 수술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병원에 이도수 센터장 말고도 훌륭한 신경외과의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신경외과 과장은 고개를 주억거렸으나.

이사장은 단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부원장은 욕심이 지나쳐서 자기 무덤을 팔 인사로구만.”

“예?”

“환자들은 이도수 센터장한테 수술을 받고 싶은 거야. 센터장이 이번에 보여준 완치술을 기대할 테지.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니 얼마나 예민하겠는가?”

“그래도… 너무 아까운 기회입니다.”

부원장의 머릿속엔 온통 오성병원을 비롯해 다른 병원을 이용하고 있는 VIP들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들을 모두 천하대병원의 고객으로 만든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러한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VIP들은 이도수 센터장이 수술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신경외과에서 전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VIP만이라도 받는 것이… 우리가 환자를 거부하면 그들도 유쾌하게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환자는 병원과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VIP 환자만 말인가?”

이사장은 헛웃음을 뱉었다.

“이도수 센터장이 들었으면 자넨 쫓겨났어.”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사장은 아로대학병원 원장을 빗대서 가시 섞인 농담을 던진 것이다.

부원장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저는 우리 병원을 위한 충언을 올린 겁니다.”

“알겠네.”

이사장은 더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 좌중을 쓸어 보며 매듭을 지었다.

“병원장과 부원장, 각 과장들 모두 각자의 의견이 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이도수 센터장을 하루빨리 연수 보내는 것으로 결정짓도록 하지. 잠잠해질 때까진 그게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생각되니.”

그에 병원장이 우려를 덧붙였다.

“이사장님. 부원장 말처럼 우리가 환자들을 거부하게 되면 적잖은 반발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수긍한 이사장이 덧붙였다.

“하지만 미리 예정되어 있던 연수를 가는 것뿐이니 그런 명분이라면 환자들도 불만을 토로하지 못할 거야. 이런 상황에서까지 딴지를 거는 환자가 있으면 내가 직접 양해를 구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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