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의문의 죽음
“뇌혈관에 대해 자세히 공부했습니다.”
“뇌혈관에 대해서요?”
“뇌에는 책에서 나오지 않는 혈관들이 존재하죠.”
“그, 그건 그렇죠.”
“출혈점의 위치를 보고, 제가 공부해 둔 혈관들의 위치를 맞춰봤습니다.”
“아…….”
“혈관마다 혈행이 다르기 마련이죠.”
점점 블록을 맞춰가듯, 도수가 말을 이었다.
“당연히 회복 속도도 다릅니다. 어떤 혈관이 어떤 빠르기의 회복을 가지고 있다 모두 말씀드릴 순 없지만, 확률적으로 자가 회복 할 확률이 굉장히 높은 혈관이 터졌다고 봤습니다.”
“확률 게임을 하신 건가요?”
“확률, 그리고 감각적인 부분에 의지했던 거죠.”
여기까지 말했을 때.
강미소는 평소와 달리 집요하게 캐물었다.
“결과가 좋더라도 얘기가 나올 소지가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환자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한 게 아니냐는.”
“전쟁터에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습니다.”
“…….”
“저는 제 환자가 장애를 가질 확률을 줄이고 완치시킬 수 있다면, 무조건 그쪽을 선택할 겁니다.”
살려야 한다.
그 목적이 일 순위에서 밀려날 순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장애를 떠안게 될 확률이 높은 경우라면, 더 완벽하고 깔끔하게 수술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겠다.
그게 도수의 주장이었다.
그를 빤히 응시하던 강미소가 말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완벽히 확신할 수 있었던 근거로는 들리지 않아요.”
계속 따지고 든다.
의료진들은 그녀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특히 간호사 이하연은 더더욱 그랬다.
‘정말 둘이 뭔가 있는 건가?’
그렇지 않은 이상.
수술도 성공한 마당에 강미소가 이런식으로 깊게 따지고 들 이유가 없었다.
아니, 평소 강미소의 캐릭터와도 맞지 않다.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정작 도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일이 대답해 주었다.
“완벽한 확신은 없습니다. 모든 수술이 그렇지만, 특히 아직도 연구 중인 인간의 뇌처럼 미지의 영역에선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건 그렇죠.”
“바로 수술을 했어도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런 후유증을 남기지 않고 완치하긴 사실상 힘든 상황이었죠. 물론 방금 강 선생이 얘기한 것처럼 기다린다 해도 문제가 터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터지지만 않는다면 깨끗이 완치할 수 있는 수술법을 갖고 있었죠. 저는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한 겁니다. 그리고 이건 저 혼자의 생각이 아닌, 환자와 상의한 결과 도출한 결론이었어요.”
사실이었다.
도수는 천하대병원에 돌아온 뒤 정동진과 시간을 가질 때마다 이번 수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뒀다.
수술 동의를 받을 때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정동진은 말했다.
-제가 두려운 건 죽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두려운 건, 더 이상 제 일을 못 하게 되는 거죠.
그 말이 도수의 가슴을 울렸다.
열정.
그리고 사명감.
그런 감정은 도수의 마음 속에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동진이 덧붙였다.
-손이 부러지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기사를 쓰겠습니다. 눈이 멀면 점자 자판과 가족의 도움을 받아 이 직업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망가지면… 전 이 업을 끝내야 합니다. 아직 제가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 두뇌를 남겨주시거나 저를 죽여주세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도수는 동의하지 않았다.
어떤 상태가 되든 살아야 한다. 일단 살고 그다음을 도모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공감했다.
정동진 기자의 열정.
그게 본인의 목숨만큼 가치가 있음을.
아니, 어쩌면 당사자에게는 목숨보다 더 가치가 있음을.
매디 보웬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었듯 그 역시 이번 수술에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도수는 자신이 투시력을 통해 확고하게 자신을 가진 방법을 구구절절 설득하지 않고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 같은 내막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강미소에게는 충분한 설명이 됐다. 그리고 고개를 주억거려 수긍한 그녀는 왜 캐묻고 따졌는지 그 이유를 말했다.
“이 정도면 말이 나올 게 없겠어요. 아직도 의구심은 조금 남지만, 센터장님의 수술 성공률이 있으니 그 정돈 묻히겠죠.”
“말이 나와요?”
도수가 묻자.
강미소가 참관실을 눈짓했다.
병원 간부들은 그렇다 치고, 외부인인 기자들이 아래를 지켜보고 있었다.
모든 수술 과정을 지켜봤을 것이다.
그제야 도수를 비롯한 의료진들은 알 수 있었다.
강미소가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도수의 결정이 옳았는가에 대한 불신이 아닌 타인들의 시선임을.
도수가 말했다.
“쓸데없는.”
그는 정말 그렇게 여겼다.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환자에 대해, 그리고 수술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세요. 단, 남들한테 모든 걸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설명해야 할 대상은 기자들이 아닌 환자예요. 어떤 오명을 쓰더라도 의사가 확신이 있고 환자가 믿어준다면 그 수술은 용기를 갖고 진행해야 합니다.”
강미소는 그 말에 반항하지 않았다.
“…죄송해요.”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센터장님의 의지야 누구보다 잘 알지만… 낭중지추예요.”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 송곳.
도수처럼 유난히 잘난 사람은 반드시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문제는 두각을 나타내면 그만큼 동경하고 따르는 사람들도 늘지만, 그만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동반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도수는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고.
그렇기에 그를 시기 질투 하는 이들이 변수가 되어 발목을 잡힐 수 있다고 여겼다.
어려서부터 의사 아버지를 지켜봐 온 강미소는 그 같은 사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수가 얼마나 의사 사회에 속한 다른 의사들이 까기 좋은 대상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지키고 싶었다.
여자 대 남자로서가 아니라 팀원 대 보스로서.
도수도 그 같은 마음을 느꼈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화제를 돌렸다.
“피는 깔끔하게 제거됐지만 아직 부종은 남아 있습니다. 사흘 정도 수면 마취 해서 부종이 빨리 가라앉게 하죠.”
“알겠습니다.”
강미소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도수는 몸을 돌려 수술실을 나갔다.
***
수술실을 나선 도수는 득달같이 내려온 정동진의 보호자들과 마주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수술 과정과 결과를 설명했다.
강미소에게 이야기했던 대로였다.
어느새 주위에 모여든 기자들이 그 내용을 상세하게 받아 적었다.
일련의 상황이 끝나고.
대뜸 그에게 다가온 신경외과 과장이 기자들 앞에서 환한 웃음꽃을 피우며 말을 걸었다.
“축하하네, 센터장. 놀라운 실력은 잘 봤어.”
“…….”
도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신경외과 과장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병원 내에서 도수와 마주치면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도수도 그다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를 원래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신경외과 과장이 갑작스레 태세 전환을 해서 친한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기자들 앞이라서.
도수는 그렇게 이해했다.
“감사합니다.”
대충 웃다가 꺼져라.
그런 내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신경외과 과장은 떠날 생각을 안 했다.
“하하하하. 이번 수술에 대해 얘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조만간 시간 한번 내주겠나?”
할 얘기가 뭐가 있겠는가?
애초에 신경외과 과장은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수술을 했는데.
그래도 도수가 오늘 한 수술은 굳이 분야를 나누자면 엄연히 신경외과 수술이다.
보는 눈… 특히 이사장이 이 자리에 있으니 도수는 싫은 티를 감췄다.
“그러시죠.”
“그래, 그래.”
신경외과 과장이 주억거리며 이사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눈치를 본 것인데, 이사장은 무슨 생각인지 놀라지도 않고 미소만 띠고 있었다.
이내 다가온 이사장이 도수에게 말했다.
“잘해줘서 고맙네, 센터장.”
“아닙니다.”
“그럼 피곤할 텐데 좀 쉬게.”
“예.”
이사장은 뒤에 달고 온 의료진들에게 눈짓하곤 자리를 떴다.
기자들도 서로 눈치를 보다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뒤에 남은 매디 보웬이 입을 열었다.
“축하해.”
“뭐가요?”
“넌 너무 덤덤해.”
“아픈 환자를 치료한 게 축하할 일은 아니니까.”
“으음. 그건 내가 경솔했다.”
솔직하게 인정한 매디 보웬이 말을 이었다.
“대강 보니 여기 신경외과 과장이 널 탐내는 것 같던데?”
“노 땡큐.”
“푸하하하!”
배꼽 잡고 웃은 매디 보웬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호랑이가 고양이 품으로 들어갈 순 없겠지.”
“호랑이니 고양이니. 그런 게 어딨어요?”
“비유하자면 그렇단 거야.”
“그렇다 치죠. 전 좀 피곤해서.”
“잠깐.”
매디 보웬이 발길을 붙잡았다.
“놀라고 감탄하는 건 여기까지. 나한테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
도수의 귀가 쫑긋했다.
그러자 매디 보웬이 말을 이었다.
“두 시간 전 천하대병원에서 마약 양성 반응 결과가 나와서 경찰에 조사받으러 간 환자. 사망했어.”
“……!”
도수는 깜짝 놀랐다.
그가 처방했고 경찰에 인계토록 조치해 놨지만 갑자기 사망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들은 얘기예요? 다른 기자들은 그런 말 없던데. 병원 사람들도 그렇고.”
“내 개인 회선.”
“확실한 겁니까?”
“백 퍼센트야.”
“젠장.”
도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사망할 환자가 아니었어요.”
“그랬겠지.”
매디 보웬은 부정하지 않았다.
당시 환자를 본 적도 없는 그녀가 수긍하는 건, 아는 게 더 있다는 뜻이다.
“뭐예요?”
“그 환자, 내가 B&W를 조사하다 입수한 심장성형제 복용자 리스트에서 사망한 사람이랑 같은 증상이야.”
“…그 사람이 애용하던 마약과 B&W가 연관이 있단 겁니까?”
“그래. 너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잖아? 그 환자 본 뒤에 바로 엄승진 환자한테 갔다며. 왜 그런 건데?”
귀신같은 여자다.
미국인이면서도 한국 언론사와 병원 관계자들보다 더 빠르게 이곳 정보를 꿰고 있었다. 심지어 방금 전까지 수술 참관을 했으면서, 언제 다 조사를 마쳤단 말인가?
이는 미국 언론사의 힘이 아닌 그녀 개인의 역량이었다.
그런 여자가 아군이니 분명 엄승진에게 들은 이야길 하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B&W와의 연관성에 달려들 것이다.
어쩌면 순식간에 진실을 밝혀낼지도 모르고.
그러나 도수는 이미 엄승진과 마약 복용에 대해 함구하기로 약속했기에, 입을 닫았다.
대신 질문을 던졌다.
“어떤 증상으로 사망했습니까?”
“갑자기 심장의 동맥이 터졌어.”
“…….”
즉사했을 것이다.
매디 보웬이 물었다.
“아직 부검 결정은 안 났지만 난 심장이 녹아내리면서 동맥에 손상이 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단지 미스터 엄보단 심하게 재수가 없었던 거지.”
“너무 억측 아니에요?”
“근거는 없지.”
“그러니까.”
도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 매디 보웬이 다시 물었다.
“자, 이제 네 차례야. 미스터 엄은 왜 찾아갔어?”
투시력에 대한 것도 얘기할 수 없었다. 어차피 못 믿을 가능성이 큰 초능력인 데다 설명을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니까.
해서 도수는 대충 둘러댔다.
“의사가 환자를 보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죠.”
“이러면 곤란한데.”
매디 보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수술 직전에 다른 환자를 보러 갔다? 하필 왜? 나한테 숨기는 게 있으면 안 돼.”
“특별히 알아낸 건 없습니다.”
엄승진이 마약 복용 중이란 사실을 제외하고는.
한숨을 내쉰 매디 보웬이 말했다.
“말할 것 같지도 않고 네 고집도 아니까 여기까지 할게. 거짓말을 듣는 건 나도 사양이니까. 뭐,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눈치를 잘 아는 도수다.
‘말 안 해도 전부 알아챘겠군.’
매디 보웬의 성격상 도수가 ‘왜’ 숨기는지까지 파악하고 환자에게 찾아가 캐묻진 않을 터.
도수가 대답했다.
“말씀드릴 게 있으면 꼭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저도 기자님과 같은 목적을 가졌으니까요.”
“그래, 그러자.”
흔쾌하게 받아들인 매디 보웬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더 재밌는 소식이 있어.”
사람이 죽은 건 결코 ‘재밌는 소식’이 아니다.
즉, 반어법이란 뜻.
그런 그녀가 말하는 ‘재밌는 소식’이란 대체 얼마나 불쾌한 소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