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15화 (115/152)

# 115

완벽한 수술

“맙소사.”

매디 보웬은 눈을 부릅뜬 채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다른 기자들의 반응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부분이 의료전문지 기자들이라 도수의 실력을 알아본 것이다.

“뭐지?”

처음 반응은 그랬다.

그들이 알고 있는 뇌출혈 치료법이 단방에 날아간 것이다.

개두술 뒤 혈전에 직접 칼을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수술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그들 모두 도수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섣불리 나무라지 못했다.

그 긴장감과 인내심에 대한 보상일까.

그들은 머지않아 기적을 보았다.

정말 기적 같은 손놀림이었다.

도수의 수술을 처음 보는 것이기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한편 매디 보웬은 즐길 수 있었다. 이러한 손놀림은 이미 라크리마에서 많이 봐왔던 까닭이다.

그녀가 충격을 받은 건 결과를 보고 나서였다.

혈전을 정교하게 긁어낼 때마다 천천히 도수의 손이 지나간 곳이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물론 다른 기자들이 받은 충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다른 기자들은 충격에 충격을, 2연타를 받아 아주 넋이 나간 상태였으니까.

더욱이 그들은 매디 보웬보다 더 의학적 지식에 밝았기 때문에 더 직접적인 충격을 받고 있었다.

“이게 뭐야?”

“정말 뇌출혈을 완치시킬 수 있는 건가?”

“세포 손상도 없겠어.”

“왜 지금까지 수술하지 않았던 거지? 설마 이걸 위해서?”

“지금 상황이 노림수라고? 환자 상태를 어떻게 파악한 거야?”

“검사에도 안 나오는 걸…….”

웅성웅성.

참관실은 시장 바닥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놀람은 당연했기에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하라고 응원해 줘야 할 판이었다.

그들의 비명과 같은 감탄이 계속될수록 보호자인 정동진 기자의 아내 역시 점차 표정이 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기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혈전은 깨끗이 사라지고 환자의 뇌는 출혈이 있기 전 모습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물론 겉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모니터상으론 그 이상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긴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일반적인 뇌출혈 수술 과정을 알고 있는 이들은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 혈전에 의해 뇌가 밀린 것을 보았을 땐.

모두가 환자의 앞날을 비관했다.

수술이 성공해 생존한다 해도 후유증을 피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완벽하게 수술을 펼칠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모니터를 통해, 판결문과도 같은 의료진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뇌압 정상치로 돌아왔습니다.

-대단하세요. 출혈이나 다른 문제도 보이지 않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말했다.

“환자 머리 닫겠습니다. 타이.”

경막을 꿰매고.

두개골 뼈를 맞춰놓은 뒤.

피부를 봉합했다.

그 일련의 과정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수술의 수준을 판단하는 건 정확도와 빠르기.

즉, 도수의 수준은 최절정이었다.

“이럴 수가.”

“뇌출혈 수술을 삼십 분 만에 했다고?”

아무리 빨라도 한 시간 이상이 걸려야 정상이다. 환자 상태에 따라 수술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한다.

그걸 감안할 때 ‘겨우’ 삼십 분 단축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삼십 분씩이나’ 단축한 것이다.

상처 난 살을 꿰매는 것도 아니고 삼십 분 만에 뇌수술을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도 이리 완벽하게.

도수가 행했던 과격한 방식을 떠올리면 더더욱 납득하기 힘든 속도였다.

크게 한숨을 내쉰 병원장이 물었다.

“어떤가?”

고개를 돌린 그의 눈이 커졌다.

수술 초반만 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던 신경외과 과장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표정에서 나타난 감정은 실망이나 분노가 아닌, 안도와 감탄이었다.

스르륵.

눈을 뜬 신경외과 과장이 말했다.

“완벽한 수술입니다. 이도수 센터장이… 왜 중증외상센터 소속인지 모르겠군요. 이 정도면 신경외과를 전공해야 하는데…….”

그는 얼마나 놀랐는지,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이런 수술법은 이도수 센터장만 가능한 방법이에요.”

“그 정도야?”

신경외과 써전이 아닌 병원장이 묻자.

신경외과 과장이 대답했다.

“일단 뇌에 틀어박힌 혈전을 칼로 긁어내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고… 그 전에 피가 굳을 때까지 기다린 것도 직접 칼로 긁어내기 위한 설계를 했다고 봐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 자체도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기다리는 중에 환자의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요. 당장 뇌압이 올라가서 다른 혈관이 터질 수도 있고…….”

“추적 관찰을 하면?”

“아시다시피 매 순간마다 검사하면서 추적 관찰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머리에 달고 있는 것과 같아요.”

“그럼 도박을 했다는 건가?”

“그것도 말이 좀…….”

신경외과 과장은 어느새 자신에게 쏠린 기자들과 이사장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확답하기 어렵습니다. 이도수 센터장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기다렸다? 일반적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면 빨리 수술하는 게 정상입니다. 빨리 수술하면 수술 결과는 반반이지만, 기다리다가 폭탄이 터지면 백 퍼센트 최악의 길로 접어들 테니까요.”

“허…….”

병원장은 헛바람을 뱉었다.

“그러면 이도수 센터장의 판단이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란 게 아닌가.”

“무슨 근거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땐 바로 수술한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한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뭐, 물론 저렇게 직접 경막 안쪽을 헤집으면서 수술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요.”

“결과적으로 잘됐지만 굉장히 위험한 방법이었다.”

“그렇습니다. 과격하기도 하고요. 만약 모든 걸 예측하고 수술 전부터 설계해서 수술 결과를 이끌어낸 거라면,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수술한 건지 저도 궁금하군요.”

신경외과 과장은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도수를 아무런 근거 없이 수술을 진행한 미친놈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걸 승인한 병원도 도매금으로 넘어갈 테니까. 그래서 딱 어차피 밝혀질 부분만 설명했다.

그리고.

감탄은 숨기지 않았다.

수술 결과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도수가 보여준 이번 수술로 인해 천하대병원의 위상 자체가 올라갈 터였다.

그게 신경외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절대 적으로 만들면 안 돼.’

그는 놀라고 감탄한 와중에도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즉시 태세 전환에 들어갔다. 여기서 도수가 ‘천하대병원 신경외과가 무능해서 자신이 수술을 집도하고,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자를 살렸다’고 나오면 천하대병원 신경외과의 위상이 땅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마친 그는 바쁘게 메모하고 있는 기자들, 묘한 미소를 띠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는 이사장, 그리고 이사장의 눈치를 보고 있는 병원장과 부원장을 일별하다 옆에 앉은 후임 과장 후보 정영록에게 말했다.

“영록아.”

“예.”

정영록은 흠칫했다.

신경외과장이 이렇듯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그에게 미안한 일을 했거나, 미안한 일을 할 예정이거나.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도수 센터장과 사촌 형제지간이지?”

첫마디부터 불안했다.

“…그렇습니다.”

“센터장과 우애를 다져라.”

“…예?”

정영록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안 그래도 도수가 이사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만 해도 굉장한 위협을 받는 기분인데 친하게 지내라니.

그건 그가 천하대병원에 들어온 순간부터 꿈꿔왔던 목표를 내려놓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신경외과 과장은 그런 정영록의 사심 따윈 아랑곳 않고 과장으로서 할 말을 했다.

“가능하면 우리 과로 영입하는 걸로 하자.”

“그게 무슨…….”

정영록은 그야말로 지축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십 년 동안 다지고 일궈온 논밭이 송두리째 뽑혀서 내던져지는 느낌이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혔다.

그의 세상이 부서지려 하고 있었다.

“과, 과장님. 말도 안 됩니다.”

“어차피 네 적수가 아니다.”

신경외과 과장은 언제 도수를 미워했냐는 듯 온화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싸울 수 없다면 다가가야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려 해? 네가 이사장님의 뒤를 잇고 싶으면 저 녀석을 천하대 신경외과에서 빠질 수 없는 신경외과의 주춧돌로 만들란 말이다. 녀석에게는 신경외과를 주고 넌 더 위로 올라가면 될 거 아니냐. 센 놈은 맞서 싸우려 들지 말고 네 나이트로 만들란 말이야.”

어느새 도수를 탐내는 신경외과 과장의 음흉한 속내를 읽은 정영록은 이를 으드득 갈아붙였다.

‘개새끼. 내가 저한테 어떻게 해왔는데…….’

이사장의 손자인데도 불구하고.

신경외과 과장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정말 개처럼 복종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허울 좋은 축객령이다.

물러나라.

신경외과 과장 자리는 젊고 빛나는 실력자에게 주겠다.

이런 뜻을 말 같지도 않은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을 빼앗더니, 이젠 내 자리까지 꿰차려고 해?’

그 원망은 도수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그는 신경외과 과장에게 대들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현명한 판단이다. 네 사촌 동생이잖아.”

잔뜩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신경외과 과장.

정영록은 성질 같아선 그가 도수를 무시하고 혐오할 때부터 지금의 모습까지 싹 다 비디오로 찍어서 만천하에 폭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리 되면 봉황에 날개 하나 더 달아주는 셈.

‘빌어먹을.’

정영록과 달리, 도수는 가만히 있어도 훨훨 날아오르고 있었다.

***

“컷.”

툭!

“타이 끝났습니다.”

강미소가 말했고.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수술실 안의 의료진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들의 표정이 머물고 있는 감정은 세 가지.

희열과 흥분, 그리고 이 수술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이다.

도수가 장갑을 벗는 그때.

스피커가 꺼진 것을 확인한 강미소가 물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수술 전에는 혹시라도 환자 귀에 들어갈까 봐 쉬쉬했던 건데, 어째서 발견 초기 배액관을 삽입해서 피를 빼내지 않은 건지 궁금합니다.”

그러자 도수가 막힘없이 대답했다.

“같은 외상성 경막하출혈이라도 출혈 형태나 출혈 위치에 따라 대응이 다릅니다. 물론 강 선생 말처럼 발견 초기 배액관을 삽입해서 피를 빼냈다면 수술 부위도 좁힐 수 있고 손쉽게 치료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단.”

도수가 덧붙였다.

“정동진 환자의 경우는 당장 출혈량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혈관이 손상된 초기에는 배액관으로 피를 제거해도 출혈이 지속됐을 겁니다. 다시 피가 찼겠죠. 하지만 피가 응고되면서 출혈 부위를 막았습니다. 그 사이 출혈부위가 저절로 아물어 출혈이 멈춘 겁니다.”

“아! 그럼 일부러 기다리신 건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 모두 이대로 환자를 방치하다 잘못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저절로 아무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개두술로 혈관을 봉합할 순 없었나요?”

“봉합할 경우 어쩔 수 없이 뇌를 건드려야 하죠. 실과 바늘도 이물질입니다. 체내에, 특히 뇌에 이물질이 닿거나 이물질을 남겨서 좋을 게 없어요. 그래서 수술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 말씀은 기다리는 동안 환자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확신하셨다는 거네요. 씨티상으론 판독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아신 거예요?”

씨티는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사진 기술이다.

직접 뇌를 볼 수 없다면 미래를 예견하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수술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니, 직접 뇌를 볼 수 있다 해도 확신하긴 쉽지 않다.

즉 강미소가 가지는 의문은 도수로서도 해명할 길이 없는 질문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도수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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