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도수만의 수술법
턱.
손에 잡히는 칼자루.
이젠 너무 익숙해서 무감각하기까지 하다.
“현미경 주세요.”
이하연이 현미경을 씌우자.
도수는 당연한 수순처럼 투시력을 발휘했다.
샤아아아아아아.
앞에 누운 환자의 머릿속이 한눈에 들어왔다.
역시, 투시력은 업그레이드된 것이 확실했다.
첫 뇌출혈 환자를 수술할 당시에는 두꺼운 두개골과 뇌를 감싸고 있는 세 겹의 막 때문에 안쪽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출혈이 있다는 정도만 구별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터진 혈관은 물론 뇌신경들까지 가닥가닥 잡히고 있었다.
더 이상 세 겹의 막이나 두개골은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이 능력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 거지?’
실로 궁금해졌다.
초능력의 한계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집중하자.’
도수는 투시력에 대한 궁금증을 깨끗이 잊었다.
지금은 순간에 집중할 때다.
현재 가진 투시력에 신경을 쏟을 때다.
“어떻게 수술하실 거예요?”
강미소가 물었다.
그녀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수술이 심혈관 질환과 뇌 관련 수술이다.
그러나 그녀는 중증외상센터 소속.
응급의학과 전공이기에 심장 수술이나 뇌 수술은 그녀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그러니 더더욱 곤두설 수밖에.
반면 도수는 이미 여러 차례 심장 수술과 뇌 수술을 집도한 임상 경험이 있었다.
그는 대답하기 전, 환자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투시력으로 봤다지만 혹시라도 놓친 것이 있나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다.
환자의 머릿속은 이전에 봤던 것과 다른 형국을 띠고 있었다. 출혈을 멎은 한편 고인 피는 굳어버렸고, 그 탓에 뇌의 중심이 일 점 사 센티 정도 밀려 있었다.
‘역시, 운이 좋았어.’
뇌가 밀렸는데도 증상이 없다.
이는 도수의 예측대로였다.
그는 처음 혈종이 생긴 위치와 출혈량을 내다보고 수술을 미루는 결정을 했던 것.
만약 도수의 예상이 빗나가서 출혈이 계속되고, 환자가 일시적으로라도 언어장애나 의식장애가 생겼다면 더 악조건에서 응급수술을 해야 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꼼꼼히 살펴본 도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마 경막하 출혈로 고인 피가 굳었을 겁니다. 우린 그걸 뇌세포 손상 없이 긁어냅니다.”
물론, 이것 역시 도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이전에 수술이 힘든 상태였던 뇌출혈 환자를 이런 식으로 치료해 본 경험이 있었다.
입술이 바짝 마른 강미소가 물었다.
“괜찮을까요?”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이런 방식은 너무나 위험했다.
지난번 뇌출혈 환자야 다른 방법이 없었다지만 지금은 선택지가 있었다.
대다수의 신경외과의라면 용해제로 굳은 피를 녹인 뒤 피를 빼며 경과를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도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 식으론 완치가 힘들다. 굳은 피가 용해되면서 다시 뇌를 압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 후는 정말 하늘에 맡겨야 할 터.
할 수 있다면 직접 들어가서 혈전을 긁어내는 편이 훨씬 완치에 가까운 수술법이었다.
어디까지나 그런 섬세한 수술을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도수는 그토록 정교한 수술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써전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그렇게 대답한 도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칼날을 환자의 머리로 가져갔다.
스으으으윽.
피부를 절개하자.
곧 허연 두개골이 드러났다.
살을 자르면서 새어 나온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드릴.”
턱.
도수는 두개골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이이잉.
드릴이 뚫고 들어가자.
곁에 있던 강미소가 석션으로 뼛가루를 제거했다.
시이이이이이익.
대수술의 시작이었다.
***
참관실에는 기자들과 병원 의료진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동진의 가족들도 와 있었다.
“…….”
그의 아내는 두 손을 모으고 수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편이 당한 사고.
그리고 뇌출혈.
이런 일은 드라마 속에서나 벌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리라 철석같이 믿었던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하늘이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
“남편분은 괜찮을 겁니다.”
이사장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사장님.”
터미널에서부터 이사장이 직접 보내준 차를 타고 이리로 왔다.
비서란 사람이 운전기사 노릇을 해주었다.
이런 대우, 아무 환자나 받는 것이 아니란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사장의 관심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도.
그럼에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그럼요. 아이들은요?”
“지금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남편의 머리를 여는 장면을 보는 것은 그녀로 족했다. 아니, 그녀마저 개두술이 시작되는 순간엔 눈물이 줄줄 흘렀다. 차마 쳐다볼 수 없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도 모니터나 수술실을 외면하고 있는 그녀를 빤히 보던 이사장이 말했다.
“나가 계셔도 됩니다.”
“아뇨, 그러기 싫어요.”
“…어떤 의사도 수술 결과를 장담할 순 없습니다. 특히 이렇게 큰 수술이라면 더 그렇지요.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선생이 우리 병원 최고의 써전이란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를 따라갈 실력자는 많지 않을 거예요.”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신경외과 과장은 절대 인정하기 싫다는 듯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
물론 정동진의 아내는 그 말을 믿었다.
“알고 있어요… 기사 찾아봤어요.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하지만…….”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을 하기조차 두려운 것이다.
뇌에서 혈액순환이 안 되면 산소 공급이 안 되고.
뇌세포가 죽는 것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죽은 뇌세포는 회복이 안 된다는 것.
한참 숨을 고르던 정동진의 아내가 어렵게 입을 뗐다.
“가장 사랑했던 가족들, 행복했던 추억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거잖아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창피하게.
남들 앞에선 그래도 울지 않으려 했던 의지는 처참히 무너지고 가슴 속에 다지고 다져뒀던 긍정적인 마음은 내려앉았다.
한없는 비관의 골짜기로 빨려 들어가려 할 때.
이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요. 시련에 지지 마십시오. 가족을 잃는 기분이나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저도 알고 있습니다마는.”
그의 눈빛이 아련하게 잠겼다.
오래전 잃었던 가족이 떠올랐다.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커오던 모습, 언제 어디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게끔 실종됐을 당시의 순간까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생생하고 마음은 아련했다.
너무 보고 싶었다.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그 아이 대신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그 아이의 씨앗. 화면 속 도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드시 성공시켜 줄 겁니다. 지금껏 여러 차례 기적을 보여준 것처럼.”
선물 같은 아이다.
이사장인 그에게뿐만이 아니라 무수한 환자들에게도.
한창 수술하고 있는 도수의 모습이 보였다.
‘어쩔 테냐.’
이사장은 눈으로 묻고 있었다.
머리를 완전히 열고나서야 모두가 안 사실이지만, 도수의 선택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피를 용해시킨 뒤 빼내는 식의 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메스를 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장은 도수를 믿어주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보다 못한 걸까?
조금 떨어져 앉은 신경외과 과장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이사장 대신 병원장에게 속삭였다.
“원장님. 저런 식으로 막무가내식 수술을 하다가 실패하면 이건 의료 사고입니다.”
병원장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도수의 판단은 매뉴얼을 완전히 벗어나는 행위였으니까.
굳이 신경외과를 전공하지 않았어도, 의사라면 누구라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참관실 안의 의사들이 의아한 표정이거나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빤히 알면서도.
병원장은 미간을 좁힌 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장님이 허락하신 일이야.”
“하지만…….”
“그만.”
말을 자른 병원장은 이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상황이 불안하고 언짢은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 그럼에도 이사장의 결정을 감히 바꿀 수 없기에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가타부타 거론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성공하길 빌자고. 실력 하나는 최고인 친구니까.”
“…알겠습니다.”
신경외과 과장은 사실 할 말이 많았다.
그 실력 너무 믿다가 언제 한 번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될 터. 그게 바로 오늘이라고 강력하게 설득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기자들까지 수술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 이상 주장을 내세울 수 없었다.
“저놈은 미친놈이야.”
신경외과 과장은 아무도 안 들리게끔 중얼거렸다. 뇌신경과 뇌혈관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퍼져 있고, 뇌세포가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곳을 칼로 헤집고 들어가다니.
‘미친 짓’이란 말 말고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행위였다.
그리고 아무도 못 들었을 줄 알았던 그 말을 귀신같이 귀가 밝은 정영록이 알아듣고 받아쳤다.
“자멸할 겁니다.”
신경외과 과장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곤 나지막이 말했다.
“네 감정은 알지만 안 돼. 적어도 지금은.”
저 많은 기자들이 보고 있다.
게다가 일반적이지 않은 수술법.
결과가 잘못되면 의료 사고로 이어질 테고, 이는 이도수 개인의 문제가 아닌 병원 전체의 문제가 된다.
오직 도수에 대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정영록은 뒤늦게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사리 분별은 하자고. 저주해야 할 때와 안 할 땔 구분하란 말이야.”
“…예.”
신경외과 과장, 그리고 정영록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나만은 확실하다.
저 솜씨.
그야말로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언제 봐도 믿기지 않는 신기(神技)인 것이다.
그것은 도수를 동경하는 후배들도, 대견하게 생각하는 선배들도, 심지어 의사집단 내 이질적인 그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대적자들까지도 공감하는 점이었다.
***
슥, 슥, 스윽.
도수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샤아아아아아아아.
끊임없이 투시력을 쏟아부으며 수술을 해야 했다.
응고된 피, 그러니까 혈전이 맺힌 깊이를 정확히 계산해야 했다.
경막 아래 혈전이 눌러앉은 곳을 투시해서 지주막이나 그 아래 뇌실질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혈전만 긁어내야 하는 것이다.
도수는 그 어려운 일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
강미소는 허탈했다.
도수처럼 그런 수술 실력을 가지고 싶다. 대등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지만 이렇게 수술방 안에서 그의 손놀림을 보고 있자면 까마득히 먼 목표처럼 느껴졌다.
아니, 목표면 다행이지 꿈처럼 느껴졌다.
신기루와 같은 손놀림이다.
‘어떻게 이렇게 섬세할 수 있지?’
그런 생각이 드는 찰나.
섬세함을 넘었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백번 양보해서 매의 눈을 가지고 뛰어난 손기술로 수술을 한다 쳐도 이해조차 안 가는 부분이 존재했다.
어떻게 혈전의 깊이를 알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그거지만…….’
왜 환자를 바로 수술하지 않았던 것일까.
일부러 이런 식의 치료를 생각해 두고 완치를 위해 피가 굳을 때까지 지켜본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스스로 뛰어나다 해도.
상식적으로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이런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한 채 혈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대담해도 그럴 순 없다.
아니, 설령 수술 결과를 자신한다 쳐도 환자 몸속을 샅샅이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어떻게 언제 피가 멎을지, 그 피가 굳으면서 뇌에 얼마만큼의 타격을 줄지 정확히 아는 건 불가능했다.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
도수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강미소나 다른 의료진들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컴퓨터로 치면 마치 에러나 버그 덩어리 같았다.
혼자만 치트키를 쓰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했다.
도수는 그들이 감히 상상도 못 하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으며, 말도 안 되는 감각의 도움을 받아 혈전을 긁어내고 있는 것이니까!
슥, 스윽.
그의 손놀림에 따라.
혈전이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생선 살을 바르듯 능숙한 움직임.
그의 손길이 지나간 아래로, 깨끗한 지주막이 제자리를 찾아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