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11화 (111/152)

# 111

복귀

타타타타타타타타!

헬리콥터가 내려앉았다.

도수와 의료팀 멤버들은 가방을 하나씩 메고 내렸다. 현장에 투입할 때보다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왔다.”

“하, 피곤해.”

혼잣말을 내뱉던 팀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풉!”

“꼴이 왜 그래요?”

“그런 건 거울 보고 물어봅시다.”

“하하하하!”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겨서일까?

그들은 병원을 떠나기 전과는 또 다르게 친분 이상의 어떤 전우애를 느끼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현장에서도 승객과 승무원 전원을 살려서 보낼 수 있었기에 그들이 느끼는 보람과 자부심은 남달랐다.

그 모든 감정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도수는 눈치로 팀워크가 한층 단단해졌다는 것을 체감했다.

‘다행이야.’

그가 애초에 아로대학병원에서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몇몇을 데려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의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고급 인력이다.

한 명의 의사가 탄생하는 데에 드는 자본과 시간과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특별한 자부심을 안고 살아간다.

문제는 이 자부심이 자존심과 연결되는데, 자존심의 방향이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도수가 한국에서 병원 생활을 하며 느낀 건 자신들과 다른 방식으로 의사가 된 그를 대부분 배척한다는 것이었다.

오직 이삼십 퍼센트만 인정을 한다.

여기서 중증외상센터를 견뎌낼 수 있는 인력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중증외상센터는 전공 분야 특성상 끔찍하거나 더러운 꼴을 많이 보는 분야다.

그렇다고 보상이 큰가?

아니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월급은 박봉에 외딴 섬과 같은 분야라서 위로 올라갈 곳도 없다.

남들이 학을 떼도 할말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누군가는 구해야 할 환자다.

그 역할을 자진해서 지원하고 해내는 이들.

그곳에서 무엇보다 큰 보람을 찾고 목숨 걸고 환자를 살리는 이들은 정말 흔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도수에게는 이들이 정말 소중했다.

‘난 중심을 잃으면 안 돼.’

그런 부담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이직률, 퇴직률이 가장 높은 과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수장이 흔들리는 순간 이들은 무너질 것이다.

그냥 무너지는 게 아니라 낙동강 오리알이 될 터였다.

그래서 지켜야 했다.

환자만 지키는 게 아니라 팀원들을 지켜야 했다.

‘이들을 지켜야 환자도 지킬 수 있다.’

도수는 그렇게 확신했다.

아무리 수술 실력이 뛰어난 써전도 혼자서 모든 수술을 해낼 수는 없다. 수술이 커지면 커질수록 손을 거들 든든한 팀원들이 필요했다.

그뿐인가?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고 해도 매일같이 몰려드는 환자들을 혼자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들이 있기에 도수가 있는 것이다.

도수는 그 점을 잊지 않았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팀원들이 밝게 답했다.

그래, 이런 희열.

이 짜릿한 순간들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모두가 그리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굳이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쉴 사람은 쉬세요. 전 병동에 다녀오겠습니다.”

도수가 짐을 풀자마자 말했지만.

누구도 퇴근 준비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도 병동에 가봐야 해요.”

강미소가 일어났다.

다른 의료진들도 몸을 일으켰다.

도수에게는 도수의 환자가 있듯이.

그들에게도 그들이 맡고 있는 환자가 있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분과와 다른 부분이었다.

마치 개개인이 사업을 하듯 자신이 맡은 환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케어해야 한다는 것. 세부 분과로 나눠서 부위별로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다는 게 달랐다.

책임감이 다른 것이다.

도수는 그 같은 책임감을 띤 팀원들과 함께 병동으로 올라갔다.

회진시간이 아닌데도 마치 회진의 한 장면 같았다.

그들과 복도에서 뿔뿔이 흩어진 도수는 뇌출혈 환자인 정동진 기자가 있는 곳부터 들렸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도수를 본 정동진이 밝게 웃었다.

“기사 봤습니다. 선생님의 노고가 알려졌더군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안 보셨습니까?”

“바빠서.”

“하하하하… 아무리 바쁘셔도 좀 즐기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즐길 일인가?

도수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유명세라는 건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미소를 띠며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운 그가 물었다.

“좀 어떠십니까?”

“머리가 많이 아픕니다. 특히 밤에.”

정동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당연한 증상이기에 도수가 되물었다.

“그 외에는요?”

“특별한 증상은 못 느끼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는 투시력을 발휘했다.

샤아아아아아아아.

아직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네 시간 푹 잤는데도 회복이 안 된 듯하다.

도수는 내색하지 않고 본대로 말했다.

“곧 수술 잡아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만 믿습니다.”

“가족분들은요?”

“거리가 좀 있어서. 지금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도수가 목례하자.

눈을 동그랗게 뜬 정동진이 물었다.

“검사는 안 하나요?”

“원하시면 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원하면요?”

“네.”

도수는 구차하게 설명을 더하지 않았다. 빤히 환자 상태를 들여다봤으면서 검사를 하는 것은 괜히 환자의 가계에 부담만 주는 일이다.

물론 확인 차원의 검사는 나쁠 게 없지만.

정동진의 머릿속은 이미 여러번 들여다보면서 변화까지 꼼꼼히 체크한 상태였다.

다행히 정동진은 의사가 아닌 기자.

그는 자세히 캐묻지 않고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이 알아서 잘해주시겠죠. 아, 그리고.”

“예.”

“제가 받는 수술을 대외적으로 공개할까 합니다.”

도수가 눈을 크게 뜨자.

정동진이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선생님의 실력을 의심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저는 언론인으로서 저와 같은 환자들이 선생님의 존재를 알고, 찾아올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인으로서.

자신이 아픈 상황에서도, 직업윤리가 참 투철한 사람이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선 이번 수술에 심열을 기울여 달라는 무언의 압력 행사 같을 수도 있지만 도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다 다친 사람이다.

아무리 의사가 모든 환자들을 같은 높이에 놓고 바라본다 해도 그의 인간성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도수는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다행입니다.”

“뭐가요?”

“의도적으로 언론인의 특권을 이용하려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술 결과를 자신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렇진 않습니다.”

“그런가요?”

잠시 고민하던 도수가 대답했다.

“성공률이 낮다는 얘긴 아닙니다. 그저 저는 한 인간이고, 신이 아니기 때문에 끝없이 의심해야 한다는 거죠. 사람 몸은 기계처럼 고장나면 고치면 되고 부서지면 버리면 되는 게 아니니까요.”

찌르르.

정동진은 진심을 느꼈다.

진정성이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선생님들이 선생님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분들 많습니다.”

“하하, 물론 그렇겠죠. 아무튼 모쪼록 잘 치료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목례를 한 도수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다음 그가 걸음한 곳은 심장 수술을 받았던 CIA요원 엄승진이 머무는 병실이었다.

도수가 그의 앞에 서자, 곁에 따라온 간호사 이하연이 환자 보고를 했다.

물론 도수는 가만히 들으면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샤아아아아아아.

상태는 이하연의 말대로 호전되고 있었다.

‘…정말 다시 악화될까?’

믿을 수 없었다.

평생 운동을 해서 그런지 회복력이 굉장히 빨랐다. 이만한 회복력이면 더 나빠질 일이 없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분명 수술 전 엄승진의 심장을 봤을 땐, 심장이 크게 부었다가 녹아내린 흔적이 보였다.

문제는 ‘왜’인가.

한데 여기에 대한 정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대로는 퇴원시킬 수 없다.’

찜찜했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완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환자가 겪는 모든 변화에 대한 해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밝힐 수 있다면 반드시 밝혀야 한다. 그걸 밝히지 못하는 이상 ‘완치’라고 말하는 건 거짓이었다.

해서 도수는 천천히 접근했다.

“환자분 덕분에 미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엄승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어떻게 제 덕분이겠습니까? 센터장님 인맥이 대단하셔서 그런 거죠.”

씨익 웃는 그.

말하는 거나 표정만 봐도 밝고 힘찼다.

그런데 도수의 직감은 자꾸 앞으로 환자에게 심각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충분히 묘한 감정이 들 만한 상황이지만, 별다른 내색 없이 미소로 화답한 도수가 물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엄승진이 기다리자 도수가 조심스레 용건을 꺼냈다.

“말씀해 주신 약물 외에 다른 약을 복용하신 적이 있습니까?”

“음… 뭘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껏 먹은 약들을 제가 모두 알 수는 없잖아요?”

난처하게 웃은 엄승진이 말을 이었다.

“감기약만 해도 종류가 여러 가지고. 알러지 약만 해도 또 여러 가지고. 이것저것 많이 복용했습니다.”

이런 식으론 조사가 어려웠다.

그래서 도수는 질문을 바꾸었다.

“질문 범위를 좁혀볼게요. 심장과 관련된 약이나 통증에 관련된 약을 드신 적이 있습니까?”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약도 포함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엄승진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뭔가 이상했다.

어디까지나 직감에 의지한 판단이지만.

“정말입니까?”

“네,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몸을 돌려 나가기 전, 도수가 덧붙였다.

“혹시 생각 나시면 말씀해 주세요.”

“…….”

“환자분 생존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수술은 잘됐다고 들었는데요. 지금도 이렇게 활기차고.”

“십여년 전 미국에서 심장 수술을 받으셨을 때도 그랬겠죠.”

“…….”

“물론 아버지의 수술이 실패한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어오른 심장 조직을 잘라내는 수술에 그런 후유증이 동반되진 않아요. 절제와 봉합한 것만으론 장기간에 걸쳐 심장이 녹아내릴 수 없습니다.”

“생각나면 말씀드리죠.”

“예. 그럼.”

도수는 후련치 않은 기분으로 병실을 나섰다.

그 외에도 몇 명의 환자를 더 확인한 그는 이사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이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도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 덕분에 내 업무가 두 배는 늘었다.”

핀잔 주듯 말한 것과는 달리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도수가 대답했다.

“그런데 전 왜 찾으신 건지.”

“…업무가 늘었다는데 관심도 없구나.”

피식 웃으며 한숨을 뱉은 이사장이 화제를 돌렸다.

“음, 오자마자 또 바쁜 것 같으니 최대한 간단히 얘기하마. 네가 이번 사고에서 보여준 활약 때문에 온갖 데서 다 연락이 오고 있다. 단순히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이나 응원 전화만이 아니야. 환자들 예약 전화에 병원 전체가 마비다.”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친 것 같군요.”

“무슨 그런 말을. 네 영웅적인 행동은 누구한테도 폐가 될 수 없다.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네게 감사한다. 네 덕분에 받은 후원금에 대해서도 이사장으로서 감사하고. 할아버지로선, 네가 이렇게 훌륭한 의사로 자라준 것에 감사한다.”

다른 말이 아니라.

‘할아버지로서’ 한마디에.

괜스레 찡했다.

전에는 없던 변화에 도수는 스스로 당황하고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고개를 주억거린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급한 수술만 끝내고 지난번에 얘기했던 일본 연수를 추진할까 한다.”

미리 얘기가 있었던 부분이다.

다만 굳이 연수를 앞당기는 이유가 궁금했다.

“단순히 환자가 밀려서 연수를 앞당긴 건 아니실 것 같은데요.”

“정확히 봤다. 서해에서 있었던 사고. 안개와 강풍이 일 차적인 원인이었고, 다른 배를 피하려다 암초에 걸린 게 이 차적인 원인이었지.”

“그렇습니다.”

“그 날씨의 영향을 받은 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설마…….”

“그래. 일본의 피해는 훨씬 더 심각하다. 이번에도 쓰나미에 당했어.”

일본에는 몇 년에 한 번씩 일어날 정도로 끔찍하게 반복되는 재난.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한데 이번 건 좀 크다. 안 그래도 마침 아사다 선생이 와 있으니, 연수를 앞당겨서 같이 가줬으면 한다.”

“이 건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된 내막인지 묻는 것이다.

그에 이사장이 숨김 없이 대답해 주었다.

“물론. 일단 동일본대학병원에서 향후 우리 병원과의 협력관계를 걸고 지원 인력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아사다 류타로의 복귀도 함께. 그도 사고가 있었던 국내 현장에 나가서 활약을 해줬으니 이번엔 연수가 잡혀 있던 네가 가는 편이 적절한 것 같아서 얘기하는 거다.”

“그렇군요.”

도수는 나쁜 제안이 아니란 판단이 들었다. 어차피 갈 연수고, 세계 최고라는 일본의 재난 대응 프로토콜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재난시 응급 의료인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말했다.

“가겠습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단, 제가 지금 담당하고 있는 환자들 수술을 끝낸 후에 함께 갈 팀을 꾸리겠습니다.”

“물론이다.”

이사장이 빙긋 웃었다.

“그쪽도 쓰나미는 다 지나가서 별문제는 없을 거야. 문제라면 재난 후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질병과 환자들을 잘 커버할 수 있을지 그게 문제겠지.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거라. 이번 사고와 대응해 인력을 파견하는 데에는 나 역시 동의했지만 네가 어떻게 될까 봐 조마조마해서 잠도 못 잤으니.”

“조심할게요.”

도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일본.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던 경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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