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10화 (110/152)

# 110

현장 정리

천하대 의료팀이 육지에 도착했을 땐, 떠나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취재진들은 아직 환자티를 못 벗은 부상자들에게 다가가서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도수는 그들을 개의치 않고 오성병원 의료팀 팀장인 강석현과 다시 마주했다.

“…부회장님께 얘긴 전해 들었습니다.”

강석현이 먼저 운을 떼자.

도수가 말했다.

“우선 환자들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다시 존대를 하고 있었다.

앞길이 달렸는데, 그깟 자존심이 문제겠는가?

‘이번 일을 무사히 해결하고 센터장이 잘 얘기해 준다면…….’

어쩌면.

임옥순의 마음이 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속내에는 관심도 없는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움직이죠.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저희쪽에서 따로 분류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시죠.”

강석현의 대답을 들은 도수는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이민우와 다른 의료팀 팀장들을 만나 빠른 환자 치료에 필요한 프로토콜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동이 틀 때쯤엔 현장에 설치된 막사 곳곳에서 환자 치료가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시기에 맞게 눈이 그치고 안개가 걷혔다. 뿐만 아니라 세차게 불던 바람과 물살도 어느새 잦아들고 있었다.

얄밉기 그지없는 날씨였다.

***

현장의 의사들이 저마다 환자 치료에 뛰어든 사이.

정동진 기자를 비롯해 지속적인 안정과 케어가 필요한 환자들을 미군 헬리콥터에 태워 천하대로 보낸 도수는 현장에 남아 막사 하나를 잡고 간단한 응급 수술들을 진행했다.

그는 마치 손님을 받듯 환자를 받았다.

그리고 기계처럼 수술했다.

끝없는 환자가 줄지어 들이닥쳤고, 도수는 그때마다 최대한 투시력을 아꼈다.

대부분이 외상 환자들이었기에 라크리마에서 수년 동안 반복하며 몸에 아로새긴 동작을 반사적으로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무리는 무리.

땀이 흘렀다.

한 줌 남은 체력이 터진 수도관처럼 빠져나가려 했다.

‘될 때까지.’

슥, 스윽.

도수는 손을 놀렸다.

‘할 수 있는 데까진…….’

시야가 흐려졌다.

눈이 감겼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렇더라도.

도수는 한 명의 환자라도 더 받았다.

그러기를 한참.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니, 몇 명의 환자를 봤는지조차 선명하지 않았다.

그때 한계가 왔다.

덜덜덜.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젯밤의 자욱한 안개가 눈으로 옮겨온 것처럼 시야가 어두웠다.

툭.

메스를 내려놓은 도수가 맞은편에 서 있는 강미소를 바라봤다.

“좀 쉬어야겠습니다.”

그녀 역시 장갑과 수술복에 피를 묻히고 있었다. 하지만 안색은 좀 나은 편이다.

“그러세요. 너무 무리하셨어요.”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무리 부탁해요.”

“걱정 마세요. 봉합만 하면 되는데요.”

강미소가 생긋 웃었다.

그녀의 미소를 보고 나서야 도수는 조금 마음을 놓은 채로 막사를 벗어났다.

수술방으로 개조한 막사다.

겹겹이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가림막을 걷어내자 햇살이 눈을 찔렀다.

“맑다.”

도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였다.

절망 끝에 새로운 희망이 찾아오듯, 절망적인 밤이 지나자 화창한 아침이 열린 것이다.

하나 그에게 주어진 휴식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도수 센터장님?”

기자들이 포토라인 밖에서 도수를 찾고 있었다.

그들을 저지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게도 구조대원들이었다.

‘저기 있을 사람들이 아닌데.’

소중한 인력이 쓸데없는 일에 동원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 포토라인을 넘었다.

기자들도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에 발을 들인 주인공은 도수도 아는 얼굴이었다.

TV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도수 선생.”

덥석.

그가 대뜸 손부터 잡았다.

그리고 포토라인 밖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찰칵, 찰칵.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들이 정신없이 찍고 있는 이 사람은 한 정당의 국회의원이었다.

내년에는 대선후보로 참가한다고 했는데 어느 당의 누구인지 까진 알 수 없었다.

도수는 세상사에 눈을 돌릴 시간도 없는 까닭이다.

지금 이 상황이 피곤한 도수가 아무 말도 않자 남자가 다시 말을 시켰다.

“선생의 위업은 누차 들었습니다. 대단한 일을 해내셨어요. 선생 같은 분들 덕분에 우리 국민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겁니다. 하하하하!”

“…….”

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눈앞의 남자에게는 현 상황이 해피엔딩일 것이다.

아니, 실제로도 사고 규모에 비하면 결과도 기적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사고 현장에 있었던 도수는 웃을 수 없었다.

“…할 말은 많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으니 전 가보겠습니다.”

도수가 몸을 빼려 하자.

남자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뭐 하십니까?”

“이렇게 가시면 어떡합니까?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 기자님들도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할 겁니다. 우리 이도수 선생이 그 부분에 대해 설명 좀 해줬으면 하는데.”

도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서 유쾌하실 것 같진 않은데요.”

“상황이 상황인데 어떻게 유쾌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얘기 좀 해주시죠.”

남자가 도수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수록 쓸 게 늘어나는 기자들은 화색을 띄었다.

“좋습니다.”

도수가 말했다.

“그럼 지금 상황을 말씀드리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들어보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지금이 딱 그 꼴입니다. 지금 상황에선 환자 치료가 우선이 되어야 해요. 꼭 몸이 다친 환자만이 아니라 대부분 승객과 승무원들이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입니다.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

도수는 기자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똑바로 직시했다. 기자들의 시선이 쏟아지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스스로 이 현장에 필요한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딱 필요한 인력만 남아야 사고 수습이 빠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조명하는 건 그다음 해야 할 일이에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모두 구출한 지금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궁금증보단 승객과 승무원들의 안정입니다.”

도수는 다른 한 손으로 남자의 손을 잡고 해제시켰다.

“윽.”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악력에 소스라치게 놀란 남자가 떨어지자.

도수가 나직이 말했다.

“그래도 정 도움이 되고 싶으시면 입고 계신 정장부터 벗고 도와주시죠. 아직 현장에는 궂은일이 널렸습니다.”

남자도, 기자들도.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누군가는 수치심에, 누군가는 부끄러움에 빠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서 시선을 뗀 도수는 눈길도 주지 않고 쉴만한 막사로 향했다.

***

‘홀릭’호 침몰 사고는 어제 새벽부터 오늘 아침까지 반나절 내내 검색창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모든 방송사는 긴급 속보를 내보내며 이 사고에 초점을 맞췄고,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언론사들까지도 이번 사고를 내보낼 정도였다.

당연히 SNS나 각종 동영상 플랫폼들도 모두 홀릭호 침몰 사고에 관한 정보들로 도배됐는데, 주로 이를 통해 해외 기사들이 퍼져 나갔다.

그중에는 생생한 현장을 담은 동영상이 있었다.

바로 매디 보웬의 기사에서 가져온 영상이다.

영상을 본 국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상철(low***)

-진짜 멋진 분들.

박은주(yyyyj***)

-세상 아직 살 만하네요. 기적을 만들어낸 분들… 감사합니다.

오태종(teajong***)

-정부는 이분들한테 적합한 보상을 해라! 홀릭호 사고 당하신 분들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이경태(James l***)

-구조대원인지 의사인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엘리트 집단이면서도 현장 일선에서 뛰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이구용(kind***)

-이런 분들 덕분에 이 나라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승찬(bac***)

-독립투사분들 생각난다. 이순신 장군도… 의료팀장 이도수 센터장님 감사합니다.

오종석(ROB***)

-이도수 센터장님 사랑합니다. 구조대원 분들, 의사분들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민하경(Mi***)

-이도수 센터장님 아로대병원 레지던트실 때 치료받은 적 있습니다! 센터장님을 보고 간호사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간호사가 돼서 찾아뵐게요.

한상원(HAR***)

-이분들이 목숨을 걸고 승객 승무원분들을 다 구조할 때까지 정부는 뭘 했나. 정부는 이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한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국민들이 든든합니다. 감사합니다.

…….

그 뒤로, 영상 하나가 더 게재됐다.

최초 보도는 TV 방송사였다.

도수가 국회의원과 기자들 앞에서 일침을 날리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이 행동 역시 연쇄 폭발을 일으키듯 국민들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네티즌들은 ‘진짜 영웅’, ‘얼굴 핼쑥하신 것 좀 봐’, ‘맞는 말이다 정부와 기레기들은 각성하라’, ‘틀린 말 하나 없다’, ‘완전 사이다 속이 뻥 뚤린다’는 등 어마어마한 응원 글들을 남겼다.

모두 도수가 잠시 눈을 붙인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현장 상황이 전파를 타자 그 결과는 현장 내외적으로 어마어마한 파장을 몰고 왔다.

번쩍.

눈을 뜬 도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순간.

턱.

어깨를 잡아 눕히며 강미소가 말했다.

“괜찮아요. 병원에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전부 이송했고, 부상 없는 환자들은 귀가 조치 했어요. 센터장님은 병원행인 것 같지만.”

도수는 그녀의 눈길을 좇았다.

다리, 팔꿈치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다행히 뼈는 멀쩡하더라고요.”

“휴.”

안도의 한숨을 뱉은 도수가 물었다.

“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그럼요. 김 교수님도 현장에 계시고, 그 정도는 저희끼리도 조치할 수 있어요. 센터장님은 센터장님이 하실 일을 완벽하게 하셨으니까 좀 쉬셔도 돼요.”

“다행입니다.”

도수는 그제야 마음 놓고 편히 누웠다.

그전까지 상체를 경직시킨 채 듣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미소가 말했다.

“센터장님 깨어나시는 대로 저희도 복귀하기로 했어요. 저희가 타고 온 미군 헬기가 대기 중이에요.”

“제가 얼마나 잤길래?”

“한 네 시간 정도요.”

대답한 강미소가 얼른 덧붙였다.

“그동안 못 자신 것에 비하면 별로 안 주무신 거죠.”

도수가 피식 웃었다.

“많이 잔 겁니다.”

“뭐… 센터장님 평균 수면 시간에 비해선.”

“제가 수술한 애는 어떻게 됐습니까?”

복부가 뭉그러진 채 수술 받았던 아이를 말함이다.

눈치 빠르게 알아들은 강미소가 대답했다.

“의식은 깼어요. 아직 식사는 못 하는 상태고.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으니 마음 놓으셔도 될 거예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강미소가 말을 이었다.

“센터장님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유명해지셨어요.”

도수의 표정에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매디 보웬이 취재를 하고 인터뷰를 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강미소가 말했다.

“그래서 천하의료재단에 적지 않은 후원금이 들어왔다고 해요. 안 그래도 적자만 내셔서 이사장님 통장에 잔고가 별로 없다, 대출받으셨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돌았었는데 잘됐죠.”

“네 시간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일인데요.”

“기사 나간 지는 좀 됐으니까요.”

빙그레 웃은 강미소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또 뭐 있지?”

끝이 아니라니.

고민하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참! 그리고 이사장님이 찾으셨어요.”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 한 통 드릴게요.”

“네, 그리고 기왕이면 병원 들어가시는 대로 바로 이사장실로 가주세요. 이사장님이 센터장님 복귀하시면 환자 보느라 정신없을 거라고, 저한테 꼭 이사장실부터 들렸다 일 보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그러나.

도수는 이번엔 거부했다.

“안 됩니다. 병원 들어가는 대로 뇌출혈 환자부터 살펴봐야 돼요. 그다음에 찾아뵙기로 하죠.”

“저는 어떡하라구요?”

“제가 얘기하죠.”

“상대는 이사장님이라고요.”

“알아요.”

“센터장님이야 편하실지 몰라도 저한테는 하늘같은 이사장님이라니까요?”

“언제부터 그런 데 신경 썼어요?”

“전 원래 썼거든요?”

강미소가 눈을 흘기자.

피식 웃은 도수가 대답했다.

“그럼 앞으로 쓰지 마세요.”

그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강미소가 곁에서 부축했다.

“아고고, 머리에 든 게 많으셔서 그런가. 엄청 무겁네!”

엄살을 떠는 그녀.

다시 한번 웃은 도수는 천막을 나섰다.

이제, 지옥 같은 밤이 지나고.

마침내 돌아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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