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사십이 분.
도수가 대수술을 끝내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정작 장기의 손상된 부분을 잘라내고 꿰매는 데 걸린 시간은 이십 분 안쪽이었다.
나유하가 함장한테 얘기해서 닻을 내린 사이.
정말 이십 분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에 수술을 마무리 지어버린 것이다.
스르르르륵.
다시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도수는 여유롭게 환자의 배를 닫았다.
***
짧지만 쉽지 않았던 수술이 끝난 후.
도수는 보호자를 만났다.
아이 엄마는 애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어선에서 치료를 받고 왔습니다.”
왼팔이 다쳤는지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 시선을 읽었는지, 애 아버지가 말했다.
“아들 녀석을 잡고 있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그때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만약 그랬다면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후회감이 묻어났다.
도수가 말했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하아… 그럼 이제 아무 문제없는 건가요?”
애 엄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지만.
도수는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다.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아… 선생님, 분명히 수술이 잘 끝났다고…….”
“수술은 잘 끝났지만 출혈이 너무 심했습니다. 때문에 여러 가지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어요.”
“후유증이라니…….”
“그래도 희망적인 건, 아드님의 회복력이 뛰어나다는 겁니다. 일반인이었다면 버티기 힘든 수술을 견뎌줬어요.”
복부를 열었을 때 맞닥뜨린 모습은 투시력을 써서 보던 것보다도 심각했다. 췌장액과 핏물이 장기들과 엉겨 붙어 있었기 때문에 작은 손상 부위나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얇은 혈관들이 가닥가닥 끊어진 건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배를 열고 투시력을 쓴 뒤 수술을 하면서 모두 해결한 것이다.
아이 어머니는 만족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으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아이 아버지였다.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두 사람은 객실을 나섰다.
복도에 멈추자 아이 아버지가 말했다.
“선생님이 쭉 저희 아들을 맡아서 치료해 주셨으면 합니다.”
“…….”
곤란한 부탁이었다.
뇌출혈 환자야 그가 먼저 권유했다지만, 아이의 경우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도수의 전문 분야는 수술이지 회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는 주로 수술을 하는 써전입니다.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서 환자의 회복을 돕는 건 어디서 하시든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쪽 분야로는 저보다 뛰어난 선생님들도 많으시고요.”
“선생님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환자들을 살리는 의사. 라크리마에서도 목숨 걸고 부상자들을 구하셨던 영웅이시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병원에서 근무하는 어떤 선생님이든 아드님을 포기하거나 해가 되는 일을 하진 않을 거예요.”
사실이었다.
라크리마에서, 도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사람들을 치료할 기술이 있음에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만 보고 있는 건 그의 신념이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간다는 것.
그걸 보는 기분이 어떤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도수는 매일 그 같은 광경을 보아왔다.
그리고 장담할 수 있었다.
눈앞에서 남이 죽어가는 걸 봤을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진해서 나설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거라는 걸.
그 남이 친구나 동료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쭉 살아왔던 애 아버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전 병원을 믿지 못합니다. 솔직히 의사 선생님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리 신뢰하지 못해요. 제가 옛날에 아플 당시에 의료 사고를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저희 아이를 받아주세요. 선생님이 너무 바쁘시면 천하대병원에라도 받아주시고 선생님께서 종종 들여다봐 주십시오. 비용이 발생하면 얼마든 지불하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도수가 대답했다.
“그 정도는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아이 아버지.
그러나 도수는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의 승낙 한 번이 추후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
보호자들을 만나고 나올 때까지 도수를 기다리고 있던 매디 보웬이 말을 걸었다.
“수술 성공률 백 퍼센트.”
“…….”
도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정말 운이 좋게도 수술까지 가서 환자를 잃어본 적은 아직 없었던 것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수술도 못 해보고 환자를 보내야 했던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매디 보웬이 말을 이었다.
“인터뷰를 좀 하고 싶은데.”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환자가 여럿 있었다.
배에서 내리면 더 할 일이 늘어날 터였다.
그 점을 인지한 매디 보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몇 가지만. 짧게 끝낼게. 지금 어때?”
“쉬어야 되는데.”
“쉬면서.”
도수는 그녀에게 고마운 게 있었다. 부모님에 관한 의문을 한 꺼풀 벗겨준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그는 더 이상 거부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도착할 때까지만. 괜찮아요?”
“충분하진 않지만 충분하도록 만들어볼게.”
두 사람은 테라스로 가서 바람을 쐤다.
으슬으슬 추울 정도로 세찬 바람이었다.
그에 옷깃을 여민 매디 보웬이 물었다.
“왜 굳이 여기로?”
“정신 좀 차리려고요.”
“쉰다는 게 눈 좀 붙이겠다는 거 아니었어?”
“자다 깨면 감각이 무뎌집니다.”
아직 몇 명의 환자를 더 봐야 할지.
어떤 환자가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잠을 잘 수는 없었다.
한숨을 내쉰 매디 보웬이 말했다.
“그러다 네가 먼저 아프겠다.”
“아직 괜찮아요.”
피곤하긴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처럼 며칠 밤을 수술과 출동으로 지새운 것은 아니다.
힘들기야 지금이 더 힘들었지만 졸음은 그때가 더 심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하도 못 자고 일만 하다 보니 잠이 준 것도 있고, 불규칙적인 수면 시간에 불면증이 생긴 것도 있고. 하여튼 버틸 만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던 매디 보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거 착각이야.”
“뭐가요?”
“괜찮다는 거. 육체를 넘어서 정신력을 갉아먹고 있는 거라고. 체력이 소모되는 걸 지나서 몸이 망가지고 있는 거고. 남이 아픈 곳은 한번 보면 척척 알아내면서 왜 네 몸이 하는 소리는 못 들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피식 웃으며 태연하게 대답한 도수가 물었다.
“그나저나 시간 많아요? 이제 곧 도착할 텐데.”
“인터뷰 안 하면 좀 잘래?”
“말했듯이…….”
“휴, 말 디지게 안 듣네.”
입술을 축인 매디 보웬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자. 이번 일에 미군이 협조를 했다던데.”
“미군 더스트오프 팀이 투입했습니다.”
“어떻게?”
미군을 움직이다니.
일개 의사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수는 간단히 대답했다.
“할리 무어 장군이 얼마 전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더군요.”
“그분이?”
매디 보웬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인 것이다.
“저와 그분의 인연은 누구보다 잘 아실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한국 땅에서 우리 모두가 조우하게 될 줄 몰랐는데.”
“저 역시.”
역시 사람 인연이란.
이 넓은 세상조차 좁게 만드는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피식 웃은 매디 보웬이 질문을 이어갔다.
“왜 굳이 더스트오프 팀이 투입된 거야?”
이 부분.
도수가 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 중 하나였다.
“항공청에서 비행 금지를 시켰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네. 문제는…….”
“문제는?”
“정부에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구조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거죠.”
“대응이 늦다는 얘긴데.”
“사람들을 구조해야 한다는 목적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니까요.”
“추가 인명 피해를 우려해서 망설인단 얘기네.”
“네.”
“그에 대한 네 생각은?”
“물론 구조대나 저희 의료팀도 개개인 모두 소중한 생명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목숨을 걸고 구조하길 원해도 정부에서 승인을 내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죠. 구조 작전에 실패하고 추가 사고만 발생할 경우 여론의 뭇매가 두려우니까.”
“난 한국인이 아니야. 타임즈 기자한테 이런 얘길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애국심에 문제 재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솔직히 전 한국에서 오래 살지도 않았고, 우리나라에 대한 특별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가지고 살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계속 타국 전쟁터에 있었으니.”
“네. 그래도 부모님의 나라라는 것에 일말의 애정은 있습니다. 다만 제 생각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준이 다른 거겠죠.”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분명 외국 기자를 통해 우리나라의 치부가 들키면 아플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도 상하고요. 하지만 그래야 발전이 있다고 봐요. 지금 저와 함께 일하는 동료인 김광석 교수님께선 아로대 중증외상센터를 운영하면서 여론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정부도 지원을 약속했죠. 하지만 그 지원금이 간 곳은 아로대 중증외상센터가 아니었습니다.”
“그럼?”
“중간에서 찢어 먹고 나눠 먹은 거죠.”
도수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법적인 부분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욕할 생각은 없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사는 사람들이 남들보다 더 벌고, 더 잘 먹고 잘 살길 원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적어도 치부를 은폐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너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어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예.”
“너 정도면 한국 여론을 이용해서 알려도 되잖아? 이 같은 실태를.”
“아뇨.”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전 정치인도, 방송인도 아닙니다. 그런 건 그분들이 할 일이고요. 의사인 제가 여론을 이용하면 그 칼이 저한테 돌아올 겁니다.”
“아로대병원장을 여론을 이용해서 날려 버린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건 제가 근무하고 있고, 앞으로 근무하게 될 병원의 전반적인 문제가 얽혀 있었어요. 그리고 의사 사회 안에서 저 자신을 지키려면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런 방식을 종종 무기로 삼을 생각은 없어요.”
매디 보웬은 늘 화제를 쫓아다니는 기자였다. 도수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해서 그녀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슬슬 정리했다.
“걱정 마. 왜 더스틴오프가 뜬 건지 팩트만 기술할 테니까.”
“제가 원하는 것도 그거예요. 이런 부분에서 정부의 늦장 대응. 그리고 몸 사리는 태도는 개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나머지는 자세히 실어도 되지?”
“나머지요?”
“정부가 아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사람들을 구출했어. 물론 현장 구조대 역할도 컸고. 그들과 의료팀, 오성그룹, 네가 보여줬던 영웅적인 행동들도 있는 그대로 실을 거야. 그들에 의해서 구출된 사람들도. 어떻게 구출됐는지 자세히 쓸 거고. 주제는 ‘바다의 의인들’. 어때?”
“좋네요.”
도수는 미소 지었다.
육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성그룹 선박은 선두에서 안개와 물살을 가르며 어선들을 이끌고 선착장으로 들어섰다.
“이제 다시 바쁘겠네.”
매디 보웬의 말에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뇌리로 정동진 기자가 떠올랐다.
방금 전에 큰 수술을 마쳤는데 아직 쉽지 않은 수술이 남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배, 그리고 어선에도 아직 치료받을 환자가 산적해 있었다.
도수가 주머니에 넣어둔 손을 녹이려는 듯 쥐락펴락하며 돌아선 그 순간.
테라스 문을 열고 강미소가 들어왔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센터장님.”
“또 무슨 일입니까?”
“그게… 이게 참, 뭐라고 해야 할지.”
그녀는 우물쭈물했다.
“뭔데 그래요?”
도수가 다시 묻자.
강미소가 곤혹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오성병원에 배정된 선박 안의 모든 환자들이… 센터장님한테 치료를 받고 싶다고 청원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