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선박 의무대로 돌아온 도수는 처치실 앞에 앉았다.
맞은편에 아사다 류타로와 김광석이 나란히 앉아서 수술 전 긴장감을 맛보고 있었다.
스르륵.
피로한 눈을 감은 도수는 손을 주물렀다.
그런 그를 응시하던 김광석이 물었다.
“괜찮나?”
도수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때, 아사다 류타로가 대화를 이어갔다.
“수술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가 이같은 질문을 던진 이유는 간단했다.
어떤 수술이 이뤄질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정박해 있던 선박과 병원 의료팀을 갑자기 동원하는 바람에 이렇다 할 검사 시설을 갖추지 않은 상태로 출동했던 것.
아사다 류타로의 상식으론 검사도 하지 않고 이런 큰 수술을 하는 건 무리였다.
그에 도수가 슬며시 눈을 뜨며 대답했다.
“일단은 열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검사도 없이 수술에 들어가면 놓치는 부분이 생기기 십상일 텐데요.”
“일차적으로 지혈만 하고 나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도수는 이미 어린 환자의 배 속을 봤다.
따라서 그 정도 조치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안 된다면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끝까지 수술을 해야죠. 그래서 김 교수님을 부른 겁니다.”
아무리 투시력이 있다 해도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 있었다.
오감에 이상이 없다고 해서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건 아닌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런 실수를 줄이려면 많은 경험과, 다양한 경험을 한 써전을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유리했다.
지켜보는 눈이 한 쌍이라도 더 있으면 놓친 부분을 포착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사다 류타로도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아사다 선생님도 놓치는 게 있는지 잘 봐주세요.”
“저야 뭐 흉부외과의니…….”
그렇게 말은 했지만 지나친 겸손이었다.
흉부외과의라도 경험이 적을 뿐 해부학적인 지식은 중증외상외과의보다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두 사람을 일별하던 김광석이 말했다.
“우린 환자를 살릴 거야. 이렇게 세계 최고의 젊은 권위자들이 함께하는 수술인데 꼭 성공해야지.”
“과찬이십니다.”
아사다 류타로가 대꾸했다.
“김 교수님 명성은 일본에서도 익히 들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건의 대수술을 성공시키는 신의 손이시라고요.”
“여기 이도수 선생만 하겠는가.”
“…….”
두 사람의 시선이 도수를 향했다.
도수가 해왔던 수술들. 그가 성공시켰던 수술들은 대부분 평범한 외과의라면 손대기도 아찔한 그런 수술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수술도 반드시 성공시킬 거라고, 두 사람은 믿음을 가졌다.
바로 이런 시선.
이런 시선들이 도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부담감이었다.
그나마 의사가 보내는 시선은 좀 낫지, 환자나 보호자가 이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볼 땐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익숙했기에.
도수는 내색하지 않고 일어섰다.
“슬슬 준비하시죠.”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 따라 일어났다.
손을 소독하고 있는 그때.
한 사람이 임시 대기실로 들어왔다.
바로 수술복을 입은 매디 보웬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녀도 의료팀에 합류해서 이쪽 배로 건너왔던 것이다.
“매디 보웬.”
“수술 참관해도 될까 해서.”
“참관이요?”
“배 위에서의 수술은 흔한 일이 아니잖아.”
잠시 생각해 보던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이나 사진 촬영은 안 됩니다.”
“나도 그 정도 상식은 있다고.”
빙그레 웃으며 두 손을 내 보인 매디 보웬.
그녀는 세 사람의 써전과 함께 수술실 안으로 입장했다.
그러자 안에서 미리 수술 준비를 마쳐둔 강미소와 이시원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오성병원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장갑을 낀 도수가 말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그는 어린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환자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깰 때쯤이면 괜찮아질 거야.’
속으로 말한 도수가 볼록해진 배를 보았다.
샤아아아아아아.
피가 가득 차서 복강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이내 도수는 맞은편에 선 김광석과 아사다 류타로에게 말했다.
“피가 터져 나올 거예요.”
“그럴 것 같군.”
“그럼, 개복 시작하겠습니다. 칼.”
강미소가 건넨 메스를 받아 든 도수는 칼날을 환자의 배에 가져다 댔다.
그르르르르르.
미세하게 떨리는 선체.
이미 어느 정도 진동에 적응돼서 그냥 서 있을 땐 크게 와닿지 않는데, 이렇게 정교한 수술을 하려고 서니 미세한 진동도 치명적이었다.
“젠장.”
같은 느낌을 받은 김광석이 욕설을 뱉었고.
아사다 류타로 또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실수로 혈관이라도 잘못 건드렸다간…….”
그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안 그래도 심각한 출혈이 지속되어 온 환자다. 여기서 멀쩡한 혈관까지 손상을 입힌다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출혈이 발생할 터였다.
하지만 도수는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어차피 버티지 못하는 것은 똑같을 테니까.
“…절개 들어갑니다.”
잠시 멈췄던 도수의 칼날이 다시 움직였다.
슥, 스으으으윽.
그르르르르르.
선체의 흔들림에도.
수직으로 움직이는 칼날은 미동하지 않았다.
단순히 매스를 단단히 붙잡아서가 아니었다.
도수는 몸으로 진동을 읽고 있는 것이다.
‘감(感).’
감각에 맡겨야 했다.
그래야 칼이 다른 곳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완전히 믿고 몸이 가는대로 움직인다.
어차피 진동 방향은 같으니 선체의 진동에 저항하기보단 순응한다.
스으윽.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배를 가른 도수는 메스를 반납하며 말했다.
“보비.”
그리고 복막을 자르기 전, 짤막하게 덧붙였다.
“피 많이 납니다.”
모두가 바짝 긴장한 가운데.
보비가 복막을 태웠다.
치이이이이이익.
그 순간.
푸슉!
피가 튀었다.
배 속은 핏물로 가득 차 있었다.
넘실댄다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거즈!”
도수의 손이 빨라졌다.
거즈를 채우기 무섭게 붉고 무거운 덩어리가 됐고.
철퍽! 철퍽! 철퍽!
그는 제 역할을 다한 거즈를 패대기쳤다.
“이리게이션!”
핏물에 덕지덕지 엉겨 붙은 췌장액이 장기들을 녹이지 않도록 세척액을 붓고 다시 거즈를 쑤셔 넣는다.
철퍽! 철퍽!
거즈를 내던지고.
다시 새 거즈로 갈아서 넣는다.
그 와중 도수가 외쳤다.
“포셉! 클램프, 켈리!”
순식간에 의료도구들이 교체되며 손이 바빠졌다.
능수능란한 움직임.
어떤 써전도 이보다 빠를 순 없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환자의 상태는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후우! 배 속이 완전 엉망이야!”
김광석이 진저리를 쳤고.
아사다 류타로도 미간을 찌푸렸다.
“혈압 계속 떨어집니다.”
이건 혈액 주머니를 짠다고 어쩔 수 있는 출혈량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혈압을 확인한 김광석이 신음하듯 뱉었다.
“깨진 항아리 같군……!”
적절한 비유다.
깨진 항아리에서 물이 새듯 피가 빠져나가고 있으니.
“방법이 없습니다. 빨리 출혈 잡는 수밖에. 보비.”
치이이이이익!
도수는 순식간에 장의 손상부 위를 절제했다.
샤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을 끊임없이 쏟아붓고 있었다.
체력도 환자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듯 물처럼 빠져나갔다.
주르륵.
관자놀이를 타고 땀이 흘렀고, 간호사가 닦았다.
“패드로 싸는 건 안 돼요. 봉합합니다. 타이.”
봉합침과 봉합사를 받은 도수는 절제 부위를 꿰매려 했다.
그러나.
그르르르르르.
선체의 흔들림.
이게 가장 큰 난관이었다.
“후우.”
짧게 한숨을 뱉은 도수는 손을 대려 했다.
그러나 또.
그르르르.
어선에서처럼, 혹은 헬리콥터에서처럼 지진이 난 듯 흔들리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실과 바늘을 써서 상처를 꿰고 매듭짓는 건 절제에 비해 기술적으로 더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시간이 없다.’
도수가 불쑥 말했다.
“강미소 선생,”
“네?”
“거기 무전기 있어요.”
“…예.”
그녀가 무전기를 들기 무섭게 도수가 할 일을 알려주었다.
“제 주파수에 대고 무전 때려요. 배를 멈춰달라고.”
“배를……?”
“빨리. 시간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미소가 무전을 했다.
치지직.
“여긴 의무대 수술실. 배 멈춰달라, 오버. 다시 반복한다. 배 멈춰달라, 오버.”
그러자 곧장 답변이 돌아왔다.
-일 분만 기다려요. 오버.
나유하였다.
일 분.
도수는 초조해졌다.
다른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일 터.
그리고 그들 누구보다도 환자가 더 초조할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을 하며 환자를 주시하던 김광석이 긴장감을 달래려는 것처럼 물었다.
“배는 어떻게 멈추려고?”
“곧 멈출 겁니다.”
도수는 설명을 생략했다.
그 말이 떨어지고 머지않아.
쿵!
한 차례 크게 흔들린 선박의 흔들림이 잦아들었다.
‘지금이다.’
지금 이 순간.
도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여전히 많지 않았다.
대신 배가 닻을 내린 시간 동안만큼은 날씨와 파도의 영향권을 벗어난 셈이었다.
“다시 시작합니다.”
도수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슥, 스윽.
육안으로 따라잡기 힘든 수준의 빠르기.
손상된 부위를 절제하고 상처를 꿰매 출혈을 막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 재촉하듯 흐르고 있었다.
환자의 골든아워와 맞물리며 돌아가는 그 시간이 바로 이번 수술 결과를 결정지을 승부처였다.
‘더 빨리.’
급박한 순간이었지만 오히려 손의 힘은 풀고.
침착하게 하나씩 해결한다.
그게 바로 도수의 비법이었다.
***
한편.
아사다 류타로는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차라리 경악에 가까웠다.
‘어떻게…….’
그야말로 물 흐르듯 진행되는 수술.
잠시 잠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그가 보기에 도수는 눈으로 보기도 전에 환자의 손상부위와 터진 곳을 정확히 찾아 꿰매는 것 같았다. 그래야 이토록 빠른 대응이 말이 된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하긴 한 건가?’
하긴, 이런 질문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도수가 지금껏 단 한 차례의 수술 실패도 겼지 않았던 것은,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꿰뚫어 볼 수 있기 때문일 테니까.
아사다 류타로는 정확히 간파하지 못했지만, 이 모든 것은 대부분 외과의들이 꿈꾸는 능력인 투시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도.
혈압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아사다 류타로는 환자의 중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고 있었고, 혈압이 더 떨어지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대안을 제시했다.
“정질액 사백 밀리리터 공급하겠습니다.”
수액을 투여하자는 말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일회박출량 변이나 심장박출지수가 낮은 상태가 아니에요. 우린 당장 수술이 성공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환자를 살리는 게 목적입니다. 수액 과부하가 사망률 증가와 직접적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건 여러 연구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이에요.”
그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차분했다.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했다.
도수의 외모가 아니었더라면 그 누가 그를 젊은 의사라고 생각하겠는가?
마치 수십 년 수술해 온 써전 같은 모습에, 아사다 류타로는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출혈이 너무 심합니다.”
“그래도 수액은 지금 이대로. 피 짜면서 에페드린 주세요.”
“에페드린이요?”
에페드린(Ephedrine: 교감신경흥분제의 일종)은 심박수와 심박출량을 증가시키고 말초혈관을 수축시켜 일시적으로 혈압을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반대로 마약 성분을 포함하기 때문에 과다 복용 시 부정맥이나 심장마비 등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약물이었다.
그럼에도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출혈 잡을 때까지만.”
서걱, 서걱…….
그 와중에도 도수의 손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라크리마에서 수많은 외상 환자들을 경험하며 안쪽, 바깥쪽 할 것 없이 출혈을 잡는 데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다.
“타이.”
슥, 스윽.
“컷.”
툭!
스윽, 슥.
“컷.”
툭!
“…….”
아사다 류타로는 반발할 생각도 못하고 도수의 수술 솜씨를 감상했다.
‘기계 같군.’
애초에 투시력을 이용한 모든 것들이 불가능한 일들이었지만.
기본기조차도 보기 힘든 수준의 실력이었다.
이렇듯 눈부신 속도와 정확도는 오로지 써전의 집중력에 의한 것.
도수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하게 환자한테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이 닿은 걸까?
어린 환자 역시 도수의 수술 실력만큼이나 기적적으로 버텨주고 있었다.
아사다 류타로가 말했다.
“이시원 선생. 혈액 좀 더 가져와요.”
미리미리 대처하기 위해서다.
충분히 가져온 혈액을 다 썼다는 건, 환자 몸에 본인 피보다 타인의 피가 더 많이 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버티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생존력이었다.
어리고 건강한 몸이 자체적인 회복력을 발휘하면서 인체가 받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컷.”
툭!
실밥이 잘려 나가고.
도수가 말했다.
“봉합 끝났습니다.”
벌써?
그런 표정으로 모두가 도수를 바라봤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혈압은?”
“…조금씩 돌아오고 있군.”
김광석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처 수술 전 검사 사진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언제 봉합이 끝난지도 몰랐다.
그리고 정말 모든 출혈이 잡힌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한데 도수는 손상된 장기 네 곳을 절제하고 열두 곳을 꿰매는 일을 순식간에 해냈다.
그것도 한 곳도 빈 곳 없이.
완벽하게 환자의 출혈을 잡은 것이다.
“피 좀 더 주면서 배 닫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도수는 입에서 단내가 나는 걸 느꼈다. 머리가 핑 돌 정도로 힘에 부쳤다. 오늘 하루가 이렇게 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칼자루를 놓치는 순간, 환자의 운명은 끈 끊어진 연처럼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터였다.
다른 환자들과는 달랐다.
이곳은 검사기기는 물론 의료 도구들도 완벽히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
이런 상황에서 어린 환자를 감당할 수 있는 건, 환자의 배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도수뿐이었다.
그야말로 지켜보는 것만도 숨이 찰 정도로 급박한 상황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매디 보웬은 자기도 모르게 말려있는 주먹에 힘을 주었다.
‘또 성공이라니.’
그간 도수의 행보를 모두 조사해 둔 매디 보웬이다. 그녀는 세계여 론이 집중할 만한 사건 속에서 다시 한번 대활약한 도수의 위상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감이 안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