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03화 (103/152)

# 103

의사(醫師)에서 의사(義士)로

도수는 어린아이의 복부를 확인했다.

샤아아아아아아.

‘출혈이 심해.’

도수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떨어진 구조물에 의해 부러진 뼈.

그리고 깨진 장기들이.

“빌어먹을.”

거친 욕설을 뱉은 도수는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저 멀리 다가오는 구조대원들이 보이는 그때.

촤아악!

파도가 들이쳤다.

도수는 순간적으로 가방을 맨 팔을 뻗어 아이를 껴안았다.

쾅!

“큭.”

구조물에 부딪치자 등짝이 찌르르 울렸다. 팔꿈치가 찢어졌는지 얼얼했다. 파도가 썰물처럼 빠져가기 무섭게 도수는 아이를 바닥에 눕혔다.

“후아, 후…….”

식은땀이 흘렀다.

부딪친 구조물 벽면에 솟아 있는 날카로운 못 끝.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했다.

하마터면 아이를 구하긴 커녕 부상자가 되어 아이 옆에 나란히 누울 뻔했던 것이다.

구조 작업은 한시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웠다.

그럼 배 안에서 들어오는 환자를 돌보면 되지 않느냐고?

의사의 일은 구출이 아닌 치료 아니냐고?

그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아이의 상태를 본다면 절대 그런 생각은 못할 터였다.

그때 구조대원들이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우연히도 날아온 쪽이 구조대원들이 위치한 방향이었다.

그들을 본 도수가 물었다.

“들것은?”

“파도에 휩쓸려 버렸습니다.”

구조대원들이 난색을 표했다.

“업을까요?”

“큰일 납니다.”

고개를 내저은 도수는 가방에서 압박붕대를 꺼내 아이의 몸을 감기 시작했다.

슥, 스윽.

빠른 손놀림.

다시 파도가 들이치기 전에 아이를 옮겨야 했다.

슥…….

“능숙하네요.”

구조대원이 주위를 훑으며 선배 구조대원에게 말하자.

그 말을 들은 구조대원이 대답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다른 부상자 있나 빨리 살펴.”

“알겠습니다.”

“파도 오는 지도 좀 보고.”

이 밤에.

그게 보일 리가 있나?

그러나 후배 구조대원은 토 달지 않았다.

“예.”

그 사이 아이의 작은 체구를 압박붕대로 둘둘 감은 도수가 고개를 들었다.

“배 속이 엉망입니다. 뼈가 부러져서 잘못 움직이면 상처를 찌를 수 있어요. 이미 손상된 장기의 상처가 벌어질 수도 있고요. 한 분은 이쪽에서 잡으십시오.”

도수가 위치를 정해주었다.

“나머지 한 분은 이쪽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다.

고정할 만큼 고정했지만 완벽한 고정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도수는 배 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어떻게 잡아야 흔들리더라도 뼈가 장기를 찌르거나 상처 입은 장기의 손상범위가 커지지 않을지 예견할 수 있었다.

구조대원 둘이 붙어서 아이를 들어 올리자.

도수가 단단히 못 박았다.

“구명정까지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돌아가는 즉시 의료진에게 수술 준비 하라고 일러두세요.”

“배에서요?”

“간단한 수술 도구들은 챙겨왔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토를 다는 후배 구조대원에게 눈을 부라린 선배 구조대원이 말을 잘랐다.

“알겠습니다.”

그가 이어 물었다.

“한데 선생님은 안 가십니까? 여긴 위험합니다.”

도수도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다친 아이를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 역시 그가 아니었다면 최적의 응급처치를 받지 못했을 테고, 다른 구조대원들이 녀석을 발견했다면 이곳에서 빼내는 것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고정시키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긴 했겠지만, 도수처럼 몸속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이 난리통에 안정적으로 고정시키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 설령 몸속을 볼 수 있더라도 숙련된 정형외과 의사가 아니라면 쩔쩔 멜 터였다.

도수가 가능했던 이유는 워낙 전쟁터에서 외상 환자를 워낙 많이 다뤄봤기 때문이었다.

물론 투시력의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두렵다.’

방금처럼 파도에 휩쓸릴까 봐, 혹은 못이 튀어나온 구조물에 부딪쳤다 크게 다칠까 봐 두려웠다. 꼭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더라도.

사고를 당해 손이라도 다치는 날에는 써전으로서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수는 두려움을 부수며 말했다.

“전 남겠습니다.”

“아니, 왜…….”

후배 구조대원의 말에 그가 눈짓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수의 발목을 잡은 건, 갑판 난간에 걸쳐져 있는 남자였다.

위험천만한 전장에서도.

늘 이런 장면이 그의 발길을 이끌었다.

“맙소사.”

“먼저 가십시오.”

그렇게 말한 도수는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구조대원들이 비명처럼 외치는 걸로 봐선 이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발, 한 발 떼며 남자한테 가까워질 때마다 그를 구해야겠다는 다짐은 강건해지고 손발에 힘이 더 실렸다.

턱!

난간을 잡은 도수가 몸을 끌어 올렸다.

난간에 걸터서서 위태롭게 걸려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샤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이 발휘됐다.

이마가 찢어져 출혈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눈에 보이는 출혈이 아니었다.

뇌 속.

미미한 출혈이 발생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

‘이건 너무하잖아?’

남자의 상태는 어린아이 때보다 심각했다. 이 남자를 살릴 수 있을까. 아니, 이 난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어선으로 옮길 수만 있어도…….

수많은 상념이 뇌리를 스치며 복잡하게 얽혔다.

“후.”

숨을 뱉은 도수는 생각을 차단했다.

지금 해야 할 건 생각이 아닌 행동이다.

그는 난간을 밟고 위태롭게 일어섰다.

직각으로 솟은 난간 위에서 깜깜한 수면을 바라보니 심연처럼 아찔했다.

지옥이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지옥으로 가는 통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절로 치밀 만큼 섬뜩한 장면이었다.

“후, 후우.”

눈을 감고 심호흡한 그가 눈을 떴다.

아래를 보지 말자.

딱 레펠 높이.

그래, 레펠도 탔는데.

그렇게 마음을 다지며 도수는 환자를 난간 위로 눕혔다. 발이 몇 번 미끄러지며 간담이 서늘했지만 땀을 뻘뻘 흘린 결과 간신히 바로 눕힐 수 있었다.

‘어떻게 구출하지?’

구조대원들이 갑판 구조물을 타고 난간까지 올라올 수도 있다.

그러나 기적처럼 올라온다 하더라도 환자를 내리려면 필연적인 움직임이 수반된다.

뇌출혈 환자를 억지로 움직이는 건 죽음을 재촉하는 짓이나 다름없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는 순간.’

도수는 그 순간을 노렸다.

그러려면 그때까지 환자가 무사히 누워 있어야 한다.

그는 가방끈을 풀어 환자의 어깨와 허벅지를 난간에 동여매고 바람막이를 벗어 목 뒤를 받쳤다.

그리곤 혹시라도 경련을 일으켜 혀를 깨물지 않도록 입에 거즈로 둘둘 말은 레이저 포인트를 물려줬다.

그다음 뒷주머니에서 해양구조대용 방수 무전기를 꺼낸 도수는 입을 가져다 댔다.

“응답하라. 여긴 천하대 구조팀. 반복한다, 여긴 천하대 구조팀. 응답하라.”

칙, 치직.

말을 안 듣는다.

그는 살짝 감정을 담아 무전기로 난간을 두드렸다.

탁! 탁!

치지직.

“여긴 천하대 구조팀…….”

-들린다, 오버. 잘 들린다.

“들리나?”

-들린다, 천하대 구조팀.

“현재 위치 갑판 난간. 뇌출혈 환자 발생. 구명정을 선미 주위에 배치해 주길 바란다. 침몰하는 순간 구조한다. 구조대원들이 최대한 조심할 수 있게 전하도록. 오버.”

-알겠다, 오버.

타이타닉 같은 거대함선이라면 가라앉는 순간 구명정까지 와류에 빨려 들어가겠으나 여객선의 규모상 그 정도 와류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더욱이 지금처럼 다른 쪽으로 몰아치는 파도가 거센 상태라면.

오히려 악재가 호재가 된 셈이다.

자.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혹은 기도하거나.

샤아아아아아아.

도수는 환자의 상태를 거듭 확인했다.

뇌출혈.

다행히 출혈 위치도 나쁘지 않았고 심각한 출혈이 발생하진 않았다. 출혈이 심해지면 뇌를 압박하기 때문에 손상 범위가 커질 수 있지만 하루 이틀은 버틸 만했다.

문제는 환자의 컨디션이 최악이라는 것.

그리고 뇌출혈 자체가 심각한 부상이라는 점이다.

“꼭 살아서 밥 한 끼 사요.”

도수는 의식도 없는 환자한테 그리 말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두워서 그런가?

아니면 근래 하늘을 보지 못해서 그런 걸까?

빌어먹게도 너무 아름다웠다.

마치 라크라마에서 봤던 하늘처럼.

땅 위는 지옥, 하늘은 천국.

그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천국은 개뿔.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지.”

중얼거리는 도수.

구조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을까?

그런 의문을 남기며, 그들이 있는 자리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포를 일으키며.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도수는 난간을 단단히 붙잡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 한 손을 떼고 남자를 동여맸던 가방끈을 풀었다. 그 대신 남자가 흔들리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몸을 눌렀다.

콰아아아아아!

배가 완전히 가라앉기 직전 구명정들이 다가왔다.

파도를 가르며 다가오는 구명정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수면 아래 잠기는 순간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난간 아래 다가온 구명정 한 척에서 구조대원이 외쳤다.

“뛰어요!”

“뇌출혈 환자입니다! 조심해요!”

도수는 남자부터 내렸다.

구조대원들 몇몇이 바로 아래 위치해 남자를 아슬아슬하게 받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도수가 난간 아래로 뛰어내리려는 순간, 물이 순식간에 차오르며 밟고 뛸 곳이 사라졌다.

“어!”

“잡아!”

비명은 파도에 휩쓸리듯 물소리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찾아온 어둠.

도수는 심연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구명조끼의 부양력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수 시간 같은 찰나를 보낸 도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헤엄쳐야 산다!’

그리고 미친 듯이 팔다리를 위에서 아래로 휘젓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몇 번 휘저었을까.

그의 얼굴이 수면을 뚫고 솟구쳤다.

“푸하!”

“잡아요!”

“잡으십시오!”

구조대원들이 내미는 손을 잡은 도수는 그들에 의해 끌어 올려졌다.

“쿨럭, 쿨럭!”

바닷물을 뱉은 도수가 고개를 홱 돌려 환자를 쳐다봤다.

샤아아아아아아아아.

환자의 상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구출 방법이 문제였는데, 천운이 따랐는지 성공한 것 같았다.

해서 도수는 벼락처럼 고개를 쳐들며 물었다.

“사상자는요?”

구조대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웃을 수 있다는 건.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는 증거다.

털썩.

엉덩방아를 찧은 그에게.

구조대원이 말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백십이 명 중 오백십이 명.”

“…….”

“전원 다 구출했습니다.”

왈칵.

눈물이 흘렀다.

“정말입니까?”

“네. 부상자는 많지만 사망자는 없습니다. 물론 모든 상황이 끝난 건 아니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살아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들도 뭉클한지 눈가를 붉히고 있었다. 그들 역시 본 것이다. 단 한 사람. 배로 돌아오지 않고 끊임없이 부상자들을 구하던 의사를.

의사(醫師)이자 의사(義士)인 존재를.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중얼거리던 도수는 멍하니 환자를 보다가 어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선에는 수많은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모두 살려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사상자는 제로가 아니다.

다시 말해 도수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뜻이었다.

“이 상황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그는 아직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는지 독백했다.

다신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솔직히, 라크리마에서 했던 경험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막막하고 끔찍했던 기억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절반쯤 해냈고, 더 큰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도착하면…….”

그 말에 구조대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도수가 목청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구조대장님한테 전해주세요. 환자 분류부터 하겠다고.”

구조대장 이민우는 현장 책임자다.

빠른 대처를 위해선 알아둘 필요성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도수가 말을 이었다.

“수술이 급한 환자부터 오성그룹 선박으로 옮길 겁니다. 어선에선 수술이 힘들지만 오성그룹 선박은 좀 다를 겁니다.”

어선들은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오성그룹의 선박은 아니다. 고깃배가 갈치라고 치면 오성그룹 선박은 흰수염 고래다. 고깃배들 수십 대를 줄줄이 세워도 따라가기 힘든 규모의 선박인 것이다.

그곳이라면, 수술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 있던 구조대원이 물었다.

“수술이요? 배에서 수술을 하시겠다는 겁니까?”

장기가 깨진 아이가 떠오른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에서라도 수술하지 않으면, 육지로 돌아갈 때까지 부상자 수십 명이 생명을 잃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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