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풍덩, 풍덩, 풍덩!
구조대원들이 입수하는 소리를 들으며.
도수는 바다에 절반쯤 잠긴 선체를 밀듯이 다가간 어선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기포에 휩쓸려 빠져드는 쇠기둥에 발을 디딘 그가 세 사람을 보았다.
이민우가 그 뒤로 착지하며 말했다.
“남자분 두 분부터 배로 가시죠!”
그러자 양대홍 선장이 말했다.
“우린 괜찮습니다! 이분부터 옮기시죠!”
“맞습니다! 다친 사람은 이쪽입니다!”
남윤철도 거들었다.
그들이 가리킨 사람은 최혜정이었다.
이민우가 도수를 쳐다봤고, 도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분은 저랑 남아서 응급처치를 하셔야 하니 두 분부터 피하십시오!”
이민우가 거들었다.
“유명한 의사 선생님이십니다! 그렇게 하시죠!”
“알겠습니다……!”
남윤철이 바짝 굳어 있는 양대홍을 잡아당겼다. 이미 손발이 꽁꽁 얼어붙어 보라색으로 물든 상태. 동상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힘 한 가닥 없었지만 양대홍은 그대로 끌려왔다.
양대홍 역시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다.
이민우가 어두운 표정을 숨기며 두 사람을 부축했다.
그들이 어선으로 옮겨 타는 사이.
도수는 쪼그려 앉아 최혜정의 상태를 꼼꼼히 체크했다. 지금도 바닷물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지만 서두를 수 없었다. 치명적인 실수라도 하는 날엔 최혜정의 목숨을 앗아 가는 건 바다가 아닌 도수의 손길일 터였다.
“후.”
다시 한번, 전장에서의 살 떨리는 느낌이 그를 집어삼켰다.
***
담요 여러 개를 덮고 몸을 녹였지만 체온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양대홍 선장은 구조 작전이 펼쳐지고 있는 선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될 줄은…….”
자연재해와 기계 오류가 어우러져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어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발단이었다.
뒤늦게 어선을 발견한 선장은 키를 끝까지 돌렸고, 선박은 어선 대신 암초를 받고 침몰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양대홍은 몸을 일으켰다.
사고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일어났지만, 그는 배를 모는 선장으로서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여 다시 여객선으로 넘어가려는 이민우의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나도 합류하겠습니다.”
“…….”
이민우는 양 선장의 심정을 읽었다.
하지만.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긴 저희한테 맡기십시오.”
“어떻게 그럽니까?”
양대홍이 말했다.
“아직도 내 배에 사람들이 갇혀 있습니다. 방송을 한다고 했지만 못 빠져나온 사람들이 대다수일 거예요.”
“후.”
이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단, 물에는 들어가지 마세요.”
“근처도 안 가겠습니다.”
양대홍은 진심으로 말했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았는데 이젠 물만 봐도 치가 떨렸다.
고작 한두 시간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바로 그때.
한 선원이 그에게 다가왔다.
“저도 갈게요, 선장님.”
박지영이었다.
그녀는 가슴까지 물이 차도록 승객들을 구하다가 간신히 구출된 상태였다.
“다시 들어가겠다고? 괜찮겠나?”
“선장님도 들어가시는데요.”
“난 선장이야. 이제 일 년 차 승무원이 뭘 알겠어? 자네 얼굴도 창백한데 좀 쉬고 있는 게…….”
“아뇨.”
박지영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나올 때 봤어요. 반대편 객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게, 아직 사람이 있는 것 같았어요. 아직 그쪽까지 안 잠겼을 때 확인해야겠어요. 정말 사람이 있는지. 안 그러면 전 앞으로 잠도 못 잘 거예요.”
“후, 그렇게까지 말하니… 알겠네.”
두 사람이 막 출발하려 하는 그 순간.
다른 승무원들이 하나, 둘 모포를 벗고 일어나서 다가왔다.
“지영이도 가는데요. 제가 남을 수는 없죠.”
“저도 선장님을 따르겠습니다.”
“승객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죠.”
“우린 모두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돼요.”
그들 모두 의지에 불타고 있었다.
쏟아지는 눈발도 녹일 만큼 뜨거운 의지.
양대홍도, 이민우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다 같이 가지.”
“명심하세요.”
이민우가 말했다.
“자기 몸부터 챙기십시오. 위험할 것 같으면 구조대를 부르세요. 여러분은 구조대원이 아닙니다. 그 의지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할 때도 있지만, 도가 넘치면 본인과 다른 사람의 목숨을 모두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양대홍 선장이 승무원들을 뒤돌아보며 덧붙였다.
“들었지? 우린 우리부터 산다. 그리고 승객들을 살린다. 알겠나?”
“예!”
우렁찬 외침.
한두 군데씩 동상이나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힘을 내고 있었다.
“좋아. 가자고.”
양대홍이 그 선두에 섰다.
***
최혜정의 허벅지 상처를 지혈하고 상체를 고정시킨 도수는 그녀를 물이 닿지 않는 기둥 상단에 비스듬히 눕힌 뒤 상태를 확인했다.
‘안 좋아.’
출혈 때문에 혈압이 떨어지면서 저체온증을 가속화시키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그의 얼굴을 마주 본 최혜정이 말했다.
“전 괜찮아요.”
누가 누굴 위로하는 건지.
“…빨리 가보세요. 저처럼 다친 환자들이 많을 거예요.”
그사이 구조대원 둘이 달려와 그녀를 들것에 실었다. 어느새 대원들의 허리 위까지 물이 차 있었다.
도수는 그들을 보며 당부했다.
“최대한 체온을 올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대답한 구조대원 중 한 명이 덧붙였다.
“선생님도 함께 가시죠.”
“아닙니다.”
“예? 그게 무슨…….”
“저 위로 움직일 생각입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상체가 구조물에 낀 채 버둥거리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구조물 자체는 성인이면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였으나, 뭉개진 상체의 부상이 심각해 보였다.
도수가 구조대원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두 분은 저와 함께 움직여 주십시오. 부상자를 옮기고 다시 오세요.”
“알겠습니다. 체온 유지. 꼭 전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는 구조물을 타고 아이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아이 상체를 짓누르고 있는 구조물을 간신히 들어서 치워낸 도수가 물었다.
“괜찮아?”
“아으으으으.”
아이는 고통에 힘들어했다.
샤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을 쓴 도수는 아이의 장기들이 짓이겨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구조물의 무게에 의한 것이 아니다.
구조물이 떨어지면서 아이의 배와 가슴을 강타했기 때문에 발생한 부상이었다.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아무리 도수라도 물이 차오르는 선체에서 수술을 하는 건 무리였다. 아니, 할 수 있다고 쳐도 수혈할 피도, 피를 매달 장비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아저씨 붙잡아. 움직이자.”
도수가 아이를 부축하는 순간.
콰르르르르르르르!
굉음과 함께 선체가 크게 흔들렸다.
“……!”
이곳과 어선을 이어주던 쇠기둥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젠장.”
주위를 둘러봤으나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배 속이 뭉그러진 아이를 데리고 수영을 하는 건 미친 짓이다.
‘어쩐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이성적인 도수였지만 모든 해답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경우 정말 ‘기도밖에 할 수 없다’는 말이 어울렸다.
바로 그때.
달달달달달…….
안개 속에 그림자가 생기더니, 도수가 타고 온 것처럼 허름한 어선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그들이 처음 끌고 온 두 대의 선박이 아니었다.
육지에 남아 있던 구조대원은 물론이고 민간인들까지 그곳에 있는 민간어선을 모조리 끌고 현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말이 맞았어.”
그들이 탄 배의 선장에게 들은 기억이 있었다.
자기 배는 자기가 더 잘 안다고.
이 정도면 운항할 수 있다고.
그리고 정말 그의 말처럼, 어선들이 현장까지 도착했다.
도수가 그랬듯 오면서 몇 차례 고비는 있었겠으나 또 다른 선박이 침몰한 것 같진 않았다.
그랬다면 그들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살았다.”
도수가 아이를 향해 중얼거렸다.
순식간에 구조대에서 구조 대상이 됐고.
이제 다시 구조대가 될 차례였다.
도수는 손을 흔들며 주위를 훑었다.
‘다른 사람들은?’
배에 빠진 사람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어선들이 각종 구조 장비와 그물을 이용해 그들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
도수 곁에 있던 어린아이가 실눈을 뜨고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저… 죽어요……?”
“아니.”
도수가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 오래 살아야지 죽긴 왜 죽어?”
그는 아이의 상태를 다시금 확인하며 덧붙였다.
“아저씨가 다 낫게 해줄게. 걱정마라.”
“엄마는…….”
“곧 만나게 될 거야.”
그래, 그렇게 될 거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도수의 시선이 닿는 곳.
그야말로 모세의 기적처럼 안개가 갈라지며 거대한 함선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존 구조 작전에 뛰어든 어선들을 깔아뭉갤 기세로 진격하는 거대한 함선.
바로 임옥순이 보냈다는 것을 알려주듯 선체에는 오성그룹의 브랜드마크가 프린팅되어 있었다.
“더럽게 늦게 오네.”
도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건, 이 상황을 한 방에 해결해 줄 히든카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
임옥순은 마치 마실을 나온 것처럼 갑판 난간에 서 있었다. 그러나 표정은 편치 못했다.
그 옆에 있던 나유하가 말했다.
“…끔찍해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끔찍하지.”
임옥순은 부정하지 않았다. 숱한 경험이 있는 그녀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월의 힘이 지켜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우리가 왜 이것들을 지키려고 하는지 잘 보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린 저 사람들을 다 살릴 거야.”
“아… 그래서!”
어쩐지.
나유하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풀이 죽었다. 할머니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직접 헬기까지 타고 가서 해운 쪽 책임자를 닦달했을 리 없다. 도수가 걱정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닐 터.
임옥순이 말했다.
“이 할미가 어마어마한 손실을 떠안는 모험을 한 이유가 뭐인 것 같니.”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듣고 싶네요.”
“그건 당연한 거고.”
임옥순이 말을 이었다.
“큰 힘을 쓰는 데에는 날파리가 많이 꼬이기 마련이다. 우리가 나라가 정한 항로까지 막아가며 여기 온 걸 알게 되면 날파리들이 시끄럽게 굴 거야. 좋은 일을 하고도 방법이 틀렸다며 시험대에 오르겠지. 내가 그런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이곳에 온 건 단지 안타까운 사고를 막기 위해서만은 아니란다.”
“…지금만큼은 안 듣고 싶어요.”
“그래도 들어. 이미 손실을 봤다면 앞으로 뭘 얻을지 고민해야 하는 거야. 우린 이 일로 엄청난 여론의 지지를 얻게 될 거다. 왜냐하면.”
“왜요?”
“저 사람들을 모두 구할 거거든. 내가, 그리고 우리 오성그룹이.”
그녀의 말처럼.
나유하의 동공에 비친 장면은 잠수부들을 가득 태운 수백 대의 구명정이 내려지는 모습이었다.
“…아뇨.”
“뭐?”
“저 사람들을 구한 건 이도수 선생이에요.”
“왜지?”
“그 사람의 부탁이 없었다면 할머니는 몇 시간 만에 수십 억을 써가며 움직이지 않으셨을 테니까.”
“그래도 움직인 건 나다.”
“이도수 선생이었다면 다른 누군가의 부탁 없이도 움직였을 걸요. 전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요. 할머니처럼이 아니라.”
임옥순은 화를 내는 대신 눈에 이채를 띄었다. 나유하가 자신 앞에서 이런 식으로 두 눈 똑바로 뜨고 이견을 피력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유하는 댐이 무너진 강물처럼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보세요. 물에 흠뻑 젖은 채 환자를 구하는 저 사람을. 저런 모습은 얼마를 들여도 절대 볼 수 없어요.”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도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