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00화 (100/152)

# 100

의인들

타타타타타타타!

착륙한 후에도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가 한발 물러나며 흩어졌다.

도수는 양어깨에 가방을 두 개씩 매고 내렸다.

안개를 가르며, 구조대원 한 명이 나타났다.

“구조대장 이민우입니다! 현재 현장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도수입니다!”

도수는 헬기 안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비행 중 머리를 다친 미군이 들것에 실려 나왔다.

“일단 부상자부터 옮기죠!”

“알겠습니다!”

이민우가 함께 온 대원들에게 지시하자, 그들이 부상자를 인계받았다.

미군이 실려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도수가 말했다.

“오던 중 기류에 휩쓸렸습니다!”

“여러 사람이 희생되는군요! 오시기 전 정부에서 무리한 구조 작전을 감행했고 민간 잠수부 둘이 실종됐습니다!”

도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안타까운 희생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모두 침몰하는 선박에 탄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기꺼이 발 벗고 나선 선한 사람들일 터.

“여러 사람이 피를 보는군요.”

그 말을 못 들은 구조대장이 외쳤다.

“상황은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천하대병원 측에서 미리 연락을 취한 모양이었다.

도수는 팀원들과 함께 이민우를 쫓아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임시로 만든 착륙장에서 제법 떨어진 천막이었다.

천막 문을 열자.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의료팀들이 보였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환자를 받을 수 있도록 천막을 세팅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화이트보드 앞에 앉은 이들은 각 분야 수뇌부(首腦部)가 분명했다. 놀랍게도, 그들 중 아는 얼굴이 있었다.

“양진명 교수님?”

아로대학병원에서 김광석 밑에 있던 응급의학과 교수였다. 지금은 김광석의 후임자로 아로대학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을 맡고 있었다.

양진명 교수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들을 반겼다.

“다들 오랜만이군. 교수님도 오셨군요.”

김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자네를 다 보고… 반갑구만.”

“상황이 급박하니 소개는 간략하게 줄이겠습니다. 이쪽은 천하대병원에서 파견 오신 분들입니다. 저희야 사고 소식 듣자마자 출발했으니 그렇다 쳐도, 정말 이 날씨를 뚫고 날아오실 줄 몰랐습니다.”

아로대병원은 천하대병원에 비해 중증외상센터가 활성화된 곳이었다. 김광석이 기반을 잡고 몇 년 동안 출동을 나갔기 때문이다. 기장도, 헬리콥터도 항상 대기 중이었다.

반면 천하대병원은 이제 막 제대로 된 중증외상센터 역할을 하기 시작한 곳이었다. 아직 헬리콥터나 기장을 완전히 파견한 센터가 아니라 요청을 해야 그때그때 지정을 해서 보내주었다.

이런 사소한 차이가 대응 시간에 격차를 만들었던 것이다.

도수가 그 차이를 실감하는 사이 양진명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쪽은 인천에 위치한 병원에서 나오신 분들입니다. 정부에서 요청하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합류하셨습니다.”

서로에 대해 들은 두 집단은 서로 목례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인사를 마친 인천 지역 의료팀 인원들은 도수를 보며 웅성거렸다.

“저 젊은 친구가 이도수?”

“생각보다 더 젊구만.”

“직접 보니 믿기지 않아.”

도수에 관한 소문을 들은 것이다.

도수는 이런 일이 익숙했기에 개의치 않고 양진명에게 물었다.

“구출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직접 구출할 건 아니지만 작전은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구출해 낸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즉각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몇몇은 직접 현장에 들어가야 했다.

양진명이 대답했다.

“지금은 작전이 중지된 상태입니다. 민간 잠수부들이 실종되면서 날이 개면 작전을 속개하자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어요.”

“그때가 되면 다 죽습니다.”

도수는 확신했다.

“지금도 슬슬 저체온증 환자가 발생하고 있을 거고요. 조금 더 지나면 사망자도 속출하기 시작할 겁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진명이 현장 책임자인 이민우를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높으신 분들이 구조정까지 운항 금지시켜 버렸으니 방법이 없지요.”

“그럼 이대로 손 놓고 기다리자는 건가?”

이번에는 김광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절대 하루아침에 갤 날씨가 아니었다. 적어도 새벽 동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때, 도수가 침착하게 물었다.

“다른 구출 방법은요?”

“헬기도, 구조정도 투입할 수 없으니. 위에서 운항 금지를 해제해 주길 바랄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왜 운항을 못 하게 하는 거죠?”

도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헬리콥터야 오면서 직접 겪어봤으니 그렇다 치자.

구조정 정도 규모의 선박이면 충분히 투입해 봄직했다.

그러나 양진명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추가 사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구출 작전을 강행하느냐. 아니면 선박에 갇힌 사람들의 희생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날이 개면 구출 작전을 시작하느냐.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놈의 탁상공론은!”

김광석이 분개했다.

“되든 안 되든 사람들을 구해봐야 할 것 아니야?”

모두의 심정을 대변한 외침이었다.

문제는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다는 것.

침묵하고 있던 도수가 입을 열었다.

“민간 선박은요?”

“음?”

“나랏배는 이용하지 못한다 치고. 고깃배까지 통제하나요?”

그 질문에 양진명 대신 구조대장 이민우가 대답했다.

“아뇨. 출항하지 않는 걸 강권하긴 하지만 억지로 붙잡아둘 수는 없죠.”

“그렇다면 고깃배를 타고 갈 수는 없는 건가요?”

“뒤집힐 수 있습니다. 구조정이라면 모를까, 개인 소유의 고깃배들은 너무 작고 가벼워요. 바다에 나가보시면 아시겠지만 파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

침묵하던 도수가 다시 물었다.

“인근에 선박들은 없습니까?”

“너무 멀리 있거나 출항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 배들마저도 다 기업 소유라 구조선을 대신해 투입시키려면 정부의 요청이 있어야 하는데… 그거 나름대로 이것저것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요. 실행된다 해도 너무 늦어질 겁니다.”

오직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사들인 사기업의 대형 선박을 구출용 목적으로 쓰려면 꽤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희망이 막혀버린 느낌.

정녕 발을 동동 구르는 것만이 최선이란 말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선박 안 사람들의 체온은 서서히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결국 도수는 다이렉트로 해결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를 떠올렸다.

“전화 한 통 하고 오겠습니다.”

양해를 구한 도수는 천막 밖으로 나와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자다 일어난 목소리.

새벽이었기에 도수는 사과부터했다.

“밤늦게 실례지만 부탁할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이도수 선생님?

“예.”

잠시 말없이 부스럭거리던 수화기 뒤편에서 안개가 걷힌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 말씀하세요.

애써 차분한 목소리.

도수가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할머님께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어요. 할머님을 좀 바꿔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할머니요?

김이 빠졌는지 상대 목소리가 살짝 늘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뜸들이지 않고 바로 일어나 걸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잡음이 심해요?

“밖이라서.”

-밖? 이 시간에요?

“왜요?”

-병원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인천입니다.”

-인천……? 아!

“맞아요.”

-그럼 부탁이란 것도?

“이곳 일과 연관이 있는 겁니다.”

-…정말 코난 같네요.

“코난?”

도수가 알아듣지 못하자.

나유하가 대답했다.

-정말 사건을 몰고 다니는 건지, 사건 있는 곳을 찾아 다니시는 건지. 하루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게 신기해요. 어떻게 그렇게 스펙터클하게 사는지…….

이상한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

존경할 점이 있는 사람.

그게 나유하가 보는 이도수였다.

정작 도수는 한결같이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외과의니까요.”

그 이상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물론 모든 의사가 매일같이 사건 사고에 휘말리진 않는다.

그러니 외과의.

그중에도 특히 중증외상센터 소속 외과의에게는 매일이 사고였다.

일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한 사고를 당한 환자들이 매일같이 실려 들어온다.

그렇다 보니 매일 다친 사람들을 보고, 몇 번씩 사람 몸에 칼을 대고, 생과 사의 경계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끌어 올리기도 한다.

그 모든 환자가 불타는 화약고처럼 위태롭기에.

써전에게는 매 순간이 전쟁이다.

잠시 후.

도수의 대답을 곱씹듯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던 나유하가 말했다.

-할머니 바꿔 드릴게요.

수화기를 막고 깨운 모양이다.

그리고 역시나 임옥순의 목소리가 꼬리를 물었다.

-이도수 선생님.

“네, 여사님.”

-저한테 부탁하실 게 있다고 들었어요.

“예전에 제게 말씀하셨던 보답. 지금 해주셨으면 합니다.”

-보답. 해야지요.

임옥순이 물었다.

-뭐가 필요하죠?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출할 대형 선박이 필요합니다.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큰 선박이요.”

-인천에 우리 선박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해운 쪽은 따로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서 내 마음대로 하기가 곤란해요.

“곤란한 부탁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그래도 부탁드립니다. 언젠가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예전에도 나한테 받을 보답으로 남을 위하더니, 이번에도 남을 위해 쿠폰을 쓰는군요.

“남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제가 구하고 싶어서 쓰는 겁니다. 사람 생명을 구하는 일인데 이 정도도 못 하려고요.”

-그렇게 말하면 사람 목숨이 달린 일로 고민한 내가 고약한 할망구가 되잖아요? 이런 걸로 보답했다고 해도 악질 같으니 이건 선생님 말처럼 은혜 입은 걸로 쳐요. 보답은 따로 하죠.

여부가 있겠는가?

“감사합니다.”

도수가 물었다.

“그런데 선박이 언제쯤 사고현장에 도착할 수 있을지.”

-내가 그런 것까지 알겠어요?

“…….”

-급박한 건 잘 아니까 최대한 손 써볼게요. 나도 이도수 선생님이 다치는 건 원치 않으니까.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도수는 다시 천막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 그때, 지금껏 깜깜하게 정박해 있던 부둣가 고깃배들에 불이 들어왔다.

“설마…….”

도수는 걸음을 돌려 고깃배로 향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배 위로 짐을 나르는 잠수부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움직입시다! 우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구조대장이 알면 우릴 막을 겁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바다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 사고라도 당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될 터.

도수는 그들을 말리기 위해 배에 탔다.

“선장님이십니까?”

갑판에 서 있던 선장이 도수를 발견하곤 표정이 굳었다.

“맞아요. 내가 선장입니다.”

“지금 바다는 위험합니다.”

“당신, 의사입니까?”

“예.”

“그럼 같이 갑시다. 의사 선생보단 내가 바다를 더 잘 압니다. 이보다 더 바람이 씨게 불 때도 파도와 싸웠어요.”

고집스러운 사내다.

고집만큼 성질도 급해 보이는 그가 몇 시간을 발만 동동 구르며 참았다면 열불이 터질 만도 했다.

그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민간 선박이나 잠수부의 단독 행동은 곤란했다.

그렇게 판단한 도수가 말했다.

“정부에서 결정한 운항 금지를 어기고 출항하셨다가 사고라도 당하시면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을 겁니다. 저도 선장님과 같은 마음이라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출항하시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만 물어봅시다.”

“예.”

“의사 선생도 목숨 걸고 왔담서. 이 배를 몰 수 있으면 갈 거요, 안 갈 거요?”

“…….”

“여기까지 올라타서 얘기하는 걸 보니 내 눈엔 사람들 구할 마음이 있어 보이는데.”

“맞습니다.”

도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구조대와 상의 한 마디 없이 몰래 출항하시는 건 섣불러요.”

“우리가 죽으러 간답니까?”

되물은 선장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도 목숨 귀한 건 압니다. 아무리 뱃사람이라도 가족들 생각에 쉽게 죽을 생각 안 해요. 우리가 봤을 땐 충분히 가라앉는 선박에 다가가서 구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놈에 벼슬아치 놈들이 막는 겁니다.”

“구조대 말로는 이 정도 파도 높이면 고깃배가 뒤집힐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추가 사고 위험이 있다는 뜻이에요.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면 정말 힘들어집니다.”

“내 배는 내가 더 잘 알아요. 그만 하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언제까지? 사람들 다 죽어나갈 때까지 이렇게 지켜보란 말이오? 벌써 몇 시간을 그 말만 믿고 기다렸는데… 구할 수 있는데도 안 구하면 그건 죄요, 죄. 안 그래요?”

선장의 고집은 쉬이 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임옥순이 언제까지 선박을 보내준다고 약속한 게 아니니 설득할 명분도 부족했다.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는데.

바깥 상황을 벌써 보고받았는지 천막을 나선 구조대장 이민우가 눈에 들어왔다. 이민우는 구조대원들을 이끌고 선박 가까이 오더니 크게 말했다.

“다들 배에서 내리십시오!”

그리곤 한 마디 덧붙였다.

“구조대가 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