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위험한 비행
김광석, 강미소, 아사다 류타로를 대동한 채 응급실로 내려간 도수는 나머지 인원들이 출동 준비를 마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미군 헬기만 오면 됩니다.”
그렇게 말한 조근현이 시계를 확인했다.
“용산에서 오니까 이십 분 안 걸릴 거예요.”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을 비울 순 없으니까 우선 선발대는 출동 인원들로 갑니다. 추가적으로 아사다 류타로, 강미소 선생은 우리 쪽에 합류하세요.”
출동 인원이란 레펠 교육을 받고 지금도 출동을 최우선적으로 나가는 인원들을 말하는 것이다.
도수, 김광석, 이시원, 임재영, 남민수가 여기에 속했다.
거기에 아사다 류타로와 강미소를 섞은 건 육지에서 바로 치료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대기할 인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토 달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만을 말한 건 김용찬이었다.
“어차피 응급실엔 교수님 계신데요. 저도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그는 주먹을 굳게 쥐고 있었다.
레펠을 탈 수 없어도 따라가서 거들고 싶었다.
이대로 무기력하게 배가 침몰해 대참사가 일어나는 꼴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병원도 현장만큼 중요합니다. 우리 환자는 배에 갇힌 사람들만이 아니에요. 기후가 안 좋은 건 현장이나 서울이나 마찬가집니다. 폭설이 내리는 밤에는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아요. 조근현 교수님과 함께 응급실을 맡아주십시오.”
센터장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김용찬도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째깍, 째깍.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타타타타타타!
“갑시다.”
도수를 선두로 출동하기로 된 인원들이 각자 어깨에 짐을 메고 밖으로 나섰다.
강풍에 휘날리는 눈발이 얼굴이며 바람막이를 흠뻑 적셨다.
헬리콥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군이 말했다.
“기상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새벽이 되면 더 이상 비행이 힘들 수도 있어요!”
고개를 크게 끄덕인 도수가 마주 외쳤다.
“하는 데까지 해봅시다!”
의료팀이 줄줄이 군용 헬기에 오르자, 헬리콥터가 천천히 뜨며 비행을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드.
어느 정도 사공에 접어들자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에 따라 의료팀은 물론 미군들의 표정까지 창백하게 굳어졌다.
“위험한 임무입니다.”
반대편에 있던 미군이 말했다.
도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두렵지 않으십니까?”
미군은 직업 군인이다. 모든 미군이 그렇진 않지만, 한 번쯤 국가와 임무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지곤 한다. 그러나 도수는 민간인이었다. 군의관도 아닌 민간 의사인 것이다.
그에 도수가 말했다.
“두렵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무모한 결정을 하신 겁니까?”
도수가 부탁해서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은 미군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옆에 앉아 있는 미군은 줄곧 마뜩찮은 표정으로 도수를 노려보고 있는 거고.
하지만 도수는 그 시선을 외면하며 자신에게 물은 미군에게 대답했다.
“저보단 침몰한 배에 탄 사람들이 더 두려울 겁니다.”
“당신이 간다고 그들을 모두 구조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슈퍼맨이 아니라 의삽니다.”
“전 제 할 일을 할 겁니다.”
도수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들도 당신들 일을 하겠죠. 구조대원들은 구조대원들이 할 일을 할 겁니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두려움을 물리치고 현장에 온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거예요.”
“이상적이군요. 당신이 이 눈보라를 뚫고 그 현장에 갈 수 있는 건 모두 우리 사령관님과의 친분 덕분입니다. 당신들을 제외하곤 누구도 오기 힘들 거예요. 만약 인근 병원에서 온다고 하더라도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선박까지 가진 못할 겁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군인이 말했다.
“다시 말해 이건 미친 짓이란 거죠.”
그 순간.
도수와 나란히 앉아 있던 남민수가 참다 못하고 멀미를 했다.
“우웩!”
토사물을 내뿜는 그.
앞에 앉은 미군이 피식 웃었지만.
도수는 토사물이 묻는 걸 신경 쓰지 않고 남민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남민수가 맥없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정작 도수만 해도 속이 좋지 않았고, 강미소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으며, 아사다 류타로는 무릎에 고개를 박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남민수가 사과한 것은 미군들의 비웃음을 샀기 때문이리라. 미군들은 이 날씨에 억지로 목숨 걸고 여기까지 끌려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테고. 제 한 몸 못 가누면서 누구를 구하겠냐는 비웃음을 흘린 것이다.
그때 불쑥 도수가 비닐 봉투를 빼 들고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커억!”
한참 그렇게 구역질을 하고선 마주 앉은 의료팀을 바라봤다.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참지 말고 토할 사람은 봉투에 대고 토해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료팀이 여기저기 구역질을 해댔다.
“우웩!”
“커헉!”
미군이 피식 웃었다.
그때, 조종석에서 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충격에 대비해요! 폭풍 속으로 진입합니다. 하하하하!”
묘한 흥분.
어쩌면 기장은 지금의 악천후를 즐기고 있을 만한 사람으로 뽑혔는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기체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동을 일으키며 흔들렸다.
쿠구구구구구!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기체가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크게 기울었다.
“뭐야?”
“으악!”
누구의 비명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안쪽에 쌓아뒀던 가방들이 무너지고 벨트를 단단히 매지 않은 미군이 튀어 올랐다.
위잉, 위잉, 위잉, 위잉!
붉은 불빛이 끊임없이 깜빡이며 비명을 울려댔다.
그리고 도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헬기 안은 난장판이었다.
“으으으으.”
“젠장, 뭐였지?”
목이나 허리를 부여잡고, 머리를 감싸고 몸을 일으키는 의료팀들.
도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미군이 있었다.
“존! 존! 정신 차려봐!”
도수와 대화를 나누던 미군이 그 옆에서 환자를 흔들었다.
“젠장.”
순식간에 환자로 변한 미군 옆에서 그를 떼어놓은 도수가 말했다.
“저희한테 맡기세요. 그렇게 건드리면 안 됩니다.”
“아, 알겠소!”
미군이 말을 더듬었다.
조종석에서 기장이 물었다.
“어이, 무슨 일이야?”
“부상자가 생겼습니다.”
도수의 대답에 기장이 욕지거릴 뱉었다.
“젠장! 엎친 데 덮친 격이로군.”
그러더니 그가 짧게 덧붙였다.
“다시 흔들린다!”
그걸 끝으로.
도수는 어딘가에 쾅! 머리를 부딪히고 정신을 잃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땐 의료팀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추락하진 않았군.’
도수가 안심하는 사이.
곁을 지키던 강미소가 물었다.
“깼어요?”
“어떻게 된 겁니까?”
“가벼운 뇌진탕이에요. 센터장님은 괜찮은데… 문젠 저쪽이죠.”
도수가 고개를 돌렸다.
안 그래도 머리가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던 미군은 상처가 더 벌어지면서 심각한 출혈을 일으키고 있었다.
거즈로 막아도 피가 샜다.
“머리를 뭔가가 뚫었습니다!”
남민수가 애타게 부르짖었다.
그제야 도수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드드드드드드.
헬리콥터는 기체를 폭력적으로 두드리는 바람을 꿰뚫고 나아가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상자를 치료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쪽 상황을 들었는지 기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어떻게 좀 해봐요! 의사가 몇 명인데……! 도착하려면 아직 좀 남았단 말입니다!”
도수는 풀숲을 헤치듯 팀원들을 헤치고 부상자에게 다가갔다.
“좀 봅시다.”
“예, 여기…….”
남민수가 거즈를 치우자.
쇠로 된 고리가 이마에 걸쳐져 있고, 그 틈으로 출혈이 발생하고 있었다.
“…….”
지금 상황에선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남민수가 했던 것처럼 쇠고리를 빼지 않고 일단 지혈만 하면서 육지까지 가는 것. 그리고 나머지는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다.
물론 후자는 도수가 아니면 애초에 논외로 치는 해결책이었다.
“꿰매야겠습니다.”
도수가 판단을 내렸다.
그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평상시 같으면 이동하는 내내 지금처럼 지혈만 할 테지만 이마를 다친 미군 병사의 경우 거즈로는 지혈이 안 될 만큼 출혈이 심했기 때문이다.
만약 쇠고리가 상처를 틀어막고 있었다면 오히려 출혈이 덜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쇠고리에 걸린 채로 크게 움직이면서 잔뜩 벌어진 상처였다. 헬기 실내 부품인 걸로 추정되는 쇠고리가 빠질 정도였으니 상처는 깊고 큼직했다.
이렇게 계속 피가 쏟아진다면 상처 부위가 한 곳이라도 안심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쏟아지는’ 거니까.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두 시간 내에 과다 출혈로 사망하진 않겠지만 피가 너무 많이 빠져나가면 여러 가지 후유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따라서 도수는 할 수 있다면 직접 봉합해서 출혈을 막는 쪽을 택했다.
“부분 마취.”
고개를 끄덕인 강미소가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그러나 쉽게 바늘을 찌를 생각을 못했다.
도수가 손을 내밀었다.
“그냥 주세요.”
“아, 네!”
강미소가 주사기를 넘기자.
미군 병사에게 마취약을 투여한 도수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다행히 당장 아까와 같은 진동이 발생할 것 같지 않았다.
해서 기장에게 물었다.
“상처를 꿰맬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오 분 내에 하쇼!”
그 정도면.
도수는 이시원과 강미소를 보며 말했다.
“환자 머리 고정해 줘요.”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 환자의 머리와 얼굴을 단단히 붙잡았다.
슥, 슥.
소독해서 상처 부위를 닦아내는 와중에도.
꿀럭, 꿀럭.
핏물이 계속 흘렀다.
묵묵히 상처를 닦은 도수가 눈짓으로 지시해 봉합침과 봉합사를 받았다.
상처가 너무 벌어져서 호치케스로 집을 수도 없었기 때문.
도수가 말했다.
“봉합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늘이 환자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반대쪽 피부를 꿰고 나왔다. 그 뒤를 따라 실이 당겨지며 환자의 이마가 닫혔다.
슥, 스윽.
실로 상처를 꿰매는 와중에도.
드드드드드드.
진동은 계속됐다.
그러나 도수는 진동폭과 손이 움직이는 방향을 계산해 살을 꿰매고 있었다.
지난번에 배를 열었을 때처럼.
지금은 그때보다 진동은 더 심하지만 환자 상태가 더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동료 미군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중얼거렸다.
“대단하군.”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보기에도 도수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이시원이 말했다.
“예쁘게 꿰매주실 겁니다. 시간 지나면 티도 잘 안 나도록.”
“그럴 것 같습니다.”
미군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순식간에 환자의 이마를 봉합한 도수는 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샤아아아아아아.
눈이 빛나며 투시력이 발휘됐다.
봉합한 피부를 넘어 두개골, 그 속의 뇌까지 훑었지만 특별히 문제될 만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다 됐습니다.”
도수는 강미소에게 의료 도구를 반납했다.
그러자 멀쩡한 미군이 끙끙거리는 미군을 일으키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까는… 미안합니다. 우리가 경솔했어요.”
“아닙니다.”
무던하게 대답한 도수는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안개는 여전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것이, 거의 도착한 듯했다.
때마침 기장이 뒤에 대고 외쳤다.
“이제 곧 착륙합니다!”
타타타타타타!
안개를 가르며 서서히 착륙하는 헬리콥터.
미군들은 과연 이 악천후에 현장까지 달려온 이들이 있을지 걱정했지만.
선착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취재를 위해 달려온 기자들만이 아니었다.
그들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자원해서 잠수부로 지원한 이들, 구조대원들, 그리고… 다른 병원에서 온 의료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