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도수의 신념
처음 보는 사람과 부원장이 나란히 서서 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원장님?”
“수술은?”
도수가 대답했다.
“일단 무사히 끝났는데.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랬겠지. 어려운 수술이었어.”
고개를 주억거린 부원장이 말을 이었다.
“잠시 시간 좀 내지.”
“네.”
도수는 부원장 옆에 있는 깐깐한 인상의 중년인이 누군지 묻지 않았다.
어차피 차차 알게 될 일.
세 사람은 부원장실로 가서 마주 앉았다.
부원장은 중년인을 공손하게 대했다.
“제가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중년인이 대답하자.
부원장이 도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센터장. 근래 응급 출동이 잦던데?”
“네. 레펠 교육 이수 후에는 김 교수님 말고 다른 의료진들도 출동을 나가고 있습니다.”
“고생이야. 그런데… 민원이 자주 들어온다는 건 알고 있나 모르겠군.”
간호사에게 몇 번 들은 적은 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도수의 기준에선 몇몇 시민들의 불편함보단 부상자 한 명의 목숨이 훨씬 중요했다.
“듣긴 들었습니다.”
“그래. 헬기가 뜨고 내릴 때 소음. 지난번 출동 땐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일으킨 바람에 도시락에 모래가 들어갔다는 등산객의 민원까지 들어왔어. 이거 아주 골치 아픈 문제야.”
도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모래요?”
“그래.”
“헬기는 상공에 떠 있었습니다. 애초에 착륙하지도 않았어요.”
두 사람의 표정을 본 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민원의 진위 여부는 논점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잘한 민원까지 신경 써가며 구조해야 하는 겁니까?”
“자잘한 민원이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중년인이 입을 뗐다. 그는 명함을 도수에게 밀어두고 다시 입을 열었다.
“시청의 입장도 생각해 주십시오. 우린 단 하나의 민원도 흘려들을 수 없어요. 선생님들 입장도 존중하기 때문에 제가 직접 나온 겁니다.”
명함에 적힌 직책은 ‘부시장’이었다.
그걸 거들떠도 안 본 도수가 부원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하라는 거죠?”
그에 대답한 건 또 다시 부시장이었다.
“우리도 시민들을 진정시킬 명분이 필요합니다. 헬기가 뜨는 시간을 한정하시죠.”
“하!”
헛웃음을 흘린 도수가 대답했다.
“골든아워에 처한 환자 중 삽십 퍼센트 이상이 밤 시간대 발생합니다. 그 환자들을 다 버리라고요?”
“버리라는 게 아니라…….”
“아니라?”
“앰뷸런스도 있고 다른 여러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 구조 헬기가 지원되지 않았을 땐 어떻게 환자를 이송했어요?”
“후.”
짧게 한숨을 뱉은 도수가 설명을 덧붙였다.
“헬리콥터가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응급 외상 환자의 성공률을 증가시킨다는 건 이미 수많은 응급 의학 분야 논문을 통해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건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 얘기고. 한두 블록 간격으로 병원이 있는 대한민국 서울 땅에서 무슨 헬리콥터입니까?”
“답답한 소리.”
“뭐요?”
부시장이 눈을 부릅떴지만 도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금 부시장님 몸에 피가 얼마나 있는 줄 아세요?”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체중의 오 퍼센트입니다. 부시장님은 칠십 키로가 좀 넘어 보이시니 삼 키로 정도 되겠군요.”
“그래서요?”
“그 삼 키로 중에서, 절반 이상이 빠져나가면 사람이 죽습니다. 일 점 오 키로만 손실이 있어도 사망이란 뜻이죠.”
부시장은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말이라도 자신을 빗대 죽느니 사망하느니 하는 게 마음에 들 리 없었다.
“그게 뭐 어쨌단 겁니까?”
“끝까지 들으세요.”
도수가 차갑게 강요하자.
부시장은 내심 흠칫하며 입을 닫고 팔짱을 꼈다. 일순 뜨끔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 고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개의치 않은 도수가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해 체중의 이 퍼센트만 출혈이 있어도 죽는 겁니다. 일 점 오 키로 정도 되는 양의 피가 빠지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으세요?”
“자꾸 묻지 말고 얘길 해요.”
“한번 일 점 오 리터 우유 팩에 구멍을 뚫고 쏟아보세요. 다 쏟는 데까지 몇 분 걸리겠습니까?”
“나한테 질문하지 말라니까…….”
“그 시간.”
도수가 말을 잘랐다.
“골든아워에 돌입한 환자는 사고 후부터, 구멍 뚫린 일 점 오 리터 우유 팩이 빈 각이 될 시간이면 죽는단 말입니다. 금방 죽어요.”
“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겁니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도수가 덧붙였다.
“아까 부시장님이 말씀하신 몇 블록마다 있는 병원은 대부분 중증 응급 환자를 직접적으로 케어하기 힘든 병원들입니다.”
“그래도 응급처치는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럼 뭐 해요? 그런 가까운 외부 병원에서 보이는 출혈만 막고 우리 병원에 오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검사까지 받고 움직이면 네 시간이 넘게 걸려요. 아무리 응급처치를 한다고 해도 환자가 버틸 수 있겠습니까?”
“…….”
부시장이 도움을 청하듯 부원장을 바라봤다.
그에 부원장이 대답했다.
“센터장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서.”
“그래서, 지금 이대로 계속 진행하겠다는 얘깁니까? 그럼 민원은요?”
“무시하세요.”
도수가 칼같이 잘라 말했다.
“아까 들으셨다시피 병원으로 직접 민원을 넣기도 합니다. 간호사들은 쌍욕을 먹기도 해요. 가끔 저한테 어떻게 하냐고 묻습니다.”
“…….”
“전 무시하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아니라 몰상식한 기관입니다.”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립니까?”
“네.”
도수가 대답했다.
“들으시라고 하는 소립니다. 시민들이야 자기 입장만 생각하겠죠. 불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원을 넣는다 치자고요.”
“그 민원을 처리하는 게 우리 기관입니다.”
부시장이 말을 잘랐다. 그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래서 지금 처리하러 온 거고요.”
“아뇨.”
도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처리가 아닙니다. 회피죠.”
“어째서요?”
“그 시민들도 다칠 수 있습니다. 아플 수 있어요. 그분들이 환자 입장이 된다면? 다시 민원을 넣을 겁니다. 목숨이 걸린 사람이 먼저 아니냐. 헬리콥터를 띄우라고 말이죠.”
“……!”
부시장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 틈을 비집고 도수가 팩트를 짚었다.
“시청이 해야 할 일은 시민들에게 중요성을 주지시키고 양해를 구하는 일 아닙니까? 당신들도 다칠 수 있고 아플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아니냔 말입니다.”
“그건…….”
부시장이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자.
잠자코 듣던 부원장이 개입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저희 병원 측과 시청이 지속적인 소통을 하면서 해결해 가는 편이 지혜롭지 않을까 싶은데요. 지금 피해를 입는 시민들이나,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 양쪽 다 중요하니 서로 맞춰가며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도록 하죠. 어떻습니까?”
“…….”
잠시 말이 없던 부시장이 도수를 일별하곤 입을 열었다.
“좋아요. 시장님께 그렇게 전하긴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거예요. 여기 선생님들 생각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조속한 해결이 필요합니다.”
“일단은… 그렇게 알고 있지요. 나머진 식사라도 하면서 대화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고개를 돌린 부원장이 도수에게도 의중을 물었으나.
도수는 담백하게 사양했다.
“전 병원에 남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병원에 의사가 센터장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수술 끝난 지도 얼마 안 됐고요.”
“아아, 입맛이 없을 수도 있겠구만.”
그제야 고개를 주억거린 부원장이 부시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끼리 가야겠습니다.”
“그러시지요.”
그렇게 대답한 부시장이 도수를 보며 덧붙였다.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초면에 이런 일로 뵙게 돼서 유감입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서로 할 일을 하는 거죠.”
“이해해 주니 고맙습니다.”
가볍게 목례한 부시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감정을 숨겼다.
‘굉장히 피곤한 놈이구만.’
그는 이런 부류들을 줄곧 봐왔다.
반골 기질이 다분한 놈들이다.
이런 놈들의 공통점은 말을 안 듣고 꼭 한 번씩 골치를 썩인다는 것.
그리고 힘을 얻었을 땐, 그야말로 주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대로 두면 우리랑은 계속 마찰을 빚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당장 싹을 자를 방법이 없었다. 그가 찜찜한 기분으로 몸을 일으키는 그때.
도수가 마주 일어나며 부원장에게 물었다.
“아, 그런데 이 부분. 이사장님도 아시는 건가요?”
부원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지?”
“뭐가 말입니까?”
“이 정도 일은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어.”
“아,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궁금해서요.”
“말은…….”
중얼거린 부원장이 덧붙였다.
“이건 내 일이기도 하니까 센터장은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이사장님께는 보고할 내용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센터장.”
“네?”
“이사장님이 총애하신다고 요즘 너무 기고만장한 데다 안하무인이라는 이야기가 들려.”
부시장 앞에서 자존심이 상한 것에 대한 복수.
너무 속이 보여서, 도수는 자칫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부원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누가 내가 그렇게 생각 한대? 여기 병원이야. 보는 사람도 많고… 공동체이니만큼 행동거지에 주의할 필요는 있어 보이는군.”
“알겠습니다.”
도수는 굳이 더 끌지 않고 대화를 끝맺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매를 좁히고 그를 응시하던 부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나가봐.”
“네, 그럼.”
목례한 도수는 부원장실을 빠져 나왔다. 탁, 문을 닫은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적을 만드는 타입인가?’
만약 그렇다 해도.
필요 이상 굽신거리거나 성격을 바꾼다거나 신조를 꺾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적이 많아서 좋을 건 없지만, 환자를 위해서라면 백만 적군이 도사리는 곳이라도 기꺼이 들어가야 하는 게 의사다.
인종, 종교, 국적, 당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는 것.
그게 바로 의사가 되기 위한 기본 소양인 것이다.
의사가 되기에 앞서 선서했고, 그 전에도 그 같은 마음으로 전쟁터에 남아 의료 활동을 했다.
그런데 이깟 암초쯤이야.
도수의 걸음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
다음 날.
아사다 류타로가 도수를 찾아왔다.
이번엔 아주 짐을 싸서 연구실로 왔다.
“…….”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는 도수.
그런 그에게 아사다 류타로가 말했다.
“당분간 천하대병원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홍조를 띠고 있는 것이, 자신이 얼마나 어이없는 부탁을 하는 건지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얼굴이다.
그에 도수가 물었다.
“한가하세요?”
“…….”
“한가하신 분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안 한가합니다.”
“그런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안 그래도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은 도수는 머리가 아파왔지만.
아사다 류타로는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부탁했다.
“어차피 천하대병원과 우리 병원은 이번에 교류하기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괜찮으시다면 제가 먼저 천하대병원 응급의학과를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제 의중은 그렇다 치고, 이렇게 막 마음대로 돌아다니셔도 되는 건지.”
“제가 근무하는 병원 측에는 이미 허락을 맡았습니다. 이 병원 이사장님도 허락하셨고요.”
하긴.
아사다 류타로라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써전. 그런 그의 요청을 거절할 병원도, 그를 거부할 병원도 많지 않았다. 동일본병원 측에서야 울며 겨자 먹기로 허락을 했다 해도 천하대병원 측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도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좀 이상하네요. 같은 흉부외과도 아니고 응급실에 계시겠다니.”
“제가 머무는 이유는 이도수 센터장님 때문입니다.”
“왜죠?”
“센터장님 수술에 감명받았으니까요. 그리고…….”
“그리고?”
“센터 운영 방식에도 놀랐습니다.”
아사다 류타로의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한국과 일본의 병원문화는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저 역시 대학병원의 제도적 허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한 사람이죠. 그렇기에 이러한 문제점을 정면으로 부딪쳐서 돌파하신 센터장님을 보며 수술 외적으로도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과찬이었다.
도수가 지금 입장을 고수할 수 있는 건 여러 가지 요건들이 맞물렸기 때문.
이런 관심은 부담이기도 했다.
그러나 도수는 이미 결정된 사항을 굳이 뒤집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갔다.
“알겠습니다. 대신 참관만 하시는 건 안 돼요. 여긴 응급실이지, 동물원이 아니니까… 다른 과는 몰라도 응급실에 계시려거든 한 사람 몫은 해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