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92화 (92/152)

# 92

심실재건술

천국행인지 지옥행인지 모를 급행열차는 이 순간에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김광석이 벼락처럼 외쳤다.

“뭐 해? 패드로 감싸!”

이시원이 패드를 덧대며 출혈을 막았다.

김광석은 절제한 두덩정강근을 들고 도수의 옆으로 움직였다.

그사이 도수의 칼은 심실을 가르고 있었다.

서걱, 석.

끔찍한 소리가 났다.

출혈은 계속됐다.

정현진이 외쳤다.

“혈압 계속 떨어집니다!”

땀이 흐를 정도로 피를 짜내도 들어가는 양은 한계가 있었다.

빠지는 피가 더 많은 것이다.

콸콸콸.

누수되듯 흐른 피가 강물처럼 고였다.

“석션.”

도수의 말에 조근현이 석션을 실시했다.

시이이이이익.

핏물을 빨아들이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거즈!”

강미소에게 받은 거즈를 쑤셔 넣고 피를 빨아들였다. 거즈는 순식간에 붉게 물들며 덩어리가 됐다. 도수는 질게 뭉친 거즈를 내던졌다.

철퍽!

수술실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거즈 뭉치.

“절제 들어갑니다.”

도수는 메스를 놀렸다.

보비로도 출혈을 막을 수 없다면 메스로 빠르게 처리하는 게 최선이었다.

근육을 실로 꿰맨다고 해서 팔딱팔딱 뛰는 것이 아니다.

근육이 제 역할을 다해 심장을 뛰게 하려면 혈관과 근육을 알맞게 연결해 줘야 했다.

미리 연구하고 연습했던 과정이지만.

지금 도수에게는 연습 때완 달리 시간이 없었다.

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몇 분.

지걱, 지걱.

빠르게 절제를 시행한 도수가 말했다.

“근육 주세요.”

벌써?

그런 표정들이다.

메스를 가슴 속으로 쑤시고 얼마 되지 않아 도수가 근육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광석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떼어낸 두덩정강근을 건넸다.

근육을 받아 든 도수는 심실 안으로 쑤셔 넣고 말했다.

“타이.”

기다렸다는 듯 봉합침과 봉합사를 건네는 강미소.

도수의 투시력이 한층 강력해졌다.

샤아아아아아아.

단순히 근육을 늘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도수는 두덩정강근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슥, 스윽.

죽음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는 급행열차보다 빨라야 한다. 환자가 생명의 불꽃이 꺼지는 것보다 빠르게 손을 놀려야 했다.

스윽…….

도수의 관자놀이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옆에 찰싹 붙은 이하연이 땀을 닦아주며 큰 눈으로 눈길을 보냈다.

‘제발……’

물론 도수는 그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다. 지금 그가 집중하고 있는 것. 코앞에 산적한 문제만 해도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것들이었다.

일단 다리근육이 심장근육을 대체하기 위해선 원래 심장근육의 힘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근육과 근육을 완벽히 연결해 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근섬유 수축 방향을 동일하게 연결해야 했다.

이것만 해도 투시력이 없는 일반인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근육이야 눈에 보이지만 근섬유 수축 방향에 맞게 근섬유와 근섬유를 가닥가닥 연결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수에게는 투시력이 있었다.

샤아아아아아아.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환자의 심장이 보였고. 그 심장을 구성하고 있는 근육. 더 세분화된 근섬유의 움직임까지 선명히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도수가 봉합침을 가져다 댄 순간.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심장 전체에 걸쳐 뻗쳐 있는 혈관들.

이 혈관들이 수술 후에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알맞게 이어주어야 한다.

도수가 담낭암 수술 당시 직장 수술에서 보여준 기술이 다시 빛을 발했다.

슥, 스윽.

말도 안 되는 기술이 직장을 넘어 심장에서 다시 한번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뒤엉킨 혈관과 근육들을 이어주는 도수.

모든 혈관과 근육들을 연결해 손상되기 전의 정상치만큼 혈액 공급량과 근육 밀도를 회복하게 된다면 나머지는 기존에 심장을 뛰게 하고 혈액을 공급하던 심근과 동맥, 정맥이 앞장서서 길잡이 역할을 해줄 터였다.

그러나.

아무리 유능한 써전이라도 할 수 없는 수술을 계획하고 실행해 옮긴 그에게는 아직도 가장 치명적인 마지막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간.

이런 방식의 수술은 이전에도 없었기에 환자가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 대략적인 골든아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조건 빠르게.’

또한 정교해야 했다.

도수는 투시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샤아아아아아아……

쏟고 있는 투시력만큼.

체력의 소모도 빨라졌다.

주르륵.

다시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이하연이 땀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비록 말하지 않았지만 내심 불안했다.

‘괜찮을까?’

도수는 그야말로 땀을 비 오듯 쏟아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어도 바로 옆에서 땀을 닦아주는 이하연은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비교적 큰 혈관과 근육들을 벌써 이었는지, 도수가 입을 열었다.

“현미경.”

“예?”

“현미경 줘요.”

“아……!”

이하연이 움직이려는 찰나 강미소가 현미경을 건넸다. 그걸 받은 이하연이 도수에게 현미경을 씌워주었다.

손에서 손으로.

팀원들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현미경을 통해 자잘한 혈관을 확인한 도수가 입을 열었다.

“칼.”

다시금 그의 손에 실과 바늘 대신 칼자루가 들어왔다.

“거즈로 피 빼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조근현이 도수가 하던 흡인 작업을 대신했다.

철퍽! 철퍽…….

핏물을 게워내자.

도수가 재차 손을 집어넣었다.

“이제부터 석션 합니다.”

시이이이이이익.

조근현이 석션호스를 대며 도수의 메스가 지나는 출혈점에서 발생한 출혈을 빨아들였다.

도수는 자잘한 혈관들을 세공하듯 잘라낸 뒤 메스를 반납했다.

“클램프, 타이.”

다시금 기묘하고 정교한 손놀림이 펼쳐졌다.

슥, 스윽.

육안으로 보기도 힘든 혈관들을 일일이 봉합하는 그.

잘라내는 것만 해도 출혈로 ‘혈관을 자르고 있구나’라고 알아챌 지경이었는데, 실과 바늘로 봉합까지 하고 있었다.

“…….”

의료진들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면서도, 도수의 손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한편.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은 또 있었다.

***

2층 참관실에서 수술 장면을 지켜보던 아사다 류타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으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의식하지 못했다.

“말이 돼?”

누구한테 묻는 걸까.

누구에게 묻는 것도 아니다.

그 누구라도 대답해 줄 수 없을 테니까.

직접 눈으로 보고 있고,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니 부정할 순 없는데.

말이 안 된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미친…….”

그 역시 생각 안 해본 게 아니었다.

엄승진에게 수술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방법을 찾아내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연구를 하면서 설마 다른 근육으로 대체하는 것 하나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당연히 생각해 봤다.

불가능하니 그만둔 것이다.

자신이라서가 아니라, 현존하는 누구라도 불가능하니 실천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도수 같은 의사가 있는 걸 알았더라면 자신이 못 고쳐도 의뢰라도 해줬을 터다.

환자의 죽음은 그 역시 원치 않는 일이니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의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저지른 게 아니라 정말 자신했다는 거냐?”

반말이고 존대고 그는 정신없이 지껄였다.

아사다 류타로는 단연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내가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의가 아닐까 생각했다니… 하하하하하.”

실성한 듯 웃음이 나왔다.

한때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니 부끄러웠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도수 말고도, 이런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또 있을까?

세계는 넓고 써전은 많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다시 한번 설레게 했다.

‘그 사람이 살아 있었다면.’

엄승진에게 일 차 수술을 해줬던 의사.

연구팀 수장으로서 바티스타 수술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도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인물이 있었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다면, 지금 도수가 하고 있는 수술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티스타와 흡사하지만 그보다 더 희귀한 수술을 엄승진에게 했고, 진작 사망했어야 할 그의 생명을 인력으로 연장시킨 장본인이었으니까.

아사다 류타로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이찬.”

말도 안 되는 수술들을 해내면서도 그 기량을 떨치지 못하고 실종된-사실상 사망했다고 추정되는 인물. 아사다 류타로가 처음 흉부외과의를 꿈꾸게 된 것 역시, 그를 만난 후였다.

그는 아사다 류타로의 영원한 멘토이자 우상이었다. 아사다 류타로의 선천적 심장질환을 치료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어쩌면 엄승진에게 더 집착한 것도, 그에게 치료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섣불리 약속한 것도 동질감의 발로였는지 모른다.

“그 남자와 같은 실력자를 다시 보게 되다니…….”

아사다 류타로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더 이상 지켜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수술이 성공했음을.

***

아사다 류타로의 생각과는 달리 도수는 끝까지 마음을 놓지 않았다.

물론 출혈은 시작됐을 때에 비해 십 분의 일로 줄어든 상태였다.

그는 굳이 정현진을 돌아보며 환자 상태를 묻지 않았다.

대신 투시력을 썼다.

샤아아아아아아아.

아직 생존할 만큼의 피가 돌고 있었다.

혈압이 마지노선까지 떨어지진 않았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현진이 외쳤다.

“위험합니다!”

더 내려가면 그렇다.

하지만 혈압은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피가 빠지는 이상 들어오고 있으니까.

도수는 그게 보였다.

“지금처럼 피 짜주세요. 괜찮을 겁니다.”

방금 어떻게 수술했는지 순간, 순간의 감정이나 판단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만큼 본능에 의지해 수술했다.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그의 실력보다도 빨라야 했고, 감각에 의지해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공부하고 연습했던 것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체득됐길.

그리고 체득됐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고 있었다.

도수가 손을 떼자, 의료진이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심장이 뜁니다!”

“아까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에요!”

이시원과 강미소였다.

김광석은 땀을 닦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맙소사, 절반쯤 녹아내린 심장을 신선한 심장으로 만들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조근현도 기가 질렸는지 창백한 안색이었다.

그에 도수가 말했다.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수술 얘기가 아니다.

모두의 시선이 도수에게로 향하자, 그가 덧붙였다.

“환자는 어떤 이유인지 수술 후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그 양상은 제각기 달랐죠. 언제는 심장이 부어올랐고, 더 지나선 심장이 녹아내렸습니다. 이번 수술 후에도 환자에게 어떤 이상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도수 역시 그 원인까지 알 순 없었다.

이미 밖에서 몸속을 투시했을 때 예상했지만, 수술 과정에서 밝혀진 건 없었다.

그래서 더 위화감이 들었다.

“수술 마무리되는 대로 내과에 협조 요청해 주세요.”

“제가 가겠습니다.”

조근현이 말했다.

그는 천하대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그나마 다른 과장들과 친분이 있는 편이었다.

물론 내과과장은 도수를 배척하지 않는 이들 중 한 명이었지만, 그래도 부탁을 하는 데 있어선 친분이 있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하세요.”

도수가 대답했다.

수술 도중에 문제점이 파악되지 않았고, 수술로 완치가 안 됐으며, 수술 후유증도 아닌 또 다른 문제가 환자 몸속에 생긴다면.

외과적 견해보단 내과적 견해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 도수의 판단이었다.

‘그래도… 다행이군.’

그는 내심 안도했다.

당당하게 수술을 이끌었으나 내내 불안했던 것이다.

이번 수술만큼 투시력 소모가 컸던 수술은 근래 없었다.

라크리마에서 외상 수술만 주로 하다가 천하대에서 여러 복잡, 다양한 수술을 하다 보니 투시력의 상한선이 깨졌다.

초능력의 퀄리티와 지속시간이 늘어난 것도 늘어난 거지만 천하대 수술은 하루에 수십 명을 수술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극한의 한계점을 완전히 넘는 일 자체가 없었다.

물론 하루에도 수 명을 수술하는 센터 특성상 다른 이들이 듣는다면 거품 물고 기절할 만한 생각이었으나, 도수에게는 ‘전보다 덜 고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오늘, 말도 안 되는 수술을 하면서 극심한 체력을 소모했다. 지금도 한계치를 한참 넘은 상황이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욱신, 욱신.

전에 레펠 훈련 때 다친 옆구리와 손이 다 쑤실 지경이었다. 분명 거의 다 나은 상태였는데 통증이 생길 정도면 육체 자체가 얼마나 지쳤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깊게 집중해서만이 아니라, 너무 긴장한 상태로 수술한 것도 영향이 있을 터였다.

해서 도수는 김광석과 조근현 교수에게 말했다.

“마무리 봉합만 부탁드릴게요.”

너나 할 것 없이.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고 좀 쉬어.”

“얼굴이 창백합니다.”

도수는 손을 털고 수술실을 나섰다. 뒤에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존경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가자 뜻밖에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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