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급행열차
흉부외과 과장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이상, 천하대 흉부외과 소속 의사들의 지원을 포기해야 했다.
심장 수술에 특화된 흉부외과가 아니라면 어떤 과든 응급의학과보다 썩 낫다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도수는 마취과를 찾았다.
똑똑.
노크를 하자 안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끼이익.
마취과 교수 정현진의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선 도수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센터장님.”
정현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겨주었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호출하셨으면 제가 갔을 텐데요.”
지난 몇 차례, 수술을 함께한 그는 도수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았다.
도수가 대답했다.
“부탁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뭐든 말씀하십시오.”
“곧 저희 과에서 심장 수술이 있을 예정입니다.”
“심장 수술이요?”
정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언제입니까? 시간 비워놓겠습니다.”
“어떤 수술인지 아직 말 안 했는데.”
“어떤 수술이든 센터장님 수술이면 무조건 들어가야죠.”
도수는 ‘왜?’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미소 지으며 목례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아직 날짜나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환자 측에서 연락을 줘야 해서요. 언제가 됐든 응급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시간을 조율하기 힘들겠군요.”
“그래서 사전에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눈치 빠른 정현진은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언제라도 저 대신 들어갈 친구를 구해놓겠습니다. 저는 센터장님 수술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맞죠?”
“정확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
이내, 정현진이 물었다.
“한데 대체 어떤 수술이기에 센터장님이 직접 나서서 수술팀을 꾸리시는 겁니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수는 초고난도 수술을 여러 번 해왔다. 그럼에도 직접 팀원을 꾸린 적은 없었던 것이다. 누가 함께 들어가든 훌륭하게 집도를 했기 때문이다.
도수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새로운 수술입니다. 심실재건술이요.”
“심실재건술……?”
처음 듣는 수술 이름에 정현진이 갸웃하자.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심실을 재건하는 겁니다. 다리 근육으로 심기능을 보강하는 거죠.”
“그게 가능합니까?”
“출혈이 심할 겁니다.”
그 한마디로 뛰어난 마취과의의 필요성이 드러났다. 출혈이 심하다는 뜻은 환자가 수술 중 안정을 잃거나 사망할 확률이 크다는 뜻이다.
“이런.”
정현진이 침음을 삼키고 물었다.
“잘 그려지진 않지만 엄청나게 복잡한 수술이 되겠군요.”
“수술 시간은 길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출혈이겠죠.”
다시 한번 출혈을 강조한다.
“짧고 굵은 수술이 될 겁니다.”
도수가 덧붙이자.
정현진은 동시에 두 가지 감정이 솟구쳤다. 두려움, 그리고 흥분.
“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목례한 도수는 정현진의 연구실을 나서려 했다. 그때, 정현진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식전이시면 식사라도 함께 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다음에요.”
고개를 돌린 도수가 말을 이었다.
“어려운 수술을 앞둔지라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재건술이 끝나거든 그때 식사하시죠.”
“센터장님을 보면 항상 긴장 상태인 게 느껴집니다. 주제넘을지 몰라도, 나이다운 쉼도 필요하진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지랖 좀 부려본 것뿐이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예, 그럼.”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도수는 문을 열고 나섰다. 몸은 자리를 떠나왔지만 정현진의 ‘항상 긴장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는 말 한 마디가 마음에 걸렸다.
‘휴식?’
두 글자를 떠올린 도수는 피식 웃었다. 끊임없이 환자가 밀려들고 매일같이 수술이 잡힌다. 지금 당장에도 수술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환경을 원해서 응급실로 왔다.
후회는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는 김광석의 연구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김광석이 일을 보고 있었다. 그는 레지던트 강미소와 함께였다.
“센터장님?”
강미소가 아는 체를 했다.
그녀 역시 도수와 여러 번 수술을 들어간 경험이 있는 훌륭한 레지던트였다.
번거롭게 몇 번 걸음 할 필요가 없어 잘 됐다고 여긴 도수가 입을 뗐다.
“곧 수술이 잡힐 예정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김광석이 물었다.
“어떤 수술이지?”
“심실재건술이요.”
“심실재건술이라.”
이름만으로 어떤 수술일지 유추한 김광석이 말했다.
“다양한 수술들을 하는군. 학회에 발표할 수술들은 점점 늘고 있는데 정작 발표할 시간이 안 나니.”
“환자 심장 상태가 심각합니다.”
“센터장이 그렇게 말할 정도인가?”
“네. 어려운 수술이 될 겁니다.”
도수는 전에 없이 초조해 보였다.
그를 응시하던 김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근현 교수한테는 내가 말해두지.”
“감사합니다.”
“흉부외과에선?”
“거절했습니다.”
“비겁한 인사들 같으니.”
중얼거린 김광석이 강미소를 일별하곤 물었다.
“강 선생도 함께 들어갈 건가?”
“예.”
그에 강 미소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예스!’라고 어렴풋한 환호가 들려왔다.
입꼬리를 말아 올린 도수가 다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강 선생은 이시원 선생한테도 말씀해 주세요. 제가 호출하면 적혈구 가용 가능한 최대치로 준비해 주시고, 혹시 모르니 심폐기기사도 대기시켜 주시고요.”
굳이 미리 얘기하는 이유는 수술 들어갈 당시 상황이 어떨지 몰라서였다.
그 말만으로도 얼마나 큰 수술일지 짐작이 간 강미소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확실히 준비해 둘게요.”
수술팀을 마저 꾸린 도수는 김광석 교수의 연구실을 나섰다. 결국 마취과 실력자 한 명과 나머지는 전원 다 센터 인력으로 구성됐다. 그들은 매번 비협조적인 외과분야 분과들 사이에서 싸우고 있었다.
천하대 이사장이 실현시킨 파격 인사에는 이렇듯 부작용이 있었다. 대학병원의 질서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권한’에는 빛과 그늘의 양면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이해관계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누구라도 스트레스를 느낄 만한 부분이었지만.
도수는 크게 영향받지 않았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는 간단히 생각했다.
물론 이 문제로 환자를 케어하는 데 백 퍼센트의 효율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매번 대안을 생각해 내가며 상황에 맞게 대응하고 있는 상황.
여기서 더 서두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도수의 견해였다.
***
설령 도수가 병원 내 정치적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해도.
상황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호출기가 울린 것이다.
삐비빅. 삐비빅.
미간을 찌푸린 도수가 걸음을 재촉했다.
타타타탓!
엘리베이터에 거의 도착한 순간.
병원 내 방송이 잇따랐다.
-이도수 센터장님 씨로젯(C Rosette: C수술실), 이도수 센터장님 씨로젯.
‘벌써……’
벌써 환자가 수술실로 올라갔다는 뜻이다. 방송까지 하면서 수술실 이름만 던지는 것만 봐도 얼마나 급박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띵.
드르르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조근현 교수가 보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도수가 타며 묻자.
조근현이 대답했다.
“한 환자가 흉통을 호소하며 찾아왔습니다. 김 교수가 검사도 없이 강 선생, 이 선생한테 환자를 수술실로 올리라고 지시했고요.”
“환자 이름은요?”
“엄승진 환자. 이십육 세입니다.”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이렇게까지 급작스러운 상황을 예견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김광석의 판단은 정확했다.
엄승진은 천천히 검사받고 진단받을 정도로 여유로운 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조근현 교수가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도수가 되물었다.
“김 교수님께 들으셨죠? 심실재건술 환자 수술에 들어오셔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대답한 조근현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럼 그 환자가……?”
“맞습니다.”
“응급실을 애들한테 맡겨도 괜찮겠습니까?”
“김용찬 선생 듀티(Duty: 근무)죠?”
“네.”
“그럼 됐습니다. 급한 경우에는 다른 과 당직 선생님들 계시니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수술실이 위치한 층에 멈춰 섰다.
띵.
두 사람은 내려서 곧바로 수술 준비를 했다. 수술복을 입고 손을 소독한 뒤 수술실 안으로 향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수술실 안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김광석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정현진 선생 호출해 뒀습니다. 곧 올 겁니다.”
“정 선생 오는 대로 바로 시작하죠.”
잠시 후.
급한 대로 환자를 재워서 들어온 마취과의와 정현진이 교대했다. 정현진은 바이탈 체크를 하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시작하셔도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환자의 왼편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칼.”
턱.
강미소가 메스를 건네자.
도수가 피부를 절개했다.
스으으으으윽.
피가 질질 샜다.
“톱.”
턱.
전동 톱을 받은 도수는 톱날을 환자의 뼈로 가져갔다.
지이이이이잉.
드드드드드드!
뼈가 잘려 나가며 비명을 토했다.
그 와중에도 도수는 침착하게 말했다.
“오늘 우리가 할 수술은 두덩정강근을 이용해 심실을 재건하는 수술입니다. 립 스프레더(Rib spreader: 개흉기).”
개흉기로 환자의 흉부를 열자.
도수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보비.”
턱.
치이이이이익.
심막이 타들어갔다.
심장을 보호하고 있던 막이 잘려나가자, 기괴한 형태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게 보였다.
“헉!”
“심장 모양이…….”
의료진들이 침음을 삼켰다.
심장이 이 모양이 돼선 어떻게 아직 생존하고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정말 녹아내렸군.”
김광석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심장이 손상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일단 손대가며 살펴보자’는 안일한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단숨에 블리딩(Bleeding: 출혈)이 시작되며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도수는 수술 전 미리 생각해 둔 수술 과정을 떠올렸다.
“칼.”
턱.
메스를 받은 도수는 환자의 심장을 노려봤다.
샤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이 발휘되며 심장의 내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는 근육, 그 근육을 이루고 있는 근섬유 가닥가닥. 크고 작은 혈관들 하나하나까지.
“심실 절개하겠습니다. 김 교수님은 두덩정강근 절제 준비해 주세요.”
김광석이 고개를 끄덕이고 환자의 다리 바깥쪽에 가서 섰다.
도수가 덧붙였다.
“시간이 생명입니다. 출혈은 최소화해야 돼요. 제가 칼을 대는 순간 김 교수님도 두덩정강근 절제 들어가 주세요. 이시원 선생은 김 교수님 옆에 딱 붙어서 근육 절제 끝나면 지혈 들어가고요.”
두덩정강근은 떼어내도 다른 근육들이 운동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근육이었다. 따라서 화상이나 외상을 입어 근육이 손상됐을 경우 이 두덩정강근을 이식하곤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부위들에 쓰인다는 것인지, 심장에 쓰이는 근육은 아니었다.
애초에 심장에 일반 근육을 연결한다는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었다.
심장은 평생 멈추지 않고 뛰기 때문에 특수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근육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수는 두덩정강근으로 심장근육의 기능을 상향시킨다고 했다.
충분히 의문이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도수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
김광석도, 이시원도 토를 달지 않고 수긍했다.
“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답하자.
마침내 도수는 심실로 칼날을 가져갔다.
“피 많이 나요.”
끄덕.
의료진들과 정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환자의 바이탈을 관리하고 있는 정현진의 긴장감은 극한까지 고조되어 있었다.
수술실을 팽팽하게 메우고 있는 긴장감.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피부가 따끔거리는 착각이 들만큼 숨이 막혔다.
“절개.”
도수가 날카로운 칼끝으로 환자의 심실에 흠집을 냈다.
틱.
촤아아악.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블리딩!”
삑. 삑. 삑. 삑.
“혈압 떨어집니다!”
“피 짜요!”
혼란스러운 와중에.
도수가 외쳤다.
“거즈!”
일 초, 이 초, 삼 초……
지금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마침내 환자는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급행열차를 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