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꿈은 반대
그 시각 동일본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아사다 류타로는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수술 영상을 보고 있었다.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손아귀에 땀이 찼다.
‘이 자식, 이거 별종 아니야?’
입가에는 미소가 맺혔다.
‘이도수’란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올해 초였다. 라크리마에서의 수술영상이었다. 제대로 된 의료기기 하나 없이 보기만 해도 끔찍한 환자들을 척척 수술해 내는 한 소년의 모습은 그를 비롯한 외과의들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동시에 일각에선 의심하는 이들도 나왔다. 영상이 조작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그러나 아사다 류타로는 그 영상에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땐 분명 응급외과 수술만 할 줄 아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한 꺼풀 벗겨보니 그냥 수술 귀신 정도가 아니라 괴물이었다.
외계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기묘한 수술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뿐인가?
이건 심장성형술을 오랜 시간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일본 의학계의 이론을 뛰어넘는 신개념 수술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수술도 아니었다.
‘나라면, 할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단순히 새로운 방식의 심장성형술이 아닌, 발군의 기술을 가진 써전들만 할 수 있는 심장성형술인 것이다.
그 순간.
탁!
실내에 불이 들어왔다.
형광등을 켠 인턴이 자리로 돌아오자, 레지던트 하나가 입을 열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저런 실력이라니.”
꼬리를 물고 비슷한 견해가 나왔다.
“이렇게 빠를 수 있는 겁니까?”
그에 아사다 류타로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지.”
“선생님도요?”
“저 수술이 가능하다 해도 저런 속도를 낼 수는 없어.”
아사다 류타로는 솔직히 인정했다.
“…나 아닌 누구라도 힘들다고 봐야지.”
“그게 무슨…….”
“그럼 닥터 리가 흉부외과계의 일인자란 뜻이십니까?”
“지금 현역에 있는 흉부외과의 중에는.”
그렇게 대답한 류타로가 턱을 긁적였다.
“뭐, 어디까지나 심장성형술에 국한된 거긴 하지만. 흉부외과 수술은 다양하다. 저 실력이면 다른 수술도 기본 이상은 하겠지만, 모든 수술을 저만큼 한다고 보긴 힘들어.”
“왜죠? 심장성형술이면 흉부외과 수술 중에도 최고난도의 수술인데…….”
“우리가 본 한 번의 수술을 위해 무수하게 연구하고 연습했을 거 아니야?”
“그렇… 겠죠.”
“그럼 다른 수술은 어떨지 모르지.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수술은 배워둘 만하다는 거야.”
“선생님이라면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워낙 고난도 수술이기 때문에 다른 써전들은 보고도 엄두를 못 냈다.
그러나 흉부외과계의 세계적인 권위자, 아사다 류타로는 달랐다.
“그래. 바티스타는 백 퍼센트의 성공률이 아니었다. 수술 후 사망하는 환자들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이 수술법이라면 그들을 모두 살릴 수 있을 거야.”
류타로가 말을 이었다.
“한번 만나보고 싶군.”
“우리 병원에 연수일정이 잡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류타로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 아무도 못 말리는 괴짜 흉부외과의였다.
“아니, 그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어.”
무슨 생각인지 빙그레 미소 짓는 그. 그를 바라보는 팀원들의 표정이 의아하게 물들었다.
그러나 아사다 류타로는 그에 대한 설명을 부연하지 않았다. 대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라이벌을 만난 기분이랄까. 이런 감정은 오랜만이란 말이야.”
물론.
그가 만약 도수가 예전에 뇌실질 표면에 발생한 뇌출혈 수술을 해냈다는 걸 안다면, 방금 대장 전체에 걸쳐 침윤된 담낭암 수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냈다는 사실을 들었다면 기겁했을 터였다.
아사다 류타로의 영역은 흉부외과 하나였지만 도수는 여러 영역을 동시에 섭렵한 써전이었다. 평생에 걸쳐 한 분야만 전공해도 끝을 보기 힘든데 여러 분야를 전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
한편 천하대병원에선 도수의 수술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술실 안의 의료진들이 인사를 건넸다. 그들 모두 탈진하기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다. 도수 역시 온몸이 땀범벅이었고,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긴장이 풀린 탓이다.
임숙영의 얼굴을 내려다본 도수가 말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환자 회복실로 옮겨주세요.”
그러자 강미소가 시선을 쫓으며 물었다.
“괜찮으실까요?”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봐야겠지만.”
그때 조근현 교수가 덧붙였다.
“수술은 성공한 것 같은데.”
“예.”
도수의 말에 그가 안도했다.
“회복하실 가능성이 생겼단 거군요.”
“그 표현이 정확합니다. 나머진 환자한테 달렸어요.”
“다행입니다. 센터장님, 고생했습니다. 어려운 수술이었어요.”
수술 시간만 장장 일곱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수술이 두어 시간을 넘지 않고, 아무리 복잡한 수술도 대여섯 시간이면 끝난다는 걸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그러나 도수가 아니었다면 네 가지 수술을 동시에 하지 못했을 터였다. 일곱 시간이 아니라 열 시간을 준다 해도 환자를 살려서 수술을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로 봤을 때 도수는 의과의들의 존경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 안에는 일선에서 손발을 맞춘 조근현 교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좀 쉬십시오. 응급실은 제가 애들이랑 나눠서 보겠습니다.”
그들 모두 기진맥진한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선봉에서 이 수술을 이끈 도수에 비하면 노동량이 적었다.
해서 도수는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장갑을 벗은 그가 참관실을 향해 목례를 하곤 돌아서서 수술실을 나갔다.
수술실 밖 공기를 들이마시자 무거운 스키 부츠를 신고 있다 벗은 것처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순간.
밖에서 졸고 있던 김해리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오빠, 어떻게 됐어?”
“수술은 성공했다.”
도수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안심하긴 일러.”
“오빠 생각은 어떤데?”
“…….”
“엄마, 다시 건강해질 수 있어?”
“그럴 거다.”
도수가 덧붙였다.
“강한 분이시잖아.”
김광석은 얼굴 보기도 힘든 데다 금전적으로 열악한 환자들을 위한답시고 빚만 졌다. 환자들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의인일지 몰라도, 아내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이렇다 보니 그녀 혼자 생계를 꾸려가며 해리를 키운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걸 다 이해하고 수십 년을 같이 산 것만 봐도 임숙영이 얼마나 강한 여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아팠을 텐데도 남편과 딸내미에게 심려를 안 끼치려고 끙끙 앓다가 실려 오지 않았는가.
그런 어머니 밑에서 보고 자란 해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한 분이셔. 꼭 일어나실 거야.”
고개를 끄덕이던 도수가 물었다.
“교수님은?”
“아… 아빠.”
해리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환자 보러 가셨어.”
“너만 두고?”
“내가 가시라고 했어. 엄마 나오시면 전화하겠다고.”
그 부모에 그 딸이다.
“…환자에 집중도 안 되실 텐데.”
“응. 그래서 무리 안 하신다고.”
“교수님도 교수님이지만 너도 대단하다.”
“엄마만 환자는 아니잖아.”
“…….”
말을 잃은 도수를 향해 김해리가 덧붙였다.
“엄마 말고도 위급한 환자들이 많잖아? 아빠가 있냐 없냐에 따라 그 환자들 목숨이 달린 거고……. 내가 엄마 간호를 하다 보니 더 공감이 되더라.”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
해리의 꿈은 의사.
해리가 대답했다.
“아빠 같은 의사가 될 거야.”
“교수님이 싫어하실 것 같은데.”
보통 고단한 길이 아니니.
그러나 해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 인생은 내 건데 뭐.”
“그렇지.”
도수가 수긍하는 사이.
그녀가 현황판을 올려다보며 눈물이 번진 눈가를 소매로 슥 닦았다.
“난 아빠한테 전화하고 회복실 앞에 가 있어야겠다. 오빠, 오늘 고마워.”
“너무 걱정 말고.”
“넵… 나 씩씩한 거 알잖아?”
“잘 알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린 도수가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해리가 멀어질 때까지 작지만 늠름한 뒷모습을 바라봤다.
물론 그는 알고 있었다.
늠름한 척하는 그 모습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아버지가 집에 자주 못 들어오다 보니 자연스레 모녀 관계가 깊어졌다. 임숙영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정말 견디기 힘들어할 것이다.
두벅, 두벅.
다시 걸음을 옮기는 도수.
그는 의국으로 가던 걸음을 돌려 꿈에서 봤던 소아 환자, 그리고 산에서 추락 사고를 당했던 노인을 향해 걸었다.
해리의 말을 듣고 심경의 변화를 겪은 것이다.
잠은 지금 자나 삼십 분 뒤에 자나 부족하지만 그의 발걸음 한 번, 한 번에 환자들은 변화를 겪는다. 소아 환자나 노인환자처럼 사고로 응급수술을 받은 중증외상환자의 경우 정말 수시로 컨디션이 오르락내리락하기 마련이다.
어제까지 회복세에 접어들었던 환자가 오늘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심실세동이 왔던 환자가 기적처럼 눈을 뜨는 일도 있었다.
예측할 수도, 종잡을 수도 없는 막연한 미래.
그렇기 때문에 직접 수술한 주치의가 자주 들여다보는 것만이 환자의 몸에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병실에 도착해 소아 환자를 봤을 때, 도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꿈은 반대라더니.’
꿈에선 소아 환자가 깨어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아이는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보호자가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으로 말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찬영이는 왜 안 깨어날까요? 언제쯤 깨어날는지…….”
그 질문에 답해줄 수 있다면, 진즉 말해줬을 것이다.
“꼭 깨어날 겁니다.”
수술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이럴 때 더욱 답답했다.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가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
해답을 가지고 있는 건 의사가 아니다.
심지어 ‘언제 깨어날 거다’라고도 말할 수 없다.
“수술은 성공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한숨을 뱉은 보호자가 울컥 다시 눈물을 쏟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뇌사였다고 해도, 애 아빠가 목숨까지 바쳐가며 준 심장이에요. 찬영이는 꼭 살아야 해요. 그래야 저도 살아요……. 찬영이는 제게 남은 전부예요.”
교통사고로 인해 남편을 잃은 여인이다. 한데 그 아들마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 채 암흑 속을 헤매는 기분일 것이다.
도수 역시 한날 부모님을 잃어봤기에 그녀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상기하고 싶지 않은 그 고통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당장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지만, 도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만을 할 따름이었다.
“아이들의 회복력은 어른보다 훨씬 빠릅니다. 엄마를 다시 보고 싶어서라도 꼭 깨어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목례한 도수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굳이 구체적으로 확인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 오전에 확인해서가 아니라, 아주 조금의 투시력만으로도 찬영이의 몸에는 문제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뇌사도 아니다.’
출혈이 심했지만 뇌가 죽진 않았다.
그런데도 수술 한참 후인 아직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한다는 건 의아한 일이었다.
두벅, 두벅.
다시 걸음을 옮겨 들른 곳은 노인 환자가 누워 있는 병실이었다.
노인환자는 정신을 차리고 식사도 재개한 상태였다.
다른 환자를 보고 있던 간호사가 다가와서 말했다.
“오늘 아침에 깨어나셔서 저녁부터 식사 시작하셨어요. 선생님 수술 들어가셨을 때요.”
“아아.”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복이 빠르네요.”
“네, 그리고… 직업이 의사시더라고요.”
“의사요?”
도수가 눈을 치떴다.
의사였다니.
뭐, 의사라고 다치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 깜짝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신기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의사란 직업을 가진 환자는 라크리마에서 있었던 때 이후 처음이었다.
“묘하네요.”
“그렇죠?”
생긋 웃은 간호사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곤 병실을 나갔다.
뒤에 남겨진 도수는 노인을 향해 투시력을 사용했다.
샤아아아아아아.
건강 상태는 양호.
등산을 다니며 평소 건강관리를 잘 해왔는지 팔십 대답지 않은 회복력이었다. 기적적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수준이다.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기분이 좋습니다.”
“가족분들은요?”
“외국에 있어요.”
“아아.”
“그건 그렇고, 선생님한테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예.”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가서 말입니다.”
“뭐가요?”
도수가 갸웃하자.
노인이 다시 물었다.
“대체 무슨 방도를 썼기에 날 살려서 여기까지 데려온 겁니까?”
그는 추락 사고를 당한 후 구조를 기다리며 확신했다. 가물가물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영영 다시 눈을 뜨지 못할 것을.
그런데 버젓이 살아서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를 가만히 응시하던 도수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