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86화 (86/152)

# 86

한계를 넘다

스윽.

이하연이 현미경을 걸쳐주었다.

좁은 시야 속.

임숙영의 직장을 내려다본 도수가 투시력을 썼다.

샤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장간막에서 시작된 혈관들이 장 표면으로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다.

“시작하겠습니다. 조 교수님은 계속 석션해 주세요.”

조근현을 말하는 것이다.

지시를 내린 도수가 시선을 옮겨 마취과 정현진에게 덧붙였다.

“혈압 떨어지면 바로 말씀해 주시고요.”

“걱정 마십시오.”

정현진이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강미소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칼. 십오 번으로.”

“보비 말고요?”

보비는 지혈과 절제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전기소작기를 말한다. 크기도 여러 가지라 다양하게 사용이 가능했지만 지금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정교한 수술을 요합니다.”

보비는 메스에 비해 끝이 뭉툭했다.

더욱이 닿는 부위를 태우는지라 혈관만 절제하려다 자칫 장 실질을 태울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으나 자잘한 혈관을 일일이 메스로 자르고 실로 꿰매는 것보단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들었지만, 강미소는 군말 없이 15번 메스를 건넸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벌써 몇 번째 함께하는 수술인지 모른다. 이처럼 여러 번의 수술을 거치며 그녀에게는 도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생겼다.

턱.

메스를 받은 도수는 마치 그녀의 믿음에 부응하듯 메스를 가져갔다.

강미소나 다른 의료진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혈관들.

도수가 장 표면을 스치듯 칼끝을 놀렸다.

틱.

메스를 허공에 놀릴 리는 없으니 절제를 시작한 것 같긴 한데, 겉보기엔 티가 안 났다. 슬슬 피가 고이지 않았다면 도수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줄 알았을 만큼.

“석션.”

여전히 장 표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지시하는 도수.

그의 지시에 따라 조근현 교수가 소리 소문 없이 고이는 핏물을 빨아들였다.

치이이이이이이익.

그사이.

스으으으윽.

도수의 메스가 장 표면을 지나가며 점차 출혈량이 늘었다. 눈에 띄게 늘진 않았는데, 어느새 제법 피가 고이고 있었다.

치이익.

조근현이 석션을 지속하며 물었다.

“이거, 출혈이 계속되면 안심할 수 없겠습니다.”

그 역시 도수 외에 현미경을 차고 있는 유일한 의료진이었다. 따라서 그는 장 표면의 혈관들을 순식간에 잘라 버리는 도수의 솜씨를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바짝 집중해야 했기에 내색하진 않았지만 이미 마음속은 놀랄 기운도 남아 있질 않았다.

‘꿈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현미경으로 봐야 간신히 볼 수 있는 혈관들을 깔끔하게 절제할 수 있는 걸까?

장 실질은 티끌만큼도 건드리지 않고 마치 연결된 것처럼 붙어 있는 혈관들을 칼날로 잘라내고 있었다.

알기 쉽게 문구류로 비유하자면, 커터칼로 지면에는 손상을 주지 않고 화이트 자국만 도려내는 것 같은 수준의 기교였다.

‘이런 게 가능한 건가?’

조근현은 자기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입이 바싹 타들어갔다. 훌륭한 기교는 기교고, 점점 출혈이 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한데.”

“거의 다 됐습니다.”

도수가 상황을 알려주었다.

조근현이 서 있는 위치에선 배 속의 직장이 다 보이지 않았다.

아니, 도수가 서 있는 위치에서도 대장의 최하부에 위치한 직장의 아랫부분까지 완벽히 보일 것 같지 않았다.

이 수술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되지 않는 점 투성이였던 것이다.

도수는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수술을 하고 있었다.

툭!

마지막 혈관을 잘라낸 도수는 가닥가닥 끊어진 수십 개의 미세혈관들을 바라보았다.

“타이.”

이제 다시 연결할 차례였다.

설령 혈관들을 명확히 볼 수 있다 쳐도, 혈관들이 하나같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뒤엉켜서 어디와 어디를 이어야 하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해부학에 뛰어난 써전일지라도 인체의 모든 혈관을 기억하고 있을 순 없다.

동맥, 정맥 같은 크고 주요한 혈관들만 머리에 새기고 있을 뿐.

이런 수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세혈관들까지 전부 다 외울 생각은 못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방금 도수가 기적적으로 끊어낸 혈관들은 교과서에서도 소개되지 않는 곳들이었다.

그래서 도수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자기 눈으로 본대로, 자기 기억을 믿고 수술하는 수밖에 없었다. 봉합사와 봉합침을 받은 지금도 어디부터 어떻게 꿰매야 하는지 그 모든 공식은 머릿속에만 현존했다.

‘해야만 한다.’

도수는 눈을 빛냈다.

샤아아아아아아.

한층 더 강력해지는 투시력.

미세한 혈관들을 꼼꼼히 훑은 도수가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톡, 스으윽…….

“……!?”

조근현이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이게 무슨……!”

지금까지 말이 안 됐던 과정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수는 봉합침 끝으로 아주 미세한 흠집을 내는 동시에 봉합사를 넣어서 빼내고 있었다. 애초에 손가락은 너무 두꺼워서 미세한 컨트롤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래서 클램프를 썼는데, 클램프를 이용한다 해도 이런 봉합술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말도 안 돼…….”

조근현은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을 뱉고야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혈관을 잡아주는 사람도 없이 톡 찔러서 흠집을 내고 실을 관통시키는 것이다.

실이 무슨 봉합사처럼 단단한 형태도 아닌데 하늘거리는 실의 끄트머리를 잡아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마찬가지로 유연한 혈관을 통과시키고 있었다.

슥, 스윽.

도수의 손이 연속적으로 움직였다. 움직임의 폭이 너무 작아서 눈으로 좇기 힘들었다. 현미경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보면 클램프를 든 손을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떠는 것과는 미세한 차이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봉합 중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뭐지?’

강미소도, 모든 의료진의 의문도 같았다.

뭘 하는 걸까.

현미경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조근현을 제외하면 알 도리가 없었다.

물론 조근현이 그렇듯, 그처럼 실제로 보고 있다고 해도 믿기 힘들 테지만.

이들이 의아할 지경인데 현미경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상황을 중계받고 있는 참관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곧 스피커를 통해 병원장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도수 센터장, 지금 뭐 하는 건가?

아마 참다못해 물었을 터였다.

그러나 도수는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태였다. 투시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마당에, 잠시라도 흐름이 끊기면 간신히 기억하고 있는 혈관들의 순서들이 머릿속에서 모조리 날아갈 수도 있다.

“스피커 끄세요.”

잠깐 멈췄던 손이 다시 움직였다.

강미소는 표정이나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에 따져 묻지 않고 곧바로 스피커를 꺼버렸다.

참관실 안에서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과장들, 얼굴을 붉히는 과장들이 보여서 가슴이 철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술방 밖에서 벌어질 일은 바깥 일. 지금은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할 때였다. 이곳에선 써전과 환자의 안위가 최우선이다.

“후…….”

한숨을 뱉으며.

그녀는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만은 막지 못했다.

‘큰일 났네.’

그리곤 도수를 보며 내심 한마디 덧붙였다.

‘꼭 성공하셔야 할 거예요. 그러지 못하면… 괜히 독박 써요.’

도수는 말은 물론 표정으로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환자에게 몰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방해하는 건 참관실의 병원장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환자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센터장님, 혈압 떨어집니다.”

정현진이었다.

자신만 믿으라고 호언장담하던 마취과의.

그가 다급하게 말했다는 건, 환자의 바이탈을 더 이상 커버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도수는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일 분만요.”

“하지만…….”

“버텨요.”

그걸로 끝이었다.

도수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고 봉합을 이어갔다. 그는 오로지 혈관을 잇는 것만 생각했다. 그사이 환자의 바이탈이 얼마나 어떻게 망가질지,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조차 들어올 틈이 없었다. 모든 건 마취과의에게 맡기고 자신은 수술에 몰입할 뿐.

정현진은 손으로 피를 짜며 땀을 흘렸다.

‘젠장… 그게 말처럼 쉽냐고!’

소리쳐서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 행동은 달랐다. 어리광을 피워봤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있기에. 지금 이런 상황을 미리 알고서도 이 수술실에 발을 들였기 때문에.

그는 지금 자신이 아무 데도 의지할 곳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도수가 제시한 일 분. 그 일 분을 버티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었다.

‘뭘 하면 되지? 어떻게 하면 환자를 조금이라도 더 버티게 할 수 있을까?’

그는 최대한 심기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퍼부었다.

그동안.

도수의 봉합은 슬슬 막바지에 치닫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혈관들을 잘라냈다가 그대로 이어붙인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상상도 못 할 비밀이 숨어 있었다.

도수는 혈관들을 정맥과 동맥에 직접 이어 붙였다.

앞으로 절제할 암의 침윤부 위치한 혈관들은 다른 쪽으로 옮긴 것이다.

미세한 혈관을 통해 뻗어 나가는 혈류마저 온전히 돌아서 장이 괴사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는.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냈다.

“가위.”

도수가 봉합침과 봉합사를 건네며 뱉은 말이다.

“여기…….”

강미소가 가위를 내밀고.

도수가 실밥을 잘랐다.

“컷.”

톡.

잘려 나가는 실밥.

그는 꼬리 물듯 연결, 연결해서 봉합한 실밥을 모두 잘라내고 가위를 반납했다.

“보비.”

턱.

마침내 도수가 말했다.

“마지막, 직장의 침윤부 절제합니다.”

“……!”

조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성공하길 바랍니다.”

“지켜봐야죠.”

도수는 그렇게 답한 뒤 장을 절제하기 시작했다. 그조차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모든 혈관들의 순서와 위치를 맞게 기억했는지, 혹시 절제와 봉합 중에 실수는 없었는지, 이후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방식의 수술을 한다는 것.

직감에 의지한다는 건 이런 불안 요소들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믿습니다. 일어나실 거라고.’

치이이이익.

도수는 장을 잘라내며 속으로 그리 말했다. 라크리마에서 체계화된 수술법 없이도 수술을 했고 번번이 사람을 살려냈던 그였다. 그런 그가 ‘교육’이란 걸 받았고 체계화된 현대의학을 받아들였다.

이 모든 걸 응용해서 해낸 수술.

그렇기에 그는 이 수술이 성공하리라고 생각했다. 장담하지 않고 말을 아꼈지만, 적어도 도수는 스스로 임숙영이 건강하게 회복할 걸 믿고 있는 것이다.

***

참관실에서 수술 장면을 지켜보던 간담췌외과 과장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있었다. 언제 일어났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래 수술을 하고 있는 의료진이 멋대로 스피커폰을 꺼서 열받은 것도, 이 수술이 성공리에 끝나면 닥쳐올 후폭풍을 걱정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외과의로서 말이 안 되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게 무슨…….”

“이거, 녹화되고 있는 거죠?”

말을 자른 건 마취과 과장이었다. 그 역시 일어나 있었다. 아니, 참관실의 모두가 벌떡 일어나 도수의 수술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들 모두 과장급 인사들.

실제 수술방에서 수없이 실전을 뛰는 간담췌외과 과장이나 신경외과 과장, 흉부외과 과장처럼 도수가 얼마나 어떤 일을 해낸 건지 정확히 알긴 힘들었지만,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는 한 명도 빠짐없이 느끼고 있었다.

부원장이 도로 자리에 앉으며 다리를 꼬고 턱을 굈다.

“모두 녹화되고 있지요. 있는데… 이걸 보고도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허, 참. 실력 하난 대단한 친굽니다.”

병원장을 비롯해 모든 과장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심지어 도수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조차도 미세하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빙그레 웃은 이사장이 물었다.

“병원장. 학계에 보고해야겠지?”

“물론입니다.”

병원장이 새삼스레 뭘 묻냐는 듯 대답했다.

“환자의 생사는 하늘에 달렸겠지만, 이도수 센터장이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은 건 우리 모두가 확인했습니다. 녹화된 것도 있고요.”

“아직 아무 실수도 하지 않은 건 아니죠.”

신경외과 과장이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는 팩트를 짚었다.

“…이도수 센터장이 건드린 혈관과 관련된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아무 실수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슨 혈관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혈관들을 수십 개나 건드렸다.

보고도… 아니, 들었어도 믿지 못했을 신기를 직접 보여주면서.

신경외과 과장은 적개심조차 놀라움에 날아가 버렸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확실한 건 외과의라면 모두 한 번쯤 봐야할 가치가 있는 수술이었다는 겁니다. 수술의 성패를 떠나 앞으로도 쭉 교육 자료로 쓰일 수 있겠어요.”

신경외과 과장은 감탄을 그렇게 대신했다. 솔직한 마음을 표 나지 않게 둘러댄 것이다. 그가 뱉은 모든 말은 간만에 편향되지 않고 이치에 맞았다. 모든 참관인들이 수긍하자.

이사장이 대답했다.

“수술 끝나거든 임숙영 환자가 회복할 수 있도록 각 과에서 적극 협조하게.”

“예, 이사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병원장이 말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의사들이 비슷하겠지만.

태연하게 상황을 이끈 이사장 역시 떨리는 손을 허벅지 아래 감추고 있었다. 닭살이 돋았다. 갑자기 나타난 손자 녀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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