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진보된 수술법
보비와 클램프를 든 도수의 눈이 빛났다.
샤아아아아아아.
이어갈 수술은 결장우반절제술.
표준 수술 시간이 두 시간쯤 걸리는 수술이었다.
문제는 박리등급 5등급의 암이라는 것.
‘젠장,’
도수는 침음을 삼켰다.
5등급이라는 건 이미 간문부의 넓은 범위에 침윤된 담암이란 뜻이다.
쉽게 말해 어떠한 달인이라도 쉽게 손대기 힘든 상황이란 의미.
그러나 도수에게 이 수술은 선택이 아니었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수술인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진입해야 하지?’
어떤 상황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대담하게 척척 수술을 진행해 가던 도수마저 잠시 손을 멈출 정도로 난해했다.
허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시작합니다.”
짤막하게 뱉은 도수는 몽크스 화이트 라인(Monk's white line: 맹장 외측에서 후복막과 장측복막의 경계)을 확인한 뒤 맹장 쪽을 보비로 절개했다.
치이이이이이익.
다음 맹장하연을 돌아 회장으로부터 삼 센티의 거리를 두고 소장간막근을 다시 절개했다.
치이이이.
그의 손이 능숙하게 움직였다.
소장을 좌복강으로 떨어뜨린 채 횡행 결장을 들어 올려 간막을 펼쳤다.
“켈리.”
가위를 받은 도수는 결장동맥의 좌측을 상행한 뒤 중결장동정맥의 우측을 따라 복막을 절개했다.
귀신같이 혈관을 피하는 그.
‘진짜 미쳤나 봐.’
강미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담낭절제술은 애초에 처음 봤으니 얼마나 놀라운 건지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결장절제는 몇 차례 본 적이 있었다. 그녀의 경험상, 이처럼 무 자르듯 쉽게 장기 사이를 넘나들며 절제하는 써전은 처음 봤다.
하지만 그녀가 본 건 시작에 불과했다.
한 손에는 집게를, 한 손에는 가위를 든 도수는 귀신같이 회결장동정맥의 근부를 처리했다.
“보비.”
신경다발도 뚝딱 태워서 절제해 버렸다.
“정맥 자릅니다.”
실로 묶고, 간단히 결찰절제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말도 안 돼.’
강미소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중결장동맥(MCA), 우결장동맥(RCA), 회결장동맥(ICA), 상장간막정맥(SMV)이 혼잡하게 엉켜 있는 장간막 심부에서 가위를 놀리는 건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특히 상장간정맥은 써지컬 트렁크(Surgical trunk)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정맥관이다. 조금이라도 손상되면 수복이 어려운 데다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정맥인 셈이다.
그렇게 중요한 정맥과 동맥이 뒤엉킨 곳을 집게와 가위로 헤집는다?
말이 쉽지, 도수처럼 쉽고 빠르게 움직일 순 없다.
“이제 장간막 박리합니다.”
혈관처리를 번갯불에 콩 굽듯 끝낸 도수가 절개한 복막의 가장자리를 겸자로 말아 올렸다. 그러자 소성 결합 조직이 당겨지며 풀솜과 같은 장간막의 기초부가 나타났다.
근막을 찢고 아래쪽으로 진입한 도수는 들어갔던 경로를 따라 장간막을 박리했다.
“보비.”
턱.
치이이이이익.
능수능란한 손길을 따라 박리가 진행됐다.
이를 지켜보던 조근현 교수는 눈을 부릅떴다. 한순간이라도 놓치기 아깝다는 듯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
‘물 흐르듯 부드럽다.’
그랬다.
도수가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들이 교묘하게 연계되며 점차 결장을 절제할 환경을 만들었다.
저걱, 저걱.
조근현 교수는 도수가 만드는 템포를 따라가는 것만도 숨이 찼다.
혈관을 묶고 자르고 결장의 고정부를 절제해 가며 수술하는 도수.
그 동선에 막힘이 없도록 장간막과 결장을 당기고 만져줘야 하는 것이다.
마치 마라톤을 전속력으로 주파하듯 숨 가쁘리만치 손발을 맞춘 결과.
장간막과 혈관은 모두 다듬어져 장관을 절제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이 조성됐다.
그리고 마침내.
도수가 말했다.
“칼.”
턱.
메스를 든 도수는 장겸자와 단단겸자를 약간 떨어뜨려 양쪽에 걸고, 그 사이를 절제했다.
서걱, 석.
장관이 잘려 나가고.
“타이.”
땡그랑.
메스를 내려놓은 도수가 클램프로 실과 바늘을 집은 채 회장과 횡행결장을 문합했다.
슥, 스윽.
“리니어 스템플러(linear stapler: 절제와 봉합을 동시에 해주는 의료 도구).”
딸각, 딸각…….
리니어 스템플러를 이용해 결장과 회장을 잘라 버린 도수는 장간막 반대쪽에 구멍을 뚫고 새로운 리니어 스템플러를 삽입했다.
딸깍, 딸깍, 딸깍.
V 자 형의 문합부를 만든 그가 잘린 장관의 단면부에 세 가닥 실을 걸고 들어 올린 후 다시 리니어 스템플러로 집어 봉합했다.
이로서 암이 침윤한 부위를 완전히 절제한 셈이다.
샤아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을 쓰며 다시 한번 확인한 도수가 말했다.
“팔 밀리 더플 드레인 삽입해 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조근현이 시계를 확인했다.
“한 시간…….”
표준 수술 시간의 절반.
그건 둘째 치고라도, 담낭을 떼어낸 후 가속도가 붙은 느낌이었다.
결장우반절제는 정말 눈 깜짝할 새 끝나 버렸다.
물론 수술이 빠르면 빠를수록 죽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후아…….”
강미소는 기진맥진했다.
무려 두 부위를 절제하는 데 이 정도 시간밖에 안 걸렸다는 건 모든 과정이 그만큼 신속하게 진행됐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무리 시간이 단축되더라도 그녀가 할 일의 양은 동일하다는 것.
‘쉬다 하자고 할 수도 없고.’
허리는 뻐근하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수술 경험이 많고 수술 내내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도수나 조근현 교수의 위치와 달리, 그녀는 비교적 시간이 길고 고단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불평불만 따위 꿈에도 표낼 수 없지만.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수는 강행군의 속도를 더 높였다.
“침윤된 충수부 절제합니다.”
눈물이 찔끔 나는 강미소였다.
***
한편.
수술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참관실에는 이사장을 비롯한 병원장, 부원장, 과장들이 대거 자리하고 있었다.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정말 말도 안 되게 빠르군요.”
수술에 참여한 횟수로 치면 누구 못지않게 많은 마취과 과장이 말했다. 그는 동시에 쓴 웃음을 지었다.
‘이거야, 원…….’
그의 눈길이 향한 곳은 정현진의 얼굴이었다.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었는데, 한마디로 정의하면 모두 감탄한 얼굴이다. ‘감탄’이란 카테고리 안에 얼마나 많은 표정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큰 수술이라며 들어간 정현진의 예상과 달리, 그의 두 손은 장식품처럼 방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써전의 솜씨가 워낙 깔끔하니 뭘 할 게 없구만.’
본래 큰 수술에는 자잘한 실수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수술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특히 지금처럼 여러 부위를 건드리는 복잡한 수술에선 실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실수가 치명적이지 않고 결과적으로 잘 끝나면 그 수술을 ‘성공했다’고 한다.
한데 도수는 도무지 실수가 없었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출혈도 없었다.
오죽하면 바이탈도 처음 그대로다.
반쯤 황당하고 반쯤 감탄해서 헛웃음을 짓는 마취과 과장을 응시한 내과 과장이 한마디 더했다.
“제가 다 수술을 하고 싶어지는군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과는 수술적 치료를 하지 않는다. 그런 내과에서 수십 년 지내온 그가 봐도 피가 끓어오를 만큼 도수가 보여주는 실력은 대단했다.
축구 선수완 거리가 먼 일반인이 축구 선수의 다큐를 보고 선수처럼 뛰고 싶어지는 것과 비슷했다.
두 사람이 그같이 마음껏 감정을 드러내는 반면.
이 수술을 반대했던 과장들은 입을 꿰맨 듯 말을 잃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수술이 성공하는 순간 반대하던 그들의 의견은 환자를 죽일 수도 있었던 ‘저열한 간언’이 되는 셈이다.
그들을 무감정한 눈길로 일별한 병원장이 입을 뗐다.
“대단한 실력입니다.”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병원에 저런 인재가 있다는 건 축복이지. 센터장 자리를 줘서라도 데려오길 잘한 것 같지?”
“그러게 말입니다. 만약 이번 수술이 성공하면 본원의 위상도 올라갈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이런 수술을 할 수 있는 써전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안 빼앗기게 조심하세.”
이사장의 말에 병원장이 미소 지었다.
“그럼요. 센터장 같은 인재를 빼앗길 순 없지요. 그나저나 이번 수술은 성공해야 할 텐데요. 실력이야 잘 봤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중얼거린 이사장은 도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단순히 수술 과정이 놀라워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병원을 직접적으로 경영하는 CEO. 그리고 사적으론 도수의 할아버지였다. 이번 수술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도수를 지켜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 한켠에는 후계자로서 도수를 탐내는 마음도 꾸물꾸물 커지고 있었다.
***
툭!
“…충수 절제했습니다.”
도수는 충수의 절단면을 소독하고 봉합한 실을 잘라 맹장을 복강 내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복막을 닫진 않았다. 아직 직장 내부로 침윤된 종양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까지 수술한 부위를 패드로 감싼 도수가 말했다.
“환자 체위 바꿔주세요.”
그러자 조근현과 강미소가 환자의 다리를 들어 올려 고정시키는 쇄석위로 바꾸었다.
직장은 가장 아래 있기 때문에 회음부나 항문, 방광 등을 검사할 때 쓰이는 체위를 썼다.
환경이 갖춰지자, 도수가 말했다.
“보비.”
그는 차근차근 직장 주위의 막을 해부해 나가기 시작했다.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 수많은 복강경 영상을 보았다. 그러나 직장 수술을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써전이었다면 안개가 낀 산속을 헤매듯 멍해졌을 것이다.
골반 내 근막의 연속성이나 정확성은 실제로 해보기 전까진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해부만 해도 힘든 직장 수술이기에 도수는 더욱 집중력을 올렸으나, 강미소나 경험이 적은 의료진들에게는 세 시간이 넘어가고 있는 수술 시간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긴장감이 느슨해진 듯하자 도수가 일침을 놨다.
“모두 긴장해요. 진짜는 이제부텁니다.”
말 대로였다.
직장절제술은 부위에 따라 표준수술 시간만 세, 네 시간이 걸리는 롱 타임 써저리다. 앞으로 지금 수술한 시간의 두 배를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앞이 깜깜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었다.
이미 침윤이 진행된 종양의 경우 조금만 암세포를 남겨도 금방 전이되거나 다른 장기로 다시 침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침윤상태가 좋지 않은 임숙영에겐 그야말로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미래였다.
“…우리가 힘내지 않으면 환자는 죽어요.”
도수의 어조는 단조롭고 퍼석했다.
그래서 더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여기서.
도수의 지시 또한 이질적으로 바뀌었다.
“지금부터 혈관을 재구성하면서 수술합니다.”
“……!”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듣는 것만으로도 모호했다.
“그게 무슨…….”
강미소가 묻자.
도수가 답했다.
“이대로 가면 환자가 못 버텨요. 벌써 꽤 많은 부분을 잘라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수술의 성패를 비관한 이유도 그거였으니까.
장은 세균이 서식하고 혈관 분포도 심장보다 복잡하다.
그렇기에 너무 많은 부위를 절제하면 괴사될 위험이 높았다.
다시 말해 대장을 아주 드러내는 것만 못하단 뜻이다.
그건 그런데, 그 많은 혈관들을 재구성한다고?
물론 혈류를 원활하게 만들어 적당한 혈액을 공급해 줄 수 있으면 괴사는 막을 수 있겠지만 수술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손상을 입게 되는 혈관들이다.
그 혈관들을 모두 살릴 순 없는 노릇.
“장이 괴사될 걸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혈관을 재구성하겠다는 건 무슨 소립니까?”
조근현 교수가 대표로 묻자 도수가 대답했다.
“말 그대롭니다. 심장성형술에서처럼 혈관들을 이어가며 수술할 겁니다.”
“…대장은 심장보다 훨씬 혈관 구조도 복잡하고 융통성이 적어요.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요.”
차라리 대장이 괴사하지 않길 기도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됐다.
그만큼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다.
수술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손상을 입는 혈관들을 일일이 이어 붙여가며 수술한다면 한나절이 지나도 수술을 끝내기 힘들 터였다.
그사이 장 괴사와 과다 출혈로 환자가 사망할 건 불 보듯 빤하고.
그러나 도수는 이 모든 걸 해결해 줄 방법을 찾았다.
다소 단순하고 황당한 방법을.
“빠르면 됩니다.”
속도는 손기술로.
정교함은 투시력에서.
이 두 가지만 초월한다면 활로(活路)는 있었다.
도수는 그들을 납득시키는 대신 이 수술의 본질적인 문제를 자기 입으로 꺼냈다.
“일반적인 방법으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수술입니다. 견고한 상식을 깨부술 수 있는 건 인간의 잠재력뿐이에요. 우리 모두가 잠재력을 최대치까지 끌어 올려야만 할 수 있는 수술입니다.”
그가 찾은 해답은 실로 별 게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해답이었다.
도수의 말을 들은 수술팀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뭔가가 치밀었다.
“…해볼게요. 어차피 해내지 못하면 환자를 잃는 거 아니에요?”
강미소가 다시 한번 불씨를 키우며 눈을 빛내고.
조근현이 덧붙였다.
“할 수 있다.”
탁.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이내.
“해보겠습니다.”
“센터장님, 믿습니다.”
의사, 간호사.
어느새 너나 할 것 없이 수술팀 인원들 모두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말했다.
“현미경.”
마침내.
마지막 관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