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84화 (84/152)

# 84

도수의 영역

담낭암 수술은 그 자체로 어려운 수술이었다. 오죽하면 조기 위암보다 심한 담석 담낭염 수술이 더 어렵다고들 했다.

그러나 도수는 충분한 자신감을 갖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자신감이 있다고 해서 교만했던 건 아니다. 그는 신중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의료진의 인사를 받으며 환자 앞에 선 도수는 조근현 교수와 마취과 정현진 교수에게 목 인사를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음 같아선 손을 맞잡고 몇 번이나 청하고 싶을 정도로 간절했다.

환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임숙영.

김광석의 아내이자, 도수에게는 신세를 졌던 은인이었다.

지금 그녀를 살린다면 보은이 되겠지만 수술에 실패할 경우 당사자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마저 사라진다.

‘도와주세요.’

속으로 얘기한 도수가 바이탈로 눈을 돌렸다.

“몇 차례 고비가 올 수도 있습니다.”

정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제 구역입니다. 저한테 맡기세요.”

믿음이 갔다.

도수가 입을 열었다.

“칼.”

메스가 강미소의 손에서 도수의 손으로 넘어왔다. 강미소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마나 어려운 수술인지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개복합니다.”

그는 칼날을 임숙영의 복부로 가져갔다.

“…….”

살을 가르고 배를 열어야 할 차례.

왜 ‘지인이나 가족의 수술을 하지 말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망설임.

이 찰나의 망설임이 환자의 생사를 가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다른 점은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도수뿐이라는 것이다.

해야 했다.

해야만 하지만, 망설이면 안 되는 건 도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환자다.’

눈을 감고 단정 지은 도수가 눈을 떴다. 그녀의 얼굴을 외면한 채, 그는 손을 움직였다.

스으으으윽.

마침내.

도수가 복부 오른편을 배꼽 아래부터 골반까지 길게 절제했다.

처음부터 일반적인 절개법과 달랐다.

담낭절제술은 명치 쪽부터 오른쪽 옆구리 위까지 사선으로, 충수절제술 시에는 오른쪽 아랫배를 반대쪽 사선으로, 결장우반절제술을 할 땐 오른쪽 배를 수직으로 가르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다행이야.’

암의 침윤범위가 우반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최소한의 부위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절개할 수 있었다.

중앙이나 좌측까지 침윤됐다면 수술은 더 어려워졌을 것이다.

도수의 긍정적인 생각과 달리, 이를 본 조근현 교수가 물었다.

“담낭절제 때 시야 확보가 어려울 것 같은데.”

물론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다.

수술 중 다시 절제하긴 어려우니 당연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도수에게는 남들이 볼 수 없는 범위까지 파고들 수 있는 투시력이란 무기가 있었다.

“이 정도면 볼 수 있습니다. 보비.”

조근현 교수는 토를 달지 않고 절개 부위를 고정시켰다. 어차피 이 수술은 그가 알고 있는 상식 밖의 수술. 과정을 이끌고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것 모두 도수의 몫이었다.

턱.

보비를 받은 도수는 복막을 자르고 들어갔다.

치이이이이익.

막이 타들어가며 역겨운 냄새가 올라왔다.

평소보다 더 오감이 예민해지는 건 이 환자가 ‘임숙영’이기 때문이겠지만, 도수는 계속 의식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배 열렸습니다.”

강미소의 한마디는 수술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조근현이 개창기와 늑골 견인기를 걸어 수술 부위를 확보했다.

“쿠퍼 가위.”

도수는 담낭과 횡행결장 사이를 잘랐다.

서걱, 석…….

“보비.”

이번엔 대망(Greater omentum: 위의 아랫 부분부터 전복벽 안으로 쳐져있는 넓은 막)과 간 사이를 절제했다.

내려다보고 있던 조근현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딱 좋군.’

간에 너무 가까우면 간피막이 벗겨져 실질로부터 적지 않은 출혈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도수는 좁은 시야 속에서도 간피막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대망과 간 사이를 박리했다.

조근현은 간 하부면 전체가 보이도록 십이지장과 우결장만곡을 하부로 당겼다. 그리고 그 손 위로 미큘리츠 거즈를 씌우듯이 올려두고 긴 겸자로 모든 면에 빈틈없이 거즈를 깔았다. 장이 나오지 않도록 보조하는 요령이 제법 좋았다.

‘역시.’

도수 역시 눈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사람을 제대로 데리고 들어온 것 같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레지던트나 일반 전문의는 하기 힘든 역할까지 해주고 있었다.

“클램프, 켈리.”

도수는 강미소에게 집게와 가위를 받아들고 투시력을 사용했다.

샤아아아아아아아.

보통 보비를 사용하지만 도수는 그러지 않았다. 투시력으로 봤을 때, 겸자와 보비가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위로 얇게 돌진한 것이다.

가위를 담낭 쪽에 붙여 진격했다. 가위 날이 담낭관 뒤 장막까지 절제하고 들어갔다.

그러자 아주 미세하게 담낭관 주위를 둘러싸는 결합 조직이 보였다.

“보비, 클램프.”

도구를 바꿔 든 도수가 결합 조직을 잘라냈다.

“켈리.”

그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 투시력을 이용해 결합 조직뿐만 아니라 담낭동맥까지 단박에 찾아냈다. 인대처럼 질긴 동맥을 실로 묶은 도수는 결찰절제(실로 묶고 자르는 것)를 했다.

서걱.

너무 빠른 진행 속도에 조근현은 침음을 삼켰다.

‘헛갈리지도 않는군.’

담낭동맥은 자칫 우간동맥과 헛갈리는 경우가 있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도수는 아주 작은 찰나의 망설임도 없었다.

투시력을 쓰기 때문이지만, 조근현의 눈에는 수술 과정만 보일 뿐 투시력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 봐도 로봇처럼 수술한단 말이야.’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조근현이 눈알을 굴리자, 마취과의 정현진 역시 넋이 나간 채 수술 과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역시 같은 의미로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사이에도 도수는 멈추지 않고 수술을 이어갔다.

“박리겸자.”

담낭관주위를 모두 박리한 도수는 칼롯삼각의 함몰부로 박리겸자를 밀어 넣었다. 마치 수술 과정 전체를 아우르듯 거침없는 진행이었다.

‘기가 막히는군……!’

조근현은 마스크 안으로 입을 벌렸다. 칼롯삼각의 함몰부로 들어갈 땐 겸자의 끝부분을 왼손 검지로 가이드하며 가장 얇은 부위를 찾아야 한다. 속도는 늦춰져도 부드럽게 진행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도수는 촉감으로 만져보지도 않고 거침없이 겸자를 찔렀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생각 없이 푹 찌른 것 같은데 암반처럼 딱딱하고 비후한 칼롯삼각 중 정확히 얇은 부위를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야?’

디테일 하나하나가 일반적인 써전의 수술과 달랐다. 작은 행동의 차이가 쌓여 차원이 다르게 보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고스톱을 칠 때 패를 내는 것만 보고도 꾼인지 호구인지 알 수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도수는 ‘꾼’이었다. 그냥 꾼도 아닌 귀신이었다. 상대 패를 훤히 보고 게임을 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혈관 테이프 걸쳐주세요.”

도수의 말에 조근현이 퍼뜩 깨어났다. 그는 담낭관에 혈관테이프를 걸쳤다. 그래도 수술 순서는 안 빼먹고 가져가는구나 생각한 조근현이 보비를 들었다.

그때 이미 도수는 담낭 정부의 장막에 소절개를 한 후였다. 그가 박리겸자를 장막하층에 넣어 남은 장막을 건져 올리자.

조근현이 보비로 장막을 잘랐다.

엎치락뒤치락하는 호흡이 찰떡처럼 맞아떨어지니 수술 진도는 빠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사방의 장막을 깨끗하게 절개했고.

이를 계기로 도수는 점점 더 속도를 붙였다.

“클램프.”

턱.

“켈리.”

석, 서걱.

도수가 수술을 진행하는 사이 조근현 역시 거들었다.

“보비.”

강미소의 손도 빨라졌다.

“펌핑 견인기.”

척…….

처음에는 도수 한 명이었다. 그가 눈부신 속도로 수술했다. 그러자 조근현 교수가 바짝 따라붙었다. 당연히 두 사람에게 적절한 도구를 전달해야 하는 강미소의 손도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주르륵.

뺨을 타고 땀이 흘렀다.

‘이렇게 힘든 거였어?’

그녀는 전문의를 앞둔 레지던트 3년 차다. 그런 그녀가 수술 도구를 건네는 일만으로 ‘벅차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건 그녀가 어리숙한 게 아닌, 두 써전의 호흡이 너무 빠른 것이다.

‘어리광 부리는 건 내 스타일 아니지.’

강미소는 입술을 깨물고 더 속도를 올렸다. 두 써전이 기다리지 않도록. ‘빨리!’라는 외침이 터져 나오지 않도록 머리를 굴리며 손을 놀렸다.

치이이이이익.

어느새 도수의 손으로 옮겨간 보비는 담낭 상부에 인접한 간 실질을 기가 막히게 피해가고 있었다. 자칫 실수로라도 건들면 중간 정맥이 터져서 예기치 못한 대출혈을 볼 수 있음에도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신기(神技)… 신기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었다.

수술자에게는 항시 미세한 망설임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에도 간 실질을 건드리거나 간을 피하다 노란 담즙이 나오진 않을지 조심스러워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도수의 손길은 ‘자칫’, 혹은 ‘만약’이란 단어가 없는 사람처럼 거침없었다.

치이익.

담낭 표면의 점막을 보비로 태워둔 도수가 말했다.

“가위. 쓰리제로 바이크릴.”

도수는 담낭 주위에 남은 여분의 결합 조직을 절제한 뒤, 담낭관의 총담관 쪽을 실로 묶어 결찰절제 했다.

투둑.

암이 침투한 담낭이 완전히 잘려져 나왔다.

보통 같으면 수술이 끝난 뒤 간 상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지금은 출혈도, 지혈도 없었다. 심지어 담즙 누출도 없었다.

담낭을 떼어냈는데도 원래 쓸개가 없는 사람의 배 속처럼 깨끗했다.

“후…….”

조근현은 감탄을 한숨으로 대신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수술실에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이번 수술이 힘들 거라고 여겼던 그이지만. 분명 그리 여겼던 그인데, 기대감이 불씨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암이 침윤된 부분을 모조리 절제하고 환자를 살려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공상과도 같은 상상이 들었던 것이다.

반면 도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미 수술 전부터 오늘 할 수술의 과정을 모조리 머릿속에 그려놓고 들어온 그는 신경을 팔 새가 없었다. 수술 시간은 수술 결과와도 밀접했다. 수술이 계속되는 한, 어찌됐든 환자의 몸은 계속해 대미지를 받기 때문이다.

도수가 말했다.

“이리게이션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담즙도, 출혈도 없었으니 그럴밖에.

그가 거즈를 제거하며 덧붙였다.

“팔 밀리 더플 드레인(8mm duple drain: 튜브의 일종) 삽입해 주세요. 다음 결장, 충수, 직장 순으로 수술합니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다는 뜻이다.

도수가 결장을 살피는 사이 조근현 교수는 담낭에 튜브를 연결했다.

“센터장님.”

그가 말을 시키자 도수가 눈을 들었다.

이내 조근현 교수가 말을 이었다.

“전 결장, 충수, 직장이 전부 다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당연했다.

집도의 위치에서도 모든 장기들이 명확히 보이진 않았다. 도수가 투시력이 없었다면 이 정도 범위만 절개한 채 세 가지 수술을 하는 건 힘들었을 터였다.

도수가 무어라 대답하기 전에 조근현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나도 미친 건지 이 환자… 완치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수한 수술을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간 환자도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을 때가. 손놀림은 기름칠을 한 듯 부드러워지고 심장에 불이 붙으며 머릿속은 동결된 듯 차갑게 가라앉는 동시에 시야는 선명해지는 그런 순간이 온다. 말하자면 일종의 각성 상태라 할 수 있다.

수술에 집중하다 보면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만큼 간혹 찾아오는 이 순간이, 조근현에게는 바로 지금 찾아왔다. 놀랍게도 도수와 손발을 맞추며 도수의 영역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도수는 느끼지 못하지만, 그는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순간이 써전으로서의 각성 상태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어떤 환자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도수는 결장을 보며 손을 뻗었다.

“클램프. 보비.”

괜스레.

도구를 건네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강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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